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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8

       

       

       

       

       

       “순서를 다르게 해도 풀리게 해 놨다고?”

       “그럼 설마….”

       “우리가 받은 암호가 구성은 같되 순서만 다 다르게 되어 있었던 건가?”

       

       눈치가 빠른 간부들은 하나둘씩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서대로 되어 있는 암호를 받은 건 게콘, 당신 혼자뿐이죠.”

       

       사실 핵심은 순서가 다르다는 데에 있지는 않았다. 

       그냥 암호를 뿌릴 때 간부마다 암호를 다르게만 해 두면 추후 특정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혹시 몰라서 진짜로 모든 간부들의 암호가 전부 작동하도록 해 뒀지.’

       

       혹시라도 그사이 어떤 일로 간부 하나가 잠깐 금고를 열 일이 생겼을 때 열리긴 해야 할 거 아닌가. 

       

       ‘그리고 시프 길드원이 잠금장치를 열었을 때 잡아야 이렇게 증거가 확실히 남으니까.’

       

       대충 틀린 암호를 뿌렸다가 시프 길드원이 암호를 딱 맞춰 보는 순간 잡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안 맞는 걸 보고 돌려 버리거나 할 수도 있어 이렇게 모두 모였을 때 설득하기가 힘들어진다. 

       

       “저, 저놈이 헷갈렸을 수도 있잖아!”

       

       저 봐라. 벌써 변명 들어갔네.

       

       “다른 놈이 유출했는데 저 시프 놈이 헷갈려서 순서를 잘못 맞췄을 수도 있는 거잖아? 도대체 저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지?”

       

       게콘이 언성을 높였지만,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중간이나 마지막 한 글자를 잘못 맞췄을 수는 있어도, 순서를 완벽하게 뒤바꿔서 맞추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요?”

       

       내 말에 간부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틀렸을 수는 있어도 완벽히 같은 구성으로 순서만 틀리기는 쉽지 않지.”

       

       나는 느긋하게 쐐기를 박았다.

       

       “어제는 용병들의 목에 독침을 정확하게 꽂고, 오늘은 거의 흔적도 없이 경비가 삼엄한 창고 안에 잠입한 숙련된 시프가 과연 그런 실수를 저지를까요? 최소 몇백 번은 암기했을 텐데요. 그리고, 그런 시프라면 만약 자신이 잠깐 헷갈렸다 하더라도 금세 이상함을 알아채고 금고 문을 여는 대신 곧바로 도주했을 겁니다.”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쀼우. 쀼.”

       

       아르만이 내 말이 맞다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내 손을 꼭 잡은 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게콘….”

       “네가 배신자였을 줄은….”

       “믿었는데.”

       

       간부들의 시선이 다시 게콘에게 집중되었다. 

       

       “아냐! 내가 아니라고! 이건 분명 누군가 나한테 뒤집어씌우려고 한 거다! 나는 지금 자리에 없는 로한이 의심스럽다고! 애초에….”

       

       하지만 게콘이 횡설수설하던 그때, 때마침 기절시키고 결박해 두었던 시프 길드원이 정신을 차렸다. 

       

       “콜록, 콜록. 이건….”

       

       고개를 들어 게콘을 발견한 시프 길드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게콘! 이 배신자 자식! 날 팔아넘겼구나! 내 그럴 줄 알았다. 어쩐지 일이 너무 잘 풀린다 싶더니….”

       

       퍼억.

       

       그 말을 남긴 시프 길드원은 다시 뒤통수를 맞고 기절했다. 

       

       “…….”

       “…….”

       

       이제는 더 이상 변명할 거리도 남지 않았다. 

       

       “포박하게.”

       

       여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길드장의 말에, 게콘의 뒤에 있던 간부가 그의 무릎 뒤를 차서 꿇린 이후 순식간에 포박을 완료했다.

       

       “이런 젠장할!”

       

       게콘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이를 악물더니 길드장을 보며 악을 썼다.

       

       “이…. 이 비겁한 길드장 같으니! 우리를 믿는다고 말할 때는 언제고 거짓말로 함정을 파?”

       

       그 말에 길드장 대신 대답한 건 나였다.

        

       “글쎄요. 제가 볼 때 길드장님은 최선을 다해 간부님들을 믿어 주셨는데요. 처음부터 내부자를 의심했어야 되는 상황인데도 간부 중 누구에게도 개인적으로 책임을 묻거나 의심하지 않으셨고, 그렇다고 바뀐 암호를 거짓으로 뿌린 것도 아니고요. 실제로 받으신 암호들도 다 작동하는 암호였잖아요?”

       “…그건 그래. 사실 처음부터 우릴 의심했어도 할 말이 없었을 정도로 깔끔하게 암호가 털렸었으니.”

       “맞아. 내가 길드장님이었어도 우릴 의심했을걸.”

       

       간부들도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배부되는 암호의 순서를 섞고, 잠금장치를 조금 조작해 두긴 했지만 그건 다 제가 개입해서 이루어진 일이지, 길드장님이 하신 일은 아니에요. 아마 게콘 당신이 범인으로 밝혀져서 가장 마음 아픈 건 지금 길드장님일 겁니다.”

       

       뭇 듣는 이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나의 멘트와 말투에 주위가 숙연해졌다. 

       

       ‘좋아. 이제 길드장님 실드도 야무지게 쳤고. 슬슬 마무리를 해 볼까.’

       

       내가 입을 열려는 순간.

       

       “아니, 아닐세.”

       

       길드장의 목소리가 창고 안에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레온 님. 저를 감싸 주시려 한 건 고맙습니다. 하지만, 길드장으로서 이렇게 끝까지 뒤에 숨어만 있을 수는 없지요.”

       

       말을 마친 길드장은, 모여 서 있는 간부들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기, 길드장님?”

       “왜 그러십니까!”

       “허리를 드십쇼!”

       “드실 때까지 저희도 안 들 겁니다!”

       

       간부들도 같이 허리를 숙이며 외치자, 길드장은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레온 님이 이번 안을 제안한 건 맞네. 하지만, 내 마음속에 자네들에 대한 의심이 없었다면 제안을 받아들이지도 않았겠지. 그간 신뢰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왔던 내가 먼저 신뢰를 저버린 셈이야. 진심으로 사과하겠네.”

       

       길드장은 어떤 비난이든 달게 받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 길드장을 바라보던 간부들 중 하나가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하하하!”

       “…?”

       

       길드장이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자, 옆에 있던 간부들도 하나둘씩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길드장님.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던 겁니까?”

       “어쩐지, 아까부터 너무 비장하시다 했습니다.”

       “저희가 뭐라고 했습니까. 이 바닥에서 배신은 흔하니 사람 너무 믿지 말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저는 사실 저 게콘 녀석, 처음부터 맘에 안 들었습니다.”

       

       길드장은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던 듯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자네들도 내 말에 동의를….”

       “그거야 동의 안 하면 길드장님의 술기운 섞인 일장연설을 몇 시간 동안 들어야 하니까 동의했던 거죠.”

       “전 솔직히 이런 일 언제 한 번 터질 줄 알았습니다.”

       “앞으로는 의심 좀 하고 사십쇼.”

       “자네들….”

       

       길드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간부들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자신도 실소를 터뜨렸다. 

       

       “허허. 역시 자네들은 믿을 만한 동료들이로구먼.”

       “저기, 한창 훈훈한데 죄송합니다만.”

       

       훈훈하게 마무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까지 훈훈하길 바란 건 아니었던 내가 어쩔 수 없이 말을 끊었다. 

       

       “범인을 잡은 건 좋은 소식이지만, 아직 제가 받은 의뢰는 안 끝났거든요. 성유물 조각, 놈들한테서 되찾아 와야 되지 않겠습니까?”

       “엇, 그건 그렇지.”

       “기절한 시프 길드원 놈을 깨워서 심문해야 하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을 겁니다. 훈련된 시프라면 쉽게 입을 열려고 하지 않을 거고, 시간이 끌리면 저쪽에서 이상함을 눈치채고 발을 뺄 겁니다. 그전에 속전속결로 쳐야 해요.”

       “하지만 어떻게….”

       

       나는 미리 준비해 둔 대답을 꺼냈다. 

       

       “저 땅굴, 역으로 추적해 봅시다. 반대쪽에서 조치를 취하기 전에요.”

       

       ***

       

       내가 제안한 방법은 간단했다. 

       

       시프 길드원이 나왔던 땅굴로 들어가 반대쪽에 있을 시프 길드의 흔적을 추적하는 것. 

       

       “하지만 땅굴이 반드시 아지트 쪽과 연결되어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잖은가.”

       “무려 성유물 조각을 운반하기 위해 판 땅굴입니다. 적어도 놈들의 동선과 밀접한 루트로 연결될 겁니다.”

       

       사실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이 땅굴이 아지트 근처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긴 하지만….

       

       ‘어쨌든 설득력은 있잖아.’

       

       그럼 됐지.

       

       “시간이 없습니다. 실시간으로 추적하면서 나아가야 돼요.”

       

       내가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처럼 말하자 길드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 의뢰를 맡길 때처럼 반신반의하는 목소리가 아닌, 이제는 나에 대한 신뢰로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전부 땅굴로 한번에 이동하는 건 리스크가….”

       

       그 말에 나는 실비아가 크랫 던전에서 내게 주었던 반지를 꺼내 착용했다. 

       반지를 본 실비아가 재빨리 자신도 품에서 반지를 꺼내 길드원들 앞에서 보란 듯이 착용하는 걸 무시한 채, 나는 입을 열었다. 

       

       “땅굴엔 제가 들어갑니다. 나머지 분들은 땅 위에서 절 따라 오시면 돼요.”

       

       ***

       

       역추적은 순조로웠다. 

       

       내가 땅굴 안으로 들어가 길을 찾으면서 주기적으로 신호를 보내면, 위에 있는 실비아가 위치 신호를 받아 땅 위에서 길드원들을 이끌고 따라오는 방식이었다. 

       

       굳이 내가 땅굴로 들어간 건, 이 땅굴이 사실 길드 아지트 쪽으로도 연결되어 있지만, 중간에 갈래길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기존에 쓰던 땅굴에서 이어 작업했다는 소리지.’

       

       아마 이런 허브(hub)식 구조를 이용하면서 한두 번 써먹은 땅굴은 메우는 식으로 작업을 해 왔을 터.

       

       길을 알고 있는 내가 직접 들어가는 게 아니면 중간에 길을 잃을 가능성이 있었다. 

       

       ‘애초에 내가 알고 있는 위치로 그냥 다 이끌고 쳐들어가면 편하긴 하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일반 용병들을 고용해서 털고 나오는 것도 아니고, 길드장부터 간부까지 다 있는 마당에 ‘내가 시프 길드 아지트의 위치를 알고 있으니 저만 따라오시면 됩니다’라고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스러웠다. 

       

       한 가지 다행인 건 허브 쪽부터는 땅굴이 상당히 넓어져서 이동하기가 편했다는 것.

       

       거의 다 왔을 때쯤에는, 이미 위쪽에서 땅굴 근처를 지키고 있던 시프 길드원과 우리 팀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푸하!”

       “레온 씨! 바로 찾았어요! 땅굴이랑 가까운 곳에 아지트가 있었어요!”

       “잘됐네요. 저도 전투 합류할게요.”

       

       역시 4성 검사치고 감각이 굉장히 뛰어난 실비아 씨는 곧바로 아지트 위치를 특정했고.

       

       “웬 놈들이냐!”

       “용병 길드…! 젠장! 위치가 발각된 건가!”

       “당황하지 마라! 여기에선 우리가 무조건 유리해!”

       “아티팩트도 아끼지 말고 써라!”

       

       아지트 안에 있던 시프 길드원들은 즉시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개중에는 마법을 저장해 둔 아티팩트로 우리에게 플레임 스피어를 날리려는 시프도 있었다.

       

       “전개, 플레임 스피어.”

       

       아티팩트에 불이 들어오고, 마법진이 생성되는 걸 본 나는 씨익 웃었다.

       

       “자, 아르야. 흙 냄새 맡느라 지겨웠으니, 우리도 이제 실력 좀 보여 줘 볼까?”

       “쀼웃!”

       

       나는 플레임 스피어를 시전한 시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외쳤다. 

       

       “쀼—.”

       “—플레임 스피어!”

       

       곧 두 개의 플레임 스피어가 공중에서 격돌했고.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일어난 폭발의 연기가 걷혔을 때, 아티팩트를 든 시프가 있던 자리에는 부서진 건물의 잔해만이 남아 있었다. 

       

       “와….”

       “내가 뭘 본 거지?”

       “역시 형님…!”

       

       용병들의 감탄 어린 시선 속에서, 나는 내 어깨 위에 올라 탄 아르와 눈을 맞추며 씩 웃었다. 

       

       “어디서 쀼플레임 스피어한테 까불고 있어. 그치, 아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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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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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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