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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9

       

         

         

       관건은 폭풍처럼 몰아치는 것이다.

         

       적이 대응할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

         

       특히 상대의 전력이 월등하다면, 전면전이 아니라 철저하게 기습전으로 몰고가지 않는 한 승산이 없다.

         

       베르너 그라임, 아니 루터스 에단은 늦은 밤부터 안보전략국 인원들을 불러모았다.

         

       “쌀쌀한 밤이다, 제군들.”

         

       후, 숨을 내쉴때마다 새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난데없이 집합당한 안전국 인원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반쯤 감긴 눈으로 상황파악을 하는 이도 있었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마냥 불안한 눈빛으로 국장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작전기획실장 루돌프 뢰쉬만 중령을 포함한 안전국 내의 ‘총통파’였다.

         

       ‘설마 루터스 이 자식…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여단급 부대로 그 위상이 격상되며 제국군 내의 뛰어난 장교들을 포함한 인원들이 확충되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정보부대였다.

         

       실제로 첩보작전을 수행하는 인원과 사실상 국장의 호위대나 다름없는 ‘경비소대’를 포함하더라도 채 500명이 안 되었다.

         

       규모상으로는 2개 대대에 불과한 것이다.

         

       이 병력으로 도대체 반란을 어떻게 일으킨다는 것인가?

         

       10배에 달하는 5천명으로도 턱없이 부족한 것이 반란이다.

         

       거기다가 안전국의 본부인 포비든 레이크와는 수도 호엔바렌까지는 어림잡아도 250km 이상이 떨어져 있는데, 그 정도라면 이미 수도 근처에 포진한 병력들이 탄탄한 방어선을 구축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상식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

         

       그래서 루돌프는 상부에 별다른 보고를 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총통 파벌 내에서도 피의 숙청이 몰아치고 있는 판국에, 일개 중령이 멋대로 입을 놀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가장 큰 실책이었다.

         

       “우리 안보전략국은 본래 국내외의 모든 위협에서부터 제국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었다. 전쟁 동안 완전히 부패해버린 기존의 정보기관들을 대체하기 위함이었지.”

         

       국장이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저 수도를 보아라! 이것이 우리가 진정 바랬던 종전인가? 제국은 지옥같은 전장에서 되돌아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이들을, 의미도 없는 전쟁에 다시금 몰아세우려 하고 있다!”

         

       정보기관이기에 더 잘 알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총통이 타국과의 전쟁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직접 전달한 기관이 바로 안보전략국이었다.

         

       전략의 귀재가 수장으로 있는 안전국이라면, 필시 삼국을 상대로도 능히 이길 수 있는 전략을 만들어낼 것이 분명하다면서.

         

       당연하게도.

         

       그 업무를 처리하는 입장인 장본인들이,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제국군의 그 누구보다도 제국이 일으킬 ‘다음 전쟁’에 대해 자세하고 알고 있는 이들이다.

         

       A부터 Z까지.

       개전에서부터 종전까지.

         

       병력의 동원은 어떻게 할 것이고, 어떤 전선을 열 것이며, 적국의 전력은 어떻게 되고, 그들과 맞붙었을 때 아군에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것인지.

         

       그로부터 탈환할 수 있는 영토의 넓이는 얼마나 되며, 현지에서의 아군 보급 소요는 어떻게 될 것이고, 아군의 침략으로 얼마만큼의 타국 민간인이 살해당할 것인지.

         

       결코 유쾌하지 않은 정보들을 수집한 뒤, 보고서를 작성해 올리는 것이 그들의 주된 업무였으니까.

         

       ‘좋지 않다.’

         

       작전기획실장은 입안이 바짝 말라가는 기분이었다.

         

       국장의 목소리에는 짙은 확신과, 강한 에너지가 깃들어 있었다.

         

       한밤중의 싸늘한 공기를 뚫어버리는 묵직한 음성.

         

       루돌프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전장의 한복판에 서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피가 들끓어 오르는 것이다.

         

       설령 그가 국장과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똑바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저도 모르게 감화되어 버린다.

         

       그것이야말로 마흔 번의 죽음을 경험한 끝에 마침내 불가능을 가능케 만든 전설적인 사령관의 힘.

         

       루돌프는 전쟁영웅 루터스 에단이 베르너 그라임이라는 거죽을 찢고 나타나는 것을 똑똑히 목격하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해도 거의 죽지 못해 살아가는 모습이었던 국장이다.

         

       어째서 철저하고 냉혹한 미하일 비스마르크 총통이 베르너 그라임ㅡ 전쟁영웅 루터스 에단에 대한 경계를 늦추었는가.

         

       그것은 루터스 에단이 이전의 총기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무기력해보이는 게 지금의 안전국장이다. 총통 각하께서도 뒤에서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몰라도, 크게 위협은 되지 않을 게 분명하다 판단하셨지.

         

       루돌프 뢰쉬만은 언젠가 총통 파벌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신예인 라인하르트 힘러 준장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도 너무 리스크가 크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때가서 처리해도 무관해. 혐의야 아무거나 엮을 수 있지. 다른 놈들보다도 훨씬 쉬워. 그 샬롯 에버그린의 옛 상관이 아닌가.

         

       -제까짓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야? 이미 위협이 될만한 파벌들은 진작에 정리하신 이후거든.

         

       -그리고 지금은 근본도 없는 주제에, 제 잘난 듯이 으쓰대는 최고사령부의 암캐년을 처리하는 게 먼저다.

         

       물론 실제로 만난 루터스 에단은 들었던 것처럼 완전히 무력하지는 않았다.

         

       대놓고 총통의 감시역으로 들어온 자신의 간섭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한편, 그레이브야드에 대한 이야기를 들먹일 때엔 정말 죽일 듯한 분위기를 풍기곤 했으니까.

         

       하지만 라인하르트 준장의 말대로 큰 위협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막아야만 했다.

       당장!

         

       루돌프가 차고 있었던 권총을 뽑아들려 하던 그때였다.

         

       “움직이지 마시죠.”

         

       서슬퍼런 칼날이 그의 목덜미에 닿았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어둠속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가 번뜩이고 있었다.

         

       “카린… 메이븐 대위! 이게 무슨 짓이야!”

         

       “국장님께서 연설중이십니다. 허가되지 않은 무기 소지는 경비소대장으로서 조치하겠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순식간에 루돌프의 무장을 해제해버렸다.

         

       깔끔한 칼날이 허리춤에 달려있던 권총집을 잘라내자, 권총이 힘없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사신 카린 메이븐.

         

       루돌프 뢰쉬만이 국장만 보면 헤실거리며 늘어지던 여자가 과거 그런 별명으로도 불리웠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자신과 함께 파벌을 형성했던 이들도 다 같은 상태였다.

         

       “베르너 준장!”

         

       결국 루돌프가 고함을 내질렀다.

         

       “이건 총통 각하, 나아가 제국에 대한 명백한 반역행위요! 당장 멈추지 않으면 지금 바로 상부에 연락을….”

         

       “루돌프 뢰쉬만, 내가 진정으로 네 놈의 의도를 몰랐으리라 생각하나?”

         

       “…큭!!”

         

       “수도 호엔바렌과 연결되는 모든 회선은 절단되었다. 전파도 통하지 않아.”

         

       오판하고 말았다.

         

       이빨빠진 호랑이라 한들, 그 육중한 덩치와 날카로운 발톱이 남아있는 법이건만.

         

       안보전략국 국장 베르너 그라임은 자신을 옥죄던 목줄이 마침내 헐거워지기까지 느긋하게 기다렸던 것이다.

         

       외통수였다.

       적어도 루돌프에게는.

         

       “진심이냐! 고작 이 병력으로 뭘 하겠단 말이야!?! 너희들, 너희들도 저 말에 속지 마라!! 개죽음일 뿐이야!!”

         

       “그렇다면 뭐가 달라집니까?”

         

       국장의 뒤로 다른 장교들이 일제히 도열했다.

         

       애시당초 총통의 낙하산인 인물들이었다.

         

       1년이 조금 넘은 시간이지만, 오랜 시간 동고동락한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굴러들어온 돌에 불과한 입장인 것이다.

         

       “여기서 물러난다면, 다음 차례는 우리다. 총통에게 사냥개를 처분하듯 처분당하리란 사실을 뻔히 알고 있잖나, 루돌프.”

         

       “게다가 처음부터 안전국은 잘못되었을 때를 대비한 허수아비가 아니었습니까. 안보전략은 안전국에 일임했다. 전쟁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며, 자신은 그저 전쟁영웅 루터스 에단의 손아귀에 놀아났을 뿐이라고… 그렇게 또 국민들을 호도하려 했겠지요.”

         

       정보과장 단테 베이가 소령이 담담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 말에 루돌프는 분한 듯 제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말단 병력들까지 제 편으로 만들었을 줄이야.

         

       쓸데없는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혀 제 편을 만들지 않았던 그의 실책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총통의 낙하산이 내려왔다 한들, 안전국의 중심이 되는 이들은 군에게서 한번 상처를 받은 이들.

         

       조국에 대한 충성심?

       앳저녁에 가져다가 버렸다.

         

       전쟁도 지긋지긋하다.

         

       이제야 가까스로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끔찍한 곳으로 돌아갈 바엔 자살을 택하리라.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오롯이 자신의 선택으로 말이다.

         

       키이이잉!! 쿵!

         

       곧 사열대 뒤편, 지하 헬기 격납고의 문이 열리며 병력 수송용 대형 헬기 다섯 대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안보전략국의 전략자산에는 포함되어있지 않은 모델에, 루돌프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대형 수송용 헬기?! 저건 어떻게…!!”

         

       “사령관 할 때는 수소폭탄도 빼돌렸었거든.”

         

       루터스가 씩 웃음을 지어보였다.

         

       퇴역 예정으로 처리장으로 옮겨진 탠텀로터 헬기 다섯 대 정도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의사가 되어, 병들어버린 국가의 수술을 긴급 집도한다.”

         

       루터스 에단이 뒷짐을 지며 안전국의 일원들을 바라보았다.

         

       “목표는 아슈블랑카. 전원 1시간 이내로 무장을 준비하고 이 자리에 집결하라.”

         

       그가 제 손목에 채워진 타이머를 작동시켰다.

         

       ‘수도 장악까지 남은 시각 : 11시 59분’

         

       반란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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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ar Hero With No Regrets

A War Hero With No Regrets

후회 안 하는 전쟁영웅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victory earned after forty regressions.

It was now my turn to leave their side.

Not by anyone else’s will, but by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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