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8

       “자자, 다들 두 줄로 서세요!”

        “반입이 금지된 물건들은 여기 바구니에 반납하시고 손 내미세요.”

       

        30층의 시련을 없앴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대학원에 가게 된 나.

        호송차가 기다리고 있는 치안대의 지부에는 쌍둥이처럼 보이는 마법사 두 명이 예비 대학원생들을 인도하고 있었다.

        지하미궁에 수감될 때는 마장은 물론 개인 물품도 몇 개밖에 챙길 수 없었다.

        학파의 문양이 떨어진 자리에는 대신 수감 일수를 나타내는 패치가 붙었다.

       

        “당신이 부국장님이 직접 보낸 사람이군요.”

        “이리오세요. 마장은 어디갔죠?”

        “이미 빼앗겼습니다.”

        “위치노트가 왜 이리 많아요? 소지품이 죄다 이것뿐이네.”

        “정 필요하면 하나만 가져가세요. 대학원생에겐 필요 없는 물건이니까.”

       

        감독관들에게 부계정을 모조리 압수당해 간신히 관리자용 노트 하나만을 건진 채 마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내부에는 각양각색의 마법사들이 콩나물처럼 빽빽하게 앉아 있었다.

        하나같이 죽을 상인 얼굴에 손목에는 묵빛의 구속구를 찬 상태였다.

        ‘엘리시아의 침묵’이라 불리는 신성학파와 연구부가 공동 제작한 물건으로, 마법의 사용을 금하는 마도구의 일종이었다.

        구속구가 채워지자 마력이 기화하듯 허공으로 빨려나가는 게 마치 누군가 수도꼭지를 강제로 열어버린 것 같았다.

        마법사에겐 더없이 공포스러운 상황이겠지만 기감을 사용하는 내게는 그리 큰 부담은 아니었다.

       

        “구해줄 거야, 루스리아에서 꼭 다시 데리러 와 줄 거야……!”

        “지하미궁에는 마탑 역사상 가장 끔찍한 죄를 저지른 괴물이 산다고 들었어, 거기 계속 있다간 나는 끝이야……!”

        “젠장, 난 아무 잘못도 안 했다고! 그냥 기숙사에서 속옷 몇 장 훔쳤을 뿐인데!”

        “여자 기숙사였나?”

        “아니?”

        “응?”

        “자자, 이제 출발합니다! 다들 자리에 앉으세요!”

       

        빈 자리를 찾아 마차에 몸을 구겨넣자 마차가 치안대의 건물을 나와 미궁으로 향했다.

        덜컹거리는 노면의 소음을 엉덩이로 느끼자 비로소 현실감이 들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 듯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 절규가 쏟아졌다.

        희망을 가지는 이, 자신의 죄를 부정하는 이, 절망에 사로잡힌 이들이 가득한 마차는 점점 빛이 들어오지 않는 경사면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비교적 편안한 기분으로 마차의 진동에 몸을 맡겼다.

        수감일수가 적힌 노란색 패치를 붙인 범죄자들과 달리 내 가슴에는 유일하게 ‘미결’이라는 초록색 딱지가 붙어 있었다.

        첸돌의 명령 하에 임의로 구금된 상태였기 때문.

        저쪽에서 추가로 기소할 만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는 이상 오래 지나지 않아 풀려날 것이었다.

       

        ‘소식을 들으면 루퍼트가 뭐라도 해주겠지.’

       

        학파 차원에서 잡혀간 문하생을 꺼내주는 것이 일반적으로 대학원에서 벗어나는 길이었다.

        경매로 나온 대학원생과 계약을 맺고 다시 풀어주는 방식으로 자유를 얻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돈이 들긴 하겠지만 해주학파에서 내 입지가 그리 얄팍하진 않으니 도와주러 올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경매가 열리기 전까지 유유자적 감옥생활을 즐기다 나가면 될 뿐.

       

        허나 이런 사태까지 예상했던 것인지 마차의 문이 열리자 감독관 두 명이 동시에 나를 가리켰다.

       

        “당신은 왼쪽에 따로 서세요.”

        “이쪽이에요.”

        “저요?”

        “네, A동에 수형인원이 다 차서 B동으로 가게 될 거에요.”

        “앞에서 나눠주는 보급품도 받을 필요 없어요.”

        “히익, B동……!?”

       

        옆에서 다른 죄수, 아니 대학원생들이 순식간에 나와 거리를 벌렸다.

        보급품에 들어있는 필사도구와 각종 옷가지들을 빼앗긴 것과는 별개로 좋지 않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B동은 일반적으로 마탑의 규칙을 어겨 징계를 받는 이들과는 수준이 다른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가는 곳이니까.

        제국 경비대로 넘기기 전의 수배자나 죽여서도 살려서도 안 될 악질 범죄자들을 가둬놓는 지하미궁의 밑바닥이었다.

       

        공역에서 열차 테러에 가담했던 토비조차 A동이었으니 얼마나 상황이 나쁜 건지 알 수 있었다.

        문제는 B동의 수감된 대학원생은 경매에 매물로도 나올 수 없다는 것.

        나는 조심스레 샬롯과 엔이라 불리는 감독관들에게 물었다.

       

        “감독관 님, 그럼 저는 경매에 나갈 수 있나요?”

        “네? 당신 해주학파잖아요?”

        “당신 같은 기분 나쁜 사람을 사줄 사람이 마탑 어디에 있겠어요?”

       

        실례되는 말을.

        나는 이곳에 모인 대학원생들 중 유일하게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은 선량한 해주술사.

        내 평생의 삶에 한 티끌의 부덕이 있다면 샬롯의 대답 여하에 따라 이 자리에서 A동에 빈자리를 하나 만드는 것 정도였다.

       

        “자리가 부족해서 그곳으로 간 것뿐이지 출신이 바뀌는 건 아니니 나갈 순 있겠네요.”

        “안타깝게도요.”

       

        다행히 첸돌의 입김이 강하다 해도 한도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여기서 주먹을 휘두를 필요는 없겠군.

        마음 같아서는 맨손으로 미궁 벽을 타고 올라가 지상으로 나가고 싶지만, 과거의 아녜스처럼 쫓기면서 등반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허나 두 사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내게 다가와 양쪽에서 속삭였다.

       

        “경매가 열릴 때까지 버틸 수 있다면요.”

        “있다면요!”

        “네?”

        “대학원에서는 저희도 예상치 못한 일이 종종 일어나거든요. 예를 들어 수감자가 사라져서 빈 자리가 생긴다던가?”

        “생긴다던가아~?”

       

        기본적으로 2인 1실을 쓰는 대학원의 기숙사, 통칭 감방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경우는 둘 중 하나다.

        경매를 통해 밖으로 나갔거나 아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거나.

        B동에서는 경매가 진행되지 않으니 남은 가능성은 하나.

       

        “룸메이트 분과 잘 지내셨으면 좋겠네요.”

        “여기 수감된 지 얼마 안 된 신참인데 벌써 짝이 네 번이나 바뀌었지 뭐에요?”

        “저희가 신고를 받고 왔을 때는 매번 늦었거든요.”

        “현장은 또 어찌나 지저분한지 문을 연 감독관들의 증언에 따르면 불길과 연기가 미친 듯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

       

        샬롯과 엔의 종알거림을 들으며 나는 마침내 감방에 도착했다.

        그녀들의 말처럼 철문 밖에 그을음이 가득 묻어 있고, 감옥 문도 뒤틀린 상태였다.

        이 정도 열기였다면 안에 있던 사람은 말 그대로 시체도 안 남았겠군.

        마력을 제한하는 구속구도 B동에 있는 극악무도한 수형자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경매 시작까지는 고작 일주일이 남았을 따름이지만, 이대로라면 하루도 버티기 힘들 노릇.

        그러나 뒤이어 들려온 샬롯과 엔의 대화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이명이 뭐였더라 동생아?”

        “그걸 잊어버리면 어떡해요 언니.”

        “어차피 제국 경비대에 인계할 마법사라 딱히 기억할 필요도 없는걸. 분명…….”

        “산태우기잖아요. 검은별 출신의 수배자.”

        “응?”

        “맞다 맞다, 어쨌거나 둘이 오붓하게 잘 지내보세요.”

        “저희가 떠난 직후 비명이나 들리지 않으면 다행이겠지만…… 자앗!”

       

        감옥 문을 연 그녀들은 미쳐 되물을 새도 없이 나를 704호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삐걱이는 철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웠다.

        그야말로 화재현장을 그대로 보존해놓았다 해도 믿을 법한 감옥 안.

        어둠 속을 응시하던 나는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엔 반나절도 안 돼서 새로 들어왔네. 미리 말해 두는데 나한테 손가락 하나라도 댔다간 뼈 채로 불태워줄…… 꺄아아악!!! 클락 님!!?”

       

        나보다 먼저 잡혀 들어와 있던 이자젤이었다.

       

       

       

        *

       

        오랜만에 만난 이자젤은 감옥 안에서도 잘 먹고 다니는지 혈색이 좋아 보였다.

        하긴, 퀴퀴한 해주학파의 창고보다야 삼시 세끼 밥 나오는 지하미궁 쪽이 더 나은 환경일지도 모르지.

        룸메이트와 마찰이 있었는지 이층 침대의 윗부분은 프레임까지 통째로 녹아내려 1층의 매트리스에 걸터앉아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클락님이 시련에 들어가고 한 사흘쯤 뒤인가? 갑자기 치안대가 라운지를 습격했거든요. 공용 시설 무단 점거라면서…… 재수가 없던 거죠 뭐.”

       

        치안부의 수사는 내가 시련에 멋대로 입장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이자젤이 잡혀버린 것.

        검은별의 문양인 두 개의 문신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데다 마탑 출신도 아닌 그녀였기에 제국으로의 압송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되면 분명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할 것이기에 살짝 양심이 찔렸다.

        여기서 무사히 나갈 때까지 말하지 말아야지.

       

        “설마 너 말고 다른 사람들도 잡혔어?”

        “아뇨, 저뿐이에요. 애초에 토비가 청소하러 올 때 말곤 대체로 혼자였구.”

        “그나마 다행이네. 난 아무런 죄가 없었는데 억울하게 B동까지 왔어.”

        “아하하, 올해 들은 농담 중에 제일 웃겨요.”

       

        진심을 담은 발언에 이자젤이 배를 잡으며 고개를 숙이자 로브 안에서 시커먼 잿가루가 이불을 타고 도르륵 굴러내려와 손에 안착했다.

        그것을 응시하자 화들짝 놀라 이쪽 눈치를 보더니 옷소매로 슥슥 닦는 것이었다.

       

        “앗, 죄송해요. 여기선 통 씻지를 못해서.”

        “괜찮아.”

        “혹시 제 말에 기분 상하신 건 아니죠? 그냥 농담이었어요, 분위기도 식힐 겸 하하…….”

        “…….”

       

        뼈대 있는 집안 출신이면서 동시에 흑마법사라서 그런가.

        조신하면서도 요사스러운 상반된 아우라가 느껴졌다.

        메릴랜드 관 기숙사의 절반 밖에 안 되는 공간.

        한창 때의 남녀 둘이 붙어 있자니 살내음과 탄내가 마구 뒤섞였다.

        시선을 피하던 나는 뜻하지 않게 어느 물건을 발견했다.

       

        “조, 좁네요 되게. 딱 제가 머물던 창고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그러게.”

        “더, 덥기도 하고요…….”

        “…….”

       

        이자젤의 점차 말수가 줄어갔다.

        검댕은 이미 지워졌는데 건반 사이를 지나듯 손가락 뼈를 매만지는 움직임만 이어졌다.

        오래 전 호되게 당한 기억이 있어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고 있는 그녀였기에 내 말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떠올렸는지 침을 꼴깍 삼키는 목덜미가 머리카락만큼이나 붉게 물들어 있었다.

       

        “크, 클락 님?”

        “…….”

       

        내가 자세를 기울이며 침대 구석을 응시하자 이자젤은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그럼에도 얽힌 손가락은 빼지 않아 거리는 더욱 좁혀졌다.

        사락거리는 이불 소리에 달콤한 숨결이 섞여 귀를 어지럽혔다.

        마침내 그녀를 침대 끝까지 밀어붙인 내가 다른쪽 손을 들어올린 순간, 이자젤은 화들짝 놀라 외쳤다.

       

        “아, 안 돼요!”

        “뭐가?”

        “제가 집착 당하는 거 좋아하고 트, 특히 밀어붙여 지거나 약간 억눌리는 거? 이런 거에 약하긴 하지만 이, 이러면 안 돼요!”

        “그래?”

        “네, 특히 클락 님은 저보다 훨씬 강해서 괜히 저항했을 때를 떠올려 버린달까. 강제로 밀어붙이시면 어떤 소중한 거라도 내어줄 수밖에 없고, 소, 솔직히 조금만 웃으시면 마음도 바로 넘어갈 것 같고…… 그치만 여기서는 아닌 것 같아요! 나중에 아이에게 이야기 해줄 수가 없어요!”

        “정말? 그거 진심이야?”

        “네, 네!!”

       

        얼씨구.

        아주 자기 혼자 완결 직전까지 써내려 가는구만.

        나는 아래에 깔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이자젤을 내려버려둔 채 그녀가 침대맡에 놓아둔 물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름 아닌 이자젤의 위치노트였다.

       

        “그럼 이제 이건 내꺼.”

        “네?”

       

        나는 그 정도까진 아닌데, 밀어붙이면 어떤 소중한 거라도 내어준다니 불만은 말 못 하겠지.

       

        부계정 확보.

        이걸로 편하게 가면쓰고 갤질할 수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좀 추스르고 돌아왔습니다.
    당분간 연재주기는 월목금토일 주 5회 / 시간은 11:00~12:00가 되겠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

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