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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8

       

       

       

       

       “이 상황에서 재미라는 단어가 잘도 나오는구나.”

         

         

       이다혜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서은우가 있었다.

         

       ……재미.

         

       이다혜는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하게는 무대에 오름으로서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에 감사함과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예선은 관중이 오직 심사위원밖에 없었기에 그녀의 ‘재미겠다.’라는 말에는 모순이 생긴다.

         

       하지만, 지금의 이다혜가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야 내가 주인공이잖아. 그것도 무려 네가 만든 대본의.”

         

         

       사실 눈앞의 사람이 만든 대본을 처음 읽고 이다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너무나도 끌리는 배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욕심이라는 것이 생겼다.

         

       물론 처음에는 설소영이 그 역할을 가로채 갈까 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째서인지 흔쾌히 자신에게 그 역할을 양보했다.

         

       뭔가 엄청난 꿍꿍이라도 있다는 듯이…….

         

       허나, 그것은 지금 상황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그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에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과연 그가 어떤 사람을 떠올리며 김미소 역을 만들었는지를.

         

       이다혜는 어쩌면 그것이 자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강하게 들었고…….

         

         

       “김미소… 그냥 나랑 많이 닮은 것 같아서. 뭔가 처음부터 나를 위한 배역 같은 느낌이 계속 들던데 혹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아?”

         

         

       그렇기에 조금 용기를 내서 말해보기로 했다.

         

         

       “…….”

         

         

       허나, 서은우는 이다혜의 질문에 침묵했다.

         

       이건 서은우의 입장에서 정확하게 답변해주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사실 그조차도 은연중에 그것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참고로 지금 이 상황에선 침묵은 긍정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던 이다혜는 얕은 미소를 지었고, 무대에 서기 위해 그를 지나쳐 그저 앞으로 발을 뻗을 뿐이었다.

         

       굳이 대답해주지도 않아도 된다.

         

       다만…….

         

       그저 제대로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당신이 대본을 적으며 상상했던 그대로.

         

       나는 그저 밝게 빛나볼 생각이다.

         

       비록 그것은 정말 찰나의 순간이겠지만……

         

       당신의 머릿속에서만큼은 그 순간이 영원히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음…….

         

       근데 생각해보면 영원히는 조금 무서운 생각인가?

         

       이다혜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무대의 중앙으로 향했다.

         

         

         

       ***

         

         

         

       나는 이다혜의 말을 듣고 양심이 조금 찔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녀의 말대로 김미소와 이다혜는 닮은 점이 많다.

         

       성격부터 시작해, 주위에 밝은 에너지를 주고, 심지어 그녀의 꿈까지 가수이니 사실상 이다혜를 떠올리며 만들었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근데 나도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단순히 꿈꾸는 아이들이라는 연극을 구상하다 보니 자연스레 김미소라는 캐릭터가 떠올랐고, 어쩌다 보니 이다혜와 유사한 점이 많아졌다.

         

       뭐… 그렇다고 해서 김미소가 무조건 이다혜를 위한 배역은 또 아니었다.

         

       처음 배역을 정했을 때 얘기했던 것처럼 저 역할은 설소영이 맡았어도 다른 느낌으로 잘 살렸을 테니까.

         

       그렇기에 이다혜의 물음에 침묵했던 거고.

         

       어쨌든.

         

       잡설은 여기까지 하고, 지금은 그저 연극에 집중해야 할 때다.

         

       현재 무대에선 강태양과 문연우가 김미소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회상에 빠졌다.

         

       회상이란 과거에 경험했었던 일을 떠올리는 것.

         

       앞으로 이 회상은 마지막 씬 전까지 종종 사용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관객들이 회상에 들어선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장치가 바로 김미소의 등장이었다.

         

       김미소.

         

       그녀는 한없이 밝고 긍정적인 아이며 그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이름 그대로 누구보다 환한 ‘미소’였다.

         

       보는 이를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그녀 특유의 미소.

         

       그것을 떠올리며 강태양이 말한다.

         

         

       ─아마 평생 잊혀지지 않겠지. 딱히 잊을 생각도 없고.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고?

         

         

       문연우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강태양은 쓴 미소를 지었다.

         

       강태양은 굳이 부정할 이유가 없었다.

         

       어느 정도 자신이 김미소에게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니까.

         

       강태양과 문연우, 김미소는 소꿉친구 사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누구보다 김미소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

         

       그저 순수한 의도로 친구의 고민을 같이 해결해주거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도와주거나, 때로는 친구의 꿈을 응원해주기도 하는 조금 독특한 사람.

         

       하지만 그 점이 김미소의 매력이며 동시에 그녀의 주위에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유였다.

         

       한편으론 강태양 역시 그런 김미소에게 도움을 받았다.

         

       강태양이 다시 꿈을 되찾는 데 큰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그녀였기에,

         

       야구 선수.

         

       그것도 투수로서 성공하는 것이 강태양의 꿈이었다.

         

       하지만 잠시 그 꿈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는 대회 도중 오른쪽 어깨의 큰 부상을 입어 수술을 받게 되었고, 의사로부터 더 이상 오른손으로 공을 던지지 말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강태양에게 있어서 이것은 사실상 사형선고에 가까웠고, 한순간에 꿈을 잃은 강태양은 잠시 방황을 하게 되었다.

         

         

       ─그럼 왼손으로 던지면 되는 거 아니야?

         

         

       그리고 그런 그를 붙잡아 준 것이 바로 김미소였다.

         

         

       ─평생 잘 사용하지도 않았던 손으로 어떻게 그게 되겠냐. 조정해야 할 부분도 많고…….

       ─결론은 할 수 있다는 거잖아.

       ─후… 김미소, 나 지금 고1이야. 지금 다시 시작하기 너무 늦은 건 너도 알잖아.

       ─원래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법이야. 그리고 태양아 너 예전도, 지금도 야구 여전히 좋아하잖아.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네.

         

         

       김미소와 시선을 회피하며 시치미를 떼는 강태양.

         

       하지만 김미소는 분명하게 보았다.

         

       운동을 그만뒀다고 선언했으면서 매일 아침 러닝을 뛰고, 주말에는 공이랑 글러브를 가지고 공터에서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강태양의 절실한 모습을.

         

       강태양은 부상을 당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패턴을 계속 반복해왔다.

         

       하지만 빈 공터에서 홀로, 왼손으로 어설프게 공을 던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오직 절망밖에 없었다.

         

         

       ─그때 미소가 너한테 뭐라고 했더라…….

       ─만족할만한 공을 던질 때까지 자기가 계속 지켜봐 준다고 했지.

         

         

       문연우의 물음에 답하며 강태양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때의 강태양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김미소를 억지로 무시하고 밀어냈다.

         

       김미소는 자기가 한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다.

         

       진짜 자신이 만족할만한 공을 던질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옆에서 지켜봐 주겠지.

         

       그저 순수하게 친구의 꿈을 위해서.

         

       거기에는 어떠한 흑심도 의도도 없다.

         

       강태양은 오히려 그 점이 무서웠다.

         

       만약 자신이 만족할만한 공을 계속 던지지 못한다면, 그녀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희망 없는 투구를 계속 지켜봐야 하니까.

         

       물론 아무리 설명하고 밀어내봤자, 김미소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결국 3일 만에 녀석의 의도에 제대로 말려들었었지.

         

         

       역시나 김미소는 자기가 한 말을 지켰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상관없이 강태양의 곁을 함께 했으며, 그것은 꽤나 오래 이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 익숙하지 않은 손으로 제대로 된 투구를 하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다만, 공을 던지면서 강태양은 조금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혼자서 던질 때는 금방 마음이 꺾였는데 지금은 조금 달랐다.

         

       누군가가 계속 지켜봐 주고 응원해주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는 계속 공을 던질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1년 중 하나의 분기가 모두 지나갔을 때 강태양은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공을 왼손으로 처음 던졌다.

         

       강태양은 여전히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김미소와 시선을 마주했다.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는 김미소의 미소…….

         

       아마 강태양은 그 순간의 빛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빛을 본 학생은 강태양뿐만이 아니었다.

         

       극 중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강태양과 마찬가지로 그녀와 인연이 있었다.

         

       하지만 극 중의 인물들이 회상을 끝마치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 순간 무대에는 오직 공허함이 맴돈다.

         

       그것을 느끼는 것은 연기자들뿐만이 아니라 관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꿈꾸는 아이들이라는 연극은 회상 때의 분위기가 상당히 밝은 편이다.

         

       아마 주인공인 김미소가 친구들을 위해 하는 행동이나 대사, 그녀 자체가 주는 밝은 에너지 덕분이겠지.

         

       그렇기에 회상이 끝나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 그녀의 빈자리는 더욱더 크게 느껴진다.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그녀의 빈자리는 아마 계속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그녀를 대신해 그 공허함을 채워줄 만한 사람도 없고.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왜 회상 씬에만 김미소가 등장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꿈꾸는 아이들이 과거의 회상과 현재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 이것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김미소라는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까.

         

       불운하게도 모두에게 환한 빛이 되어주었던 소녀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꿈꾸는 아이들은 절대 잊기 힘든 소중한 친구의 죽음. 즉, 청소년이라는 시기에 갑작스럽고, 조금 무거운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루는 학생들의 이야기다.

         

       남겨진 이들은 그녀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슬픔에 빠진다. 허나, 그들은 알고 있다.

         

       김미소, 그녀라면 친구들이 슬픔에 계속 빠져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나 같은 것 따위는 얼른 잊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을.

         

       그렇게 모든 사연이 밝혀지고, 연극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미소, 오랜만에 보고 싶다. 그지?

         

         

       강태양은 문연우의 말에 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렇게 말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꿈속에서 그 아이를 본 것 같아.

       ─……혹시 꿈속에서 미소가 뭘 하고 있었는데?

       ─노래.

         

         

       가수가 꿈이었던 김미소의 노래.

         

       강태양은 무언가 만족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꿈에서라도 그녀의 환한 미소를 보았기에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도?

         

         

       하지만 그 꿈을 꾼 것은 강태양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연우도 책상에 엎드려 있던 다른 학생들도, 강태양과 마찬가지로 김미소가 자신들을 향해 노래를 들려주는 꿈을 꾸었다.

         

       그들은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꿈을 꿨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 같이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마지막까지 그 아이 다운 특별한 작별 인사였다.

         

       그때 거대한 커튼이 무대 전체를 가리며 한여진이 작곡한 첫 번째 곡의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이것은 죽은 그녀가 자주 흥얼거리던, 언젠가는 가수라는 꿈을 이루어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노래.

         

       장면 전환을 위해 무대 전체를 가리고 있던 거대한 커튼이 서서히 걷힌다.

         

       그리고 무대의 중앙에 어째서인지 이다혜, 김미소가 눈을 감은 상태로 홀로 서 있었다.

         

       ……이것은 회상이 아니다.

         

       꿈.

         

       김미소를 보았다고 말했던 친구들의 꿈이었다.

         

       이윽고, 그녀의 입에서 감미로운 노래 가사가 흘러나왔고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내가 한여진에게 이 곡을 제작할 당시에 요구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상처받은 사람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듯한 그런 따뜻한 노래.

         

       때문에 궁금했다.

         

       지금 이 노래를 듣고 있는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어떨지를.

         

       만약 본선에서 이 노래를 관객들이 듣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나는 오늘 우리 동아리가 펼친 연극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연극을 저기 앉아있는 심사위원들에게만 선보이는 것이 조금 아깝다고.

         

       본선……

         

       가능하다면 꼭 올라갔으면 좋겠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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