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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8

       <다키스트 아카데미아>는 여신이 이 세상을 배경으로 하여 지구에 출시한 게임이다.

         

       게임 제목에 ‘다키스트’가 들어갔으니 말 다 했다. 난이도가 극악이라는 건 직접 플레이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만큼 여신이 대륙의 미래를 어둡게 점치고 있단 소리였다.

         

       게임에서 조금이라도 잘못된 선택지를 고르면 누군가가 죽는다.

         

       ‘시련’이라는 요소가 있어 막거나 극복하지 못하면 세계가 멸망한다.

         

       시도 때도 없이 전염병이 퍼진다. 틈만 나면 국가 체제가 전복된다. 대륙 경제가 인플레이션에 휩싸인다.

         

       그런 난세(亂世)에서 스토리를 끝까지 진행하여 마왕을 무찌를 때까지 함께해야 하는 캐릭터들이 하나둘씩 조기 퇴장한다.

         

       잘못하면 프레이도 그리 될 수 있었다.

         

       “저기가 내가 사는 집이야!”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저 멀리 위치한 촌락을 요호족 소녀가 가르킨다.

         

       이 미소가 언젠가 절망으로 일그러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위화감이 장난 아니었다.

         

       침착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자. 프레이가 죽는 사달을 막기 위해 버멜의 부탁을 받아 여기까지 온 거였으니까.

       

       겸사겸사 우라늄도 얻고 말이다.

         

       나는 요르문간드와의 계약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동시에 버멜과 나누었던 이야기도 상기했다.

         

       좋아. 당장은 사건 하나만 막으면 되겠다.

         

       “인간들이 지어놓은 거에 비하면 별거 없지? 그래도 꽤 규모가 큰 마을이라구!”

         

       프레이가 내 옷자락을 꾹꾹 끌어당기며 자랑스럽다는 듯 크게 말했다. 나는 그제야 상념에서 빠져나와 주변을 스윽 훑어보았다.

         

       울창하고 푸르싱싱한 나뭇잎들이 산들바람에 흩날린다. 그런 숲 사이로 작은 마을이 하나 세워져 있다.

         

       딱 봐도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대충 꾸린 마을이었다.

         

       울타리는 통나무를 대충 쓰러뜨려 만들어놓았고, 대부분의 집은 나뭇가지와 지푸라기를 엮어 넣은 막집이었다. 그나마 상태가 가장 괜찮아 보이는 건축물이 오두막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가축들이다. 숲 사이로 난 작은 들판에서 소나 양 따위가 풀을 뜯고 있었다.

         

       “수인족도 유목 생활을 한다는 게 사실이었구나.”

       “금안족도 유목하잖아. 이렇게 안 살아?”

       “글쎄다.”

         

       설원에서 돗자리 펴고 나물이나 뜯어먹는 종족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 와서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최근에는 농작 같은 걸 해. 저쪽 봐! 내가 만들어놓은 밭이야!”

         

       프레이가 고지대를 가리키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꼬맹이 말대로 간소한 텃밭이 산등성이를 따라 드문드문 나 있었다.

         

       “유목을 하는데 굳이 농사를 지을 필요가 있어?”

       “우리도 어쨌거나 연합 형태로 돌아다니잖아. 우리 먹을 건 수렵이나 채집해서 따로 모아두고, 저런 건 신령님이나 더 윗손의 부족에게 주는 용도야.”

         

       작중에서 저런 것들은 모두 프레이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그야 프레이는 인간 문명을 미친 듯이 배우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지계마도로 밭을 가는 정도는 쉽게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토벽을 만들고 무기를 연성해내는 것까지. 지계의 정령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불세출의 천재가 바로 프레이였다.

         

        그러나 그런 프레이의 진가를 못 알아보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뭐야. 꼬맹이 아냐?”

       

       프레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마을에 입성하자마자 코앞에서 그런 소리를 들었다.   

       

       프레이는 곧바로 눈을 부라리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뭐?”

       “마력촌가 뭔가 하는 건 잘 납품하고 왔니? 꼬맹아?”

       “너, 너…! 내가 꼬맹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키가 이렇게 작은데 꼬맹이지, 그러면 뭐라고 불러?”

         

       프레이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한 건 두 요호족이었다.

         

       한 명은 남자, 한 명은 여자. 둘 다 우람하고 고혹적인 몸매를 지녔다.

         

       “잊고 있나 본데! 나 너희랑 같은 나이야!”

       “푸웁. 그 몸뚱이로 우리와 같은 나이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키가 그렇게 작으면 꼬맹이지 뭐야. 이래선 파스트렌드 부족 이름에 먹칠이네.”

         

       프레이는 이를 악물고 목을 넘어오려는 쌍소리를 삼켰다.

       

       때마침 소란을 듣고 몇몇 요호족이 더 찾아오며 상황을 관조하기에 이르렀다. 하나같이 발육이 좋은 이들이었다. 프레이에게 시비를 건 요호가 특별한 게 아니라, 그냥 이게 평균인 모양이다.

         

       괜히 여우가 사람 홀린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었구만.

         

       “그래서? 옆에 데리고 온 인간은 누구?”

         

       한 요호가 나에게 삿대질하며 물었다.

         

       아, 그렇지.

         

       지금의 난 프레이가 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아래쪽에서 시선을 올려다보지 않으면 눈 색깔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탓에 몇몇 요호가 오해한 모양이다.

         

       그중 일부가 날 향해 창칼을 겨누었다.

         

       “꼬맹이가 이젠 하다하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인간을 들여오냐? 너 진짜 내쫓기고 싶어?”

       “야, 그렇다고 초면에 창부터 겨누는 건 말이 안 되지. 살리에르 백작이 보낸 사람일 수도 있잖아!”

       “그게 뭔 상관이야? 우리 영지에 멋대로 들어오는 게 문제인걸.”

       “시대가 바뀌었으면 적응 좀 해라! 언제까지 인간한테 적대적으로 굴래?”

         

       여기도 참 피곤한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해가 번지는 걸 막기 위해 나는 모자를 벗었다.

         

       “…금안족이잖아?”

         

       그 덕에 내분으로 옥신각신하던 요호들이 일제히 꿀 먹은 벙어리처럼 변했다.

         

       금안족은 수인족에게 있어 우호적인 존재다. 당장 이곳 요호족들을 보살펴주고 있는 용이 금안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내 눈을 본 요호들이 하나둘씩 창을 거두며 멋쩍게 변했다. 꼬맹이라는 말을 들어 한창 주전자 끓는 소리를 내던 프레이가 빵끗 웃으며 날 가리켰다.

         

       “응! 아카데미에서 사귄 내 친구야!”

       “치, 친구? 금안족이?”

       “너 같은 꼬맹이한테 고귀한 금안족이 친구를 해 준다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너, 너네 진짜…!”

         

       아, 다시 울상이 되려고 하네.

         

       얘가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전에 쐐기를 박아 넣자.

         

       “친구 맞는데요.”

       “뭐…?”

       “프레이는 저와 같이 학회에도 나가고 술집에서 러브샷도 때린,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설마 동족 여러분께서 저와 우리 프레이 사이의 우정을 의심하는 건 아니겠죠?”

       “노, 노랭아…!”

         

       프레이가 히히거리며 내 옆에 착 기댔다.

         

       “그리고 키 작다고 동족을 놀리면 못 써요.”

         

       나도 놀리긴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수인족에게 금안족은 ‘차분하고 고명한’ 현자 같은 포지션인데. 이런 사근사근한 말투로 잘 구슬리면 알아서들 물러난다고 버멜에게 들었다.

         

       그 말대로 프레이를 제외한 요호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다들 창을 거두고 꼬리를 추욱 내렸다.

         

       “나 금안족 처음 봐!”

       “예쁘다….”

         

       이젠 익숙한 반응들도 한 번씩 나와준다. 여긴 별로 중요하지 않고.

         

       “그런데 금안족이 우리 마을에는 무슨 일로…?”

       “무슨 일이긴요. 제 친구와 놀려고 왔죠.”

         

       지금부터 절차를 밟는 게 가장 큰 문제다.

         

         

       **

         

         

       마을 입성에 이 이상으로 큰 소란은 벌어지지 않았다.

         

       촌장에게 이 마을에 좀 묵어도 괜찮느냐는 질문을 했는데 다행히 그 사람이 프레이의 친척 할아버지였다. 친구인데 심지어 금안족을 마을에 묵게 한다니까 길조라면서 좋아하시더라.

         

       그래, 아무튼.

         

       프레이가 사는 집은 오두막집이었다. 소담한 규모도 아니고, 꽤 큰 규모의 통나무집 말이다.

         

       일정 주기로 이동 생활을 하는 요호족에게 있어 이런 집은 사치와도 같았다.

         

       즉 프레이가 속한 ‘파스트렌드’라는 부족명은 개씹부자들에게만 허락된 명칭. 처음 알고 있었던 꼬맹이의 성씨인 ‘셸커니’는 집안에서만 따로 쓰는 성씨 같은 것이었다.

         

       애초에 부자 맞겠지. 틸레트 아카데미 등록금을 내고 제 돈으로 술까지 퍼마시던 앤데.

         

       “엄마, 나 왔어!”

         

       오두막집 문을 연 프레이가 우렁차게 외쳤다. 그러자 병약해보이는 한 여인이 계단을 타고 주섬주섬 내려왔다.

         

       “따, 딸!”

       “엄마!”

       “그래 우리 딸!”

       “엄마아아!”

         

       내 옷깃을 쥐며 집까지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던 프레이가 어머니를 보자 도도도 달려갔다.

       

        “딸… 크흡, 큽!”

         

       어머니는 입을 막으며 연신 기침을 하셨다. 지병이 있는 것이다.

         

       “엄마… 괜찮아?”

       “그래, 우리 딸. 잘 다녀왔니?”

       “마력초 잔뜩 팔았어! 아침에 배에서 잠깐 졸긴 했지만….”

         

       요호족치곤 몸이 작으니까 저러는 거겠지. 어린애들이 잠을 오래 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침엔 너무 졸려. 학교에서도 졸아서 아침엔 수업 못 듣기도 하니까….”

       “괜찮아. 우리 딸이 졸업만 할 수 있으면 돼. 아카데미에선 귀나 꼬리 같은 거 안 들켰지?”

       “응! 안 들켰……!”

         

       말을 하다 만 프레이가 멍청해진 낮빛으로 이쪽을 흘겨보았다.

         

       “어?”

         

       들켰네? 라고 면상에 쓰여있네.

         

       어머니가 당황하시지 않도록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자기PR의 시간을 가졌다.

         

       “금안족인 에테르입니다. 프레이의 친구예요.”

         

       나는 조금 전의 상황을 소상히 설명했다.

         

       여기에 덧붙여 프레이가 수인족이라는 걸 금안족의 양심을 걸고 밝히지 않겠다는 얘기까지 전했다. 프레이의 어머니는 예상했던 것보다 내 말을 더 일찍 믿으셨다.

         

       “금안족이 그렇다면야….”

         

       아니, 그냥 종족 버프였잖아.

         

       [이쯤 되니 정체성에 혼란 오지 않아요? 인간인가, 금안족인가.]

         

       별다를 거 있나. 몸뚱이는 금안족이어도 생각하는 건 여전히 인간인데.

         

       프레이의 어머니는 프레이와는 달리 차분한 사람이었다. 병약해서 그런 걸까.

         

       “어머, 내 정신 좀 봐. 친구가 왔는데 이런 차림으로 나오면….”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묶는 어머니. 머리끈을 어깨 지점에서 묶고, 그 아래는 한 갈래로 땋는다.

         

       흔히 말하는 ‘단명헤어’였다.

         

       버멜이 말하길 사망 복선이 암시된 클리셰 머리스타일이다.

         

       그렇다.

         

       프레이가 피폐해지는 시기는 이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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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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