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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8

       “흐에에.”

         

       분홍 머리가 뒤엉켜 엉망이 된 파스텔은 빗자루를 조종했다. 빗자루는 추락할 듯 휘청이며 비행하다가 갑판에 내려섰다.

         

       털썩.

         

       저 하늘 뒤편으로 화난 어미고래와 줄행랑치는 아기고래의 다툼이 펼쳐졌다.

         

       어미고래도 핑크, 아기고래도 핑크, 파스텔도 똑같은 핑크인데 나만 작은 새우 신세야…….

         

       핑크핑크 새우새우.

         

       “각하, 괜찮으십니까?!”

         

       사람들이 달려왔다.

         

       안 괜찮아요오!

         

       라고 외치고 싶지만 이 상황에 총책임자가 당황할 수는 없으니 정신을 가다듬었다.

         

       “괜찮아요.”

         

       교수진의 부축을 마다하고 일어섰다.

         

       흐에에.

         

       갈수록 느는 건 연기 실력밖에 없는 거 같아.

         

       엉킨 분홍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대강 정리했다.

         

       “어미고래가 굉장히 성난 상태인데 하늘섬까지 피해가 올까요?”

         

       전공 교수가 어미와 자식 다툼을 망원경으로 잠시 관찰했다.

         

       어미고래가 거대한 광선 브레스를 쏘고 광선에 얻어맞은 아기고래가 저 하늘로 튕겨 나가는 상황이 이어졌다. 고출력 광선에 어떻게 저항한 건지 정작 아기고래는 멀쩡한 몸 상태였다.

         

       “이례적인 일이긴 하지만 태생이 온순한 어미고래가 애꿎은 사람에게 분풀이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왜 저러는지가 불분명해서 확언은 못 하겠군요.”

       “아마 아기고래가 가출해서 혼나는 중인 거 같아요.”

         

       정작 그 아기고래는 반성도 없이 엄마의 광선 피하기에 열중 중이지만.

         

       “아.”

         

       교수가 어쩐지 입맛을 다셨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아기고래 납치해낸 엄청난 사례를 학계에 최초로 발표할 기회였는데 그런 거 없다는 걸 깨닫고 아쉬워하는 기색이었다.

         

       으에에.

         

       매드 사이언티스트.

         

       “가출이 근본 원인이라면 굳이 하늘섬까지 날아가진 않을 겁니다. 하늘고래는 너그럽고 무던하거든요.”

         

       곰이 의외로 순한 거와 비슷한 건가?

         

       생태계의 최강자 격이라 위협받을 일이 적어 오히려 성격이 온순해지는.

         

       『동감이다. 오히려 이 비공정도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다. 어미고래가 비공정에 안 맞는 경로로만 브레스를 쏘고 있어. 괜히 움직여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구나.

         

       확실히 어미고래의 눈동자가 주기적으로 이쪽을 확인하는 거 같았다.

         

       파스텔은 입을 벌리고 장엄한 광경을 구경하는 일부 인원을 확인했다. 손뼉을 쳐 시선을 집중시켰다.

         

       “모두 정신 차리세요! 각자 지정된 자리에서 대기합니다!”

         

       혼란이 빠르게 수습됐다.

         

       앨시어가 나무잔을 들고 다가왔다.

         

       “수고했어. 이거 마셔.”

       “고마워!”

         

       파스텔은 오렌지 주스를 들이켰다.

         

       “푸하아!”

         

       이것이 위기를 극복해 낸 권력자의 쾌감!

         

       샤워하고 우유 마시는 기분.

         

       허억.

         

       말하고 보니 별거 없음.

         

       으이.

         

       고래 다툼은 생각보다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어미고래가 날개 지느러미로 아기고래를 후려치더니 홱 몸을 돌려 떠났다. 일 끝났다는 태도였다.

         

       1000배는 더 커다랄 엄마에게 얻어맞은 아기고래는 그대로 튕겨 나갔다. 공처럼 구름을 관통하고 포물선을 그리며 여기로 날아왔다.

         

       “오잉.”

         

       몸체가 비공정 옆구리에 충돌했다. 굉음이 일고 비공정이 출렁였다. 나무 선체가 박살 나며 파편이 비산했다.

         

       “오이잉!”

         

       파스텔은 휘청이다가 난간으로 달려갔다. 구멍 뚫린 선체를 내려봤다.

         

       “고래 친구우!”

         

       어떤 생명체든 물풍선이 돼버릴 슈팅이었어……!

         

       선체에서 나무 판때기가 들썩였다. 아기고래가 부스스 빠져나왔다. 잔상처는 생겼지만 분홍 피부는 큰 상처 없이 매끈매끈했다.

         

       완전 튼튼.

         

       파스텔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그리곤 서둘러 어미고래를 가리켰다.

         

       “고래 친구! 어서 돌아가! 엄마가 떠나고 있어!”

         

       어미고래는 정말 일말의 여지도 없이 떠나고 있었다. 거체가 점점 멀어져 갔다. 성체에 비해 손톱만 할 아기고래가 쫓아갈 수는 있을지 의문일 속도다.

         

       아기고래가 몸을 털어 나무 잔해를 떨어트렸다. 떠나는 어미고래를 멍하게 바라봤다.

         

       고래의 분홍 눈망울이 일렁였다.

         

       이건 조금 아니 꽤 섭섭할지도.

         

       가출한 건 잘못이지만 너무 냉혹한 대처 아니야……?

         

       파스텔은 덩달아 섭섭해질 거 같았다.

         

       이건 같이 차 타고 가다가 애가 떼 좀 썼다고 고속도로 한복판에 두고 가는 행위잖아.

         

       으이이.

         

       아기고래가 천천히 떠올랐다. 갑판 위로 날아오르더니 비공정 사람들을 내려 봤다.

         

       다들 표정이 복잡해졌다.

         

       아기고래가 날개 지느러미로 어미고래를 가리켰다. 그리곤 본인을 가리키듯이 날개 지느러미를 파닥이며 뱃살을 쳤다.

         

       찰싹찰싹.

         

       무슨 의미지?

         

       아기고래가 머리를 치켜들더니 어쩐지 기쁨이 담긴 듯한 초음파 소리를 냈다.

         

       오잉.

         

       그러더니 몸과 지느러미를 빠르게 흔들며 고래 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파닥파닥 파닥파닥.

         

       흔들 흔들.

         

       모두에게 보여주는 승리의 춤!

         

       내가 엄마를 이겼다!

         

       고래 브레스 빔~!

         

       기쁨의 광선 브레스가 상공으로 쏘아졌다.

         

       “우와악!”

         

       파스텔은 뒤늦게 상황을 이해했다.

         

       “그건 자랑이 아니잖아아!”

         

       이 불효 고래야!

         

         

         

       #

         

         

         

       파스텔은 아카데미의 호수를 쳐다봤다.

         

       핑크 아기고래가 유유히 헤엄쳤다. 와글와글 모여든 학생들이 던져주는 과일을 먹는 모습이 아주 즐거워 보였다.

         

       사과 아삭아삭.

         

       으이이이.

         

       “핑크핑크들은 다 이런 걸까요?”

         

       정장 차림의 악마가 옆에서 고심했다.

         

       『그런 거 같군.』

       “네? 왜 부정 안 하세요?!”

         

       농담이었는데!

         

       『너와 네 어머니까지 고려해서 한 대답이다.』

         

       으아아.

         

       어머니.

         

       악마님께 무슨 짓을 하셨길래 평판이 이래요?

         

       마음속으로 물어봐도 죽은 사람에게서 돌아올 대답은 없겠지만.

         

       파스텔은 한숨을 폭 쉬었다.

         

       “부모 소중한 줄 모르는 고래 친구.”

         

       악마가 입을 달싹였다. 말실수했다는 표정이 되더니 붉은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어떻게 수습할지 고심했다.

         

       파스텔은 표정을 지켜보다가 뒷짐을 지고 크게 중얼거렸다.

         

       “아 정말 나도 풍족한 유산 상속이 있었다면 하루 종일 빈둥대며 친구들과 놀았을 텐데~.”

         

       노골적인 소망에 악마가 어이없어했다.

         

       헤헤.

         

       괜히 심각해지지 말자구요.

         

       교단의 수작일 뿐 악마님 잘못도 아니잖아요.

         

       풀 밟는 소리가 났다.

         

       “저기.”

         

       앨시어가 어느새 다가왔다. 서류 뭉치가 어정쩡하게 들려 있었다. 잡무가 어색해 보이는 태도였다.

         

       “학생회에서 기사단 조사를 마쳤대.”

       “아! 고마워!”

         

       파스텔은 조건 반사적으로 서류를 받았다. 그러다 옥에 티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이걸 왜 네가 가져다줘?”

         

       엘리나 더스틴이나 친구친구들도 아니고.

         

       “응?”

         

       앨시어가 당혹스러워했다.

         

       “학생회에 갔더니 주길래.”

         

       공작 영애가 원래 이런 심부름을 하라고 있는 존재였던 건가. 아니면 일단 왔으니 일부터 시킨 엘리가 대단한 건가.

         

       “학생회는 왜 왔어? 무슨 요청 사항이라도 있어?”

       “응?”

         

       앨시어가 말없이 더 당혹스러워했다. 네가 불러놓고 그런 질문을 왜 하냐는 표정이었다.

         

       으잉.

         

       나 그런 적 없는데?

         

       인기인 파스텔은 순간 번뜩이는 경계심이 들었다.

         

       허억.

         

       이 서늘한 감각.

         

       이건 마치 친구 하나 없는 애한테 잘해줬더니 본인 하고만 친구인 줄 알고 약속을 마구마구 잡는 행동.

         

       이미 스케줄이 있다고 거절해도 스케줄 때문이 아니라 친구로서 거절당했다고 받아들이는 곤란한 애.

         

       응응!

         

       친구가 많아 본 적이 없어서 스케줄이 많다는 거절 사유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친구.

         

       파스텔은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방치하면 뒷말 나오게 되니 직설적이게.

         

       “미안 앨시어. 친구가 된 김에 학생회에 놀러 와 주는 건 매우 즐겁지만 나도 항상 시간이 있는 건 아니야. 양해해줄래?”

         

       너한테만 시간을 쓸 순 없어.

         

       앨시어가 혼란스러워했다.

         

       “너와 네가 친구였어……?”

         

       으에에?

         

       파스텔은 충격받았다.

         

       “우리 친구가 아니었어?”

         

       앨시어가 고개를 갸웃했다. 은색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언제부터 친구였어?”

         

       서로 이해 불가능한 표정이 됐다.

         

       정적이 흘렀다.

         

       “친구 없는 애한테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요. 강요된 상하 관계가 완전한 친구일 리 없잖아요.”

         

       뒤편의 정원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금발 소녀가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

         

       “파스텔 당신이 벨라몬트에게 공작가 후계 경쟁의 후원을 받길 강요했다면 귀족으로서 책임도 지세요.”

         

       허억, 멜리사.

         

       “왜 그러고 있어?”

         

       멜리사가 움찔했다. 굉장히 찔리는지 머뭇거리다가 나무 뒤에서 완전히 나왔다.

         

       “흠흠. 확실히 품위가 없었네요. 실례했어요.”

         

       차기 대마법사는 민망해하며 로브를 톡톡 털었다.

         

       앨시어가 그 모습을 보더니 대뜸 말했다.

         

       “품위 없어.”

         

       멜리사의 입꼬리가 흔들렸다.

         

       우와악!

         

       북부 군벌이 갑자기 남부 군벌에게 시비 거는 상황!

         

       “잠깐! 잠깐!”

       너희 또 싸우지 마!

         

       양팔을 흔들었다.

         

       “무슨 얘기했더라! 무슨 얘기했더라!”

         

       팔 따라 덩달아 흔들리는 서류가 눈에 들어왔다.

         

       기사단 조사 보고서.

         

       “앗! 맞아! 기사단!”

         

       테러 대처도 안 하고 내부 사정이라고 선 긋고 하늘고래 사안도 권력 다툼을 시도한 나쁜 기사단.

         

       “너희 둘이 도와줄 일이 있어!”

         

       사악한 기사단을 정당한 행정 권력으로서 개선해 주는 일을!

         

       아카데미가 하늘섬의 단독 권력자로 거듭나는 정의로운 행위이기도 해!

         

       에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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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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