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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8

       <몇 가지 확인할 게 있다.>

       “뭔가요?”

       <첫째로 용사냥꾼에게 보정으로 사용할 수 있는 투창기술이 있느냐?>

       “네. 있죠.”

       

       용사냥꾼에게 몇 없는 원거리 견제 기술이 투창이니까.

       

       창을 던지고 회수하는 일이 워낙에 어렵다 보니 봉인기 취급을 받고 있지만 말이다.

       

       <둘째로 용사냥꾼은 창없이도 보정을 활용해 싸울 수 있느냐?>

       

       “될… 걸요?”

       

       투창 기술이 있는만큼 창이 없을 때에도 싸울 수 있도록 근접 박투 기술이 존재하는 것으로 안다.

       

       엔리가 직접 써본 적은 없지만.

       

       처음 아피스를 배울 때부터 투창을 봉인해야 한다고 배운 엔리는 단 한 번도 창을 놓아 본 적이 없었다.

       

       <그거면 됐다.>

       “그래서 저 이제 뭘 하면 되나요?”

       <일단은 버텨 보거라.>

       

       다소 막연한 말이었지만 엔리는 아라의 말을 믿기로 했다.

       

       싸움이라는 부분에 한해 그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아라다.

       

       그녀가 장담을 할 때 그게 틀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3]

       [2]

       [1]

       [게임시작]

       

       알림음이 울리자마자 정령 궁수가 바람의 정령을 이용해 흙먼지를 피워 올렸다.

       

       시야가 가려지고 정령 궁수의 모습이 일순 감춰진다.

       

       정령 궁수가 사용하는 패턴 중 하나였다. 시작하자마자 시야를 빼앗고 이지선다를 거는 것이다.

       

       활을 쏘아 데미지를 입히거나 아니면 거리를 벌리던가.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법은 간단했다. 소리를 들으면 된다.

       

       활을 당기는 소리가 들린 순간 엔리가 옆을 굴렀다.

       

       뒤를 잇듯이 쏘아진 화살이 방금 전까지 엘 리가 있던 곳에 꽂혔다.

       

       흙먼지가 걷히고 정령 궁수의 얼굴이 보인다.

       

       첫 공격이 빗나갔음에도 그의 표정에 아쉬움은 새겨져 있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흐름을 잡았으니까.

       

       정령 궁수에게 있어서 최악의 상황은 처음에 거리가 좁혀져 상대를 떨치지 못하고 무력하게 패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거리는 벌어졌고, 공격의 주도권은 그가 쥐고 있다.

       

       지금 그는 사냥꾼이었으며 엔리는 사냥감이었으니.

       

       항상 치졸하다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상대를 견제하던 엔리는 이제 상대의 치졸함을 뚫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 이게 맞아? 정령 궁수 상대로 거리 내주면 지잖아.

       – 화령이 기다리라잖아. 생각이 있겠지.

       – 아니 화령이 대단해도 엔리가 대단한 게 아니잖아.

       – 엔리가 저걸 어떻게 뚫냐.

       

       정령 궁수는 특유의 견제력을 가진 탓에 공격력은 그리 높지 못했다.

       

       그 덕분에 궁수의 공격을 상대로 버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0초 가량의 대치가 지나갔을 무렵 아라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대충 알겠다 이제 시키는 대로 하거라>

       “넵.”

       <지금 조준하고 있는 저 화살은 그대의 왼쪽 허벅지를 향해 쏘아질 터. 피하며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거라.>

       

       아라가 시키는 대로 하자 엔리의 허벅지를 노리고 쏘아진 화살이 허공을 꿰뚫고 땅에 박혔다.

       

       <이제 앞으로 달리는 체를 하다 뒤로 물러나라.>

       

       앞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가 다시 물러서니 그녀의 앞에서 대지가 치솟았다.

       

       물러서지 않았다면 저 바위에 그대로 얻어맞았으리라.

       

       <지금쯤이면 바위 뒤에서 그대를 겨냥하고 있을 터다.>

       “그렇겠죠?”

       <상대만 쏘면 짜증나지 않으냐. 우리도 던져주자꾸나.>

       “…창을 던지라고요?”

       <그럼 네가 던질 게 무어가 있느냐.>

       

       엔리는 분명 아라를 믿었다. 그렇지만 정말 이래도 되는걸까라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었다.

       

       도박수에 실패하면 그대로 질 텐데? 이게 평범한 게임도 아니고 승급전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판인데 그래도 되는 걸까?

       

       “에라. 모르겠다!”

       

       잠시 고민을 하던 엔리는 이내 이런 생각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만약 이러다 지면 아라 씨 잘못이지 내 잘못은 아니잖아?

       

       그럼 아라 씨한테 할 말도 생기고 잘 됐네 뭐!

       

       엔리가 바위 뒤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정령 궁수가 화살을 쏘았지만 엔리는 그걸 왼팔로 받아내고 투창을 준비했다.

       

       그녀는 창을 던져보는 게 처음이었지만 보정시스템은 일순에 그녀를 전문가로 만들어줬다.

       

       설마 창을 던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다시 활시위를 당기던 정령 궁수의 동작이 잠시 굳었다.

       

       그리고 엔리가 창을 던진 순간 그는 다급하게 몸을 굴렀다.

       

       <자! 달려라! 상대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거리를 좁히는 게다!>

       “그리고 나서는요?!”

       <죽을 때까지 때려라! 개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정말 그걸로 되는 거에요?!”

       

       막무가내인 아라의 말에 엔리가 당혹스러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녀는 창을 던져버렸으니까.

       

       옆으로 굴렀던 정령 궁수가 다시 자세를 잡았을 때 엔리는 이미 그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어 정령 궁수가 눈동자를 굴리던 때에 엔리가 주먹을 쥐고 그걸 정령 궁수의 턱에다 꽂아버렸다.

       

       용사냥꾼의 초인적인 근력과 시스템의 보정이 합쳐진 주먹은 정령 궁수를 다시 바닥에 드러눕게 만들었다.

       

       <계속 달려들어라. 방어니 회피니 생각하지도 마라. 그냥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둘러라.>

       

       처음엔 정령 궁수도 여러 수단을 사용해 엔리를 떨쳐내려 했지만 광전사마냥 모든 피해를 감수하고 주먹질을 해대는 엔리 때문에 모든 수단이 가로 막혔다.

       

       활을 쏠 틈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정령에게 명령을 내릴 틈조차 주지 않으니 정령 궁수도 주먹을 들어야 했다.

       

       그렇게 개싸움이 시작됐다.

       

       – 아니 왜 정령 궁수랑 용사냥꾼이 주먹으로 싸우냐곸ㅋㅋㅋ

       – 아피스에서 개싸움을 볼 줄은 몰랐는뎈ㅋㅋㅋ

       – 팝콘 어딨냐.

       – 이게… 플다구간? 진짜로?

       – 브론즈도 이러진 않아.

       

       주먹질에 익숙치 못한 게 훤히 보이는 두 사람의 처참한 격투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트렸고.

       

       <무얼 하는 게냐. 턱이다. 턱을 노려라. 그렇지! 그리고 나서 복부 두 대를 날려서 신경을 돌리고 다시 얼굴을 노려라!>

       

       아라는 열띤 목소리로 훈수를 던지고 있었다.

       

       – 화령이 격투기 보는 아저씨마냥 훈수하고 있네.

       – X밥 싸움은 화령님도 못 참는구나.

       – 엔리는 복잡하게 말해도 못 알아 먹으니까. 저게 맞지.

       – 맞춤형 교육 ㄷㄷ.

       

       개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건 엔리였다.

       

       원거리 캐릭터답게 캐릭터 스펙이 낮은 정령궁수는 용사냥꾼을 이길 수 없었다.

       

       바라던 대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엔리였지만 그녀의 표정은 미묘했다.

       

       “왜 그러느냐. 이겼으니 기뻐해야지.”

       “이기긴 이겼지만요.”

       

       방금 전 그녀가 하고 온 것은 아피스에서의 화려한 대결도. UFC에서 벌어지는 전문적인 박투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길거리의 개싸움이었다.

       

       그 끝에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까놓고 말을 해서 시청자 중 누군가가 클립으로 따서 커뮤니티에 올릴 듯한 싸움이었다.

       

       “꼭 이런 식으로 이겼어야 했나요?”

       

       전략의 입안자는 아라다.

       

       이전에 한 사람을 완벽 파훼하는 걸 보여준 그녀라면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승리를 거둘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막싸움이 아니라 좀 더 그럴 듯한.

       

       “그게 가장 확실한 전략이었다.

       상대는 정석적인 방식만을 선호하는 이. 대개 그런 자들은 자신의 예상을 넘어서는 상황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지.

       그래서 정석을 깨부심으로써 상대가 악수를 두도록 유도했을 뿐이다.“

       

       확실히 용사냥꾼이 창을 내던지고 주먹으로 때리러 오는 장면은 상식의 범주를 한참 넘어선 장면이긴 하다.

       

       상대도 어찌 대처해야 할지 몰라 같이 주먹질을 하다 패배를 맞이하지 않았는가.

       

       아라의 말은 분명 옳았다.

       

       “무어냐. 설마 다른 길이 있는데 내가 굳이 그런 방식을 택했으리라 생각하느냐?”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정곡을 찌른 말에 엔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손을 내저으며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그건 사실이라 고백한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아라가 눈을 찌푸리자 엔리는 허둥지둥거리며 변명의 말을 내뱉었다.

       

       농담이었다. 자기가 너무 투정을 부린 것 같다. 도와준 건데 이래서 미안하다. 등등.

       

       점점 아래로 파고들어가는 엔리를 보던 아라는 어느 순간 인상을 풀고 웃음을 터트렸다.

       

       “눈치가 좋구나. 정확했다. 정석적인 싸움이 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일부러 개싸움을 유도했지.”

       

       자신이 확신범이라 고백한 후 쿡쿡대며 웃는 아라를 보고서 엔리가 굳어버렸다.

       

       그러니까 이 사람.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나한테 개싸움을 시켰다는 거야?

       

       당분간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내 이름을 추락시킬 장면을 고작 재밌을 것 같다는 이유로 만들었다고?!

       

       “화령 씨!”

       “아하하. 미안하다. 그렇지만 엔리. 나에게도 즐거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엔리가 눈으로 흘겨보아도 아라는 웃음을 더욱 키울 뿐 전혀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귀엽다고 생각을 하는지 눈가에 흐뭇함을 새길 뿐이었다.

       

       “어쨌든 이겼으니 된 것 아니냐.”

       “덕분에 제가 놀림거리가 되게 생겼는데요.”

       “방송인이라면 기뻐할 일이잖으냐.”

       

       어떤 식으로든 언급이 되는 게 방송인 입장에서 이득이 되는 일이라지만 아라 씨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요?!

       

       엔리는 뻔뻔스레 웃는 아라를 보며 복수를 다짐했다.

       

       아라 씨 잊고 계신 거 같지만 저 아직 아라 씨가 했던 외출 약속을 기억하고 있거든요?!

       

       두고 보세요. 제가 아라 씨한테 뭘 시키나.

       

       엔리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태연히 받아내던 아라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문자를 확인하는 듯 눈동자를 굴리던 그녀는 다시 고갤 내리더니 미안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하다만 시킨 밥이 왔다는구나. 이만 가보마.”

       “네에. 자알 가세요.”

       

       울분이 담긴 엔리의 어투에 쓴웃음을 짓던 아라는 떠나기 직전 엔리에게 조언을 건넸다.

       

       “마지막 경기를 할 때는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수단을 모두 내려 두거라. 그대는 사람들의 반응에 휩쓸리는 경향이 있으니.”

       “…네.”

       “그리고 가끔은 말이다. 스스로 맞다 생각하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해도 된다. 그대는 이전과 달리 많이 성장을 했으니까.”

       

       아라는 엔리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게임에서 떠나 버렸다.

       

       사람을 가지고 놀아놓고 마지막에 멋있는 척 하시기는. 그런다고 내가 이 원한을 잊을 것 같아요?

       

       덕분에 마지막 기회를 얻은 건 사실이니까 참작해줄 수는 있지만.

       

       혼자서 투덜거리던 엔리는 혼자서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와버렸네.

       

       게임시작을 누르고 나서 엔리는 눈을 감았다.

       

       다이아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를 정하는 기로에 서 있음에도 엔리의 마음에 긴장은 없었다.

       

       방금 전 아라가 와서 너무 많은 일을 벌였기 때문인 것 같았다.

       

       설마 이걸 의도하신 건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설마라고 생각했겠지만 아라는 달랐다.

       

       그녀라면 왠지 이 상황마저도 예상했을 것 같았다.

       

       내일 어차피 만날 테니까 물어나 볼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X밥 싸움 구경 하는 게 재밌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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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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