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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9

    며칠이 지난다.

     

     

    우리는 스탁핀을 뒤로했다.

     

    온 용병단이 모여, 마치 대규모 원정을 나가는 것처럼 회담 장소로 향했다.

     

    시간이 왔다.

     

     

    “…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니 이 용병회담이 귀찮은 것이다.

     

    더 큰 싸움을 막기 위해서 진행되는 과정이라는 것은 안다만, 얕보이지 않기 위해 온 용병단이 움직여야만 했다.

     

    힘이 전부인 용병단들 앞에서 힘으로 꿀릴 수 없으니 말이다.

     

     

    거기다 더해, 홍염단은 다른 거대 용병단들보다 단원수가 적었다.

     

    대원 한 명을 키우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어쩔수가 없었다.

     

    단원수가 적은만큼, 한 명 한 명이 귀중해 모두가 회담 장소로 향해야만 했다. 예외는 없었다.

     

     

    나는 느슨히 고삐를 쥐고 뒤를 바라보았다.

     

    네르와 아르윈이 나를 따라 말을 몰고 있었다.

     

     

    “준비 됐어?”

     

    내가 물었다.

     

    아르윈과 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

     

    이번 회담이 더욱 걱정되는 이유로는 이 둘이 있었을 거다.

     

    아마, 이번 회담에서 가장 중심이 될 내 아내들이었다.

     

    아내들로 하여금 홍염단은 귀족을 등에 업었으니 말이다.

     

     

    당시에는 미련해 보였던 선택이 지금은 커다란 차이를 만들고 있었다.

     

    너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교환이 아니었나 싶었던 과거가 이제는 우리의 힘이 되어주고 있다.

     

     

    다른 귀족들조차 평민만으로 이루어진 우리 용병단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때의 교환으로 홍염단은 기세와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걸 느끼기에 다른 용병단들이 우리를 더 견제할지도 모른다.

     

    눌리지 않기 위해 억지로 도발하고, 모욕을 던질지도 몰랐다.

     

     

    나도 어쩌면 수많은 기싸움과 싸움을 앞둔걸지도.

     

    이 모든 변화를 불러온 귀족들은 나의 아내들이었으니.

     

     

    …아니, 분명히 싸움을 앞두고 있었다.

     

    우리 홍염단의 위세를 꺾으려면 귀족들의 남편인 나를 꺾는게 가장 효과적이니 말이다.

     

     

    그렇다하여 딱히 그런 싸움이 걱정되는건 아니었다.

     

    외려, 그 모욕에 아파할 아내들이 걱정된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아내들에게 말했다.

     

    “…말했지만, 거칠어.”

     

     

    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이 듣게 되는 말들이 있을거야. 내가 처리하긴 할건데, 들리는 말에 상처받지마.”

     

    “네.”

     

    “알았어, 베르그.”

     

     

    나는 또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안다고 답하긴 했는데, 과연 알까?

     

     

    “….”

     

     

    하지만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것도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을 몰았다.

     

     

     

    ****

     

     

    우리는 그렇게 하루를 꼬박 이동했다.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자, 홍염단은 야영지를 차렸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우두머리 조가 아닌 단원 대여섯 명이 내게 접근했다.

     

    “부단장님, 불편한건 없으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단원들은 내 주변에 하나둘 모여들어 말을 걸기 시작했다.

     

     

    “…확실히 아담 단장님이 대단하시네요.”

     

    그 중 한명이 운을 띄웠다.

     

     

    “우리는 따르기만 했는데, 지금 봐요. 귀족을 등에 업은 용병단이 됐잖아요. 회담을 나가는데 주인공 같은 느낌도 들고.”

     

     

    나와 마찬가지로 나머지 대원들은 그에 토를 달지 않았다.

     

    확실히 아담 형의 능력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귀족과 엮여야 편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담 형과 같은 선택을 내릴 수 있는건, 오로지 한 줌일 뿐일거다.

     

    나조차도 처음에는 형의 계획을 반대했었으니.

     

     

    “주인공은 네르님과 아르윈님이지, 우리겠냐.”

     

    다른 단원이 뒤늦게 끼어들며 말했다.

     

    “…역시 귀족은 달라도 다른가봐. 가문의 힘일까.”

     

     

     

    그들이 그렇게 대화하는 사이, 멀리서 서 있는 아르윈과 눈이 맞았다.

     

     

    언젠가부터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던 그녀가, 눈이 맞자 작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 미소를 돌려준 아르윈이 이후 몸짓으로 무언가를 표현했다.

     

    왼손을 쭉 뻗고 오른손으로는 무언가를 당긴다.

     

     

    “…아.”

     

    활시위를 당기는 시늉을 내고 있었다.

     

     

    혹시 활 연습을 하러 가자는 걸까?

     

    나는 나를 가리킨 뒤, 아르윈을 가르켰다.

     

    그곳으로 향할까하는 손짓을 한다.

     

     

    아르윈은 그 손짓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제안에 나는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난 가볼게.”

     

     

    그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단원들이 한순간 조용해지는게 들린다.

     

    그 조용한 틈 사이로 누군가가 속삭였다.

     

     

     

    ‘…아. 저기 아르윈님 계시구나.’

     

     

    ****

     

     

    네르는 멀리서 아르윈이 베르그와 함께 활을 들고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연스러워진, 또 찜찜한 아르윈의 행동.

     

     

    요새 둘이 함께할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체불명의 액체를 찾고난 이후부터 이런 경향이 심해졌다.

     

     

    아르윈은 아직까지도 액체의 행방에 대해 물어오지 않았다.

     

    네르는 그에 대해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었다.

     

     

    하나는 그 액체가 아무것도 아닐 경우.

     

     

    그래서 사라졌어도 딱히 알아차리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 아직도 사라졌다는 걸 모르는 경우.

     

    상자 구석에 박혀 숨겨져 있었으니 모를 법도 했다.

     

     

    “…”

     

    정말 그게 뭐였을까.

     

    그 정체만 알더라도 이런 찜찜한 마음이 나아질 듯 했다.

     

     

     

    네르가 한숨을 내쉬는 사이,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바란의 모습이 보였다.

     

     

    그도 네르의 존재를 알아차리곤 고개를 숙이며 다가왔다.

     

    “네르님. 불편한 건 없으시죠?”

     

    “네. 다 괜찮아요.”

     

     

    그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반지도 다시 차시고. 보기 좋습니다.”

     

    “…아.”

     

    네르는 바란의 말에 제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날 이후로 단 한번도 벗은적이 없었다.

     

    네르는 반지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네.”

     

    바란도 끄덕이다 자리를 떠나려했다.

     

    “그럼 저는 이만-”

     

    “아, 잠시만요.”

     

    하지만 네르는 궁금한게 생겨나고 있었다.

     

    하나의 걱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곳으로 말을 몰고 오며 그녀도 보고 들은게 있었다.

     

    수많은 대원들 사이에서 싸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몇 명을 때려 눕힐거라느니, 처음으로 눈 마주친놈을 밟겠다느니…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폭력이 피어올랐다.

     

     

    베르그가 분명 회담은 거칠다고 했었다.

     

    그것과 관련된 걸까?

     

    네르가 물었다.

     

     

    “…그 장소가 그렇게 위험해요?”

     

    바란은 네르의 질문을 곧잘 이해한 듯 했다.

     

    “회담 말씀하시는거면…네. 좀 위험하네요. 날고 기는 용병들이 모이는 자리니까요.”

     

    그러더니 바란이 쓰읍하고 숨을 들이키며 말했다.

     

    “…네르님이 느끼시기에는 급이 떨어진다고 생각할지도요. 그러니 그런 용병들이 뭐라 말해도, 상처 받으시지 않길 바랄게요.”

     

     

    그도 베르그와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

     

    네르는 그 조언들에 따라 마음을 단단히 먹어보려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아직도 꼬리의 색 가지고 놀리면 혹은 패륜아라고 놀리면 몸이 자동으로 위축되고 말린다.

     

    그녀의 콤플렉스라 쉽게 고쳐지질 않았다.

     

     

    …물론 베르그에게 꼬리에 대한 칭찬을 들은 이후로 좀 나아지는 경향이 있긴 했다.

     

    누가 뭐라 해도 베르그가 칭찬해줬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네르가 진정으로 걱정하는건 그런 말들이 아니었다.

     

     

    “싸움도 많이 일어나나요?”

     

    네르가 걱정스레 물었다.

     

    바란이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눈만 마주쳐도 싸우죠.”

     

     

    그 대답에, 네르는 마음이 초조하게 뛰고 있음을 느꼈다.

     

    “그, 그럼 베르그도 싸우나요?”

     

    “…”

     

    살짝의 희망을 담아, 바란이 대답하기도 전에 말했다.

     

    “…그, 그래도 부단장이니까 안싸우죠? 설마 부단장까지 싸우려고요…”

     

     

    바란은 고개를 갸웃였다.

     

    “…잘 모르겠네요.”

     

    “네?”

     

    바란이 놀라는 네르의 목소리에 급히 말한다.

     

    “걱정은 하지 마세요. 평소에는 싸우지 않으셨어요. 워낙에 조용히 생활하시기도 했고, 굳이 싸움을 거는 성격도 아니었으니까요. 간혹 가벼운 시비가 걸려와도 일일이 받아주는걸 귀찮아하셨고요.”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 같기도 했다.

     

    네르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요.”

     

     

    바란이 그런 네르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부단장님을 걱정하시는 거에요?”

     

    “…”

     

    “다른 사람은 몰라도 부단장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왜요?”

     

    “잘 싸우니까요.”

     

    “…그렇다고 다치지 않는건 아니잖아요.”

     

    “…”

     

    네르는 이어지는 침묵에, 스스로가 한 말을 곱씹었다.

     

    괜히 얼굴이 붉어지고 부끄러워진다.

     

     

    “…구, 궁금한건 다 물어봤어요. 감사해요.”

     

    바란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쉬고 계세요.”

     

     

     

    ****

     

     

     

    며칠이 또 흘러, 홍염단은 회담 장소에 도착했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수많은 인파에 네르의 심장도 떨리고 있었다.

     

     

    허허벌판에 모인 수많은 용병들.

     

    네르가 듣기로는 홍염단까지 포함해 4개의 거대한 용병단이 모여들었다고 했다.

     

     

    저 안에 있을 수 많은 용병들을 생각할때마다 두려웠다.

     

    베르그와 혼인하기 전에도 이런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거다.

     

     

    네르는 심호흡을 했다.

     

    “지켜줄테니까, 마음만 단단히 먹어.”

     

    그러는 동안 옆에서 베르그가 말했다.

     

    네르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보자 마음이 한순간 든든해지고 편해졌다.

     

    네르는 이렇게 손쉽게도 걱정스러운 마음이 녹아가는 본인이 당황스러웠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두려운 공간에 발을 들이며, 제 편이 있는 듯한 느낌.

     

    그의 말 하나에 온전히 자신을 맡길수 있을 것 같았다.

     

    저 속에서 모두가 자신을 적대하더라도 베르그만 있다면 안심일 것 같았다.

     

     

    “…응.”

     

    그러니 그 말에 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그?”

     

    “말해.”

     

    “너도 싸우게 될 것 같아?”

     

    그 질문에 아르윈도 눈을 흘겼다.

     

     

    베르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을 피했다.

     

     

    네르는 표정을 찌푸리다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안 싸우면 안돼?”

     

    “뭐?”

     

    “…”

     

     

    그녀도 왜 이런 부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싸워서 다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혹여라도 잘못되면 어떻게한단 말인가.

     

     

    네르는 이 순간만큼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베르그를 곧장 올려다보며 심지를 굳혔다.

     

     

    그는 그런 그녀의 눈을 바라보다…천천히 한숨을 흘렸다.

     

    그러더니 말한다.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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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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