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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8

       

       

       

       

       “일주일 정도 더 걸릴 것 같아요.”

         

       올리비아는 금색으로 빛나는 수정구에 대고 그렇게 말했다.

       왜 일정이 늘어났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멜리나는 그저 옅게 웃을 뿐이었다.

         

       [다치지 말고 천천히 오렴.]

         

       약간 우울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최대한 빨리 갈게요.”

         

       멜리나는 진심으로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드래곤을 가르치는 것도 나름 재미는 있더구나. 허구헌날 찾는 사람도 없고, 조용하니 좋단다.]

         

       물론 진심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감정 연기에 서투른 사람이니까.

       당장 수정구에 드러난 모습도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우수에 젖은 강아지마냥 축 처져 있었다.

         

       시무룩해진 멜리나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해졌다.

         

       ‘…….’

         

       올리비아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발 밑에는 갈두르가 새카맣게 그을린 채 널브러져 있었다. 갈두르가 저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멜리나가 저런 표정을 지을리 없다고 지랄 발광을 하지 않을까?

         

       [바닥에 뭐 있니?]

       “아니요. 그냥 멍 때린거에요.”

       […….]

         

       멜리나는 묵묵한 얼굴로 올리비아를 쳐다보다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너를 믿는단다.]

         

       다짐에 가까운 말에, 통신을 그만두려던 올리비아가 그 자리에 굳었다.

         

       [그러니까 힘내렴.]

         

       그 말을 끝으로 수정구가 빛을 잃었다. 올리비아는 죄악감이 가득한 얼굴로 수정구와 갈두르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쉽지 않네.’

         

       올리비아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갈두르를 쓰레기통에 처박은 다음, 조용히 생각들을 정리했다.

         

       저대로 내버려놔도 갈두르는 자신의 존재를 발설하지 못할 것이다.

       마녀에게 처발리고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 자체가 수치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치를 무릅쓰고 발설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멜리나의 제자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가진 것이라고는 자존심 밖에 없는 갈두르가 절대로 그럴 리 없다.

         

       그때,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뒷골목 양아치들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정적 속에서 찰박거리는 발소리가 울린다. 익숙하면서도 불길함이 느껴지는 소리에 올리비아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저 소리가 왜.’

         

       그 시점에서 올리비아는 뒤를 돌아 볼 것인지 말 것인지 갈등했다. 도망갈 수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 이카일에 온 이유는 전부 에스티를 만나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렇다고 도심에서 만날 줄은 몰랐지만.’

         

       원래 계획은 목격자가 한 명도 없는 대양 한복판에서 에스티와 담판을 지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도심까지 온 이상, 그 방법은 사용할 수 없다.

         

       ‘……어째서.’

         

       올리비아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하며 나름의 결론을 내놓았다.

         

       ‘번개 때문인가?’

         

       나름 저위계 마법을 사용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올리비아는 숨을 삼키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참으로 역겨운 곳이야. 안 그래?”

         

       에스티가 입꼬리를 들어 웃었다.

       감정을 잃은 사람의 것이라기엔 너무나 화사한 미소였다.

         

       “누구야, 너.”

         

       올리비아의 말에 에스티의 눈동자가 커졌다.

         

       “음……. 이런 상황은 예상 못했는데.”

         

       그녀는 올리비아를 향해 다가오면서 머리를 옆으로 기울였다.

       루비보다 조금 더 진한 붉은 머리카락이 바닥까지 흘러내렸다. 권태를 품고 있는 녹안은, ‘단서’에서 보았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더 활달했고, 은은한 광기가 흘렀다.

         

       “뭐, 됐어. 네가 날 기억하든 말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중요한 건, 네가 날 위해서 뭘 해줄 수 있느냐지. 안 그래 올리비아?”

         

       에스티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

         

       올리비아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상황은, 산전수전 다 겪은 올리비아조차도 처음 겪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적의를 드러내지 않는 회귀자라니.

         

       올리비아는 곧바로 에스티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에스티 아쿠아르]

       레벨 : 93

       호감도 : ???

       직업 : 파도술사

       칭호 : 회귀자, 이카일의 파도잡이, 망국의 공주

         

       ……물음표?

       호감도가 어떻게 물음표지?

       

       “그 얼빵한 표정……확실히 내가 알던 너랑은 조금 다르네.”

         

       길고양이를 쓰다듬듯, 에스티가 올리비아의 뺨을 향해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댔다.

         

       “귀엽네. 이런 성격의 너도 나쁘지 않을지도.”

       

       올리비아가 에스티의 팔을 밀쳐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봐봐. 귀엽다니까.”

         

       올리비아는 날카로운 눈으로 에스티를 노려보았다. 그런 시선을 받으면서 에스티는 쿡쿡 웃음을 흘렸다.

         

       올리비아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다스릴 수 없었다.

         

       ‘……뭐냐 얘. 원래 이런 성격 아니었는데.“

         

       생각하지 않는 기계같은 인간.

       무감각하고, 매사 무기질적인 인간이 바로 에스티였다.

         

       근데 이건 그냥 미친년 아닌가.

         

       “흐음…….”

         

       남색 눈을 번뜩거리며 올리비아의 주변을 서성거리던 에스티가 쓰레기통 방향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적탑주네? 방금 그 번개가 뭔가 했는데……‘여기’에 쓴거구나? 근데 아직 살아있는데?”

         

       에스티는 넝마가 된 적탑주를 물끄러미 내려 보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터엉! 총알처럼 쏘아진 바닷물이 쉴드에 막혀 튕겨나갔다.

         

       “으응?”

       “죽이지 마. 일부러 살려둔거니까.”

         

       여기서 에스티가 갈두르를 죽여버리면 그 즉시 불살 엔딩은 끝장난다.

       직접 살해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살해에 관여하는 것 또한 ‘살인’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살 엔딩이 어려운거고.

         

       “…….”

       

       침묵하고 있던 에스티가 말했다.

         

       “확실히, 다르네. 내가 아는 너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아니면 내가 너를 보는 관점이 바뀐건가?”

         

       에스티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올리비아를 보았다.

         

       “너, 이렇게 자비로운 사람 아니었잖아.”

        “…….”

       

       회귀자들마다 호감작을 하는 방법은 다르다.

         

       지금까지의 회귀자들, 그러니까 키엘, 멜리나, 리브가는 선(善)하게 접근하는 것이 능사였다.

       아무리 성격이 배배 꼬였다고 한들, 그들은 나름대로의 선을 지키며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줄 알았다.

         

       그래서 키엘의 친구가 될 수 있었으며, 멜리나의 제자가 될 수 있었고, 리브가의 언니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 회귀자들도 있다.

         

       선보다는 악에 가까운 이들.

       질서보다는 혼돈에 가까운 이들.

         

       그 첫 주자가, 에스티였다.

         

       “아까부터 날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난 원래 자비로웠어.”

       “아닌데…….”

         

       그런 에스티에게서 올리비아는 원인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자신이 자비롭지 않은 인간이라고 확신하는 듯한 눈빛.

         

       “뭐, 네가 아니라면 어쩔 수 없…….”

         

       웃는 낯으로 내뱉던 에스티가 우뚝 멈춰섰다.

       쉼 없이 속삭이는 ‘목소리’들 때문이었다.

         

       ‘아으윽……!’

         

       쉰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런단 말인가.

       에스티가 신음을 내뱉으며 머리를 싸맸다.

         

       압도적인 고통에 에스티가 몸을 웅크렸다.

       에스티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올리비아의 옷깃을 붙들었다.

       실시간으로 가라앉는 동공.

       그녀가 의식을 잃어간다는 증거였다.

         

       에스티가 가까스로 말했다.

         

       “나를 바, 바다로…….”

         

       이것이 에스티가 바다를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였다.

       바다에서 멀어질수록 목소리가 커지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커질수록 그녀는 더 맹목적이고, 더 기계적으로 변한다.

         

       “……제발.”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에 방금 전의 웃음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아, 아아…….”

         

       단말마에 가까운 신음을 끝으로 에스티의 눈동자가 완전히 가라앉으려던 찰나, 허공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파츠츠츠츳!

         

       시야가 일순간 점멸했다. 흐릿한 시야 너머, 비명을 지르는 ‘적’들이 보였다.

         

       에스티는 본능적으로 파도를 움직였다. 수천 번도 넘게 들었던 소리들이 귓가에 울렸다.

         

       파도에 쓸려갈 때의, 물 속에 가라앉을 때의, 마지막 숨을 내쉴 때의 비명이…….

         

       ‘적’들의 목숨을 꺼트린 대가로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천천히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말했잖아.”

         

       올리비아가 말했다.

       

       “난 원래 자비로운 사람이라고.”

         

       에스티에게, 올리비아는 해방자였다.

         

       오직 그녀만을 위한 해방자.

         

         

       *****

         

         

       이유 모를 허전함에 리브가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무언가, 긴 꿈을 꾸었던 것만 같다.

         

       딱딱하고 차가운 돌바닥.

       이런 곳에서 잠을 청했다면 분명 온 몸이 뻐근해야 하는데, 놀랍게도 그런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포근하고 따스한 품에 안겨 있던 것만 같았다.

         

       리브가가 현실감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언니…….”

         

       정녕 꿈이었던 것인가?

         

       그녀의 손 끝에 축축한 무언가가 닿았다. 물웅덩이는 아니었다. 물이라기엔 너무나도 끈적했다. 리브가는 손을 천천히 제 눈 앞으로 가져갔다. 다음 순간, 그녀가 숨을 들이마셨다.

         

       그것은 피였다.

       비록 온기는 잃었지만, 아직 굳지는 않았다.

         

       리브가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꿈이 아니야.’

         

       자신은 분명, 올리비아의 무릎에 기대어 있었다.

         

       – ……이번에는 그럴 일 없을거야. 내가 바꿀 테니까.

         

       그런 말을 들었던 것도 같다.

         

       리브가가 복잡해진 얼굴로 참회동 바깥을 바라보았다.

         

       ‘언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 아래는 등장인물들 성향입니다.

    키엘 : 혼돈 중립(걍 자기가 맞음)
    멜리나 : 혼돈 중립(걍 자기가 맞음 2)
    리브가 : 중립 선(정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 가능)
    에스티 : 중립 악(나만 잘살면 됨. 나머지는 알바 아님)
    아리아 : 질서 중립(자신이 맞다고 믿음)

    올리비아 : 완전 중립(악행도, 선행도 할 수 있음)
    몰리비아 : 혼돈 악(그냥 무친련)

    – 킬 관여 기준은 롤의 어시 개념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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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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