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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9

       

       

       

       

       

       아티팩트를 사용한 마법이 먹히기는커녕 완벽하게 박살이 나자, 우두머리로 보이는 시프가 외쳤다.

       

       “젠장…! 독! 독침을 써라! 극독도 아끼지 말고 뿌려!”

       “한 방에 갈 만한 극독은 저희 아지트엔 없습니다, 대장!”

       “제기랄, 나도 알아! 있는 척이라도 하란 말이야! 눈치 밥 말아 먹었냐?”

       “죄송합니다!”

       “마비독이라도 써! 한 방이면 저놈들도 눕는다!”

       “옙!”

       

       그가 명령하자, 한쪽에 엄폐하고 있던 시프 길드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들은 근접 전투원들과는 다르게 왠지 뭔가를 많이 숨기고 있을 법한 치렁치렁한 소매가 달린 옷을 입고 있었다. 

       

       스윽.

       

       그들은 소매에 일제히 손을 넣더니 손가락 사이 사이에 독침을 끼운 채 손을 뺐다.

       

       “이거나 먹어라!”

       

       하지만 그들이 손을 뿌리기 전에, 아르가 선수를 쳤다.

       

       “쀼—.”

       “—프로스트.”

       

       영창과 함께 독침을 뿌리려던 놈들의 손이 독침과 함께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악! 이건 또 뭐야!”

       “강마비독이라 오래 잡고 있으면 피부로 스며들…. 꺼억.”

       “꺼어억.”

       

       놈들은 마비독의 효과로 하나둘씩 풀썩풀썩 쓰러졌다.

       

       ‘오호라. 프로스트 효과 좋은데.’

       

       쀼로스트, 아니 프로스트는 언뜻 보기에 1서클 마법인 ‘아이스’와 비슷해 보이지만 실상은 4서클이나 되는 꽤나 고난도의 마법이다. 

       

       ‘아이스는 단순히 얼음을 소환하거나, 얼린다고 해도 개울이나 늪처럼 비교적 물이 많은 지대를 얼리는 데에 특화되어 있지만, 프로스트는 대상 자체를 얼려 버리기 때문에 제약이 별로 없지.’

       

       단순한 아이스였다면 이렇게 거리가 먼 거리에서 적 하나 하나를 단독으로 얼리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그만큼 마나 소모도 크고 마법의 구조도 복잡하지만.’

       

       특히 대상이 움직이는 생명체일 경우 얼리는 범위가 늘어날수록 엄청난 술식 연산이 필요할 터.

       

       인간 정도 되는 크기의 생명체를 만약 통째로 꽁꽁 얼리려고 한다면, 아무리 아르라도 꽤나 부담스러울 정도의 마나가 소모될 거다. 

       

       그러니 지금처럼 시프들의 손만을 얼려 최소한의 마나로 동시에 여러 명의 움직임을 봉쇄해 버린 건 아르의 센스가 좋았던 거라고 볼 수 있었다. 

       

       ‘역시 우리 아르야.’

       

       우리 귀여운 마법 천재는 뭐가 달라도 다르단 말이지.

       

       후후.

       

       “이, 이런 젠장할!”

       

       암기暗器가 통하지 않자, 시프들은 더더욱 있는 아티팩트 없는 아티팩트를 죄다 동원해 우리의 마법을 저지하려 했다. 

       

       “전개, 파이어 애로우!”

       “쀼—.”

       “—파이어 애로우.”

       “전개, 아이스 니들!”

       “쀼—.”

       “—아이스 니들.”

       

       공중에서 격돌한 파이어 애로우는 간단히 상대의 마법에 이어 적을 꿰뚫었고.

       

       차차차차창!

       

       적의 아티팩트에서 소환된 아이스 니들보다 두 배는 많은 아이스 니들은 물량전을 압도하고 아티팩트를 아직 사용하지도 못한 시프들까지 무력화시켰다. 

       

       “나이스!”

       “형님께서 원거리를 도맡아 주신다!”

       “아티팩트도 별거 없구만!”

       “걱정하지 말고 우린 정면에 집중해!”

       “하아아압!”

       

       마법을 저장해 둔 아티팩트는 거기 들어 있는 게 아무리 기초적인 마법이라고 해도 가격이 상당한 물품이다.

       

       검사나 암살자, 심지어는 마력이 거의 없는 일반인이라고 할지라도 시동어만 입력하면 거기에 담긴 마법을 발동할 수 있으니까. 

       

       그런 비싼 물건이 한두 개도 아니고 여러 개가 한꺼번에 등장해 긴장을 하고 있던 용병들은, 나와 아르가 아티팩트에서 나온 마법들을 전부 시원하게 깨 부숴 버리자 사기가 충천해 시프들을 향해 자신 있게 달려들었다.

       

       “커억!”

       “끄아아악!”

       

       용병들이 단숨에 밀어 붙이며 전진하기 시작하자, 정면 승부에서는 힘이 달릴 수밖에 없는 시프들의 전선은 점점 밀려나기 시작했다. 

       

       “좋아. 이대로만 가자, 아르야!”

       “쀼우웃!”

       

       내 어깨에 올라탄 아르가 주먹을 꼬옥 쥐며 포효했다. 

       

       아르는 어디선가 또 마법이 시전되는 기미가 보이면 곧바로 대응해 주겠다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아지트 내부를 꼼꼼히 훑어 보았다. 

       

       ‘귀여워….’

       

       몸집은 전보다 커 가지고 나름 사나운 드래곤처럼 분위기를 잡는데, 내 눈에는 그저 아직 귀여운 해츨링이었다. 

       

       “잘하고 있어, 아르.”

       

       그렇게 흐뭇한 얼굴로 아르를 칭찬해 주던 중.

       

       스륵.

       

       “회피 태세.”

       

       본능적으로 살기를 느낀 나는 즉시 회피 태세를 발동해 뒤로 물러나며 한 손을 들어 아르가 어깨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감쌌다. 

       

       휘익!

       

       “이런. 마법만 좀 쓸 줄 아는 코흘리개인가 싶었더니 꽤나 감이 좋군.”

       

       날카로운 단검이 허공을 긋자, 얼굴에 복면을 두른 시프가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아까….”

       

       분명 조금전까지만 해도 우두머리 옆에서 독침을 꺼내다가 쓰러진 줄 알았는데, 어느새 지근거리에서 나타났다. 

       

       “쓰러진 척을 했었구나.”

       “눈치 하나는 빠르군.”

       

       프로스트로 손이 얼었지만, 독이 피부에 스며들기 전에 마력을 흘려 보내 재빨리 얼음을 깨 버리고 독침을 놓은 뒤 쓰러진 척을 한 모양.

       그리고 시프들의 주특기인 은신을 통해 돌아서 접근한 모양이었다. 

       

       ‘시도 자체는 좋았지.’

       

       전장에서 암살자들이 가장 빛을 발할 때가 바로 화력이 뛰어난 마법사들을 후방에서 암살하는 것이니까. 

       

       성공만 한다면 적의 사기를 대폭 깎을 수 있고, 전방의 화력 지원이 한 번에 뚝 끊기게 되면 전방의 전선도 다시 밀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난 마법사가 아니거든.’

       

       나는 피식 웃으며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아르야, 후드 들어가 있어.”

       “쀼우.”

       

       어깨에 올라타 있던 아르는 내 목을 끌어안으며 점프해 익숙한 몸짓으로 내 후드 안에 쏙 들어왔다. 

       

       “마법사 놈이 어설프게 단검질을!”

       

       내가 단검을 꺼내는 모습을 본 시프의 눈이 불쾌감으로 물들었다. 

       시프는 단숨에 달려들어 내 심장을 향해 단검을 찔러 넣었다.

       

       채앵!

       

       “…무슨!”

       

       단검의 가드 부분을 정확히 빗겨 쳐 흘려내자, 내 손놀림이 심상치 않음을 그제야 깨달은 놈의 눈이 커졌다. 

       

       “이래 봬도 꽤 열심히 수련했거든.”

       

       나는 상대가 방심한 탓에 중심이 흐트러진 틈을 놓치지 않고 그를 몰아붙였다. 

       

       챙! 채챙!

       

       “이런 애송이가!”

       

       하지만 시프도 자세를 가다듬고 자신의 템포를 찾아 가기 시작하자, 생각 외로 강한 역습이 들어왔고.

       

       “크윽.”

       

       내가 슬슬 밀리는 모습을 보이자 시프의 안광이 번뜩였다. 

       

       “쀼우…!”

       

       후드 안에 있던 아르가 걱정스러운 듯 고개를 내밀고 시프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을 뿐이었다.

       

       “크크. 걱정 마라. 네놈 주인을 죽이고 너도 곧….”

       

       그리고 그때.

       

       푸확.

       

       “커어억…!”

       

       시프는 폐부에서 느껴진 격통에 충혈된 눈으로 아래쪽을 내려다 보았다.

       거기에는 어느새 옆에서 소환되어 그를 꿰뚫은 파이어 애로우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미, 미친…. 이건 어, 언제…. 영창은 듣지도…. 못했는데….”

       

       그는 자신의 가슴에 박힌 파이어 애로우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숨이 끊어지기 전에 속삭여 진실을 알려 주었다. 

       

       “당연하지. 영창은 내가 한 게 아니거든.”

       

       나를 걱정하는 듯 냈던 ‘쀼우…!’ 소리가 영창이었다는 것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화르르륵.

       

       그 전에 놈의 몸이 불타 바닥에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혀, 형님! 괜찮으십니까!”

       “어느 틈에…!”

       “죄송합니다, 형님이 너무 압도적인 화력을 보여 주시는 바람에 분위기를 타서 전부 돌격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후방에 있던 용병 몇몇이 달려와 나의 안부를 물었다. 

       

       “괜찮아요. 저도 단검술 할 줄 아는데요, 뭐. 덕분에 앞쪽은 더 빨리 정리됐으니….”

       “역시 형님…!”

       “대단하십니다! 마법에 단검술까지…!”

       

       전세는 이미 아르의 마법 폭격이 이어졌을 때 기운 지 오래였고, 방금 시프의 암살이 실패함으로써 상황은 거의 종료된 거나 다름없었다. 

       

       “레온 씨이이이! 찾았어요! 아래에 비밀 창고가 있어요!”

       

       내가 싸우는 동안 우두머리를 제압하고 아지트를 샅샅이 뒤진 실비아가 손을 흔들었다. 

       

       나는 해맑은 웃음을 짓는 실비아에게 엄지를 치켜 들어 보였다. 

       

       ***

       

       시프 길드의 아지트를 박살 낸 후, 우두머리를 포함해 목숨이 붙어 있는 시프들은 용병 길드에서 포로로 붙잡아 갔다. 

       

       길드장은 나를 따로 불러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돈도, 성유물 조각도 온전히 되찾았습니다.

       -하하, 다행입니다.

       -보수는 지금 바로 챙겨 드릴까요? 길드로 오시면….

       -괜찮아요. 시간도 새벽인데 잠 좀 자고 일어나서 처리하죠.

       -알겠습니다!

       

       나와 아르, 실비아는 용병 길드에 잡다한 뒷처리를 맡기고 곧바로 귀가했다. 

       

       밤중에 창고에서 기척을 숨기고 잠입해 있었던 데다, 좁고 어두컴컴한 땅굴을 헤치고 한참을 이동했더니 삭신이 쑤셔 도저히 현장에 머무를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여관으로 돌아와 목욕으로 피로를 풀고 나오니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수건으로 말끔히 몸을 닦고 옷도 뽀송하게 갈아입은 나는 기지개를 켰다. 

       

       ‘아, 보람찼다.’

       

       지금 시점에 일어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던 사건이 갑자기 일어났지만 어쨌든 잘 해결했다. 

       

       물론 스토리에 발생한 변수가 뭔지 정확히 확인하려면 날이 밝고 시프 놈들을 심문해 봐야겠지만, 일단 지금은 휴식을 즐길 때였다.

       

       아르도 자신이 숨어 있다가 범인을 놀래켜 잡고 마법으로 큰 활약도 한 것에 대해 아주 뿌듯해하는 것 같았으니, 이 정도면 꽤나 보람찬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음? 근데 아르가 어디 갔지?”

       

       한 가지 부작용이 있었다면, 아르가 오늘 활약을 너무 마음에 들어한 나머지 놀래켜 주기에 재미를 들인 모양이라는 것이었다. 

       

       ‘아까 목욕탕 들어갈 때도 먼저 쪼르르 달려가 있다가 와앙! 하고 나타나더니….’

       

       지금도 몸을 말리자마자 사라진 걸 보니 분명….

       

       ‘아, 저깄다.’

       

       문밖 복도에 놓인 물품 박스 뒤쪽.

       아르의 통통한 꼬리가 삐져나온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푸흣.’

       

       나는 짐짓 모르는 척, 천천히 복도를 지나갔고.

       물품 박스를 지나갈 때쯤 기대에 찬 꼬리가 씰룩이더니, 별안간 아르가 내 앞에 짠 하고 나타났다.

       

       “쿠룽!”

       “으앗! 깜짝이야!”

       

       내가 놀라서 뒷걸음질을 치자, 아르의 표정이 화악 밝아졌다. 

       

       “어이구, 여기 있었어? 아르.”

       “쀼우웃!”

       

       아르는 활짝 웃으며 내게 점프했고, 나는 그런 아르를 받아 들어 엉덩이를 토닥여 주며 방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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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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