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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9

       사람은 무언가를 계속 겪다 보면 무뎌진다.

         

       그것은 고통과 시련 또한 마찬가지다.

         

       “…….”

         

       어제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있으면 곧바로 눈물짓던 서유진은 지금 눈물 대신 멍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상태이상 : 극심한 우울증, 극심한 불안장애, 극심한 신경쇠약, 극심한 분리불안.]

         

       ‘…젠장,’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유진아.”

         

       나는 제작진이 사라지고…, 서유진의 상태창을 보자마자 곧바로 그녀를 품에 안겼다.

         

       그리고는 약속대로 그녀의 따뜻하게 감싸 주었다.

         

       “무시해.”

         

       “…….”

         

       “어제 말했잖아, 네가 하지 않은 잘못에 힘들어할 필요 없다고. 저 사람들이 나쁜 거야, 그러니까 무시해.”

         

       “…….”

         

       서유진은 내 품에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힘없는 말투로 내게 물었다.

         

       “…근데 언니. 사람들은 모르잖아요.”

         

       “…뭐?”

         

       “…그 잘못들이 제가 한 건지 아닌지 사람들은 모르잖아요. 사람들은 그 잘못이 제가 한 건지 아닌지도 모른 채 저한테 손가락질할 텐데…, 그건 어떻게 해야 해요…?”

         

       “…….”

         

       서유진의 말에 나는 잠시 흠칫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천마환혹을 시전했다.

         

       지금 단순한 말 한마디로는 그녀를 위로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천마환혹 시전에 실패하셨습니다!]

         

       …나는 천마환혹까지 실패했다.

         

       실패한 이유 또한 바로 알았다.

         

       …그렇게 생각 안 하니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기는 개뿔.

         

       제작진들이 지좆대로 방송을 편집해서 내보내면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그것을 믿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돌을 던지겠지.

         

       그 악순환이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될 리가 없었다.

         

       믿고 있었던 천마환혹까지 실패로 끝이 나자 상황은 막막해졌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곳에는 나 말고 서유진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둘이나 더 있다는 것.

         

       “유진아…….”

         

       특히 마음 착한 이혜정은 자기가 당사자인 것처럼 눈물을 그렁그렁 맺은 채로 서유진을 뒤에서 안았다.

         

       원래 서유진은 내 가슴에 안겨 있는 채였기에 우리는 셋이서 안은 모습이 되었다.

         

       “언니도…, 언니도 제작진들 때문에 힘들었어…. 그런데 지금은 나름…, 괜찮아졌어. 유진이 너도…, 지금은 힘들지만 분명히 나중에 괜찮아질 때가 올 거야. 그러니까 버텨야 해….”

         

       이혜정은 자신의 경험과 함께 보다 진솔한 위로를 해주었다.

         

       나한나도…, 지금 서유진의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서유진의 머리에 손을 툭 하고 올린 채 말했다.

         

       “……결국 진실은 언제나 밝혀져. 그러니까 힘내.”

         

       평소 남한테 관심 없던 나한나를 포함해 3명이 위로를 하니 분위기는 금방 훈훈해졌다.

         

       하지만….

         

       [상태이상 : 극심한 우울증, 극심한 불안장애, 극심한 신경쇠약, 극심한 분리불안.]

         

       역시 이것만으로 철벽 같은 서유진의 상태이상은 바뀔 줄을 몰랐다.

         

       ‘하아…,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 내가 어떻게 서유진의 상태 이상을 풀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였다.

         

       “언니들…, 고마워요….”

         

       나와 이혜정 사이에 안겨 있던 서유진이 꾸물대더니…, 이내 빠져나와 우리에게 고맙다 말했다.

         

       그리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담겨 있었다.

         

       그녀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 자국이 있고…, 내 옷 가슴 부분은 젖어 있음에도…, 그녀는 울었단 티를 내고 싶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언니들 덕분에…, 그래도 조금 괜찮아졌어요.”

         

       [상태이상 : 극심한 우울증, 극심한 불안장애, 극심한 신경쇠약, 극심한 분리불안.]

         

       거짓말. 안 괜찮으면서.

         

       “언니들 말대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죠. 그러니까 버텨 볼게요. 근데…, 오늘은 조금 피곤하네요. …먼저 들어가 볼게요.”

         

       “…유진아, 같이 가자.”

         

       “…아, 네. 그러면 언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오늘 내내 항상 내 곁에 붙어 있으려만 하던 서유진은 그렇게 혼자 화장실에 갔다.

         

       그런 서유진은 정말로 괜찮다는 듯 우리에게 미소를 한 번 지어 보였지만…, 그 뒷모습은 참으로 쓸쓸해 보인데다….

         

       [상태이상 : 극심한 우울증, 극심한 불안장애, 극심한 신경쇠약, 극심한 분리불안.]

         

       여전히 상태이상도 화려했다.

         

       쿵.

         

       서유진이 연습실을 나가자마자 우리는 셋이서 속삭였다.

         

       “…괜찮다고 말하긴 했지만…, 역시 안 괜찮아 보이지?”

         

       “…네, 누가 봐도.”

         

       “아무래도 저희한테 괜찮은 척하고 싶었나 보네요.”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자기중심적에 금쪽이었던 서유진은 이제 철이 들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나는 그런 서유진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다가 이혜정과 나한나에게 말했다.

         

       “우리가…, 유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없을까요.”

         

       “…….”

         

       “…….”

         

       내 물음에 두 사람이 침묵했다.

         

       그러다 이혜정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혹시…, 나아아 출연자인 우리가 제작진들의 행패를 폭로라도….”

         

       “언니!”

         

       이에 나한나가 졸린 눈을 크게 뜨고 깜짝 놀란 채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는 구석에 있는 방치형 카메라를 손으로 가리켰다.

         

       지이잉-.

         

       여전히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그것에는…, 성능 좋은 마이크도 달려 있었다.

         

       “…….”

         

       “…….”

         

       나한나는 우리에게 그 사실을 상기 시켜주며 마이크 닿지 않을 구석으로 우리를 끌고 가 속삭였다.

         

       “…언니들. 데뷔 안 할 거예요? 폭로? 내부고발? 이 바닥은 그런 거에 예민해요. 그런 거 입에 담는 순간…, 여기에 다시는 발 못 붙여요.”

         

       “…….”

         

       …그래, 확실히 폭로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우리는 일개 연습생인데 비해 나아아 제작진 뒤에는 Nnet 방송국 그리고 그 뒤에는 대한민국 탑5안에 드는 굴지의 대기업이 있으니까.

         

       그들을 건드는 즉시 온갖 법적 조치와 함께 이 바닥에서 영원히 내쫓기리라.

         

       이혜정도 나한나의 말을 듣고 그것을 깨달았는지 이내 입을 닫았다.

         

       “하아…, 그러면 뭘 어떻게 해야….”

         

       “후우….”

         

       그리고는 다 같이 한숨을 내쉬며 침묵을 지켰다.

         

       그때였다.

         

       “…근데, 언니들. 얘 왜 안 와요?”

         

       “……!”

         

       스윽-.

         

       나는 나한나의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시계를 보았다.

         

       벌써 5분이 지났다.

         

       그냥 잠시 화장실 다녀온다기엔 긴 시간이었다.

         

       ‘미친.’

         

       나는 그 순간 뒷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안일했다.

         

       극심한 우울증, 극심한 불안장애 등등 어마어마한 상태이상을 달고 있는 서유진을 혼자 내버려 두다니.

         

       이혜정과 나한나도 나처럼 쎄함을 느낀 건지…,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그대로 우선 서유진이 간다 했던 화장실부터 달려갔다.

         

       그리고….

         

       “흐으윽…, 흐어어엉…, 후으으으….”

         

       “…….”

         

       불 켜져 있는 화장실에서…, 흘러나오는 구슬픈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생각하던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아닌 듯했지만…, 그렇다고 다행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셋은 서유진이 울고 있는 화장실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정말 개 같은 기분이었다.

         

         

         

         

       **

       

         

         

         

       그날 밤.

         

       나는 서유진이 말하기 전에 같이 자자고 청했고…, 나와 서유진은 한 침대에서 꼬옥 안은 채 밤을 보냈다.

         

       하지만….

         

       “으음….”

         

       어젯밤 겪은 일이 일인지라…, 나는 쉽게 밤잠을 설쳤고 새벽에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어?”

         

       일찍 일어난 내 옆에는 서유진이 없었다.

         

       아직 집합시간이 한참이나 남은 이른 아침이었다. 식당도 아직 열지 않았을 시간인데…, 도대체 어디를 갔단 말인가.

         

       나는 어제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대충 겉옷을 챙기고 서유진을 찾아 나섰다.

         

       “유진아…, 유진아…!”

         

       물가에 내놓은 아이가 갑자기 사라졌다면 이런 심정일까.

         

       고요한 숙소.

         

       아직 거의 모든 참가자들이 자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서유진을 부르며 건물 안을 뛰었다.

         

       그리고….

         

       “…언니?”

         

       “…유진아.”

         

       …다행히 나는 금방 서유진을 찾을 수 있었다.

         

       “…아니, 왜 더 안 주무시고.”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서유진은 나아아에서 지급하는 트레이닝 단체복 대신 올 때 입고 왔던 사복을 단정히 입은 채 1층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해 물으니 서유진이 힘없는 미소와 함께 답했다.

         

       “언니…, 저…. 그냥 하차하려고요.”

         

       “……!”

         

       물론 그녀의 눈에는 금방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더 이상 못할 것 같아서요…. 앞으로 제작진들이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겠고…, 또….”

         

       “…….”

         

       “제가 있으면 언니한테도 폐만 될 거예요….”

         

       그리 말하는 서유진은 손을 떨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포기하지 마라, 조금 더 버텨보라.

         

       이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여전히 대중들에게 욕을 먹고 있고 제작진이 그녀를 아예 묻어 버리겠다고 단언한 그 시점에서….

         

       하차를 하는 것이…, 서유진에게 있어 가장 아프지 않은 선택이라는 것을….

         

       나도 내심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굳은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오히려 서유진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언니, 그런 표정 짓지 마요. 저 아이돌 포기 안 할 거예요.”

         

       “…….”

         

       “나중에…, 저희 둘 다 데뷔하면…, 그때 또 만나요.”

         

       서유진은 희망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그녀 또한 모를리 없었다.

         

       지금 나아아에서 하차하면…, 지금의 오명을 모두 안은 채 떠난다면….

         

       아이돌로 데뷔하기 힘들다는 것을. 데뷔한다 하더라도 더 큰 상처와 함께 떠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서유진은 하차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지난 밤사이에 얼마나 고민했을까,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에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렇게 말했다.

         

       “…같이 가자, 유진아. 네 옆에 있어 줄게.”

         

       제작진에게 하차 의사를 밝히는 서유진 옆에 같이 서 있는 것.

         

       내가 서유진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었다.

         

       “…고마워요, 언니.”

         

       그렇게 서유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는 함께 제작진들의 본부로 향했다.

         

       본부라 해봤자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나아아 숙소 1층 구석에…, 제작진들이 임시로 사용하는 숙소 겸 회의실이었다.

         

       제작진들은 거의 매일 그곳에서 밤을 새니…, 이른 아침이어도 분명 깨어 있는 이들이 있을 터.

         

       우리는 그곳으로 터벅터벅 걸어갔고 역시 제작진 본부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러면 문 열게, 유진아.”

         

       “…네.”

         

       그리고 이내 내가 마음을 다잡고 문을 연 순간….

         

       “신PD님!!!!”

         

       “……!”

         

       …안에서 아침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텐션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시, 신PD님 어디 가셨어, PD님!!”

         

       “부, 분명히 조금 잔다고 나가셨는데…! 어디 계신지 모르겠어요….”

         

       “찾아!! 빨리 찾아-!! 다, 당장 법무팀에도 연락 넣고!! 나, 남은 사람들은 커뮤니티든 기사든 인터넷 반응들 다 끌어모아!”

         

       본부 안에서 제작진들은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서류를 휘날리며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있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이지…?”

         

       “그러게요…?”

         

       나와 서유진은 예상외의 광경에 그저 멍하니 지켜보다가….

         

       “예, 예린 양? 그리고 유진 양? 여기는 어쩐 일로…!”

         

       “저…,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가 바빠서요! 나중에…! 나중에 오세요, 예?”

         

       …우리를 내쫓는 제작진들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방으로 돌아가며 나와 서유진은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무슨 큰일이 있나 본데.”

         

       “얘기를 들어 보니까 인터넷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기도하고….”

         

       “인터넷?”

         

       나와 서유진은 그 길로 우리 연습실 안에 있는 태블릿 pc를 찾아 나섰다.

         

       헨드폰도 압수당하고 컴퓨터도 없는 이곳에서 그것이 유일하게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창구였으니까.

         

       그리고 곧…, 제작진들이 비상에 빠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건….”

         

       “…….”

         

       그것은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었다.

         

       새벽…,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고 있을 시간에 올라온 그 글은….

         

       [나아아 출연했던 참가자입니다. 아이돌 그만두는 김에 양심 고백 하나 하겠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는 것과 동시에 수십 개의 인터넷 기사를 양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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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야마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저는 토야마님의 후원 메세지를 보고 그만 ‘도키’해버렸습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하고 늘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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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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