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탑의 건물 중 어느 한 곳.
정령사들이 연구를 진행하는 곳에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믿기 힘든 사실에 중년인의 눈이 커졌다.
“그것이 정말인가?”
“확실합니다. 바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정령사의 손짓에 운디네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모습을 드러낸 운디네는 총 다섯.
이윽고, 다시 한번 펼쳐진 손짓에 숫자가 하나 늘어났다.
“…정말이군.”
지원군으로 파견을 보내기 전까지 그가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운디네의 숫자는 다섯이 다였다.
헌데 지금 소환한 숫자는 분명 여섯.
운디네를 소환했던 정령사가 입을 열었다.
“장승이란 것에 물을 준 이후로 친화력이 증가했습니다. 운다인을 하나 더 소환할 만큼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친화력이 상승했습니다.”
“친화력의 증가라…”
하급정령 하나가 늘어날 만큼의 친화력.
많은 양이 아니지만,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친화력을 올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령사는 선천적으로 친화력을 타고난다.
수련을 통해 각자가 가진 한계에 이르면 그 이후에는 성장을 시키기가 극히 어려운 것이 친화력이었다.
단지 물을 줬을 뿐인데 친화력이 오른다?
정령사라면 놀라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것이 무엇이길래 친화력이 늘어난다는 말이냐?”
“언데드를 쫓아내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미 전해 들은 이야기였다.
근처로 언데드를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아티팩트.
“그리고 운디네가 유난히 좋아하기는 했습니다. 클로셀님께 얼핏 듣기로는…”
“음?”
“그 장승이라는 목상이 세계수의 가지로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벌떡 –
“세계수? 지금 세계수라고 했느냐!?”
그것이 정말 세계수로 만들어졌다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인간이 엘프의 세계수를 볼 기회는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엘프의 근원이라 불리는 세계수.
그것으로 만들었다면 친화력이 늘어난 것도 말이 된다.
“클로셀님께서 그리 말씀하신 게 확실한 것이겠지?”
“확실합니다. 이번 엘프의 참전 또한 크리스라고 불린 인물이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믿을 수가 없군.”
“그의 곁에 붙어 다니는 엘프는 하이 엘프라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버럭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장 마탑에 협조요청을 보내라, 워프마법진이 필요하다!”
잠깐 숨을 들이킨 그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내가 직접가겠다!”
***
화륵 –
어느새 신당에 놓인 촛불의 숫자가 늘어났다.
그중에 가장 큰 초는 루나의 초였다.
남의 성녀를 여기서 빌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동생으로 맺어진 아이 아닌가?
“까!”
“안 돼. 오늘은 너무 많이 먹었어.”
“우으…! 까!”
“이 썩어. 그만 먹어야 해.”
루나의 간식으로 산 것은 사탕 같은 과자였다.
나름 비싼식품인지 가격도 보통이 아니었다.
고기값보다 비쌌으니, 말 다한 셈이다.
가격은 둘째치고, 이제 막 이빨이 나고 있는 루나에게 충치가 생기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성녀도 충치가 생기나?”
가진 신성력만 보면 어지간한 병은 걸리지도 않을 것 같기는 한데.
“어쨌든, 지금하는 건 치성이라고 해. 신령님께 기도를 올리는 거야.”
말을 하는 와중에 신당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웅성웅성 –
“보통 초를 타고 이곳으로 찾아오시거든? 음…‘여기 있어요!’ 하고 표시하는 거라 생각해도 괜찮아.”
웅성웅성 –
“그다음에는…”
웅성웅성 –
도저히 설명을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환경으로 치성을 드리라고?
용납할 수가 없는 사항이었다.
“이 늙인이들이 진짜…”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밖으로 보이는 모습들이 가관이었다.
“한 번 더 해봄세.”
“셋, 둘, 하나에 시작이네.”
“영창을 시작하지.”
한 명이 대표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셋.”
“둘.”
“하나!”
긴장을 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마나까지 실려 웅장하게 퍼지는 주문.
“분신사바, 분신사바…! 이곳으로 와주시오!”
“대가리 경! 듣고 있소이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더 있소.”
아까 하던 것이 뭔지 가르쳐 줬더니, 하루 종일 저러고 있는 중이었다.
마법을 캐스팅하던 입으로 분신사바라니….
이윽고, 마법사들 사이에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도 동그라미 일세.”
“어, 얼른 질문을 해 보게! 영혼의 형태에 관한 부분부터!”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지금하는 것이 상당히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사들이 잡은 펜을 건드린 잡귀는 아무도 없었다.
대가리 마저도 거기에 서 있지는 않았으니까.
“참나.”
저 강령술의 특징이 뭔지 아는가?
장난을 치는 사람도 존재하고, 자기도 모르게 동그라미를 그릴 때가 있다는 것이다.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마치 그런 착각을 일으키기도한다.
다시말하자면, 저 양반들은 아무 의미 없는 짓거리들을 하고 있다는 것.
동그라미가 쳐진 수많은 질문 리스트들도 잘못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저기요, 마법사님들.”
입을 여는 순간, 마법사들의 기세가 변했다.
방금까지 가볍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마법이군.”
“워프인가?”
“마탑의 술식일세.”
마법사들의 말대로 마당 한편에 마나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번쩍 –
빛이 뿜어지고 나타난 인원은 여섯.
그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한 명 끼어 있었다.
“물 주던 사람이네?”
“정령사들이 아닌가?”
“저들이 이곳에는 무슨 일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사람 하나.
바람이 부는 것 같은 사람 둘.
흙 냄새와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는 사람이 각각 둘과 하나였다.
고개를 휙휙 돌리던 정령사들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우르르 –
“나는 마탑소속 상급 정령사 올리버 듀폰이다. 아니, 듀폰이오!”
“예?”
“저 목상이 세계수로 만들어진 것이 맞소?”
벌떡 –
“세계수?”
마법사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장승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시..실례가 안 된다면 물 좀 주고 가도 되겠소?”
“….?”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 치고는 태도가 제법 정중했다.
평민인 나를 대할 때는 어느 정도 고압적인 태도가 섞여 있기 마련인데 말이다.
“호,혹시 하이 엘프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오?”
“그런 건 아닌데, 물은 갑자기 왜요?”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겠구려. 목상에 물을 주면 친화력이 올라간다는 보고가 있었소. 그것을 확인해 보고자 하오.”
물을 주면 나야 좋기는 하다.
장승이 무럭무럭 자랄텐데 해가 될 것이 없다.
“그러세요.”
“고맙소!”
나의 허락에 정령사들이 바쁘게 장승을 향해 뛰어갔다.
“하급정령부터 시작하도록 하겠다. 다들 소환하도록!”
“운디네!”
“실프!”
“노움!”
“셀레맨더!”
잠깐 이상한걸 들은 것 같다.
셀레맨더는 불의 정령 아닌가?
“….?”
운디네야 물을 준다고 쳐도 나머지는?
“저기요.”
“말씀하시오.”
“운디네 빼고 나머지 애들은 뭘 하는 건가요? 셀레맨더는 불 아닌가요?”
나에게 인사했던 듀폰이라는 정령사가 곤란한 듯 말을 멈췄다.
그가 셀레맨더를 소환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
“….”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설마, 장승에다 불을…?”
“사, 살짝만 해 보겠소…”
순간, 하루 종일 쌓였던 열불이 터져 나왔다.
“다 나가세요.”
“이,이보게?”
“크리스 도령?”
“전부 짐 챙겨서 나가요. 오늘 신당 문 닫을 거니까.”
마법사와 정령사들이 나를 만류하려고 다가왔다.
“조용히 있겠네. 방해되지 않도록 연구를 진행하지!”
“저희 또한 조용히 물만 주겠습니다.”
“사,살짝만 지져 보겠소! 세계수로 만든 것이라면 큰 피해는 없을 것이오!”
“확 출입 금지 시키기 전에 얼른 나가요! 엘프 사절단 보낼까요? 세레나!”
내가 세레나까지 부르자 주춤주춤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
그들이 길을 따라 물러가고, 드디어 우리 집에 평화가 찾아왔다.
툭!
타악 –
조용한 와중에 들리는 소리.
“이건 또 뭐야?”
쳐다보지도 않았던 신당 옆에서 그 소리가 나고 있었다.
“야.”
“예! 크리스님!”
“넌 거기서 뭐 하냐?”
소리를 낸 사람은 알루어드였다.
손에 든 도끼와 바닥에 널브러진 나무들을 보니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던 것 같았다.
“집을 짓고 있습니다.”
“집…?”
“…잘곳이 없어서요.”
알루어드는 루나의 교육과 호위를 위해 왔으니, 여기에 살아야 하는 건 맞았다.
그런데 신당 바로 옆에 집이라니?
무당집 옆에 교황후보가 사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너도 나가.”
“저도요?”
“안 나가? 칼춤한번 춰?”
“나…나가겠습니다!”
후다닥 멀어지는 알루어드.
나는 알루어드가 손질중이던 나무를 하나 주워들었다.
마법사들이 쓰던 펜도 함께.
스윽 –
신경질적으로 나무에 글을 쓰던 나는 글자 하나를 추가했다.
지금 상황을 보면 언제 누가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 마법사, 정령사, 기사 출입 금지.]
“하여튼 사짜들이 문제야!”
“진짜 나갑니까?루…루나님?”
“조!”
“크리스님…? 도둑이라도 들면 어떡합니까?”
“집 지킬 애들 많아.”
대가리가 머리를 시퍼렇게 들고 있는데 여기에 무슨 도둑이 들겠는가.
잠깐 출장을 와 있어서 금요일까지만 시간되는대로 올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