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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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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 결혼? 제스 너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
    ​
    ​
    제스는 내 말을 듣고는 허리춤에 척! 하고 손을 올리고는 씩 웃어 보였다. 귀가 쫑긋거리고 종아리까지 내려온 꼬리가 팔랑거렸다.
    ​
    ​
    “선생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랑 평생 함께하려면 결혼해야 한다고 했어! 그러면 가족이 될 수 있대!”
    “어어…그 말이 맞긴 하지.”
    “나는 쭈인님을 사랑하고, 쭈인님도 나를 사랑한다고 했으니까 결혼하면 가족이 될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결혼하자!”
    “근데 그 사랑이 그런 의미가…아야야야!”
    ​
    ​
    제스에게 결혼에 대한 의미를 설명해주려는데 허리가 부러질 듯한 압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헛숨을 내뱉으며 아이리스를 돌아보자, 아이리스가 굉장히 위험한 얼굴로 제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
    ​
    “아이리스 항복, 항복!”
    “….!”
    ​
    ​
    3년 전, 내가 기절하기 전에 항복이라고 말하며 쓰러진 후부터 아이리스는 내가 항복이라고 말하면 얌전해지고는 했다.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아 미안하긴 하지만, 지금처럼 겨우 숨통을 틀 수 있는 방법이 생겨 조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
    스르륵, 허리를 감고 있던 손이 떨어지고 침울해진 아이리스가 내 옷자락 끝을 슬쩍 잡았다.
    ​
    ​
    아이리스의 스킨쉽 정도는 기분이 어떤 상태인지 나타내주는 지표였다. 옷자락 끝을 잡는다는 건 매우매우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의미했다. 
    ​
    ​
    “쭈인님! 결혼! 결혼! 그리고 아기 백 마리? 아니, 백명 낳자!”
    “너,너,너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
    ​
    유교의 혼이 깨어나 다급히 소리치자, 제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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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해서 가족이 되면 아기가 생기는 거라고 선생님이 그랬어! 아기 백명 낳아서 부족 만들자!”
    ​
    ​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육체적 성장이 빠른 수인답게 앳된 얼굴을 빼면 성인 여성이나 다를 바 없는 몸으로 “아기를 낳자!”, “결혼하자!”라는 말을 하니 나도 모르게 진지하게 받아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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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애기지 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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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커서 우주 비행사가 될래요! 나는 커서 공룡이 될래요! 나는 커서 리안이 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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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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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뭔가 중간에 이상한 게 있었던 것 같지만… 하여튼, 제스의 결혼, 아이 발언은 어렸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외치던 말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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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선 크게 잘못된 정보만 잡아주고 나머지는 차차 배우게 하자.’
    ​
    ​
    그리 생각하며 제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아이는 백명을 낳기 전에 늙어 죽을 것이며, 결혼하기 위한 사랑은 따로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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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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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꼬리를 둥글게 만 채 귀를 축 늘어뜨리고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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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윽! 교육을 위해선 단호해져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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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든지 들어주고 싶어지는 표정을 외면하며 겨우 고개를 저었다. 
    ​
    ​
    “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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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려선 안 될 것 같은 소리가 제스 쪽에서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휙 돌려 제스를 바라보았지만, 제스는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
    ​
    ‘내가..잘못 들은 건가?’
    ​
    ​
    저렇게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있는 제스가 혀를 찰리 없으니 분명 내가 잘못 들은 것이다. 그렇고 말고 암.
    ​
    ​
    “이제 그만 식사하러 가자. 더 늦으면 아침 못 먹을지도 몰라.”
   “으응.”
    “응.”
    ​
    ​
    이번에는 침울해진 아이리스를 따로 달래주지 않았다. 결혼이나 스킨쉽 문제에서는 단호해질 필요가 있었다.
    ​
    ​
    ‘어렸을 때부터 의지할 대상이 나밖에 없어서 그런지… 약간 분리불안 상태야.’
    ​
    ​
    아이리스의 건강한 자립을 위해서 나는 천천히 아이리스와 거리를 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이리스도 슬슬 사춘기가 올 때가 되었으니 굳이 내가 밀어내지 않아도 알아서 멀어질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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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냄새 나니까 같은 공간에도 있기 싫다고 하면 어쩌지?’
    ​
    ​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다. 침울해진 기분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서 식사 중이던 네로가 침울한 나와 제스, 아이리스를 보곤 무슨 일있었냐고 물어보는 헤프닝이 있었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
    ​
    ​
    ***
    ​
    카르디샨의 동쪽 외곽. 주먹만 한 새카만 안개 덩어리가 흩어질 듯 말 듯 일렁거리고 있었다.
    ​
    ​
    「크으윽…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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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에게 정신 공격을 가했다가 반대로 공격당해 소멸될 뻔했던 ‘그것’은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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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것이 가지고 있던 위대한 권능은 대다수 소실되었고 몸은 평소 하찮다고 생각했던 인간보다 허약해졌다. 이대로 있으면 소멸해 버릴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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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욱…웨에엑!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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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것은 바닥에 무지개색 토를 뱉어내며 몸을 덜덜 떨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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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테리아스… 존재를 걸고 최고의 권능을 넘겨준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안 -…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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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다시 한번 더 무지개색 토를 한 후 비틀거리며 잡초 위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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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장…힘을 회복하려 해도 계속 토해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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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무려 3년 동안 카르디샨을 떠나지 못한 건 전부 리안의 능력이 몸에 남아있던 탓이다. 어느 정도 회복했다 싶으면 토하고, 회복되나 싶으면 토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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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걸 반복하다 보니 허약해진 상태로 카르디샨에 숨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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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마법사 놈들에게 걸리면 무슨 꼴이 될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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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이었다면 감히 흑마법사 따위가 그것을 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격이 확 낮아진 상태인데다가, 리안에게 정신적 공격까지 당한 상태라 자칫 잘못하면 붙잡힐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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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는 반드시 죽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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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이를 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씩씩거리다가 이내 무지개 토를 뱉어냈다. 유달리 반짝거리는 무지개 토를 째려보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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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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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작스럽게 비명이 들려오더니 웬 처음 보는 남자가 그것이 뒹굴고 있는 잡초 근처를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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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난 몰라! 진짜 모른다고!”
    “그건 내가 직접 확인하면 되지.”
    “오,오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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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자가 몸을 덜덜 떨며 기어서라도 도망치려 했지만, 로브를 눌러쓴 남자의 행동이 더 빨랐다. 순식간에 다가온 남자는 쓰러진 남자의 머리를 덥석 붙잡았다.
    ​
    ​
    “끅…끄으윽…!”
    ​
    ​
    숨이 간헐적으로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고 붙잡힌 남자가 눈을 뒤집은 채 혀를 축 늘어뜨리고 기절해버렸다.
    ​
    ​
    “쯧, 이 녀석도 쓸만한 기억은 없군.”
    ​
    ​
    기절한 남자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로브를 눌러쓴 남자가 손을 가볍게 털어내며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자 몸을 휙 돌렸다. 그 순간, 잡초 사이에 숨어있던 그것이 날아올랐다.
    ​
    ​
    「이봐!」
    “허?”
    ​
    ​
    갑작스럽게 익숙한 기운이 훅 다가오자 남자가 눈썹을 까딱거리며 그것을 돌아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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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또 뭐야?”
    「이익! 나는 위대한 그 분의 종 ‘하뮬리나’다!」
    “응? 진짜네? 왜 이렇게 쪼만해졌데?”
    「예의 없는 것….쯧, 뭐 되었다. 중요하게 해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날 데려가도록.」
    ​
    ​
    남자는 그것을 비웃긴 했지만, 끝까지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은 ‘그분’의 종이자 일부였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남자는 그것을 데리고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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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여관 1008번째 호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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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로브를 벗어 대충 침대에 던져놓았다. 눈에 확 들어오는 선명한 하늘색의 머리카락, 사나운 눈꼬리 안에 자리 잡은 주황색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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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딜 가든 눈에 띌 것 같은 색을 가진 남자는 해봐야 16살, 많게 잡아봐야 17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설마 그분의 명령이야?”
    ​
    ​
    녀석이 씩 웃어 보이자 상어의 치아처럼 뾰족한 이가 드러났다. 하뮬은 남자의 옆으로 날아와 최대한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
    ​
    「어찌 보면 그분이 직접 내린 명령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
    “호오! 좋아, 어서 말해봐! 뭐든지 이 몸이 해결해줄 테니까!”
    ​
    ​
    오만함이 가득 묻어나는 말에 하뮬은 속으로 만족스럽게 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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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왕이라면 응당 그래야지.’」
    ​
    ​
    이미 죽어버린 용사에게 사천왕 중 한명이 죽었었다. 자연스럽게 사천왕 자리 중 하나가 비게 되었고, 그 빈자를 채운 게 눈앞에 있는 남자 ‘포텐시엔’이었다. 
    ​
    ​
    「‘크흐흐, 사자인지 성자인지 하는 놈의 정신력이 강하다고 해도 육체는 연약한 인간의 것이니 손쉽게 이길 수 있겠지.’」
    ​
    ​
    하뮬은 비열한 웃음을 흘리곤 리안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무려 ‘그분’에게 대적하기 위해 아스테리아스가 선택한 성자가 이곳에 있다고 말하자 포텐시엔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
    “성자가?”
    「그래, 네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그놈을 처참하게 죽일 것!」
    “크흐흐, 그것만큼 내가 잘하는 게 없지.”
    ​
    ​
    포텐시엔은 하뮬의 말이 마음에 들어 날카로운 이를 내보이며 웃어 보였다.
    ​
    ​
    “그래서 그 성자라는 녀석은 어디에 있는데?”
    ​
    ​
    하뮬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하나, 둘 풀어놓기 시작했다. 리안이 ‘네스트’라는 조직에 속해있으며, 숨겨져 있는 그들의 본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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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부는 환영 마법과 인식 저해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어서 찾기 힘들다는 정보까지 전부 털어놓았다. 하뮬의 말이 끝나자 포텐시엔이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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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응. 그 네스트라는 조직이 서쪽 지역을 먹었다는 거지?”
    「…? 그래, 숨겨진 본부 자체가 서쪽에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먹은 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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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뮬은 인간들이 떠들어대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포텐시엔의 질문에 긍정을 표했다. 그러자 포텐시엔이 “크흐흐.”하고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
   
   “내가 이번에 카르디샨에 보내진 게 그 조직이랑 연관이 있는 것 같네.”
    「그러고 보니 넌 어째서 여기에 와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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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릿속에 리안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상태였던 탓에 그제야 의문이 들었다. 
    ​
    ​
    “도시 규모로 일어난 대저주 사건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서.”
    「도시 규모의 대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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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늑대나 곰을 반려동물로 키우다가 잡아먹힌 사건이 몇 번있죠.
방심하다가 목덜미 콱 물려서, 부족 만들기 당할 리안에게 위로를!
참고로 제스의 100명 발언은 진심입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겨, 결혼? 제스 너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

제스는 내 말을 듣고는 허리춤에 척! 하고 손을 올리고는 씩 웃어 보였다. 귀가 쫑긋거리고 종아리까지 내려온 꼬리가 팔랑거렸다.

“선생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랑 평생 함께하려면 결혼해야 한다고 했어! 그러면 가족이 될 수 있대!”

“어어…그 말이 맞긴 하지.”

“나는 쭈인님을 사랑하고, 쭈인님도 나를 사랑한다고 했으니까 결혼하면 가족이 될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결혼하자!”

“근데 그 사랑이 그런 의미가…아야야야!”

제스에게 결혼에 대한 의미를 설명해주려는데 허리가 부러질 듯한 압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헛숨을 내뱉으며 아이리스를 돌아보자, 아이리스가 굉장히 위험한 얼굴로 제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리스 항복, 항복!”

“….!”

3년 전, 내가 기절하기 전에 항복이라고 말하며 쓰러진 후부터 아이리스는 내가 항복이라고 말하면 얌전해지고는 했다.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아 미안하긴 하지만, 지금처럼 겨우 숨통을 틀 수 있는 방법이 생겨 조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스르륵, 허리를 감고 있던 손이 떨어지고 침울해진 아이리스가 내 옷자락 끝을 슬쩍 잡았다.

아이리스의 스킨쉽 정도는 기분이 어떤 상태인지 나타내주는 지표였다. 옷자락 끝을 잡는다는 건 매우매우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의미했다.

“쭈인님! 결혼! 결혼! 그리고 아기 백 마리? 아니, 백명 낳자!”

“너,너,너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유교의 혼이 깨어나 다급히 소리치자, 제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결혼해서 가족이 되면 아기가 생기는 거라고 선생님이 그랬어! 아기 백명 낳아서 부족 만들자!”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육체적 성장이 빠른 수인답게 앳된 얼굴을 빼면 성인 여성이나 다를 바 없는 몸으로 “아기를 낳자!”, “결혼하자!”라는 말을 하니 나도 모르게 진지하게 받아버린 것 같았다.

‘아직 애기지 애기.’

나는 커서 우주 비행사가 될래요! 나는 커서 공룡이 될래요! 나는 커서 리안이 될래요!

“…?”

뭔가 중간에 이상한 게 있었던 것 같지만… 하여튼, 제스의 결혼, 아이 발언은 어렸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외치던 말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우선 크게 잘못된 정보만 잡아주고 나머지는 차차 배우게 하자.’

그리 생각하며 제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아이는 백명을 낳기 전에 늙어 죽을 것이며, 결혼하기 위한 사랑은 따로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치만…”

제스가 꼬리를 둥글게 만 채 귀를 축 늘어뜨리고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크윽! 교육을 위해선 단호해져야해!’

뭐든지 들어주고 싶어지는 표정을 외면하며 겨우 고개를 저었다.

“칫.”

“…?”

들려선 안 될 것 같은 소리가 제스 쪽에서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휙 돌려 제스를 바라보았지만, 제스는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잘못 들은 건가?’

저렇게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있는 제스가 혀를 찰리 없으니 분명 내가 잘못 들은 것이다. 그렇고 말고 암.

“이제 그만 식사하러 가자. 더 늦으면 아침 못 먹을지도 몰라.”

“으응.”

“응.”

이번에는 침울해진 아이리스를 따로 달래주지 않았다. 결혼이나 스킨쉽 문제에서는 단호해질 필요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의지할 대상이 나밖에 없어서 그런지… 약간 분리불안 상태야.’

아이리스의 건강한 자립을 위해서 나는 천천히 아이리스와 거리를 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이리스도 슬슬 사춘기가 올 때가 되었으니 굳이 내가 밀어내지 않아도 알아서 멀어질 것 같기도 했다.

‘…냄새 나니까 같은 공간에도 있기 싫다고 하면 어쩌지?’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다. 침울해진 기분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서 식사 중이던 네로가 침울한 나와 제스, 아이리스를 보곤 무슨 일있었냐고 물어보는 헤프닝이 있었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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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디샨의 동쪽 외곽. 주먹만 한 새카만 안개 덩어리가 흩어질 듯 말 듯 일렁거리고 있었다.

「크으윽…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이…」

리안에게 정신 공격을 가했다가 반대로 공격당해 소멸될 뻔했던 ‘그것’은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그것이 가지고 있던 위대한 권능은 대다수 소실되었고 몸은 평소 하찮다고 생각했던 인간보다 허약해졌다. 이대로 있으면 소멸해 버릴지도 몰랐다.

「우욱…웨에엑! 제기랄..」

그것은 바닥에 무지개색 토를 뱉어내며 몸을 덜덜 떨었다.

「아스테리아스… 존재를 걸고 최고의 권능을 넘겨준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안 -…우욱…」

그것은 다시 한번 더 무지개색 토를 한 후 비틀거리며 잡초 위에 떨어졌다.

「젠장…힘을 회복하려 해도 계속 토해내니…」

그것이 무려 3년 동안 카르디샨을 떠나지 못한 건 전부 리안의 능력이 몸에 남아있던 탓이다. 어느 정도 회복했다 싶으면 토하고, 회복되나 싶으면 토하고.

그걸 반복하다 보니 허약해진 상태로 카르디샨에 숨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흑마법사 놈들에게 걸리면 무슨 꼴이 될지 몰라…」

전이었다면 감히 흑마법사 따위가 그것을 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격이 확 낮아진 상태인데다가, 리안에게 정신적 공격까지 당한 상태라 자칫 잘못하면 붙잡힐 수도 있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죽여주마.」

그것은 이를 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씩씩거리다가 이내 무지개 토를 뱉어냈다. 유달리 반짝거리는 무지개 토를 째려보고 있는데,

“흐아악!”

갑작스럽게 비명이 들려오더니 웬 처음 보는 남자가 그것이 뒹굴고 있는 잡초 근처를 굴렀다.

“나,난 몰라! 진짜 모른다고!”

“그건 내가 직접 확인하면 되지.”

“오,오지마!”

남자가 몸을 덜덜 떨며 기어서라도 도망치려 했지만, 로브를 눌러쓴 남자의 행동이 더 빨랐다. 순식간에 다가온 남자는 쓰러진 남자의 머리를 덥석 붙잡았다.

“끅…끄으윽…!”

숨이 간헐적으로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고 붙잡힌 남자가 눈을 뒤집은 채 혀를 축 늘어뜨리고 기절해버렸다.

“쯧, 이 녀석도 쓸만한 기억은 없군.”

기절한 남자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로브를 눌러쓴 남자가 손을 가볍게 털어내며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자 몸을 휙 돌렸다. 그 순간, 잡초 사이에 숨어있던 그것이 날아올랐다.

「이봐!」

“허?”

갑작스럽게 익숙한 기운이 훅 다가오자 남자가 눈썹을 까딱거리며 그것을 돌아보았다.

“넌 또 뭐야?”

「이익! 나는 위대한 그 분의 종 ‘하뮬리나’다!」

“응? 진짜네? 왜 이렇게 쪼만해졌데?”

「예의 없는 것….쯧, 뭐 되었다. 중요하게 해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날 데려가도록.」

남자는 그것을 비웃긴 했지만, 끝까지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은 ‘그분’의 종이자 일부였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남자는 그것을 데리고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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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 1008번째 호실.

남자는 로브를 벗어 대충 침대에 던져놓았다. 눈에 확 들어오는 선명한 하늘색의 머리카락, 사나운 눈꼬리 안에 자리 잡은 주황색 눈동자.

어딜 가든 눈에 띌 것 같은 색을 가진 남자는 해봐야 16살, 많게 잡아봐야 17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설마 그분의 명령이야?”

녀석이 씩 웃어 보이자 상어의 치아처럼 뾰족한 이가 드러났다. 하뮬은 남자의 옆으로 날아와 최대한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 보면 그분이 직접 내린 명령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

“호오! 좋아, 어서 말해봐! 뭐든지 이 몸이 해결해줄 테니까!”

오만함이 가득 묻어나는 말에 하뮬은 속으로 만족스럽게 웃었다.

「‘사천왕이라면 응당 그래야지.’」

이미 죽어버린 용사에게 사천왕 중 한명이 죽었었다. 자연스럽게 사천왕 자리 중 하나가 비게 되었고, 그 빈자를 채운 게 눈앞에 있는 남자 ‘포텐시엔’이었다.

「‘크흐흐, 사자인지 성자인지 하는 놈의 정신력이 강하다고 해도 육체는 연약한 인간의 것이니 손쉽게 이길 수 있겠지.’」

하뮬은 비열한 웃음을 흘리곤 리안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무려 ‘그분’에게 대적하기 위해 아스테리아스가 선택한 성자가 이곳에 있다고 말하자 포텐시엔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성자가?”

「그래, 네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그놈을 처참하게 죽일 것!」

“크흐흐, 그것만큼 내가 잘하는 게 없지.”

포텐시엔은 하뮬의 말이 마음에 들어 날카로운 이를 내보이며 웃어 보였다.

“그래서 그 성자라는 녀석은 어디에 있는데?”

하뮬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하나, 둘 풀어놓기 시작했다. 리안이 ‘네스트’라는 조직에 속해있으며, 숨겨져 있는 그들의 본부에 있다.

본부는 환영 마법과 인식 저해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어서 찾기 힘들다는 정보까지 전부 털어놓았다. 하뮬의 말이 끝나자 포텐시엔이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흐응. 그 네스트라는 조직이 서쪽 지역을 먹었다는 거지?”

「…? 그래, 숨겨진 본부 자체가 서쪽에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먹은 건 맞다.」

하뮬은 인간들이 떠들어대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포텐시엔의 질문에 긍정을 표했다. 그러자 포텐시엔이 “크흐흐.”하고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이번에 카르디샨에 보내진 게 그 조직이랑 연관이 있는 것 같네.”

「그러고 보니 넌 어째서 여기에 와있는 거지?」

머릿속에 리안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상태였던 탓에 그제야 의문이 들었다.

“도시 규모로 일어난 대저주 사건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서.”

「도시 규모의 대저주?」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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