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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8

    <88 – 에이프릴의 조사3>

     

     

    배양액이 담긴 병을 챙긴 오크노디는 정원을 나가는 대신, 더욱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용무가 남았나?’

     

    급히 뒤를 따르던 에이프릴의 옷깃에 나뭇잎이 가볍게 스쳤다.

    부스럭.

    작은 소리였음에도 오크노디는 고개를 홱 돌리며 그녀가 서있는 방향을 정확히 쳐다봤다.

     

    “어라? 누구 있어요?”

    “!!”

     

    들킨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 한 번만 잘못 내쉬어도 그대로 끝장이다.

    오크노디가 아카데미 기숙사 외벽에 설치된 마나트랩을 감지해서 피해 다닐 수 있다는 정보는 그녀가 직접 관찰해서 문답 칸에 답변까지 작성했다.

    마나도 새어나가게 두어서는 안 된다.

    숨을 참는 것처럼 마나도 제 안에 가두고 내보내어서는 안 된다.

     

    “흐으음?”

     

    10초.

     

    “흐으으으음??”

     

    20초.

     

    “기분 탓인가.”

     

    빨리 좀 가, 이 망할 꼬맹아.

    속으로 욕을 해도 멀어지는 발소리가 안 들린다.

    오히려 기척이 가까워지고 있다.

    영악한 것.

    재단의 특별장학생 아니랄까봐 하는 짓도 정말 범상치 않다.

     

    “찾~았다!”

     

    덥썩.

    끝내 오크노디가 수풀에 손을 뻗었을 때, 에이프릴은 자신이 잡히는 줄만 알았다.

     

    부스럭부스럭!

    파다다다닥.

     

    때마침 수풀 속을 뛰쳐나오는 한 마리의 다람쥐.

    오크노디가 노린 것은 다람쥐였다.

     

    “요놈~ 요놈~”

     

    정원에서 키우는 커다란 순무를 한 토막 크게 잘라 양손으로 들고 나타난 다람쥐.

    나뭇가지를 주워 툭툭 건드리는 오크노디를 곱지 않은 눈으로 쏘아보던 다람쥐가 하악질을 했다.

     

    “아참. 이럴 때가 아니지?”

     

    다람쥐와 놀아주기를 그만두고 호다닥 정원의 더욱 깊은 곳으로 달려가는 오크노디.

     

    <관계자 외 출입금지>

    <함부로 들어올 시 목숨이 위험할 수 있음>

     

    오크노디는 무시하고 지나간 푯말 앞에서 에이프릴은 크게 움찔했다.

     

    -멍멍! 나비를 쫓아서 정원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큰일이 날 뻔했어!

     

    바보 같은 멍멍이수인 해피.

    그녀로부터 직접 들은 경험담이 떠올랐다.

     

    -멍멍! 학생회관의 동아리들은 경쟁동아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방범대책이 있어!

    -멍멍! 이상한 가루를 뿌리는 식물한테 걸려서 잠들었다가 한 달 뒤에 깨어났어!

     

    자칫 한 달을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잠만 퍼질러 자다가 깨어날 수도 있다.

    스파이인 본인에게도 위험하지만 신입생인 오크노디에게는 더욱 위험한 상황!

     

    ‘상황을 봐서 도와줘야겠어.’

     

    오크노디를 따라 몰래 들어간 유리온실 안.

    기온과 습도, 풍향과 미세먼지, 오존과 유해가스를 철저하게 통제하는 실내의 입구에는 사람만한 크기의 커다란 꽃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위험을 느끼거나 먹이를 발견하면 수면가스를 뿌리며 포식자나 먹잇감을 잠재우는 <꾸벅초>였다.

     

    꾸벅… 포로롱.

    꾸벅… 포로롱.

     

    콧가에 콧물방울까지 만들어가며 꾸벅꾸벅 조는 꽃을 보며 오크노디는 살금살금 꾸벅초의 옆을 지나갔다.

     

    “???”

     

    저걸 어떻게 안 들키고 지나가지?

    혹시나 싶어 근처로 살금살금 걸어간 에이프릴.

    …반대로 이걸 어떻게 들킨 거지?

    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꾸벅초는 아주 깊게도 잠들었다.

    분명 해피는 “멍멍! 나비야 이리와!”이나 “멍멍! 잠자는 꽃이야!” 같은 소리나 하면서 우당탕탕 뛰어다니다가 잠을 깨웠겠지.

    그 정도 능지를 지녔으면 방범용 꽃한테 붙잡혀서 한 달간 잠든 정도로 끝내주셔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감사인사를 해야 할 판이다.

     

    ‘저건 밟으면 걸린 사람을 붙잡아 허공에 매달아두는 넝쿨트랩이네.’

    ‘본체에서 나온 섬유질의 실에 걸리면 하루 종일 몸에 달라붙는 흡혈기생타래도 있고.’

    ‘…저건 아카데미에서 어깨 너머로 들어본 적도 없는 식물인데. 조나님은 저런 것까지 오크노디에게 알려준 건가?’

     

    귀띔으로 전달받은 정보 수준이 아닌데.

    조나와 오크노디의 관계가 평범한 집사와 장학생의 관계는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이, 오크노디가 유리온실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했다.

    앞에서 만만한 꾸벅초를 보고 방심했다가는 넝쿨트랩이나 흡혈기생타래에게 호된 꼴을 당할 수도 있는 엄중한 다중보안이 마련된 식물동아리.

    그 심부에는 손을 올리면 신원을 인식하고 문을 열어주는 마나보드 잠금장치가 걸려있었다.

     

    “엥……?”

     

    당황하는 소리를 보니 이것만큼은 오크노디도 예기치 못한 보안절차로 보였다.

    기웃기웃.

    유리창에 볼따구를 바짝 대고 안을 들여다보려 애쓰는 오크노디.

     

    “힝.”

     

    찾는 것이 안에 있는지 시무룩한 소리를 낸다.

    그래, 이쯤에서 포기하고 돌아가자.

    미행하는 사람도 슬슬 쫄린다.

     

    “완전범죄 보너스도 받고 싶었는데.”

    “???”

     

    방금, 완전범죄 보너스라고 하지 않았나?

    에이프릴이 귀를 의심하는 순간, 이번에는 눈을 의심할 광경이 펼쳐졌다.

    덥썩.

    근처에 놓인 커다란 바위를 머리높이까지 덥썩 집어든 오크노디.

    설마, 아니지?

    에이프릴의 떨리는 눈을 보았다면 “맞는데용”이라고 대답할 것처럼 바위가 호쾌하게 마나보드가 달린 보안부스를 내리찍었다.

     

    와장창!

    왜애애애애앵──!!

     

    처참하게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부서지는 보안부스.

     

    ‘부숴버렸잖아!!’

     

    완전범죄를 포기한 오크노디는 강행작전에 돌입했다.

    부스조각을 밟고 안에 들이닥쳐서는 흙더미를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바닥에 손을 푹 쑤셔 넣었다.

    흰 장갑을 낀 손이 이리저리 흙을 헤집더니 산삼이라도 잡은 것처럼 와아-! 하고 얼굴이 밝아졌다.

     

    “심봤다!”

     

    번쩍 치켜든 오크노디의 팔에는 인삼보다 더 사람을 닮은 레어도 별 다섯 개가 넘는 초희귀식물 <만드라고라>가 들려있었다.

    에이프릴의 두뇌는 만드라고라와 관련된 정보를 순간적으로 빠르게 떠올렸다.

     

    만드라고라.

    뿌리를 뽑으면 비명을 지르는 꽃.

    들으면 기절함.

    여기, 범죄현장.

    들키면, 아카데미의 강제조사.

    청소메이드에서 잘리면, 재단의 입막음.

    사실상 죽음 확정!

     

    ‘히익!’

     

    공포에 휩싸인 에이프릴이 두 손을 들어 귀를 덮으려고 했지만 손을 드는 와중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만드라고라의 벌어진 입이 비명을 내지르는 속도가 그녀의 손이 귀를 덮는 속도보다 빠를 것임을.

    조졌구나.

    안녕, 내 인생.

    해피보다 멍청한 죽음을 당하다니.

    두 명이나 청소메이드가 봉변을 당했으니 앞으로 이 정원은 청소메이드들의 공동묘지라고 불리겠네.

    인생의 최후를 각오하는 그녀의 귓가에 만드라고라의 커다란 비명이 파고들었다.

     

    “응애애애애애애-!”

     

    그런데 애기 울음소리를 곁들인.

     

    “하아?”

    “앗, 역시 누가 있었잖아!”

    “핫!!”

     

    만드라고라도 애기가 있었나 하는 당혹과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탄식.

    오크노디에게 들켰음을 깨닫자마자 냅다 줄행랑부터 쳤다.

    입구 쪽에 있었던 에이프릴은 오크노디보다 먼저 정원을 탈출할 수 있었다.

     

    ‘애기 만드라고라를 왜 훔친 거지? 애초에 누가 이런 짓을 시켰지?’

     

    완전범죄 보너스라는 발언은 누군가 그녀에게 보너스를 줄 사람이 있음을 의미한다.

    누가 있을까.

    오크노디에게 범죄행위로 보너스를 줄 사람이.

    재단의 상급자?

    오크노디의 전속담당자인 집사 조나 와이히엠하이?

    아니, 재단의 인물이 아니다.

    그밖에도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이 존재한다.

    ‘도적질’에 누구보다도 익숙한 교수가 한 명.

    오크노디가 듣는 강의 중에 존재한다.

     

    ‘의적 브론즈 디 아스트라다!’

     

    오크노디는 의적 브론즈 교수의 비밀스러운 개인과제를 받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이해가 갔다.

     

    “습격자다!”

    “정원에 도둑이 들었어!”

    “연금술동아리 녀석들의 소행이 틀림없어.”

    “희귀약초를 무상으로 훔쳐가려 들다니!”

    “용서할 수 없어!”

    “정원에 놈들의 시체를 심어서 거름으로 삼자!”

    “훔쳐간 약초의 두 배를 피워내기 전까진 바닥에서 꺼내주지 말아야해!”

     

    정원 온실비닐을 뜯고 나무를 타서 2층 창문으로 달아나는 오크노디.

    독기를 넘어서 광기가 어린 식물동아리 학생들이 온실 안으로 달려가는 사이, 오크노디의 모습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광경을 보며 에이프릴은 학생들의 모습이 어딘지 눈에 익다는 생각을 했다.

     

    ‘미친년 위어드 교수!’

     

    그래, 머리에 꽃 꽂은 미친년이라 불리는 드라이어드 교수의 강의를 듣던 학생들이다.

    그녀가 4학년들에게 갑자기 돌을 먹였다가 구토를 하며 돌을 뱉은 학생들 때문에 강의실 바닥에 침 범벅이 된 돌이 버려지는 소동이 있었다.

    덕분에 정규업무시간 외에 시간 외 업무로 돌을 치우고 물걸레질로 바닥을 닦던 기억이 떠올랐다.

     

    ‘식물동아리의 지도교수도 위어드 교수였지.’

     

    그리고 위어드 교수는 오크노디가 신청한 1학년 1학기 강의 중 하나를 맡기도 했다.

    심지어 브론즈 교수의 강의가 2교시인데 그 뒤를 잇는 3교시 강의가 위어드 교수의 강의다.

     

    ‘첫날부터 오크노디를 수제자로 삼으려고 목표를 정해주고 위어드 교수의 소중한 물건을 훔치라는 과제를 낸 것이 틀림없어.’

     

    이 정도로 엄중한 보안을 뚫고 기어이 애기 만드라고라를 훔쳐냈다면 오크노디는 어엿한 도둑년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

    에이프릴은 열심히 마력펜을 움직이며 문답지를 작성해나갔다.

     

    Q10 : 오크노디의 장래희망

    A : 브론즈 디 아스트라다 교수 같은 의적이 되기.

     

    특히나 10번 문항의 빈칸을 채울 때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100% 확신을 담아 적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누가 봐도 어엿한 도둑냔!
    표지가 컬러풀 메스가키 오크노디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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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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