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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8

        

       흑요석 단검은 두부에 칼을 꽂는 것처럼 아무런 저항 없이 그녀의 가슴에 꽂혔다. 진성은 흑요석 단검을 움직여 그녀의 가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렁물렁하고 부드러운 것을 자르는 것처럼 거침없이 그녀의 피부를 가르고, 인형을 가르는 것처럼 피 한 방울도 내지 않은 채 그녀의 가슴에 반원을 그렸다. 입고 있던 네글리제는 넝마가 되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얇았던 한 겹의 천은 피부에서 떨어져 나가서 새하얀 가슴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진성은 그녀의 작은 가슴을 도화지라도 되는 듯 흑요석 단검으로 누볐다.

       마치 흑요석 단검을 붓으로 삼아 그림을 그리듯, 엘라의 피부에 보디 페인팅(body painting)을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림 같기도 하고, 상형문자 같기도 한 것들이 새겨지자 그는 그제야 손을 멈추었다. 그는 그림이 그려지자 흑요석 단검을 뽑고는 허공을 쥐었다.

         

       뿌드득!

         

       그러자 무언가를 잡아 뜯는 소리가 나며 엘라의 가슴팍이 서서히 열렸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열린 그녀의 가슴에서는 이상하게 생긴 고깃덩어리가 그대로 허공으로 떠올랐는데, 그 형체는 꿈에 나올까 무서운 형태를 하고 있었다.

         

       기형종(畸形腫)이라 불리는 종양이었다.

         

       진성은 그것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알에서 나온 것을 축하한다.”

         

       그는 손에 들린 흑요석 단검으로 거침없이 고깃덩어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툭.

       투둑.

         

       고깃덩어리의 겉 부분에 나 있던 울룩불룩하고 의미 없어 보였던 것은 보석을 커팅하듯 조금씩 잘려나갔고, 이윽고 하나의 형태를 이루었다.

         

       사람과 흡사한 형태의 고깃덩어리.

       얼핏 보면 태아 같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갓 태어난 미숙아 같기도 한 형상을 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 고깃덩어리는 미약하게 진동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심장이 뛰고 있었던 것이다.

         

       진성은 그 고깃덩어리에 엘라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흑요석 단검을 이용해 문양을 새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엘라와는 달리 단 하나만을 새겼는데, 그 형상이 손잡이가 달린 십자가의 모양이었다.

         

       이집트의 신성문자(Hieroglyph), 앙크(Ankh, ☥)였다.

         

       진성은 고깃덩어리를 엘라의 옆쪽에 놓았다.

         

       그리고는 허공을 쥐어서 땅속에 파묻혀 있던 수많은 상자를 끌고 왔다.

         

       투웅!

       투우웅!

         

       묵직한 소리를 내며 진성의 앞에 상자들이 떨어지더니 뚜껑이 저절로 열리기 시작했다.

       뚜껑이 열린 상자 안에 보이는 것은 사람의 장기로 보이는 것들.

         

       3D 세포 배양(3D cell culture)으로 만들어낸 장기유사체(organoid)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상자에는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들이 한데 대충 쑤셔박혀 있었는데, 석회 가루와 연탄 가루가 물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어떤 상자에는 수액팩으로 보이는 것들과 혈액팩이 상자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어떤 상자에는 콜라겐 섬유가, 어떤 상자에는 마력(魔力)을 잔뜩 품고 있는 특수 배양액이 통에 담겨 있었다.

         

       진성은 대마녀가 인맥과 돈을 활용해서 구해온 재료들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흑요석 단검을 하늘 높이 들었다. 그리고는 흑요석이 태양을 반사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다가, 빛이 반짝이며 제단을 향해 내려오자 크게 소리쳤다.

         

       “타오르는 태양이 영원하듯, 그 은총 역시 그러하리라!”

         

       산제물을 바치는 끔찍한 인신공양 끝에 내려오는 태양의 은혜.

       그 은혜가 엘라에게 내려오고 있었다.

         

       본래라면 점술사가 받아야 했을 그 은혜는 유일한 생존자인 엘라로 집중되었다.

       게다가 본래라면 근처 지역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헛되이 사라져버렸을지도 몰랐지만, 진성에 의해 ‘태양’의 상징이 강화됨에 따라 손실 없이 엘라에 집중될 수 있었다.

         

       진성은 따스한 빛이 제단으로 내려오자 흑요석 단검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빛을 집중시켰다.

       오목한 거울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빛을 한 점에 집중시키는 것처럼 엘라의 몸에 내리쬐었다가 고깃덩어리의 몸에 내리쬐기도 하고, 다시 하늘로 쏘아 보내기도 하는 등의 행위를 반복했다.

         

       그리고.

         

       화르륵.

         

       그 행동이 열매를 맺었는지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엘라와 고깃덩어리가 타기 시작했다.

       붉은색을 띠며 타오르는 불꽃은 강하게 솟구쳤고, 이윽고 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색으로 변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타닥.

         

       불똥이 튀는 소리와 함께 사라진 불꽃은 엘라를 토해냈다.

         

       엘라는 몸에 걸치고 있던 네글리제가 완전히 사라져서 알몸이 되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 모습이 아까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

         

       당장 시체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던 엘라에게 생기가 돌아왔고, 그녀가 입었던 상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마치 갓 태어난 것처럼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아까 전까지 느꼈던 고통은 사라져버린 것인지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고, 고르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선 고깃덩어리가 불길에 휩싸여 있었는데, 불길은 고깃덩어리 하나로는 만족을 못 한다는 듯 슬금슬금 몸을 움직여 상자들을 집어삼켰다. 가장 먼저 석회 가루와 연탄 가루가 둥둥 떠 있는 상자를 불태웠고, 그다음에는 장기유사체가 담긴 상자가 타올랐다.

         

       그러고도 만족이 되지 않는다는 듯 불꽃은 계속해서 움직이며 상자 전체를 태웠다.

       지귀(志鬼)가 살아 움직이는 듯 상자들을 탐욕스럽게 먹어치웠다.

         

       그리고 상자가 불타는 만큼 제단에 타오르는 불꽃은 점차 크기를 불려갔다.

       주먹만 했던 불꽃은 머리통만 한 불꽃이 되었고, 머리통이 곧 어린아이 같은 크기가 되었다.

         

       그리고 엘라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가 되어서야 만족했는지 순식간에 사그라들며 무언가를 토해내었다.

         

       타닥!

         

       불똥이 튀는 소리와 함께 토해진 것은 어린아이.

       엘라와 똑같이 하얀 머리카락에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는 여자아이였다.

       엘라와 똑 닮은 그 모습이 어찌 보면 자매 같기도 했고, 어찌 보면 딸 같기도 했다.

         

       여자아이는 엘라와 마찬가지로 편안한 얼굴로 고르게 숨을 쉬었다.

         

       그리고 여자아이가 숨을 내뱉자 태양은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빛을 거두기 시작하였고, 이윽고 제단에 밝게 머무르던 빛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크롬 크루어히가 내려주는 은혜가 끝이 난 것이다.

         

       “참으로 얻은 것이 많구나.”

         

       진성은 미소를 지었다.

         

       본래 죽어야 하는 엘라가 살았다.

       담비가 엘라의 몸이 아닌, 자신만의 육체를 얻었다.

       그러고도 남은 태양의 힘은 흑요석 단검에 밀집되었으니.

         

       원한다면 태양의 힘을 그대로 담아서 강력한 주물(呪物)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담긴 힘을 덜어서 이아린의 오성과 신체 능력을 발달시킬 수도 있을 것이며, 이세린에게도 어느 정도 혜택을 줄 수도 있으리라.

         

       오직 이득밖에 없는 일이었다.

         

       모두가 행복하니.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니랴.

         

       “옴 마니 파드메 훔(ॐ मणि पद्मे हूँ).”

         

       진성은 자신에게 이렇게나 많은 선물을 주고 사라진 점술사에게 진언을 외워주었다.

         

       아까 전이 명복을 빌기 위한 진언이었다면 이번에는 감사를 담은 인사였다.

         

       그런데 점술사가 하늘에서 그 감사 인사를 받고 열이 받기라도 한 것일까?

         

       진성을 향해 거친 회답이 날아왔다.

         

       퍼–어어엉!

         

       “허.”

         

       음속을 돌파하며 날아오는 도끼의 형태로.

         

         

         

        * * *

         

         

       음속을 돌파하며 날아가는 도끼는 말 그대로 허공을 찢어버렸다.

       불이 붙은 것처럼 넘실거리는 붉은 기(氣)가 서린 도끼는 허공에 거대한 붉은 선을 그리며 제단을 향해 날아갔고, 그곳에 서 있는 주술사로 추정되는 놈의 머리통을 그대로 날려버리려 했다.

         

       콰아아앙!

         

       하지만 도끼가 주술사의 머리통을 부숴버리기 전, 아지랑이가 피어나며 도끼의 궤도를 살짝 틀어버렸고, 이어서 솟구치는 몇 겹의 에너지 장벽들이 도끼를 막아내었다.

         

       에너지 장벽에 벌집 구조 형태의 문양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니, 투사체 방어용 아티팩트를 사용한 것 같았다.

         

       “막았군.”

         

       하지만 도끼를 던진 중년 남자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뭐, 간덩이가 부은 놈 같은데 이 정도는 막아줘야죠.”

       “인사도 받아주지 못하는 주제에 저딴 의식을 했으면 그건 그것대로 싱겁지 않겠습니까.”

         

       중년 남자는 양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입에 물고 있는 담배를 퉤 뱉고는 숲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진동하는 피 냄새.

       제단으로 보이는 구조물.

       그리고 그 위에 누워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형체.

         

       그 모든 것이 붉은빛의 기둥 안에서 인신공양 의식이 행해진다고 말하고 있었다.

         

       “흐, 그래. 감히 어머니 러시아(Мать-Россия)에서 저딴 쓰레기 같은 짓을 한 놈인데, 이 정도는 버텨줘야지.”

         

       어째서 저 주술사가 인신공양 의식을 했는지도 모른다.

       어디 약해빠진 나라도 아니고, 감히 러시아에서 그 의식을 했는지도 모른다.

       대가리에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고, 간덩이가 얼마나 부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저런 짓거리를 하는 새끼들은 머리통을 부숴버려야 한다는 것.

         

       그는 눈밭에 떨어진 담배를 군홧발로 짓이겼다.

         

       “오르간 맛 좀 보여줘라!”

         

       남자의 명령과 함께 다연장 로켓이 불을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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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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