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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9

       

       

       “···하나. 둘. 셋. 넷. 이게 전부인가요?”

       

       “여기는 그런 것 같은데요.”

       

       “하아···. 도대체 몇 명이나 있는 건지.”

       

       

       벌벌 떨고 있는 남성 넷.

       

       지금도 도저히 믿기지는 않았지만, 그들 모두 사칭범이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다시는 사칭 따위 하지 않겠습니다···!”

       

       “···.”

       

       

       벌써 이런 이야기만 듣는 게 몇 번째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어처구니가 없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는지, 라이라도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이야, 대단하네. 우리 인기인이었구나?”

       

       “이런 놈들의 인기는 필요 없는데요?!”

       

       “연예인도 아니고 이게 대체···.”

       

       

       고작 네 명.

       

       단지 네 명뿐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지금 몇 명이었죠?”

       

       “스물둘.”

       

       “히엑···.”

       

       

       미치겠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사칭하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많을 줄이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많았다.

       

       

       “비밀 조직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비밀 조직이라서 그렇다고요?”

       

       “네. 사칭하기 딱 좋은 조건이거든요.”

       

       

       도대체 왜 이렇게 사칭범이 많은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아까부터 무언가를 생각하던 하율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저 이름만 알려진 조직이잖습니까. 사칭하기 쉽다고 생각할 만도 하죠. 요즘 활동도 뜸해졌으니까요.”

       

       “···그런가?”

       

       “아무도 그 실체를 모르는 비밀 조직. 하지만 대중들은 상당히 좋아하는 비밀 조직. 심지어 살인마저 불사하는데도 인기가 하늘을 찌르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율의 물음에 우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이해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결국 비밀조직이라는 태생적인 부분에서 한계에 도달했다는걸.

       

       

       “···하아.”

       

       “이건···방법이 없네. 사칭이 너무 많아. 다 죽였다가는 우리 이름에 흠집이 갈지도 몰라.”

       

       [그, 그건 안 돼요! 시민들에게 환호받는 다크히어로, 꽤 멋있단 말이에요!]

       

       

       다 죽여버리면 모든 게 해결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해.

       

       몇 시간에 걸쳐 찾아낸 수가 겨우 스무 명 언저리다.

       

       많이 찾아낸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이 인원수가 계속 뒤졌는데도 겨우 저 정도밖에 찾지 못했다는 거지.

       

       심지어 보통 사람도 아니고 수사관이 끼어있는데도 스무 명밖에 잡지 못했다.

       

       사칭범이 총 몇 명일지는 몰라도, 고작 이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이 미친 동네에서 사칭범을 다 잡으려다간 몇 달을 내리 눌러앉아야 할지도 모른다.

       

       도로가 잔뜩 뒤틀려있어 분명 앞으로만 갔는데 어느새 원래 자리로 돌아오기도 하더라.

       

       

       “···다 잡기는 힘들겠군요.”

       

       “역시 그렇죠?”

       

       “네. 본보기로 혼쭐을 내주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히, 히익···.”

       

       “걱정하지 마세요.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아라크네가 빌런들을 처단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 건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작가님이 뿌려둔 어처구니없는 떡밥을 조절하겠답시고 빌런들을 잡게 된 게 아라크네 탄생의 이유니까.

       

       시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빌런들을 처단하기 위해 조직이 만들어진 게 아니다.

       

       빌런들을 죽이다 보니 어쩌다 조직이 만들어진 거지.

       

       그런 이미지가 생긴 게 본의는 아니었지만···. 작가님이 꽤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던데.

       

       그렇다면 나는 빌런을 제외한 놈들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의도치 않게 생겨버린 이미지지만, 그게 좋은 방향이라면 그저 따라갈 뿐.

       

       

       “운이 좋은 줄 아세요. 당신들은 빌런이라기엔 애매한 놈들이니 살아남는 거니까요.”

       

       

       나도 뭐, 굳이 죽일 필요가 없는 놈들을 죽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좋지만.

       

       굳이 보이는 놈들마다 한 명씩 썰고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우리 수사관이 싫어할 테니까.

       

       하율은 저들을 빌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보스로서 존중해줘야지.

       

       

       “그런데 넌 죽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러질 않네? 저 녀석들도 빌런 아냐?”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으니까요. 아직 죄를 갚을 길은 있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구나.

       

       라이라의 의문에 대답하는 하율의 말에 그제야 그녀가 저들을 죽이는 걸 꺼린 이유를 깨달았다.

       

       사람을 죽이지 않아서.

       

       그저 그뿐이구나.

       

       하율이 아라크네로 전향한 계기는 복수였지.

       

       소중한 사람을 죽인 빌런을 향한 복수.

       

       

       “돈을 훔치는 걸로 죽일 필요는 없습니다. 피해를 갚아주면 되니까요. 누군가를 공격한 걸로 죽일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상응하는 보상을 주면 되니까요.”

       

       “너, 사칭범 용서 못 한다고 중얼거리던 거치고는 진짜 이성적이네···.”

       

       “부끄럽네요. 그래도 저는 공사는 확실하게 구분한다고요. 제가 화난다고 무턱대고 죽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구나.”

       

       “···다만, 타인의 목숨을 앗아간 자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아니, 용서를 구할 수조차 없습니다. 피해자 본인이 이미 세상에 없으니까.”

       

       “그럼 네가 빌런을 죽이는 건?”

       

       “그건 이야기가 다르죠.”

       

       

       하율이 단언했다.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말하고 싶은 건 압니다. 그건 빌런에게도 해당하는 게 아니냐. 그런 이야기겠죠. 단호히 말하겠습니다. 빌런은 해당 사항이 아닙니다.”

       

       “그래? ···뭐라고 하고 싶은 건 아니었어. 그냥 궁금했던 것뿐이니까 너무 화내지는 말고.”

       

       “명령이에요. 슬슬 쉴 만큼 쉬었을 테니, 사칭범들에게 위협만 좀 가하고 오시는 게 어떨까요?”

       

       “아, 네. 아르테 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뭐, 알았어. 시키는 건 해야겠지.”

       

       

       강제로 대화를 끊었다.

       

       더 이상 저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죽이는 게 맞느니 틀리느니, 그런 건 아무런 의미도 없어.

       

       결국 모두 인형이야. 그런 걸 생각한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머리만 아파질 뿐이라고.

       

       이 세상에 죽어서는 안 되는 존재는 오직 하나뿐.

       

       유시우 한 명뿐이다.

       

       나머지는 어찌 되든 상관없어.

       

       그래,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오직 그 하나뿐이야.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아···.

       

       

       “어라. 여기는 어디지···?”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어느새 주변의 풍경이 바뀌어있었다.

       

       잠깐 한눈을 팔며 걸었더니 잠깐 사이에 처음 보는 장소로 이동해있었다.

       

       

       “···으음, 곤란한데.”

       

       

       살짝 난감해졌다.

       

       여러 명이 다닐 때도 길을 잃기 쉬웠던 장소였는데, 과연 내가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움직일 때마다 풍경이 변했지만 언제나 처음 보는 장소였다.

       

       설마 내가 미아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미아가 되면 그 자리에 그대로 가만히 있으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거기 그대로 있으면 폼이 안 살잖아.

       

       강제로 대화를 끊기 위해 부하들을 강제로 찢어놨는데.

       

       역시 좋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았다.

       

       이렇게 된 이상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을 찾아서 길을 물어보아야 하나?

       

       ···아니면 실을 사용해서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으음, 그게 좋겠네.

       

       장갑 하나 정도만 사용해도 충분할 테니까.

       

       좋아. 만약 부하들한테 들켜도 하늘에서 보는 게 편하다고 둘러대면 괜찮겠지.

       

       

       “거기 언니. 여기서 뭐 해?”

       

       “···?!”

       

       

       장갑의 실을 풀기 위해 높아 보이는 건물의 옥상을 바라본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

       

       “어허, 움직이지 마. 아카데미의 학생처럼 보이는데, 설마 우리가 혼자서 습격할 것 같아?”

       

       

       목과 등에 날카로운 날붙이가 가까이 다가오는 걸 무시하고 공격하려고 했다.

       

       인기척도 내지 않고 등 뒤에 달라붙는 놈이 호의적일 리는 없었으니까.

       

       단검에 파란색의 기운이 감도는 걸 보지 못했더라면 분명 그렇게 했겠지.

       

       

       “···마나?”

       

       “야, 내가 뭐랬냐? 초인이라면 알아볼 거라고 했지?”

       

       “그러게. 진짜 그 약이 효과가 있었나 보다.”

       

       “아카데미를 습격한 놈들이 만든 시제품이야. 효과는 확실하겠지.”

       

       

       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또 작가님이 만든 설정의 부작용이구나.

       

       그 동물 친구들이 만들던 약인가 보다.

       

       사람을 초인으로 만들어준다는 약의 시제품이, 그 녀석들이 무너지자 자연스럽게 이런 뒷골목에 퍼진 걸까?

       

       방심했네.

       

       먼저 준비하고 싸우는 거면 몰라도, 아무런 준비도 못 하고 싸우는 건 조금 그런데.

       

       실이라는 특성상 먼저 준비하는 게 훨씬 효과가 강한데···.

       

       미로처럼 꼬인 길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급습당했다.

       

       아마 이쪽 지리를 훤히 꿰뚫고 있는 놈들이겠지.

       

       

       “···뭘 원하죠?”

       

       “이야, 언니. 꽤 담담하네? 안 무서워? 에헤이.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찔리면, 응? 죽는다?”

       

       

       푹.

       

       목에 약간의 통증과 함께 레오타드가 살짝 축축해졌다.

       

       단검이 살갗을 파고 들어간 거겠지.

       

       아마 위협용일 거다.

       

       

       “뭘 원하냐고 묻고 있는데요. 말만 하세요. 귀찮은 건 싫어서.”

       

       “이야, 강심장이구나?”

       

       

       강심장이고 뭐고, 나는 죽지 않으니까 겁먹을 필요가 없다.

       

       이유는 많지.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작가님의 유일한 눈이라는 것.

       

       작가님의 말에 따르면 나는 작가님의 눈이다. 세계를 대신 관측하는 눈.

       

       그런 내가 죽어버린다면 작가님은 큰 곤욕을 치를 터. 그러니 최소한 내가 죽을 리는 없었다.

       

       두 번째는 이 녀석들이 나를 불구로 만들지는 않을 거라는 거다.

       

       지금 아카데미가 학생들을 현장으로 내보내 학생들의 안전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여도, 그렇지는 않지.

       

       가끔 몇몇 학생들이 다쳤다는 이야기가 들리자마자 학생들의 증언을 토대로 선생님들이 직접 빌런들을 응징하고 있었다.

       

       그게 벌써 몇 주가 지났는데. 소문은 퍼질 대로 퍼졌겠지.

       

       그 증거로, 제압하려면 팔부터 자르면 괜찮았을 텐데 위협용으로 피만 살짝 보여줬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너희들을 제압할 준비는 이미 끝났거든.

       

       상체에만 시야를 집중시키면 어떡해?

       

       다리 밑에서 공격당할 것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멍청이들아.

       

       스타킹의 실이 풀리며 시야의 사각에서 그들을 공격할 준비를 끝마쳤다.

       

       괘씸하니까 손가락 하나 정도는 잘라도 괜찮겠지.

       

       ···아니다. 예쁜 몸에 상처를 냈으니 무기를 들고 있는 손 정도는 잘라도 합법 아닐까?

       

       음, 합법이겠지.

       

       자기합리화를 하며 괘씸한 녀석들을 공격하려던 찰나.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당황했다.

       

       이곳에 있을 리 없는 사람의 목소리였으니까.

       

       

       “그 사람 좀 놔줄래?”

       

       

       유시우가, 어째서인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얘는 도대체 왜 여기에 있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부터 즐거운 추석연휴네요!

    다들 즐거운 추석 보내시길 바랍니다!

    개미는 뚠뚠

    오늘도 뚠뚠

    열심히 일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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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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