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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EP.89 EP.89

EP.89

       심호흡을 한 베니가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눈물을 글썽였다.

       

       “내 파티를 무너뜨리려 잠입했구나! 이 간악한 음마 놈아!”

       

       “?”

       

       세상에. 이게 무슨 소리람.

       

       이 세상에도 음마는 있지만, 대부분 광기의 저주에 저항하지 못해 몬스터로 영락했다.

       

       간신히 저항한 음마는 운 좋게 저주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었거나, 일신의 무력이 대단한 녀석들뿐.

       

       그렇게 살아남은 극소수의 음마가 하는 일은…대부분 창부다.

       

       하지만 내가 인큐버스가 아니라는 것은 날개, 꼬리, 귀의 모양 등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명한 사실.

       

       즉, 베니는 나를 진심으로 인큐버스라 의심하는 게 아니다.

       

       자기 주변 사람들 사이에게 꼬리치는 ‘빗치’라고 한 거지.

       

       “허, 참. 나 참.”

       

       어이가 없어 가슴을 두드리며 빼액 소리쳤다.

       

       “리디아의 동료라서 봐 드렸는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심한 건 너겠지! 그 고결한 리디아를 홀린 것도 모자라, 우리의 스승이나 다름없는 엘리 언니까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게 손가락을 겨누는 베니. 그 움직임에 따라 실체화된 그림자가 내게 끔찍한 몰골을 들이민다.

       

       “드, 들어본 적 있어! 파티 브레이커…기존의 모험가 파티에 잠입해, 파티원들을 홀려 온갖 도움과 물질적 지원을 뜯어가는 나쁜 놈…그러다 마지막에는 치정 싸움을 일으켜 파티를 해산시키고, 싸움에 휘말린 불쌍한 남자인 척 다른 파티에 다시 기어들어 가는 썅놈…!”

       

       “아니. 그건 또 뭔데요.”

       

       들어본 적 없는데.

       

       그건가? 오타쿠 동아리의 여왕벌 같은 거? 남녀역전 세계관이니 대왕벌? 아니, 애초에 생태가 다르니 이건 아닌가. 굳이 따지자면 수사자겠지.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베니가 좀 더 원초적인 표현을 내뱉었다.

       

       “이 방울뱀! 지금껏 아랫도리를 딸랑거리면서 여자들을 홀렸을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안 통…….”

       

       “베니!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애한테 그게 무슨 소리야!”

       

       너무 원색적인지 말하다 말고 엘리에게 꿀밤을 맞았지만.

       

       퍼억!

       

       “끄앙!”

       

       고작 꿀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큼직한 소리.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펴보았는데, 다행히도 베니의 정수리가 오목해지지는 않았더라.

       

       대신 어느새 그녀의 머리를 가린 그림자 괴물이 그림자 괴물이었던 것이 됐을 뿐이지.

       

       바닥에 쏟아진 검은 진액. 데굴데굴 구르는 눈동자. 부러진 뿔. 사방으로 비산한 상어 이빨….

       

       꿈에 나올까 두려운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으나, 베니가 고개를 휘휘 젓자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베니의 그림자 속에서 솟아오르는 흉물. 그 모습을 본 엘리가 하나 남은 주먹을 치켜들었다.

       

       “팍, 씨. 안 치워?”

       

       “이잉…엘리 언니. 언니는 지금 속고 있는 거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빨리 그림자나 집어넣어! 이 년아.” 

       

       “아니, 엘리 언니. 잠깐 내 말 좀 들어봐.”

       

       “너야말로 내 말 좀 들어. 요나는 사실…….”

       

       거기까지 말한 엘리가 이쪽을 휙! 돌아보더니, 입만 뻐끔거리며 조용히 물었다.

       

       ‘성자 이야기. 해도 돼?’

       

       하여 나는 쫑쫑쫑 다가가 엘리를 향해 손을 팔랑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나를 위해 허리를 굽혀주는 엘리.

       

       그녀의 잿빛 털이 아름다운 늑대 귀를 크게 한입 물었다. 아프지 않게 이빨이 아닌 입술로.

       

       “므앙.”

       

       “흐잇?!”

       

       순간 움찔하며 꼬리를 곧추세우더니, 이내 흐물흐물 풀어지며 꼬리를 내 팔에 감아오는 엘리.

       

       그런 그녀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비밀이지만, 엘리의 후배고 리디아 님의 동료니 특별히 허락해 드릴게요.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된다는 거 꼭 알려주시구요.”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귀 좀 뱉어…!”

       

       쿨하고 시니컬한 전직 모험가 바텐더 사장은 어디로 갔는지, 평범한 암컷의 얼굴이 되어가는 엘리.

       

       그것이 조금 재밌어 괜시리 혀로 귀 안쪽을 핥아준 뒤에야 떨어졌다.

       

       “흐으읏….”

       

       잔뜩 상기된 얼굴이 된 엘리가 이쪽을 째릿 노려보더니, 이내 한숨을 푸욱 내쉬며 베니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잠깐 이리 와 봐.”

       

       “지금 그게 중요해 엘리 언니!? 방금 그거 뭐야! 이 음마! 최면술이라도 건 거야?!”

       

       “진짜 그런 거 아니니까 일단 이리 와 임마.”

       

       내가 하루를 꼬박 잠든 탓에 지금 시간은 저녁 시간. 즉, 가장 주점이 활발할 시간대라는 소리다.

       

       엘리는 카렌처럼 신성 결계로 방음하거나, 리디아처럼 오러를 주입해 소음차단 효과가 있는 마도구를 사용하지도 못한다.

       

       신성력, 오러, 마력…무엇하나 깃들지 않은 순수한 육신이기 때문.

       

       하여, 꿍얼대는 베니를 억지로 창고로 끌고 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아까랑은 다른 이유로 눈물이 그렁그렁한 베니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

       

       “넹?”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너를 이해해.”

       

       “네넹?”

       

       “요나라고 했지? 나도 너랑 같아. 이 그림자도 원해서 생긴 게 아니거든. 지금 외모에서 더 늙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고.”

       

       “어, 음. 넹!”

       

       잘 모르겠지만 일단 알아들은 척 힘차게 대답하자, 그제야 찌푸려졌던 베니의 미간이 사르르 풀렸다.

       

       “아까는 미안. 사랑의 여신께서 내린 권능일 줄은 몰랐어.”

       

       “아니 뭐어. 모를 수도 있죠.”

       

       어깨를 으쓱이고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창고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엘리가 베니를 줘패면서 앞으로 친하게 지내라고 했을 것 같진 않고….

       

       아까 입 모양으로 뻐끔거린 것처럼 내가 사랑의 여신에게 총애받고 있다는 말이라도 한 거겠지.

       

       당연한 말이지만, 사랑의 여신은 말 그대로 사랑의 여신이지 지혜의 여신이나 모험의 여신 같은 게 아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도, 강한 사람도 아니다. 매력적인 사람이지.

       

       사랑의 여신이 아끼는 자는 그만큼 매력적인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다. 베니가 오해하는 것처럼 사람 홀리는 음마가 아니라.

       

       그 외에도 무언가 말한 게 있고, 덕분에 베니가 내게 동질감을 품는 것 같긴 한데….

       

       거기까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건 베니의 경계심이 다시 내려갔다는 점이지.

       

       이 틈을 타 좀 더 친해지도록 해보자. 이미 엘리와 리디아와 깊은 관계가 된 나인만큼, 베니랑도 부대끼며 살아야 할 것 같으니까.

       

       “그나저나 베니. 조금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잉? 뭔데? 말해봐.”

       

       “베니의 그 그림자. 그게 크리피 위치라는 이명의 이유인 거죠?”

       

       “…뭐어. 그렇지. 아무래도 좀 징그럽잖아?”

       

       입술을 삐죽 내미는 베니. 기본적으로는 멋있는 엘리나, 평소에 무표정한 리디아와 달리 솔직하면서도 담백한 반응이다.

       

       판 대륙의 여자에게서는 은근 보기 힘든 모습.

       

       신선하다는 생각에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잠잠한 그림자를 가리켰다.

       

       “한 번만 다시 보여주실 수 있나요?”

       

       “안 될 건 없는데…진짜 괜찮겠어? 이건 일종의 저주라서 아무리 비위가 좋아도 불쾌하게 느껴질걸?”

       

       “그러니까 더더욱 궁금해지네요.”

       

       물러나지 않고 재촉하자, 잠시 곤란해하던 베니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보여줄 텐데 너무 깊게 들여다보면 안 된다?”

       

       그리 당부한 베니가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그림자가 주욱 길어지더니, 이내 높이를 얻은 그림자가 온갖 생물 일부와 뒤섞이기 시작했다.

       

       사람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큼직한 눈동자. 핏발 잔뜩 선 눈이 이쪽을 노려보고, 불규칙하게 돋아난 상어 이빨 이빨은 위협적이기 그지없다.

       

       온갖 짐승을 녹여내어 한 덩어리로 굳힌 것 같은 모습. 여기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베니. 잠깐 만져봐도 괜찮을까요?”

       

       “뭐? 아니. 그건 너무 위험해. 그림자가 내 명령에 따르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아냐. 무턱대고 건드렸다가는….”

       

       “얍!”

       

       그대로 손을 뻗어 그림자 괴물을 만져보았다.

       

       묘하게 끈적한 몸통, 데굴데굴 구르며 주변을 살피는 눈, 작은 돌기처럼 숨어있는 촉수, 배가 고플 리도 없건만 쩝쩝 입맛을 다시는 상어 이빨 입.

       

       그렇게 살벌해 보이는 부분들이 내 손가락이 닿는 순간 순한 양이 되어 만지기 쉽게 몸을 정돈한다.

       

       “꺄아아악!”

       

       베니는 기겁했는지, 반 박자 늦게 비명을 질렀지만.

       

       “미쳤어?! 위험하다고 했잖아! 까딱 잘못하면 먹이인 줄 알고 네 손을 꿀꺽 삼킬지도 모르는…모르는데……으에?”

       

       사라진 내 손길이 아쉽다는 듯, 그림자 표면에서 일렁이는 온갖 부위들.

       

       어서 만져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은 모습에 베니가 멍하니 이쪽을 돌아보았다.

       

       “너. 뭐야? …아니. 뭐든 상관없어. 요나라고 했지? 나랑 일 하나 같이 하자.”

       

       “…야한 일은 엘리가 먼저예요. 순서표를 뽑고 가슴도 좀 키우고 오세요.”

       

       “그런 거 아니거든? 뭣보다 가슴이 지금 뭐가 중요해!”

       

       씩씩거리는 베니. 그녀가 뾰족뾰족한 상어 이빨을 훤히 드러내며 웃었다.

       

       “일당 10정도 쳐 줄게. 기왕 짐꾼 하는 거, 내 연구 조수도 좀 해줘.”

       

       “일당 10쿠퍼…? 그걸 누구 코에 붙여요!”

       

       “쿠퍼가 아니라 실버인데?”

       

       “에.”

       

       매일 10연챠 이벤트라니….

       

       빵긋 웃으며 말했다.

       

       “뭐부터 하면 될까요?”

       

       자본주의의 미소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졸, 려…살려줘…

    궤에에엥…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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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9

EP.89





       심호흡을 한 베니가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눈물을 글썽였다.


       


       “내 파티를 무너뜨리려 잠입했구나! 이 간악한 음마 놈아!”


       


       “?”


       


       세상에. 이게 무슨 소리람.


       


       이 세상에도 음마는 있지만, 대부분 광기의 저주에 저항하지 못해 몬스터로 영락했다.


       


       간신히 저항한 음마는 운 좋게 저주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었거나, 일신의 무력이 대단한 녀석들뿐.


       


       그렇게 살아남은 극소수의 음마가 하는 일은…대부분 창부다.


       


       하지만 내가 인큐버스가 아니라는 것은 날개, 꼬리, 귀의 모양 등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명한 사실.


       


       즉, 베니는 나를 진심으로 인큐버스라 의심하는 게 아니다.


       


       자기 주변 사람들 사이에게 꼬리치는 ‘빗치’라고 한 거지.


       


       “허, 참. 나 참.”


       


       어이가 없어 가슴을 두드리며 빼액 소리쳤다.


       


       “리디아의 동료라서 봐 드렸는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심한 건 너겠지! 그 고결한 리디아를 홀린 것도 모자라, 우리의 스승이나 다름없는 엘리 언니까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게 손가락을 겨누는 베니. 그 움직임에 따라 실체화된 그림자가 내게 끔찍한 몰골을 들이민다.


       


       “드, 들어본 적 있어! 파티 브레이커…기존의 모험가 파티에 잠입해, 파티원들을 홀려 온갖 도움과 물질적 지원을 뜯어가는 나쁜 놈…그러다 마지막에는 치정 싸움을 일으켜 파티를 해산시키고, 싸움에 휘말린 불쌍한 남자인 척 다른 파티에 다시 기어들어 가는 썅놈…!”


       


       “아니. 그건 또 뭔데요.”


       


       들어본 적 없는데.


       


       그건가? 오타쿠 동아리의 여왕벌 같은 거? 남녀역전 세계관이니 대왕벌? 아니, 애초에 생태가 다르니 이건 아닌가. 굳이 따지자면 수사자겠지.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베니가 좀 더 원초적인 표현을 내뱉었다.


       


       “이 방울뱀! 지금껏 아랫도리를 딸랑거리면서 여자들을 홀렸을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안 통…….”


       


       “베니!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애한테 그게 무슨 소리야!”


       


       너무 원색적인지 말하다 말고 엘리에게 꿀밤을 맞았지만.


       


       퍼억!


       


       “끄앙!”


       


       고작 꿀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큼직한 소리.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펴보았는데, 다행히도 베니의 정수리가 오목해지지는 않았더라.


       


       대신 어느새 그녀의 머리를 가린 그림자 괴물이 그림자 괴물이었던 것이 됐을 뿐이지.


       


       바닥에 쏟아진 검은 진액. 데굴데굴 구르는 눈동자. 부러진 뿔. 사방으로 비산한 상어 이빨….


       


       꿈에 나올까 두려운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으나, 베니가 고개를 휘휘 젓자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베니의 그림자 속에서 솟아오르는 흉물. 그 모습을 본 엘리가 하나 남은 주먹을 치켜들었다.


       


       “팍, 씨. 안 치워?”


       


       “이잉…엘리 언니. 언니는 지금 속고 있는 거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빨리 그림자나 집어넣어! 이 년아.” 


       


       “아니, 엘리 언니. 잠깐 내 말 좀 들어봐.”


       


       “너야말로 내 말 좀 들어. 요나는 사실…….”


       


       거기까지 말한 엘리가 이쪽을 휙! 돌아보더니, 입만 뻐끔거리며 조용히 물었다.


       


       ‘성자 이야기. 해도 돼?’


       


       하여 나는 쫑쫑쫑 다가가 엘리를 향해 손을 팔랑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나를 위해 허리를 굽혀주는 엘리.


       


       그녀의 잿빛 털이 아름다운 늑대 귀를 크게 한입 물었다. 아프지 않게 이빨이 아닌 입술로.


       


       “므앙.”


       


       “흐잇?!”


       


       순간 움찔하며 꼬리를 곧추세우더니, 이내 흐물흐물 풀어지며 꼬리를 내 팔에 감아오는 엘리.


       


       그런 그녀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비밀이지만, 엘리의 후배고 리디아 님의 동료니 특별히 허락해 드릴게요.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된다는 거 꼭 알려주시구요.”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귀 좀 뱉어…!”


       


       쿨하고 시니컬한 전직 모험가 바텐더 사장은 어디로 갔는지, 평범한 암컷의 얼굴이 되어가는 엘리.


       


       그것이 조금 재밌어 괜시리 혀로 귀 안쪽을 핥아준 뒤에야 떨어졌다.


       


       “흐으읏….”


       


       잔뜩 상기된 얼굴이 된 엘리가 이쪽을 째릿 노려보더니, 이내 한숨을 푸욱 내쉬며 베니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잠깐 이리 와 봐.”


       


       “지금 그게 중요해 엘리 언니!? 방금 그거 뭐야! 이 음마! 최면술이라도 건 거야?!”


       


       “진짜 그런 거 아니니까 일단 이리 와 임마.”


       


       내가 하루를 꼬박 잠든 탓에 지금 시간은 저녁 시간. 즉, 가장 주점이 활발할 시간대라는 소리다.


       


       엘리는 카렌처럼 신성 결계로 방음하거나, 리디아처럼 오러를 주입해 소음차단 효과가 있는 마도구를 사용하지도 못한다.


       


       신성력, 오러, 마력…무엇하나 깃들지 않은 순수한 육신이기 때문.


       


       하여, 꿍얼대는 베니를 억지로 창고로 끌고 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아까랑은 다른 이유로 눈물이 그렁그렁한 베니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


       


       “넹?”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너를 이해해.”


       


       “네넹?”


       


       “요나라고 했지? 나도 너랑 같아. 이 그림자도 원해서 생긴 게 아니거든. 지금 외모에서 더 늙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고.”


       


       “어, 음. 넹!”


       


       잘 모르겠지만 일단 알아들은 척 힘차게 대답하자, 그제야 찌푸려졌던 베니의 미간이 사르르 풀렸다.


       


       “아까는 미안. 사랑의 여신께서 내린 권능일 줄은 몰랐어.”


       


       “아니 뭐어. 모를 수도 있죠.”


       


       어깨를 으쓱이고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창고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엘리가 베니를 줘패면서 앞으로 친하게 지내라고 했을 것 같진 않고….


       


       아까 입 모양으로 뻐끔거린 것처럼 내가 사랑의 여신에게 총애받고 있다는 말이라도 한 거겠지.


       


       당연한 말이지만, 사랑의 여신은 말 그대로 사랑의 여신이지 지혜의 여신이나 모험의 여신 같은 게 아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도, 강한 사람도 아니다. 매력적인 사람이지.


       


       사랑의 여신이 아끼는 자는 그만큼 매력적인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다. 베니가 오해하는 것처럼 사람 홀리는 음마가 아니라.


       


       그 외에도 무언가 말한 게 있고, 덕분에 베니가 내게 동질감을 품는 것 같긴 한데….


       


       거기까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건 베니의 경계심이 다시 내려갔다는 점이지.


       


       이 틈을 타 좀 더 친해지도록 해보자. 이미 엘리와 리디아와 깊은 관계가 된 나인만큼, 베니랑도 부대끼며 살아야 할 것 같으니까.


       


       “그나저나 베니. 조금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잉? 뭔데? 말해봐.”


       


       “베니의 그 그림자. 그게 크리피 위치라는 이명의 이유인 거죠?”


       


       “…뭐어. 그렇지. 아무래도 좀 징그럽잖아?”


       


       입술을 삐죽 내미는 베니. 기본적으로는 멋있는 엘리나, 평소에 무표정한 리디아와 달리 솔직하면서도 담백한 반응이다.


       


       판 대륙의 여자에게서는 은근 보기 힘든 모습.


       


       신선하다는 생각에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잠잠한 그림자를 가리켰다.


       


       “한 번만 다시 보여주실 수 있나요?”


       


       “안 될 건 없는데…진짜 괜찮겠어? 이건 일종의 저주라서 아무리 비위가 좋아도 불쾌하게 느껴질걸?”


       


       “그러니까 더더욱 궁금해지네요.”


       


       물러나지 않고 재촉하자, 잠시 곤란해하던 베니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보여줄 텐데 너무 깊게 들여다보면 안 된다?”


       


       그리 당부한 베니가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그림자가 주욱 길어지더니, 이내 높이를 얻은 그림자가 온갖 생물 일부와 뒤섞이기 시작했다.


       


       사람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큼직한 눈동자. 핏발 잔뜩 선 눈이 이쪽을 노려보고, 불규칙하게 돋아난 상어 이빨 이빨은 위협적이기 그지없다.


       


       온갖 짐승을 녹여내어 한 덩어리로 굳힌 것 같은 모습. 여기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베니. 잠깐 만져봐도 괜찮을까요?”


       


       “뭐? 아니. 그건 너무 위험해. 그림자가 내 명령에 따르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아냐. 무턱대고 건드렸다가는….”


       


       “얍!”


       


       그대로 손을 뻗어 그림자 괴물을 만져보았다.


       


       묘하게 끈적한 몸통, 데굴데굴 구르며 주변을 살피는 눈, 작은 돌기처럼 숨어있는 촉수, 배가 고플 리도 없건만 쩝쩝 입맛을 다시는 상어 이빨 입.


       


       그렇게 살벌해 보이는 부분들이 내 손가락이 닿는 순간 순한 양이 되어 만지기 쉽게 몸을 정돈한다.


       


       “꺄아아악!”


       


       베니는 기겁했는지, 반 박자 늦게 비명을 질렀지만.


       


       “미쳤어?! 위험하다고 했잖아! 까딱 잘못하면 먹이인 줄 알고 네 손을 꿀꺽 삼킬지도 모르는…모르는데……으에?”


       


       사라진 내 손길이 아쉽다는 듯, 그림자 표면에서 일렁이는 온갖 부위들.


       


       어서 만져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은 모습에 베니가 멍하니 이쪽을 돌아보았다.


       


       “너. 뭐야? …아니. 뭐든 상관없어. 요나라고 했지? 나랑 일 하나 같이 하자.”


       


       “…야한 일은 엘리가 먼저예요. 순서표를 뽑고 가슴도 좀 키우고 오세요.”


       


       “그런 거 아니거든? 뭣보다 가슴이 지금 뭐가 중요해!”


       


       씩씩거리는 베니. 그녀가 뾰족뾰족한 상어 이빨을 훤히 드러내며 웃었다.


       


       “일당 10정도 쳐 줄게. 기왕 짐꾼 하는 거, 내 연구 조수도 좀 해줘.”


       


       “일당 10쿠퍼…? 그걸 누구 코에 붙여요!”


       


       “쿠퍼가 아니라 실버인데?”


       


       “에.”


       


       매일 10연챠 이벤트라니….


       


       빵긋 웃으며 말했다.


       


       “뭐부터 하면 될까요?”


       


       자본주의의 미소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졸, 려...살려줘...

    궤에에엥...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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