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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8

   EP.88

     

   “허… 일을 배우고 싶다고?”

     

   상대를 깔보는 감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

   박조철이 현재 눈앞에 두고 있는 상대는, 나름 서울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건달파의 똘마니1,2였다.

     

   “꺼져라 애송아. 너 같은 애새끼가 필요할 만큼 우리가 일손이 딸리진 않단다.”

     

   꽉 끼는 정장에 배가 불룩한 덩치가 코웃음을 치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야말로 입구컷을 당한 상황.

   하지만 충분히 박조철도 예상하고 있던 바였고 이미 과거에 한 번 겪은 적이 있던 경험이었기에 똘마니1의 반응에도 박조철은 무덤덤했다.

     

   “들여보내 주기라도 하세요. 안에 있는 사람이랑 이야기하게.”

     

   박조철이 겁을 집어먹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그가 심드렁하게 반응하자 비교적 마른 똘마니2가 재밌는 걸 봤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오, 새끼! 꼴에 남자라고 가오잡는 것 좀 보게. 너 재밌다?”

     

   슬금슬금 박조철에게 다가오는 멀대 하나.

     

   “이제 보니까 면상도 우리 쪽이긴 하네. 너 몇 살이라고?”

     

   하지만 박조철은 그의 움직임에도 딱히 두렵다거나 긴장이 되지는 않았다.

   시스템에 결함이 생긴 건지 각성 이후의 능력치가 봉인되어 있는 상태였지만, 지금까지 상대해왔던 괴물들을 떠올리면 눈앞의 조무래기 둘은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으니까.

     

   ‘이거 그냥 제압하고 지나가도 되려나?’

     

   과거 열아홉 살의 박조철은 사업장 앞에 죽치고 앉아 비싼 차를 타고 출근하는 누군가를 주구장창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었다.

     

   그가 아무리 체격이 좋고 악바리가 있어도 결국에는 미성년자 학생이었으니, 성인 남성 둘을 동시에 상대할 자신은 없었던 것이다.

     

   ‘대충 저 떡대만 어떻게 때려잡으면 될 거 같은데.’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상황. 전투 경험의 차이가 너무 극명했다.

   전투에 임하기 전의 각오에서 고작 패싸움이나 해봤을 건달과 튜토리얼부터 사선을 넘나들며 싸워온 박조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똘마니2의 복부를 가격했다.

     

   퍼어억!

     

   “커…윽…!”

   예상치 못한 주먹에 명치를 직격당한 똘마니2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놈의 상체가 자연스럽게 앞으로 숙여졌다.

   그리고 훤히 턱주가리. 박조철은 곧장 레프트훅을 날려 멀대의 턱을 돌려 버렸다.

     

   쩌어억!

     

   단 두 번의 공격으로 전투 불능이 되어 버린 놈. 하지만 하나를 쉽게 보냈다고 하더라도 더 까다로운 덩치가 그를 향해 성큼 다가오고 있었으니 방심할 수는 없었다.

     

   “이 미친 새끼가!”

     

   덩치는 보이는 대로 사람이 둔했다.

   하지만 체급 자체가 달랐기에 한 방 한 방의 공격이 치명적이었고 박조철은 그를 고려해 달려드는 놈을 가만히 응시했다.

     

   후웅!

     

   균형이 흔들리며 날아드는 덩치의 손.

   놈은 가만히 있는 펀치기계를 때려본 게 주먹질의 전부였던지 실패하면 빈틈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는 공격을 생각도 없이 날리고 있었다.

     

   ‘이런 놈들한테 쫄았었다고?’

     

   과거로 돌아오니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상대의 역량, 전투 스타일, 그들의 경험과 그것을 통해 이어질 다음 동작들까지.

     

   3층에서 김시인이 무공이라는 것을 가르칠 때 언급한 수싸움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았다.

     

   덥썩.

     

   날아드는 덩치의 팔을 잡은 박조철이 몸을 비틀며 하체의 균형을 허리로 옮겼다.

     

   “어어?!”

     

   서서히 땅에서 떨어지는 덩치의 발. 그리고 자연스럽게 덩치를 들어 올린 박조철이 그 흐름에 따라, 붙잡은 놈을 단단한 아스팔트 바닥에 냅다 꽂아 버렸다.

     

   콰아아아앙!

     

   놈이 무게가 많이 나갔던 탓인지, 충격으로 인한 소음이 생각보다 폭발적이었다.

   등으로 바닥과 합체한 덩치가 숨을 헐떡이지도 못한 채 추욱 늘어졌고 박조철은 놈의 생사여부를 확인한 이후,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걸음을 옮겼다.

     

   끼익.

     

   꽤 큰 상가의 유리문이 열리며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문의 소리가 아닌 건물 내부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조폭들의 시선이 집중됐다는 것.

     

   “응? 손님인가?”

   “저거 교복 안 보이냐? 딱 봐도 민짜잖어.”

   “씨바, 입구에 아무도 없어? 뭔 애새끼가 마음대로 들락거려?”

     

   열 명 남짓되는 조폭들. 하지만 놈들은 갑작스러운 박조철의 입장에 인상을 구길 뿐, 입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직 파악을 못 한 것 같았다.

     

   “저, 사장님을 좀 뵙고 싶은데요.”

     

   박조철은 뻔뻔하게 행동했다.

   어차피 지금 중요한 것은 국정원이 내린 ‘조폭 내부에서 마약을 조사한다’는 명령을 이행하는 것.

     

   당연히 있지도 않은 마약을 조사하는 일이었기에 찔릴 것도 없었고 이쪽 세계만큼 실력만을 중시하는 사회가 또 없었기에 오히려 당당한 게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저 애새끼가 뭐라는 거야…?”

   “형님을 만나고 싶다는 거 같은데?”

     

   그들의 대화가 길어지자 앞선 소란을 들은 몇몇 깡패들이 하나둘 복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음… 이건 좀 많은……데?”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

     

   깡패 건물 치고는 나름 사이즈가 크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어깨 형님들이 증식을 할 것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과거에는 머리를 굴려서 무혈입성을 했던 박조철이었기에 놈들의 전력을 모르고 있기도 했고.

     

   “형님! 밖에 무슨 일 있었습니까? 밖에 있던 성철이랑 혁수 쓰러져 있는데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누군가가 박조철이 쓰러뜨린 둘을 발견하기까지 한 상황.

     

   “뭐? 누가……”

     

   방금 입장한 놈으로부터 형님이라 불린 깡패 하나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말을 끌었다.

     

   놈의 시선이 서서히 움직인다. 그를 부른 깡패에서 입구에서 부축을 받는 두 놈으로.

   그리고 그 시선은 재빠르게 입구와 복도를 오가더니 이윽고 박조철의 두 주먹에 머물렀을 때, 움직임을 멈췄다.

     

   “씨발, 너 뭐야? 어디에서 보냈어?”

     

   어깨 형님이 더 이상 구겨질 수 없을 거라 여긴 면상에 오만상을 쓰며 박조철을 노려봤다.

   이미 문 앞에서 벌어진 일이 그의 행적이라는 것을 눈치챈 표정. 하지만 박조철은 자신의 목적이 분명했기에 당당할 수 있었다.

     

   “고3인데요.”

     

   그리고 국정원이 보냈어요. 라는 뒷말은 조심스럽게 삼킨 그가 고개를 저으며 그를 향해 윽박을 지르는 깡패를 바라봤다.

     

   “사실 제가 돈을 빌리러 왔었어요. 그런데 그것도 퇴짜 맞고 일을 좀 하고 싶다고 했는데 앞에서 저를 때리려하지 뭐예요. 아무튼, 사장님 뵙고 이야기하고 싶으니까 좀 비켜줘요.”

     

   박조철의 솔직담백한 말에 깡패의 고개가 삐딱하게 돌아갔다.

     

   그는 출타하려는 어이를 가까스로 붙잡았다.

   갑자기 고삐리 하나가 나타나 입구를 지키던 가드 둘을 박살 낸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그런 위험한 놈이 난데없이 형님을 만나고 싶다고 하는 것도 황당했기 때문.

     

   더 이상 그가 뭐라고 말을 해도 들을 생각이 없는 표정이 드러난 깡패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이거 완전 미친 새끼 아니야?”

   “어후, 말 심하게 하시네.”

     

   박조철은 그가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됐다.

   만약 박조철 본인이라도 국정원에 고딩 하나가 쳐들어와서 입구를 지키던 요원 둘을 박살 내고 국장을 만나러 왔다고 말하면 비슷한 말을 했을 것 같으니까.

     

   ‘귀찮게 됐네.’

     

   그는 자신이 입구에서부터 실수를 했음을 인정했다.

   처음부터 그가 원했던 것은 자신의 과거에서 트라우마를 발견하기 위해 사건을 되돌아보는 것.

     

   그저 국정원의 인정을 빠르게 받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막연히 믿었기에 저지른 행동이 너무나 큰 돌발사태를 만든 것이다.

     

   스윽.

     

   하지만 이미 이것은 엎질러진 물이다.

   이제 와서 과거에 썼던 방법을 다시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훗날을 기약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아, 몰라. 그냥 덤벼 이 깡패 새끼들아. 사장은 내가 찾을 거야.”

     

   그저 강행돌파.

     

   머리를 쓰는 건 김시인이나 남궁천호가 할 일이지 본인의 업무가 아니었다.

   박조철이 생각하는 본인의 역할은 작전을 수행할 때 적절한 능력으로 필요한 도구가 되어서 보다 성공적인 상황을 만드는 것.

     

   그는 언제부턴가 그것이 철저히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

     

   며칠이 지난 현재, 한가민은 도저히 트라우마를 찾을 수 없어 전전긍긍하던 상태였다.

     

   “아니 도대체 내 트라우마가 뭔데? 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왕따라도 당했나?”

     

   엄마가 가출을 한 것은 그녀에게 큰 트라우마가 아니었다.

   애초에 부모님의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다 보니 언젠가는 터질 것이라 여긴 것이 터진 거라 생각했고, 그것으로 배가 고파졌을지언정 그리 괴롭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으니까.

     

   ‘지금 생각하니까 나 좀 불쌍했네?’

     

   그녀는 철이 빨리 들었다.

   대게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이 돈의 개념에 대해 빠르게 깨닫고 세상의 쓴맛을 빨리 보듯 그녀 또한 열두 살의 나이에 그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고통도 결국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나 고통이라는 것을 안다.

   빛을 본 적이 없는 맹인이 어둠의 개념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들에게 어둠은 그저 삶일 뿐, 밝음의 반대라는 말은 그저 사전적 의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아……”

     

   그리고 그 고통을 알게 된 지금의 한가민은 더 이상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졌다.

   물론 어릴 때도 집에 들어가면 고통스러운 시간의 연속이긴 했다.

     

   하지만 당시의 한가민은 세상의 모든 아버지라는 존재가 그런 줄만 알았다.

   그랬기에 그녀의 모든 또래가 아픔을 감내하며 매일을 버티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사실 하나를 위안 삼으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이게 트라우마가 맞을지도 모르겠네.”

     

   저주받을 집구석이다.

   하지만 탑이 바라는 것은 트라우마의 회피가 아닌 극복. 솟아오르는 짜증을 뒤로한 한가민은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 지난 며칠간 아버지가 잠들었을 늦은 시간에 돌아왔지만 지금처럼 쥐 죽은 듯, 집이 고요했던 적은 없었다.

     

   끼익.

     

   평소라면 들렸을 취한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 자릿수 남짓한 셋방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충분히 이상한 상황이었다.

     

   ‘……도둑이라도 들었나?’

     

   아니, 도둑이 들었다면 아버지나 도둑의 인기척 둘 중 하나는 느껴졌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느끼는 것은 그저 적막감뿐.

     

   “……”

     

   한가민은 몸이 긴장으로 경직되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심호흡했다.

   긴장된 호흡을 입으로 내뱉는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서늘한 공기를 들이 마시면……

     

   ‘……이건.’

     

   익숙해져서는 안 될 비릿한 향.

   그것은 한가민의 기억 속에는 남아 있지 않은 집안의 낯선 피 냄새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요즘 하는 일이 많아져서 지각이 잦아졌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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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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