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으!”
“역시 작업 중에 마시는 맥주가 최고군!”
“인간! 너도 한잔 할 텐가?”
드워프들이 작업 중에 술을 마시는 건 흔한 일인 듯싶었다.
건물 밖에 커다란 통이 하나 비치되어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것도 마법이 걸린 맥주통이.
“드워프하면 맥주. 맥주하면 드워프지. 얼른 마셔보라고!”
“드워프하면 대장장이 아니었나요?”
어느새 맥주가 담긴 잔이 나에게 내밀어졌다.
양손으로 쥐어야 할 만큼 묵직한 무게.
코끝을 자극하는 향이 보통이 아니었다.
입에 잔을 가져다 댄 나는 감탄하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
속을 뻥 뚫어 버리는 청량함.
대장간에서 느껴지는 열기와 맥주의 시원함은 기가 막힌 조화를 자랑했다.
“끝내주지? 비리비리한 것과는 다르게 맥주 맛은 아는군.”
“그릇을 만들어 달라고?”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가 필요해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던 드워프가 나에게 다가왔다.
영감에게 직접 연락을 받았다던 드워프였다.
“용도는?”
“음…신을 모시는데 사용할거예요.”
“모양은 차차 듣기로 하고, 손 한번 줘보거라.”
“손이요?”
드워프가 손금을 보는 것도 아니고, 손은 왜 달라는 것일까.
맞춤형 무기를 만들 때 손을 본다던 기억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나랑은 상관이 없는 일.
내가 오른손을 내밀자 드워프가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활을 잡은 적이 있느냐?”
“요즘은 안 써요.”
“함정 같은 것들도 만들었던 모양이군.”
역시 드워프라는 걸까.
새삼 나에게 점을 보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손 하나만으로 그런 것까지 맞추다니.
“주먹을 쥐어 보거라.”
이번에도 내 주먹을 유심히 살피던 드워프가 다시 입을 열었다.
“흠, 네놈은 도대체 뭐 하는 인간이지?”
“예?”
“손만 봐도 많은 걸 알 수 있지.”
실제로 손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 많기는 하다.
손금에는 그 사람의 삶이 담겨 있기도 하니까.
“언데드와 싸운것치고는 상처도 하나 없군. 검을 쥐지도 창을 잡지도 않는 손이야.”
스윽 –
드워프가 손을 움직이자 내 주먹이 풀어졌다.
“평소에는 이런 식으로 무언가를 잡나 보군.”
정확하게 맞았다.
방울을 끼워 넣는다고 하면 딱 알맞은 손모양이었다.
이런 것까지 알아보다니, 생각보다 용한 종족이지 않은가.
“허리에 있는 그것이 소문의 방울인가?”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호기심인지 무엇인지 모를 눈빛.
드워프의 눈이 내 허릿춤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호오, 이런 물건이 존재하다니.”
“예?”
만져 본 것도 아니고, 눈으로만 봤는데 알 수가 있다는 건가?
“마치 광물과도 같은 모양새야.”
“광물이요?”
“누군가의 손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렇게 생겼었다는 소리다.”
떠억 –
자연스럽게 입이 벌어졌다.
무당일을 하는 내가 이런 경험을 하는 날이 오다니.
드워프의 말이 정확했다.
이 방울은 갑자기 내 손에 쥐어져 있었으니까.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그렇게 섬세한 생김새라니, 흐음…”
어느새 드워프들이 가까이 다가와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비슷하게 만들기도 어렵겠군.”
“그러게 말이야. 생긴것과는 다르게 복잡한 물건이구만.”
“저만한 크기에 무게도 없어 보여.”
갑작스레 토론을 하던 드워프들이 나를 향해 눈을 번뜩였다.
“그릇을 만들어 달라고 했지?”
“네.”
“훌륭한 놈들로 만들어 주지. 네놈이 사는 곳으로 가져가겠다. 모양을 설명해 보거라.”
이곳에서는 볼 수가 없는 모양들.
손짓을 섞어가며 생김새를 알려주는 내 허술한 설명에도 드워프 들은 찰떡 같이 알아 듣고 있었다.
“실제로 쓴다기보다는 형식을 갖추는 느낌인가?”
“그래도 쓸 수 있다면 좋겠지.”
“저놈 손에 맞춰서 만들어 보자구.”
대화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내용이 너무나 빠르게 흘러 갔기 때문이다.
“들어 보니, 모양과 격식이 중요한 것 같군. 맞는가?”
“정확해요!”
생김새만 묘사했지 아직 용도에 관한 설명은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드워프 들은 생긴것만으로도 쓰임새를 알고 있었다.
“인챈트는 필요가 없나?”
“굳이 그것까지는…”
“알겠다. 빠른 시일내로 만들도록 하지. 보수는 필요 없다. 대신!”
“….?”
“그릇을 가져가는 날 그 방울을 볼 수 있겠나?”
문제 될건 없다.
내 방울이 보통물건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드워프들이 이렇게 관심을 보일 줄이야.
나로서는 오히려 환영하는바였다.
나도 모르는 비밀을 알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대답을 하려는 찰나, 드워프들이 모두 흩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보겠군.”
“음식이 담겼을 때의 모양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네.”
“실용성이 너무 떨어져. 이 부분부터 해결을 해 보자구.”
저들의 관심은 이미 만들 물건들에게 쏠려 있었다.
창작과 예술에 미친 종족.
태어나자마자 망치를 잡는다는 종족다운 모습이었다.
“뭐가 지나간 거야?”
“바우! 하부?”
“할아버지가 아니라…할아버지 맞나? 이름도 못 물어 봤네.”
옆에서 조용히 서 있던 란돌프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을 만졌던 분이 드잔트라고 불리오. 나머지 이름은 우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소.”
“흠…”
“볼일이 끝났다면 밖으로 모시겠소.”
“아, 네.”
등에 있던 루나가 바둥거리며 신난 듯이 외쳤다.
“까?”
“그게 뭔지는 알고 그러는 거야?”
“아우우!”
날 닮아서 그런지 눈치가 빠른 루나.
아마도 자기에게 좋은 물건이라는 걸 진즉에 알아챈 모양이었다.
드물게도 나를 재촉했으니까 말이다.
“이제 루나 까까사러 가 보자.”
“까!”
***
조용한 산속.
크리스가 차린 신당 앞이었다.
그곳에 마법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분명히 보았소. 물건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을!”
“확실하게 본 것이 맞는가?”
“조용히 해 보시게. 영혼이 반응해주지 않으면 어쩌려고 그러나?”
시끌벅적 하던 마법사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들에게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나가 없이 일어나는 현상들.
전례에 없던 일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
“…..”
한참의 침묵이 이어지던 그때.
마당에 놓인 테이블 위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가만히 있던 과일 하나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것이다.
“허억…!”
“저, 정말로…!”
누군가의 손이 닿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마나가 움직이지도 않았다.
방금 일어난 현상은 마법사들에게 있어서는 신세계 그 자체였다.
새로운 학문의 탄생이 될지도 모를 일.
“허험.”
“클로셀님?”
“그간 크리스 그 친구와 함께 다니며 많은 것을 들었네.”
클로셀이 중후한 음성으로 말하며 테이블 위를 직시했다.
“영혼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하더군.”
“호오…!”
“특히나 이 신당의 주변엔 수많은 영혼들이 있다고 했네.”
분명 크리스가 그렇게 말했다.
신당에는 묘지에 있는 영혼들과 잡귀들이 자주 방문한다고 말이다.
같이 살다시피 하는 잡귀도 있다고 했다.
“이름이…대가리라고 했던 것 같군.”
“영혼의 이름이 대가리라는 말입니까?”
“크리스가 지어 준 이름이라고 했네. 듀라한의 형상을 닮았다더군.”
“그럴 수가…!”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인간의 영혼이 듀라한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 원한이 많거나 격이 높은 영혼은 어느 정도 힘을 가진다는 것 같네.”
“그럼 방금 일어난 현상도…?”
“아까 듣기로는 이곳에 음기라는 것이 가득해 영혼들이 힘을 쓰기 좋은 장소라더군.”
웅성웅성 –
“내 생각에는 방금 그 현상도 대가리라고 불리는 영혼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하네.”
“역시 클로셀님이십니다!”
크리스에겐 별것 아닌 일이었지만 이들에게는 이조차도 새로운 세계였다.
이것에 관한 지식을 아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영혼을 보는 이가 없어 몰랐던 것이지. 이런 현상이 이곳에서만 일어나는 듯도 하고 말일세.”
“클로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칭찬이 터져 나오자 클로셀이 손을 들어 올리며 마법사들을 조용히 시켰다.
“하여, 내 그 대가리라는 영혼과 소통을 시도해 볼 생각이네.”
“….!!!”
“….!”
“다들 조용히 해주시게나.”
클로셀이 테이블로 다가가 떨어진 과일을 주워 올렸다.
테이블의 끝부분에 올려지는 과일.
중후한 클로셀의 음성이 허공으로 퍼져나갔다.
“대가리 경, 들리시오?”
“….”
“….”
“내 그대의 이름을 몰라 이리불러 미안하오.”
“….”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마법사들의 대열에 합류한 클로셀.
주변을 살피던 클로셀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혹시 들린다면 방금처럼 과일을 움직여 주지 않겠소?”
잠잠하던 테이블 위에서 작은 소리가 울렸다.
툭 –
세워 놓았던 과일이 흔들린 것이다.
“저…정말로!”
“영혼이 응답을 하였소!”
“얼른 기록 하시오!”
바쁘게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 내리던 마법사가 몸을 떨었다.
“바,방금 누군가 제 손을 건드렸습니다!”
“당장 이리로 오거라.”
선배마법사들에게 끌려간 그가 테이블 앞에 앉혀졌다.
종이와 펜을 테이블에 올린 그의 주변으로 마법사들이 둥글게 섰다.
“영혼이 손을 건드릴 수 있다면, 이것들을 통해 간단하게 의사소통을 해볼 수 있지 않겠소?”
“좋은 생각입니다.”
“그리 해 보세나.”
이윽고 다시 한번 클로셀이 입을 열었다.
“대가리경 그대가 이곳에 있는 것이 맞소?”
곧바로 테이블에 앉은 마법사가 숨을 들이마셨다.
“흡…!”
그의 손에 무언가가 느껴졌던 것이다.
펜의 끝을 두드리는 무언가.
그 느낌을 따라 펜을 움직이자 그려진 것은 작은 동그라미였다.
“나,나도 느껴보고 싶소!”
“나도!”
마법사들이 펜 주위로 손을 모았다.
수많은 손들이 한 곳에 모여든 것이다.
“…대가리 경! 그대가 대답해준 것이 맞소?”
툭 –
“….!!”
툭 –
“허업…!”
역시나 작게 그려지는 동그라미.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며 입을 떠억 벌리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마을에서 돌아온 크리스였다.
“아주 지랄이 났네, 지랄이 났어.”
“자네 왔는가?”
어이를 상실해 버린 크리스의 한마디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여기서 분신사바를 다 보네.”
나 일상물 좋아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