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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9

       예상과는 달리 프레이의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는 일은 없다.

         

       사람들은 대개 병약한 사람이 그 병으로 세상을 떠나리라 생각한다. <다키스트 아카데미아>에서는 그런 플레이어의 심리를 이용하여 허를 찌른다고 한다.

         

       “콜록, 콜록.”

         

       빙의자가 알려준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프레이 어머니의 상태를 지켜봤다. 의사가 아니라서 상세한 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거동이 크게 불편하신 정도는 아니었다.

         

       [증세를 보면 미량의 방사선 피폭을 받으셨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병이 아니라 피폭 후유증이라면 그럴 법도 하겠지. 이 지역은 다른 곳보다 방사선 수치가 높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뭐.”

         

       상황 자체는 나쁘지 않다.

         

       “엄마가 많이 아파서 걱정이야.”

       “약 같은 건 안 지어 드셔?”

       “인간들과 교역하면서 좋은 약품도 몇 개 가져오긴 했어. 근데 아직 부족해. 그래서 신령님께 여쭤봤거든?”

         

       신령님.

         

       요르문간드의 비호를 받는 요효족이 그녀를 부르는 명칭이다.

         

       “동쪽 산 깊숙한 곳에 있는 ‘천 년 묵은 층층나무 열매’를 드시면 이런 병쯤은 낫는대!”

         

       때마침 프레이가 힌트를 주는 것처럼 이런 대사를 내뱉는다.

         

       버멜과 밀회를 갖지 않았을 시절의 나였더라면 분명 프레이의 말을 따라 그 나무열매를 찾으러 나갔겠지.

         

       이건 함정이다.

         

       내가 그 ‘천 년 묵은 층층나무 열매’를 찾으러 가는 즉시 남서쪽에서 커다란 태풍이 발생한다.

         

       그냥 태풍도 아니고, 나무 수백 그루는 쉽게 뽑아버리는 초대형 태풍이다.

         

       심지어 나타나는 개수는 한 개도 아니고 무려 일곱 개.

         

       불안정한 기단의 영향을 받아 급속도로 성장한 태풍은 빠르게 북상한다. 그 나무열매를 찾아 돌아올 때쯤엔 모든 게 늦어있을 것이다.

         

       태풍 무리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도개교가 있는 하천이 범람하여 저지대가 아예 잠겨버린다.

         

       다행히 상당수의 요호족은 이를 눈치채고 촌락을 포기한다. 어떻게든 안전지대로 피신해서 살아남는다.

         

       문제는 그러지 못한 소수였다. 병약한 프레이 어머니의 몸으로는 미리 지정된 장소에 도달하지 않는 한 일이 닥쳤을 때 대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에테르, 기왕 온 김에 나 좀 도와줘! 신령님이 말씀하신 걸 같이 찾으러 가지 않을래?”

         

       이런 사실을 알고 있던 나는 프레이의 부탁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얼마든지 찾으러 나갈 수 있잖아. 지금은 태풍에 대비하는 게 우선이야.”

       “태풍? 아, 그렇지!”

         

       프레이가 손뼉을 짝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웬만한 건 다 점검했는걸! 게다가 여긴 강에서 멀어. 물에 잠길 일은 없을 거야!”

       “그거 안전불감증이야.”

       “에이, 그래도! 너무 걱정이 심하다니까!”

       “밖이나 보고 얘기해.”

         

       창밖에선 스콜이 내리고 있었다. 이곳에 오고 난 뒤로 몇 번인가 본 적 있는 급성 호우였다.

         

       “생각보다 비가 자주 내리긴 하네.”

       “대류가 불안정하단 소리야. 이번에 오는 태풍은 생각보다 위험한 녀석들일 수 있어.”

       “정말? 그런 것도 알아?”

         

       자세히는 모른다. 난 대기과학 전공이 아니니까.

         

       태풍의 방향도, 예상 침수 규모도 확인할 수 없다. 지금 내 입에서 나오는 지식의 9할은 빙의자에게 의존하고 있다.

         

       “적어도 예방해서 나쁠 건 없어.”

       “그, 그렇지.”

         

       목소리를 한층 내리까는 것으로 꼬맹이의 설득을 마무리했다. 여기엔 금안족 버프도 있었다.

         

       요호족을 수호하는 건 요르문간드다. 요르문간드는 금색 눈동자를 지녔다. 그랬기에 프레이를 비롯한 요호들은 금안족을 요르문간드의 친척뻘로 생각한다. 입학식에서 프레이가 다짜고짜 나에게 말을 걸었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이럴 땐 참 편리한 몸이다.

         

       “어머니, 태풍이 오기 전까지 잠깐 다른 곳에서 몸을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같은 말을 어머니에게도 전했다. 다행히 프레이보다는 설득이 어렵지 않았다.

         

       실제로 하루가 지나자 주변 기류가 악화되었다. 한때는 동남풍이 불었다가, 몇 분이 지나고 나면 깃발이 북쪽으로 확 꺾이기도 했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려고 할 때 동물이 인간보다 일찍 알아차린다. 요호족은 인간에 버금가는 지능과 여우의 약삭빠른 감각을 모두 지니고 있는 종족이다.

         

       “슬슬 올해 태풍 대책을 논의할 때가 되었구만.”

         

       당연히 파스트렌드 마을에서도 촌장을 중심으로 사전대책 준비가 이루어졌다.

         

       허름한 천막에서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는 여우가 스무 명.

         

       그리고 금안족이 하나였다.

         

       “아니, 다른 종족이 여기서 뭘 하는 거요?”

       “침수피해는 이곳에 머무르는 모든 이들의 문제니까요.”

         

       몇몇 요호족의 물음을 간단하게 받아쳐냈다. 인간이나 엘프가 같은 소리를 했으면 헛소리 말고 썩 나가라는 소리를 들었겠지.

         

       잠시간의 침묵이 감돌았다. 곧 파스트렌드 촌장이 입을 열었다.

         

       “흐음, 큼…. 태풍 대책은 저번과 같네. 강이 범람할 만한 곳에 재난용 제방을 설치하고 식량을 보존하는 것 말이네…. 필요하다면 마을을 버리고 안전한 장소로 떠날 것도 필요할 게야.”

         

       살리에르 영지에서 이쪽으로 건너올 때 진흙과 돌로 만든 천연 방파제를 여럿 봤었다. 지금보다 더 큰 비가 내리기 전에 그걸 보수하자는 이야기였다.

         

       나쁘진 않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나는 손을 들었다.

         

       “촌장님, 타 종족으로서 외람되오나 제가 한 마디 드려도 괜찮을까요?”

       “오, 금안족이 하는 조언이라면 나쁘지 않지. 말해보게나.”

       “그럼….”

         

       목을 가다듬으며 어조를 고명하게 바꾼다.

         

       이들이 생각하는 금안족의 이미지에 딱 맞는 톤으로 말이다.

         

       “이 지역을 수호하시는 신령 요르문간드 님께서 가로시되, 이번 태풍은 그 규모가 상상 이상이라고 합니다.”

       “자네, 신령님의 성함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신령님과 만나 뵌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버멜이 알려준 스크립트를 대부분 따라한다.

         

       “오오, 이거 믿음직하군!”

       “그래서, 신령님께서 내려주신 해결책은 무엇이던가?”

         

       예상대로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엘프인 버멜이 직접 왔었더라면 같은 말로 이만한 호의는 이끌어내지 못했겠지.

         

       “기본적인 골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식량을 최우선으로 확보하고 마을 주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것이죠. 다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뭔가?”

       “당장 가진 시간으로는 방죽을 온전히 보강할 시간이 없습니다.”

         

       피난을 가려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 전에 하천이 범람해서 마을을 쓸어버리기도 한다면?

         

       “신령님께서 구름의 방향을 읽으시건대 이번 태풍으로 촌락이 궤멸적인 피해를 받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해서 지금부터 피난 가시는 걸 추천하셨는데, 현재로서는 하천의 범람을 오랫동안 막을 재료나 기술이 부족합니다.”

         

       이른바 시간 싸움이다. 제방이 먼저 터지느냐, 그 전에 이 부족이 먼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느냐.

         

       “피난 완료까지 예상 소요 시간은 13일입니다. 그 전까지만 제방이 버텨준다면 문제는 없겠죠.”

       “그런데 그건 요호족 대부분이 짐을 꾸린다고 했을 때 나오는 시간이다. 제방을 쌓는 역할은 누가 맡을 것이지?”

         

       그 말을 기다렸다.

         

       나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가슴팍에 손을 올려놓았다.

         

       “저와 프레이가 합니다.”

       “으엑? 내, 내가?”

         

       이럴 거라는 건 프레이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이제 만난 지 하루 됐는데 말해줄 시간이 언제 있었다고.

         

       “단 둘이서?”

       “아무리 금안족이라지만 그건 허언인 것 같구만.”

         

       이 또한 예상대로의 반응이다. 그야 그렇겠지. 며칠 만에 강대한 댐을 건설하겠다는 소리인데.

         

       그러나.

         

       “틸레트 아카데미에서 프레이와 생활하며 알았습니다. 얘는 연성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는 것을요.”

       “연성술?”

       “네. 제가 도안을 작성하여 넘겨주면 프레이가 단기간에 방죽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프레이의 연성실력은 지난 한 번의 연성으로 증명됐다.

         

       토카막.

         

       재료와 설계도를 주면 그만한 것도 만들어내는 괴물이 바로 이 꼬맹이였으니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로테 집에 토카막 두고 왔네.

         

       뭐….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방죽을 쌓는 구체적인 대비책은 미리 만들어 왔습니다.”

         

       나는 메고 온 가방에서 종이 수십 장을 꺼냈다.

         

       스크롤을 작성할 때 흔히 사용하는 마전지는 아니다. 평범한 잉크가 말라붙어 있는 A4 크기의 일반 용지였다. 그 용지 위로는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의 수식들이 사교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이게 다 뭔가?”

         

       요호족 모두가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오직 프레이만이 그 종이를 유심히 지켜봤다.

         

       하는 짓은 어려도 프레이는 명문 틸레트 아카데미의 특별반 학생이다. 내가 써내린 수학공식을 이해하는 것쯤은 그녀에게 누워서 떡 먹기였다.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프레이가 믿을 수 없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수계마도시간에 배운 다차원 유량 방정식이잖아!”

       “다차원…. 뭐?”

       “물이나 공기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식이야! 이걸 이해하면 수압에 따라 얼마나 튼튼한 방죽을 만들어야 하는지 역산해낼 수 있어!”

         

       까놓고 말해 이세계판 나비에-스톡스 방정식이다.

         

       모든 기상현상과 유체 흐름을 분석해내는 가장 근본적인 수식.

         

       다만 정령원소학과 수계마도이론에서 나오는 효과를 보정했기에 그 형태는 조금 다르다. 그 덕에 오히려 원래 나비에-스톡스 방정식보다 풀기는 쉬울 정도였고.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다 계산한 거야?”

         

       그래도 해석적인 해를 찾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이쪽 세계의 수학 수준이 지구보다 크게 뛰어난 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가장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설마…!”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흔히 ‘노가다’라고 말하는 작업.

         

       가능한 모든 함수를 넣어서 때려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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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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