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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8

    루크는 마침내 첼로의 현에서 활을 떨어트린다.

    연주가 끝난 것이다.

    연주중이라 참아두었던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터져나오듯 했다.

    루크는 자연스럽고 예의바르게 그들의 환호성에 화답하며 고개를 연신 숙였다.

    “오늘 연주를 들어주어 고맙네, 모두들. 아쉽지만, 오늘은 이것으로 끝일세.”

    고작 20분 남짓한 거리공연이었지만, 루크는 목표한 금액에 금방 도달할 수 있었다.

    첼로가방에는 오늘도 역시 돈이 꽤 쌓여있었다. 첫날같은 수준의 후원금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많은 후원금이었다.

    너무 과도한 후원금은 받지 않겠다고 말한 덕일까?

    애초에 그 정도의 후원금이 이상했던 것이다.

    이게 정상적인 금액이겠지.

    그때처럼 오랫동안 연주한것도 아니니까.

    첼로를 케이스에 잘 정리하고 아직도 몸이 덜 풀린듯한 파이가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는 소리에 적당히 대꾸해준다.

    -왜 벌써 끝내!

    ‘시간이 없으니까.’

    그리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첼로를 정리하는 루크의 곁으로 언제나 많은 후원금을 넣어주던 후원자 몇명이 다가왔다.

    일전에도 너무 많은 후원금을 넣어서 루크를 약간 곤란스럽게 했던 사람들이었다.

    “오늘도 좋은 연주였어. 짧아진건 아쉽지만.”

    “하하, 어쩔 수 없는 일이라네. 최근에 할 일이 생겨서 말이지.”

    “그래? 바쁘면 어쩔 수 없지…….”

    “아무튼, 연주를 봐줘서 고맙다네. 이런 구걸에도 호의적으로 대해줘서 더욱이.”

    “…….”

    루크가 첼로를 등에 짊어지곤 또 한차례 고개를 숙였다. 커다란 첼로가방이 무게로 살짝 앞으로 쏠렸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 퍽 귀여운 모양새였다.

    그렇게 잘 가라는 인사로 후원자들이 손을 흔들어주자, 루크도 마찬가지로 손을 흔들어주고는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못본새에 꼬리도 잘 생겼구만. 요즘은 잘 먹나보군 그래.”

    “그건 참 다행인 일이야.”

    그리 흐뭇한 표정으로 오늘의 연주가 어땠느냐에 대한 건설적인 토론으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후원자들을 향해 한 남성이 묻는다.

    “저 애의 연주, 자주 들으러 오시나보네요. 아까보니까, 연주가 시작되기도 전에 기다리고 계시는 것 같던데.”

    “후후, 그럴만한 가치가 있지 않았나?”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뭐, 그렇긴 했지만요.”

    그렇게 감정을 마음대로 들었다놨다 하는 수준의 연주가 어떻게 10살짜리 아이의 손에서 표현 할 수 있는 것인지, 듣던 자신의 눈이 휘둥그레해질 정도였으니까.

    “우리들은 말이지, 저 아이가 처음으로 여기서 연주를 시작했을때에도 후원을 했다네.”

    “그랬습니까?”

    적당히 맞장구치며 대꾸해주자, 그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가 금세 표정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나는 요즘 그 아이에게 뭔가 안좋은 일이 있는게 아닌가 걱정이야.”

    “그러고보니 오늘도 표정이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았지.”

    남자는 궁금증이 조금 솟아서 물었다.

    “그게 대체 다 무슨 말씀이시죠? 저 애한테 무슨 안좋은 일이 있었나요?”

    남자의 질문에, 후원자들중 한명이 살짝 눈을 감고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쯧쯧, 저렇게 딱한 아이도 아마 없을거야.”

    “대체 무슨 사정이 있길래요?”

    “……학교를 제대로 다닐 돈도 없이, 밥도 제대로 못 먹는데다 부모도 없어 보호자의 밑에서 생활하는 불쌍한 아이지.”

    남자는 바로 첫 길거리 연주회에서 루크가 스스로 말한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아, 이건 내 악기가 아니라네. 학교에서 빌린게지. 하지만 사정이 있어서 지금은 그다지 잘 다니고있지 않다네.’

    ‘뭐, 급식과 도서관 때문에라도 자주 가려곤 하지만 말일세…….’

    ‘후원금을 어쩔 거냐고? 흠, 일단 보호자에게 모두 주고싶군. 그동안 날 키우느라 고생을 많이 했을테니. 음? 왜 부모가 아니라 보호자냐고? 하하, 그야 보호자니까 그런게 아니겠는가. 부모님들은 이미 돌아가셨다네.’

    그 이야기를 들은 남성은 충격받았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맙소사, 그 아이에게 그런 사정이…….”

    그렇게나 어려운 상황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토록 아름다운 연주를 하던 아이의 범상치않은 가정사에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러고보면 그 연주에서도 학교에서 빌렸다는 첼로 말고는 별다른 장치도 없었다.

    더 멀리 들릴 수 있게 소리를 증폭시킬 마도구라던가 자기가 앉을 수 있는 접이식 의자따위도 없었고, 심지어는 악보와 악보를 지지할 받침대조차 없었다.

     

    순수한 첼로 한자루만으로 그러한 흡입력을 보여주었던 것은 오롯이 소녀의 역량뿐.

    “…….”

    말을 잊는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지금 확실히 알았다.

    그는 지금 말을 잊었다.

    잠깐의 침묵을 깬것은 이번에도 후원자들의 대화였다.

    “그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참 밝게 자랐어.”

    “오늘은 봤는가? 무려 교복을 입고있던 것?”

    “요즘은 학교에 잘 다니나보더군. 이게 전부 우리들의 후원 덕분이 아니겠나?”

    “나도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군.”

    ———

    그러한 경험이 있는가.

    너무나 머릿속에 깊숙히 박힌 어떤 기억이, 시도때도없이 모든 상황에서 떠오르는 경험 말이다.

    조금 더 자세하게 예를 들어보자면, 천장이 체스판으로 보여 머릿속에서 가상의 시뮬레이션을 돌리게되는 경험이나, 또는 당구가 떠올라서 몇개의 공이 천장을 누비는 광경과 상아로 이뤄진 그 공들의 기분좋은 충돌음을 환청으로 느껴본적은?

    지금 루크의 상태가 그러했다.

    어디를 보든 슈퍼 매직 리그가 떠오르는 것이다.

    처음엔 루크도 분명 이상하고 멍청한 놀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너무나 불합리하다고 느꼈으니까 말이다.

    루크가 경험해본 바, 그 ‘게임’은 서로의 팀에 ‘영웅’이라 불리는 캐릭터 5명의 조합을 제외한 모든것이 동일하였기 때문이다.

    상대의 본진을 부순다는 개념과, 무한한 자원을 토대로 죽어도 금세 부활하여 전장으로 복귀하는 불사의 캐릭터 5명으로 동일한 조건의 상대와 오롯이 캐릭터간의 상성과 장비차이, 성장속도의 차이만으로 승부를 하는 작은 전쟁.

    이전엔 전제될 수 없었던 새로운 전장의 규칙.

    그러한 전쟁이 현실에 있을 수 있었겠는가?

    그렇기에 루크는 그 지엽적이고 복잡한 그 환상속에 매료되었다.

    현실에 없을 환경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규칙과 새로운 전술, 또 그러한 환상을 조종하며 조율했던 감각이.

    손에서, 머리에서, 귓가에서, 눈에서.

    떠나질 않고 멤돈다. 

    마치 메아리처럼.

    “루크, 오늘은 또 웬일이야?”

    시루드는 조금 당황했다.

    루크가 자율출석을 받아낸 직후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자신을 기다려준적이 없었던 탓이다.

    루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시루드. PC방에 가자.”

    “……뭐? 나랑 PC방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던거야?”

    “물론이지.”

    ———–

    “이런, 시루드! 내 말하지 않았느냐, 그리로 향하면 상대의 전략에 놀아나는 것이라니까.”

    “어…….”

    “좋아, 내 마법으로 4명을 전부 속박시켰다. 지금 바로 오의를!”

    “어, 어……! 잡았다!”

    “내 계산으로는 지금 용을 먹으면 별다른 최악의 상황이 없다면 앞으로 5분 안에 게임을 정리할 수 있을거다.”

    “……그거, 지금 용 먹자는거지?”

    “아, 시루드, 너는 후위를 맡거라. 용은 나 혼자서도 충분할테니.”

    시루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

    시루드와 루크는 곧 어둑어둑해질 시간이 되어서야 피시방에서 나왔다.

    시루드는 정류장에 도착할 버스를 기다리는 루크와 같이 기다려주며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오늘의 루크는, 이주일 전의 사람관 완전히 딴판이었다.

    게임에대한 이해도가……. 말도 안되는 수준으로 상승했으니까.

    “루크, 너 대체……. 게임을 얼마나 한거야.”

    “한 이주일정도.”

    그럼 최근 학교에 오지 않은 날부터 쭈욱……. 이라는 말이렸다.

    그러고보니 오늘 들어올때 뭔가 알바생 형이 루크한테 아는척을 해오던데, 그건 그냥 루크의 생김새가 기억에 남기 쉬워서 그랬던게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쩐지, 음료수도 자리에 놔주더라.

    “이주일동안 대체 몇시간이나 한건데?”

    “음, 요즘 예르나가 밤 늦게 들어오는 날이 잦아서. 하루 8시간씩은 했구나. 아, 그러고보니 PC방은 식사도 꽤 할만 하더구나. 식당만큼은 아니지만, 적당히 먹을만은 해.”

    맙소사, 그렇다면 이주일동안 그냥 PC방에서 살았다는 말이렸다.

    하지만 그런걸 부모님, 아니, 루크의 보호자누나가 용납했을리가 없을텐데. 

    “그 예르나누나가 PC방 가라고 돈을 줘?”

    “겨우 이런걸로 손을 벌리고싶지는 않아서 스스로 벌었단다.”

    “스스로? 어떻게?”

    루크는 말없이 자신의 등에 멘 첼로를 가리키고는 씨익 웃었다.

    “이건 꽤 돈이 되더구나. 시루드, 너도 한번 배워보지 않겠느냐?”

    시루드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용돈은 많이 받고있고, 루크가 같이 놀자고 했다는 핑계가 아니면 PC방에 쓸 시간도 딱히 없으니까.

    ——–

    프로이튼가문의 일은 생각보다 조금 까다로운 느낌이었다.

    실마리가 잘 잡히지 않는다.

    분명 뭔가 있는건 확실한데……. 

    역시 직접 잠입하는 수밖에 없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무모하다. 잘못하면 루크에게 영향이 갈지도 모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예르나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사람이 있으면 반응하는 동작감지형 마법이 작동해 현관의 불이 켜진다.

    탁.

    예르나는 신발을 벗고 정리해둔다.

    그런데 오늘은 언제나 그녀를 맞이해주던 루크가 없이 현관등만 반기니 조금 서운한 기분이 든다.

    거실의 불은 켜져있었지만, 어쩐지 빛이 없어서 어두컴컴한 기분.

    뭐, 늦은 시간이니 어쩔 수 없으려나. 

    “루, 자니……?”

    아니나다를까, 루크는 자신을 기다리던 중이었는지 거실의 테이블에 엎드린채 곤히 잠들어있었다.

    “에휴, 잘거면 방에서 자지…….”

    요즘 학교에서 운동회로 뭔가 준비하는것도 많다고 들었는데, 아마 그것때문에 저렇게 피곤했던게 아닐까?

    그래, 적어도 운동회 전까지는 이 정보수집도 끝내야할것이다.

    예르나는 루크를 옮기기 위해서 다가갔다가 문득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건…….”

    대마법사의 캐릭터다. 혹시 루크 이루시의 모습을 그린 그림일까?

    ‘역시 잘 그렸네. 한눈에 알아보겠다.’

    그림을 잘 그리는것은 역시 관찰력과 상상력이 좋기 때문일까.

    예르나는 그 그림을 보고 흐뭇하게 웃어보이고는 다른 그림을 확인했다.

    컴퓨터의 그림이었다.

    ‘루크가 컴퓨터가 갖고싶은가보네.’

    하긴, 그동안 혼자서 집을 보고 있으려면 굉장히 심심했을텐데.

    컴퓨터 하나쯤 사는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으려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착각이란것이….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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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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