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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8

    손 안 가득 퍼 올린 푸딩을 내미는 황금 사신.

    입으로 그 푸딩을 받아먹자, 맛있지? 라고 말하는 것처럼 빤히 쳐다보는 황금 사신이.

    “고마워!”

    고맙다고 말하면서 사신이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회색 사신이의 푸딩 미식 여행은 수입해 온 어떤 푸딩을 발견하는 순간 멈추게 되었다.

    어찌나 좋아하던지, 표정 변화가 별로 없는 회색 사신이 좋아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황금 사신의 반응은 처음엔 조금 의아했었다.

    한입 먹고 나면 푸딩을 양손 가득 퍼 올려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회색 사신과는 달리 황금 사신이의 입맛에는 안 맞는 줄 알았다.

    하지만 거의 주식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이 푸딩만 집어먹는 걸 보면, 황금 사신이도 엄청나게 좋아하는 푸딩이었다.

    황금 사신이는 기특하게도 정말 맛있어서, 인간들도 한번 먹어보라고 나눠주는 것이었다.

    지나다니면서 황금 사신이의 푸딩을 뺏어 먹는 회색 사신이와는 정반대였다.

    하지만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중뢰 선배. 여전히 푸딩이 안 들어오고 있대요?”

    “음. 한국 쪽 물량을 생산하는 공장이 2급 위험도를 가진 오브젝트에게 점거됐다는군. 이상하게 재격리에 계속 실패하고 있다는 것 같아.”

    회색 사신이가 너무 좋아하는 푸딩인데, 공장에 문제가 생기다니.

    푸딩이 없다고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설마 푸딩 먹겠다고 공장까지 찾아가진 않겠지? 

    ***

    서울 한복판에 사막이 생겼다. 

    그것도 피처럼 붉은 모래로 가득한 사막. 

    그런 신기한 현상은 서울 사람들에겐 좋은 여흥 거리가 되었다. 

    오브젝트와 관련되어서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여기까지 오는 관광객들은 그런 건 염두에도 두지 않는 사람들이겠지.

    그런 사막 한복판, 전신에 문신을 새긴 거구의 여자가 나타났다.

    “언니, 여기는 갑자기 왜 오자고 한 거야?”

    그 뒤를 졸졸 따라오는 심약해 보이는 여동생.

    “여기에 그 유명한”

    뭔가 생소한 발음의 무언가를 말하려던 거구의 여자는 입을 닫고는 다시 말했다.

    “‘붉은 달’이 나타났으니까. 이름을 부를 때도 조심해야 한다니, ‘이름 없음’은 정말로 성가시군.”

    거구의 여자는 뒤를 돌아 여동생을 내려다보며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나를 죽이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말해. 나는 지금의 인생을 일종의 ‘덤’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제대로 된 죽음이 주어지는 것만으로도 축복이야.”

    “아니, 죽인다는 이야기는 언제까지 계속할 거야! 이젠 안 죽일 거라니까.”

    여동생은 당황해서 횡설수설 말을 이어갔다.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나는 지금 언니가 훨씬 더 좋은걸?”

    여동생은 생긋 웃으면서 당연한 이야기를 언니에 대한 자랑이랍시고 늘어놓았다. 

    “때리지도 않고, 욕하지도 않고, 상냥해.”

    사실 여동생의 살해 시도는 꽤 자주 있었지만, 여동생의 의지 부족으로 번번이 실패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태도가 180도 바뀌었는데, 그 원인에 대해선 언니 쪽에선 짚이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냥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였으니 이럴 수도 있으려나, 하고 있었다.

    특히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말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믿어주는 점이 이상했다.

    “그래서 그 ‘붉은 달’은 왜 보러 온 거야?”

    “사실 이 사막에는 붉은 달의 주민들이 살았었는데, 지금 꼴을 보니 없는 것 같군. 남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거구의 여성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붉은 모래를 손 안 가득 퍼 올렸다. 

    그리고 품 안에서 꺼낸 안약 통에서 정체불명의 액체를 한 방울 떨어트렸다. 

    붉은 모래는 액체를 중심으로 꾸물꾸물 뭉치더니, 진주처럼 빛나는 광택을 가진 빨간 구체가 되었다.

    “와, 마법 같아!” 

    “마법이 아니라 간단한 연금술이다.”

    “응응, 대단해 연금술!”

    거구의 여자는 둥근 구체를 가지고 온 가방 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여동생은 그 모습을 보면서 물어봤다.

    “그걸로 폭탄 비슷한 걸 만든다고 했었지?”

    “그래,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녀석들에게는 특효약이지.”

    “그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괴물들’은 본 적도 없는데, 꼭 필요한 거야?”

    “그 녀석이 이 세계에 나타난 이상, 분명히 필요해.”

    사나운 미소를 지으면서 으르렁거리는 그녀의 뇌리에서 하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인류의 배신자라고 불리던 한 남자의 비열한 얼굴.

    현재는 트리니티 제3 연구소 소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남자의 얼굴이 말이다.

    ***

    트리니티 연구소를 이끄는 3명의 소장 중, 한 명. 

    제3 소장이 거주하는 저택.

    정원에는 질척거리는 검은 흙 위에서 기분 나쁜 검은색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곳.

    그 저택 한구석에서 진흙이 되어버린 집사를 중년으로 보이는 제3 소장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음, 이번에는 확실히 비약을 재현한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실패했군. 아쉽군. 아쉬워.”

    제3 소장은 아쉽다고 계속 말하고 있었지만, 표정은 전혀 아쉬워 보이지 않았다.

    “…! …! ….” 

    이미 녹아내린 집사는 마구 발버둥을 치면서 소리치고 있었지만,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릴 뿐이었다.

    제3 소장은 살려달라고 웅얼거리는 집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역시 집사는 마지막까지 충성스럽군. 장례 대신 산채로 태워달라니.”

    제3 소장이 손가락을 튕기자, 작은 불씨가 튀어나와 집사의 위로 살짝 내려앉았다.

    그러자 마치 석유에 불이 붙은 것처럼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는 집사.

    “식생이 다르니, 약이 계속 불완전해. 실험이 더 필요하겠어.”

    불타는 집사의 곁에 누워 있던 거구의 남성이 벌떡 일어났다. 

    “오, 벌써 정신을 차렸나? 황금뿔을 가지고 있으니 뭔가 다르긴 하군.”

    하지만 거구의 남성은 정상으로 보이진 않았다.

    흰자까지 까맣게 물들고, 침까지 질질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제3 소장은 매우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사를 새로 구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새 집사가 바로 생겼군. 잘 왔네. 새로운 집사.”

    제3 소장은 비틀거리는 거구의 남성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새로운 집사를 환영해 주었다.

    그리고 거구의 남성에게 집사의 타버린 잔해를 치우도록 명령하고는 저택 깊숙한 곳으로 떠나버렸다.

    거구의 남성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집사의 잔해를 으적으적 씹어먹었다.

    그의 입은 괴물처럼 3개로 쪼개져서 돌처럼 딱딱하게 말라붙은 집사의 잔해를 게걸스럽게 먹었다.

    ***

    둠칫둠칫.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늦은 밤, 금발 소녀는 오피스텔에서 창문을 열어두고 TV에서 나오는 춤을 따라서 추고 있었다.

    요즘 유행인 회색 사신 댄스였다.

    한참을 따라 추던 소녀는 춤을 멈추고 검은 요원을 빤히 쳐다보았다. 

    “배고프신가요?”

    검은 요원은 목덜미의 옷깃을 풀어 헤치며 말했다.

    “응.” 

    금발 소녀는 작게 끄덕이며 다가가 요원의 목덜미를 앙 물었다.

    흡혈이 끝난 소녀는 뜨거운 숨을 뱉으며 피로 젖은 입술을 핥았다.

    검은 요원은 그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역시, 협회장님께 연락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협회장님 시선을 피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절대로 안 돼요. 할아버지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진짜로 해부할지도 몰라요.”

    검은 요원은 이해하기 힘든 표정이었다.

    “이번 협회에서 이례적인 대응 속도를 보인 점만 보더라도 협회장님께서 아가씨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혹시 그렇게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근거라도 가지고 계시나요?”

    검은 요원의 말을 들은 금발 소녀는 곰곰이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음. 할아버지는 뭔가 이상해요. 매번 말로는 ‘사랑한다, 아낀다.’ 하시는 데, 정작 제가 위험한 곳을 가도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아요.”

    “아가씨의 결정과 자유를 존중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초등학생에게 그런 걸 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금발 소녀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꺼림칙한 느낌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제가 사고사당하는 걸 바라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니까요?”

    잔뜩 흥분한 채 소녀의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본 검은 요원은 자신의 의견을 접기로 했다.

    “그러면 협회장님에게 발각되지 않는 쪽으로 계획을 세우겠습니다.”

    검은 요원은 새로운 신분 작성 같은 꼭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배고픈 황금 사신들이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과자는 주변에 산처럼 쌓여있었다.

    하지만 황금 사신들은 식욕을 잃은 채 대자로 뻗어 있었다.

    나도 그 옆에 누워서 뒤집어진 채, 뉴스를 보며 슬픈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푸딩이 없다니.

    드디어 만난 닌자 푸딩인데, 더 이상 없다니.

    더욱 끔찍한 점은 언제 푸딩이 다시 올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더 이상 생산이 안 되고 있대, 언제 들어올지 모르겠어. 미안해 사신아!” 

    예린이는 널브러진 나와 황금 사신들 곁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인간의 마음을 가지지 못한 매정한 TV는 언제나처럼 뉴스를 묵묵히 송출하고 있었다.

    [해외 유명 푸딩의 라이선스를 취득하여 생산하고 있는 인천의 한 공장이 오브젝트에게 점거되었다고 합니다.]

    TV에서 귀가 절로 쫑긋하게 되는 소리가 들렸다.

    해외 유명 푸딩 공장을 오브젝트가 점거!

    공장 생산 중단의 원인이 오브젝트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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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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