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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7

       “쟤는 아까부터 계속 따라다니네.”

        

       점심시간.

        

       식사 시간에 멤버가 더 늘었다.

        

       소희는 당연히 합석한다. 단순히 내 메이드라서 거절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된 친구를 무시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따로 밥을 먹겠다고 했어도 부르는 게 맞는 일이겠지.

        

       “와, 여기는 점심도 고급이네. 확실히 학비 비싼 값을 해.”

        

       소희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의외로 접시에 음식을 수북이 담지는 않았다.

        

       처음 저택에서 함께 식사했을 때가 떠올라서 접시 위에 수북이 담아올 줄 알았는데, 하늘이와 수아보다도 양이 적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접시에 담아온 것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응? 아, 이거? 뭐 어때. 어차피 이제는 삼시 세끼 전부 고급 음식으로만 먹는데. 아침도 든든히 먹었으니 문제없어.”

        

       내가 다른 친구들의 접시와 소희의 접시를 번갈아 바라보자, 소희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대충 눈치챘는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은 즉, 아침에 이미 많이 먹어서 지금은 별로 밥이 당기지 않는다는 말인가.

        

       ……대체 얼마나 먹었기에?

        

       물론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걸 물어보는 건 좀 너무 나간 것 같아서, 나는 조용히 접시를 내 앞으로 끌어오려고 하는데—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가씨.”

        

       소희가 그렇게 말하더니, 교복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펼쳐 들었다.

        

       하늘하늘한 손수건을 능숙하게 펼치더니, 내 무릎 위에 그대로 깔았다. 손수건은 생각보다 엄청 얇아서, 주머니에서 나왔는데도, 그리고 반으로 접혀 있는데도 내 허벅지의 반 정도는 쉽게 덮을 수 있는 크기였다.

        

       “……이건?”

        

       “냅킨입니다.”

        

       소희가 내 허벅지 위에 올라간 하얀 냅킨을 보며 아주 뿌듯하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저 존댓말과 반말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네. 평소에는 잊고 있다가 가끔 메이드 업무가 생각날 때만 쓰는 건가?

        

       ……뭐, 그런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냅킨?”

        

       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무 보충 설명도 없이 자리에 앉았다.

        

       “…….”

        

       아니, 뭐, 그래.

        

       엄청나게 비싼 식당에 가면 식사 나오기 전에 테이블에 냅킨이 있는 경우도 있고, 어느 판타지 소설에서 냅킨을 무릎 위에 올려두는 것이 예법에 맞는다는 이야기를 읽어본 기억은 있다.

        

       하긴, 그래. 저택에서는 종종 냅킨을 쓰기는 했다. 양혜인이 내 무릎 위에 펼쳐줄 때도 있고, 내가 내 무릎 위에 까는 경우도 있긴 했다.

        

       그런데 학교에서까지 냅킨을 써본 적은 없는데.

        

       ……뭐, 너무 신경 쓸 필요 있을까.

        

       학교 안에서야 따라다니는 메이드가 없으니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을 뿐이고, 지금은 메이드가 따라다니고 있긴 했으니까.

        

       메이드 복이 아니라 교복을 입고 있을 뿐.

        

       내가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접시 쪽을 보니, 이번에는 엄청나게 잘 정돈되어있는 접시와 식기가 보였다. 그, 가끔 포스터에 그려져 있는 접시와 포크, 나이프 그림이 있지 않은가? 딱 그런 모습이 생각나도록, 포크, 접시, 나이프가 오와 열을 맞춰 누워 있었다.

        

       만약 시간만 더 있었다면 접시 밑에 뭐라도 깔아두기라도 할 판이었다.

        

       그 모습에서 완벽하지 못한 부분은 내가 접시 위에 아무렇게나 받아온 음식들 뿐이었다.

        

       소희는 생각보다 인수인계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 고마워?”

        

       “별말씀을.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내 칭찬에, 소희는 내 쪽을 향해서 허리를 살짝 숙였다. 굳이 의자에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기품 있는 모습이었다. 양혜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하긴, 정식으로 메이드가 된 지는 이제 고작 하루 지났을 뿐이니까.

        

       “…….”

        

       거기서 더 대꾸했다가는 정말로 아가씨와 메이드의 대화가 되어버릴 것 같아서, 나는 그냥 접시 양옆에 있는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그때까지 이쪽을 멍하니 보고 있던 하늘이와 수아는 그제야 자신들의 식기를 집어 들었다.

        

       본인들이야 워낙 어이가 없고 황당한 일이었으니 그저 멍하니 보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아무래도, 이 테이블에 같이 앉아있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역시, 내가 생각하던 대로야.”

        

       나는 접시에 가져다 대려던 포크와 나이프를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나와 사선으로 앉아있는 그 아이를 보았다.

        

       내 왼쪽에는 소희가, 오른쪽에는 하늘이가 앉아있었다. 수아는 나와 거의 마주 보는 자리에 있었고.

        

       둥근 테이블에 앉아있었기에 이렇게 앉으면 두 명씩 마주 보는 형태가 되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소희와 하늘이가 내 쪽으로 더 붙어 앉은 모양이었으므로 자리가 조금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수아와 소희 사이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이가 바로 있었으니, 바로 선도위원…… 어, 손아름이었다.

        

       매번 선도위원이라고만 불러서 이름도 잊어버릴 뻔했네. 이 학교 이름표는 한자가 아니라 한글이라서 참 다행이다.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한자 공부시킨다고 쓸데없이 이름표를 한자로 만들어서 애들 이름 외우기도 엄청 힘들었는데.

        

       대체 뭐가 자기 생각대로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섞여 있는 그녀를 보고 도저히 한마디도 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저기,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내 질문에, 손아름은 아주 당당하게 선언하듯 말했다.

        

       “그야 당연히, 너를 감시하기 위해서야.”

        

       허허허.

        

       굳이 감시 같은 거 안 해도 나는 충분히 눈에 띄는 편인데. 솔직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나의 이야기만 들어봐도 내가 오늘 뭘 했는지 아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뭐 오늘은 별거 안 하기는 했지만.

        

       소희와 하늘이 때문에 주변 애들이 공포에 질려가고 있을 뿐이지.

        

       “그래? 뭐 대단한 거라도 발견했어?”

        

       나는 그렇게 물어보면서 고기 한 조각을 포크로 콕 찍었다. 소고기인가?

        

       “…….”

        

       손아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 동안 생각만 했다.

        

       그야 그렇겠지. 오전에 소희를 보고 뭐라고 할 수는 있었겠지만, 한 반 안에서 일어난 사건은 얘가 알 방법이 없다. 소문이 퍼진다면 괜찮겠지만, 오늘 있었던 사건은 학생들이 보기에도 함부로 퍼뜨리면 안 될 이야기였으니까.

        

       담임이 돈을 받아먹었는데, 무려 받아먹어서는 안 되는 쪽에서 받아먹었다.

        

       그것도 십수억 원을.

        

       덕분에 반 애들도 나를 무시해야 어쩌나 엄청나게 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밖으로 퍼지면 그만큼 위험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 주변에 사람이 이렇게 없는 건?”

        

       손아름이 물어왔다.

        

       아, 그래.

        

       확실히, 주변 테이블에 사람이 없기는 했다. 학생 식당의 나머지 부분은 학생들로 가득 차서 바글바글했는데도, 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내가 편하게 먹으려고 싹 치워버린 것처럼.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오해받을만한 모습이긴 했다.

        

       “내가 치워버렸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

        

       내가 손아름을 빤히 바라보면서 입 안에 고기 한 점을 넣자, 그녀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그래, 내가 아니라고 하면 어떻게 반박할 이야기가 없으니까.

        

       나를 무시하는 아이들을 붙잡고 물어보더라도 저긴 아무것도 없다는 엉뚱한 대답이 돌아올 뿐일 거다. 의외로 학교 애들의 말하는 방식은 굉장히 일관되었으니까.

        

       “내가 아니라고 해도 믿지는 않겠지만.”

        

       게다가 ‘알아서 비켜줬다’라는 사실만 두고 보면 사실이기도 했다. 나는 비켜달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지난 2주간 이 자리에서 꾸준히 밥을 먹었더니 그냥 여기가 우리들의 고정 자리가 되었을 뿐이다.

        

       “너도 우리 주변에 한 번도 앉아본 적 없잖아? 우리가 너한테 뭐라고 한 적 있어?”

        

       “으으…….”

        

       그래, 그거 가지고 인제 와서 뭐라고 하기에는 좀 많이 애매하긴 해.

        

       결국, 손아름은 이후에도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접시는 싹싹 비웠다.

        

       하긴 여기 밥이 맛있긴 해.

        

       *

        

       “기왕 이렇게 된 거, 대화나 할까?”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손아름이 따라 나오길래, 나는 그녀에게 그렇게 제안했다.

        

       내 말을 들은 손아름은 자기 몸을 감싸 안더니,

        

       “네가 뭐라고 해도 나는 설득당할 생각 없으니까!”

        

       “…….”

        

       아니, 진짜 그냥 대화나 하자는 건데.

        

       학교 내에서 내 주변 친구들 말고 나와 말을 섞어 주는 사람은 남다운이나 윤다호, 그리고 축구부 부장 정도뿐이다. 한가람 팀장은 점심시간에는 전혀 보이지도 않고.

        

       “설득할 생각 없어. 그냥 나랑 대화하고 싶어 보여서 말해봤을 뿐이야.”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인 후,

        

       “싫어?”

        

       하고 물어봤다.

        

       “…….”

        

       손아름은 잠깐 입을 벌리고 나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뭔가가 떠오른 듯 화들짝 놀랐다.

        

       “됐거든!”

        

       그리고 그렇게 빽 소리치더니, 몸을 휙 돌려서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분명히 대화하고 싶은 것 같았는데.

        

       이런저런 사람한테 뾰족하게 굴고 있긴 하지만, 왠지 쟤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팍팍 느껴졌다. 내가 촉이 대단히 좋아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있지 않은가. 나는 사람이 싫어, 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그건 사람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게 어색해서 그렇게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것뿐인 사람.

        

       적대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두고 ‘저 사람들이 나를 따돌리는 게 아니라 내가 저 사람들을 따돌리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합리화시켜버리는 사람들.

        

       내가 그런 적이 있어서 알고 있다. 아니, 사실 이건 사회생활 할 때는 어느 정도 필요한 사고방식이긴 했다.

        

       그래서,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에게도 나도 모르게 뾰족하게 굴고 마는 것이다.

        

       사실 진짜 악의가 있어서 저러는 것도 아니고, 정말로 이해하지 못해서 저러는 거니까 딱히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괜시리 한 번 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뒤로 돌아서다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왜 그렇게 보고 있어?”

        

       내가 그렇게 묻자, 세 사람은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손아름에게 그런 말을 했던 것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이상한 일인가?

        

       “아니, 진짜 왜 그러냐니까.”

        

       “말해 뭐하겠냐.”

        

       소희가 그렇게 대답했다.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는 것을 보니 걱정이 늘어난 것 같은 표정이다. 대체 뭘 어떻게 걱정하길래 이런 반응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친구를 늘리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하늘이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게. 나쁜 일도 아닌데.

        

       “어디서부터 다시 말해줘야 하는 걸까…….”

        

       수아가 작게 중얼거렸지만,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근본적인 부분부터 잘못된 일인가?

        

       “아, 혹시 나를 적대하는 애랑 말을 섞으려고 해서 그런 거야?”

        

       내 말을 들은 세 명이 동시에 한숨을 푹 쉬었다.

        

       아니, 말을 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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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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