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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9

       이한은 레비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딱히 다른 곳에 데리고 가기보단, 자신의 근거지가 가장 안전할 테니까.

       또한 데리고 온 가장 큰 이유로는.

         

       “홍차라도 드시면서 대화하세요!”

       “가, 감사해요, 시녀님.”

       “별말씀을요! 편히 있다 가세요!!”

       “…네에.”

       “헤헤.”

         

       보는 이로 하여금 활력을 주는 시녀, 레이라 윈터의 존재.

       그녀가 있는 것만으로도 레비가 마음에 안도감이 들리라 판단한 것이다.

         

       레이라는 특유의 인간 비타민과 같은 활력을 내뿜으며 도도도 뒷걸음질 쳤다.

       거기다 뒷걸음질 치며 ‘기사님, 힘내세요!’ 라고 입을 벙긋거리며 윙크까지.

         

       저러한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건 오러 유저도 따라하지 못 할 능력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레, 레이라 시녀님은 대단하신 것 같아요. 항상 볼 때마다 긍정적이시고, 타인의 마음을 읽으시는 것 같아요.”

       “고평가가 심하군, 시녀님은 그저 생각이 없이 마냥 해맑을 뿐이란 게 내 평가다만.”

       “그건…, 그, 그럴지도….”

         

       레비는 레이라의 긍정 에너지를 광합성 하듯 생기를 되찾았다.

       긍정적 신호가 아닐 수 없다.

         

       뭐.

         

       “아이코!”

         

       …저런 면까지 흡수해선 안 될 테지만.

       

       뒷걸음질 치다가 기어이 어이쿠, 소리와 함께 넘어지는 레이라였고, 우당탕 소리가 나며 이한이 최근 취미로 만들던 테이블 하나가 망가진다.

       다른 이였으면 물건보다 그녀가 다칠까 걱정할 법도 하지만, 이한은 크게 걱정이 들지 않았다.

         

       “어, 어떻게?! 기, 기사님! 이거 망가졌어요, 히잉….”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니, 그냥 놔두십시오. 다친 곳은 없습니까?”

       “?”

       “…몸이 튼튼하니 다칠 일이었다는 자각도 없구먼.”

       “에헤헤.”

       “…그냥 그렇게 항상 건강하게만 있으십시오. 저는 이제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렵니다.”

       “헤헤, 네엥!”

         

       이제 익숙한 듯 무덤덤한 걱정을 보내는 이한과 골드 리트리버마냥 꼬리를 흔들듯 해맑은 시녀였고, 이를 보던 소녀는.

         

       쿠흡!

         

       “…….”

       “죄, 죄송해요! 웃으려고 웃은 게 아니라….”

       “아니, 보기 좋군. 웃어라. 사람이 웃고 싶을 때 웃어야 속병도 안 나지.”

       “그, 그게….”

       “이제 울 건 다 울었나?”

       “!!?”

       “하하, 놀리는 맛이 있어.”

       “너, 너무하세요….”

         

       얼굴이 붉어지며 한껏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레비였고, 이한은 자꾸만 웃어라 종용했다.

         

       부디 마음껏 말이다.

         

       ‘이제야 좀 생기가 도네.’

         

       역시 사람은 힘들 때 실컷 울어야 한다.

       그래야 속병이 좀 덜 나지.

         

       ‘다행이다.’

         

       동시에 안도하다.

       처음 발견했을 때만 해도 울상, 아니 죽을상을 짓던 소녀였다.

       보고 있노라면 가엾고도 안타까워 도무지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었라.

       자칫, 안 좋은 선택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 정도로 오늘 소녀의 상태는 심각했었다.

         

       ‘지금 보내면 절대 안 된다.’

         

       전생 시절, 부사관으로 지내며 그가 가장 많이 겪은 괴로운 기억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자살시도 사건이었다.

         

       병사들끼리의 집단 따돌림, 혹은 구타.

       군부대에 적응하지 못하면 생긴 우울증.

       2년간 자유를 빼앗긴 박탈감.

         

       이러한 여러 요인으로 스트레스가 한계치를 넘어서고 기어이 극단적인 선택지를 고르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한은 한때 그런 이들을 캐어 해주는 일을 했었다.

         

       이 또한 불합리하게 일을 맡은 격이었지만, 이한은 군대에서 처음으로 억지로 맡은 일을 열정을 가지고 임하였다.

         

       제 앞에서 죽는 이들을 보고 싶지 않았고, 조금만 더 버텨내어 사회로 복귀하길 바라는 마음에.

         

       그 덕분에 이한이 맡은 부대에선 그러한 불상사가 다소 없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간만에 멘탈 케어군.’

         

       유난히 심각한 증세를 보이는 소녀가 있다.

       아슬아슬하다.

       언제 꺼질지 모를 촛불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는 아끼는 제자가 이대로 무력하게 모든 걸 포기하는 걸 지켜보고 싶지 않은 바였다.

         

       “레비.”

       “네? 아, 네에!”

       “뭘 그렇게 놀라지?”

       “사, 사부님이 제 이름을 불러준 일이 드문 것 같아서요….”

       “어색한가 보지? 그럼 곰순이라고 불러주마.”

       “그, 그냥 레비라고 불러주셔도 돼요….”

       “그래? 그럼 편히 부르도록 하지.”

       “네에….”

         

       드물게 제 이름을 정확히 부를 뿐만 아니라 상냥하기까지 해서일까.

       레비는 당혹스러움이 묻어나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아마 이는 마냥 이름을 불려서가 아니라, 타인이 이토록 근거리에서 이름을 부르는 경험이 처음이기에 부끄러운 걸 거다.

         

       정말 보기 드문 순수한 아이다.

         

       말 그대로 나이만 성인일 뿐, 아직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소녀’가 아닐까?

         

       …반대로 말하자면, 그렇기에 위태롭다.

         

       아직은 어른이 되지 못한, 사회에 보호를 받아야 하는 불안한 상태이기에 언제라도 깨질 유리잔과 같은 바.

         

       그렇기에 이한은 조심스럽지만,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다가갔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대답하기 힘들다면, ‘예, 아니오.’ 등으로만 답해도 좋다. 아니면 고개만 가볍게 끄덕여도 좋고, 내가 알아서 잘 해석하여 알아들을 테니까.”

       “아, 아니 그러실 필요는….”

       “너의 자퇴는 네 본심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강제로 널 자퇴하게 만들려는 건가.”

       “!!!”

       “봐라, 벌써 대답하기 힘겨워하지 않나.”

       “…….”

       “좋다, 고개도 끄덕일 필요 없다. 그냥 듣고만 있도록 해라.”

         

       이한은 레이라가 내온 홍차로 목을 축였다.

       본격적으로 말을 내뱉을 생각이란 듯.

         

       “내가 너에 대해 모든 걸 안다고 자부할 수 없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안다. 넌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함부로 배움을 포기하는 애가 아니란 거다.”

       “…….”

       “무슨 사정이 있다는 걸 안다. 혼자서 끙끙 앓으며 고민한 끝에 내놓은 결론이 아카데미 자퇴임도 안다. 하지만 말이다. 참기 힘든데도 혼자서 고통을 참는 것은 스스로를 고문하는 행위에 불과함을 알아야 한다.”

       “…저, 저는….”

       “다시금 말하지만 말하는 것이 힘겹다면 얘기하지 않아도 좋다. 난 단지 네가 혼자서 괴로워하는 것 같아 네 본심을 알고 싶을 뿐이니까.”

       “…….”

       “그래도 인생 선배로서 한 가지 조언해주자면, 때론 남에게 털어 놓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경우가 있더구나.”

       “……사부님은.”

       “응?”

       “…어울리지 않게 말솜씨가 유려하시네요.”

       “……칭찬이냐?”

       “네에.”

         

       더할 나위 없이.

         

       * * *

         

       폴트 가는 몇대 전만 해도 명망 높은 기사를 많이 배출해낸 가문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수십 년 전 브리튼과의 전란에서 전전대 가주를 비롯한 기사들이 사망하며 투기법과 검술 등을 대부분 분실하고 말았다 전해진다.

         

       기록으로 저장해놓는 것이 아닌, 전통 방식 그대로 구전을 통해서만 전수하는 수법의 폐해라고 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기사의 명맥이 사실상 끊긴 것과 다름없으니….

         

       하여 폴트 가는 기사 가문이란 이름을 쓰기도 민망한 처지가 되었다.

       기사의 가문은 그 무력과 명예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바.

       한데 그 무력을 잃어버렸으니 어찌 기사 가문이라 주장할 수 있을까?

         

       만약 전쟁 참전 영웅이란 칭호와, 작은 장원마저 없었다면 폴트 가는 가문으로서 존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남은 명예와 작위 등을 가지고 폴트 가문의 전대 가주는.

         

       – 우린 다시 일어설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고 말 것이다!!

         

       기사 명문가란 명예를 되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전해진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정말 부질없는 노력임을 모른 채.

         

       만약이지만, 폴트 가가 현실을 인정하고. 기사 가문으로선 끝났음을 인정했다면 다른 길이 열렸을지도 모를 것이다.

       문관이든, 혹은 다른 쪽으로 파고들었어도 기사일 적보단 못하지만, 안정적인 삶을 구가했을지도 모르니까.

         

       한데.

         

       “투기법이란 건 수대에 이르러 개량 끝에 내려오는 비기이며, 검술의 경우는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져오며, 검사들의 몸에 가장 이상적이게 체화된 보물이지요. 한데 그런 비기와 보물을 복구한다? 만약 조부님이 로엔 공자 같은 천재였다면 모를 테지만, 조부님의 자질은 무난했죠. 그리고, 무난한 자질론 절대 투기법과 검술을 복구할 수 없고요.”

         

       있는 재산 없는 재산을 다 모아 가문의 투기법과 검술을 복구하려 했지만, 그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고.

       그나마 남은 기록을 통해 복구하려고 해도, 자문을 해줄 이들이 없으니 그게 쉬울 턱이 있나.

         

       결국.

         

       “-파산했죠.”

         

       그래, 폴트 가는 파산했다.

         

       자작가였던 폴트 가는 작위마저 팔아넘기며 귀족원에 가까스로 이름을 올렸을 뿐인 명예 귀족으로 남았을 뿐이고.

       재산은 모두 탕진되어, 외가에 빌붙어 자그마한 주택에서 살 뿐.

       더는 귀족으로선 재기불능인 상태라 해도 타당하리라.

         

       – 이, 이럴 순 없다, 이럴 순-!

         

       현실을 믿지 못한, 아니 자신이 무능함을 증명할 뿐인 조부는 급속도록 노쇠하며 세상을 타계.

         

       …그리고 이 정도 됐으면 절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현실을 인정하고 귀족 작위를 반납해야 하는 게 옳은 수순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게 그렇다.

       자긴 다를 줄 알며, 저가 똑똑한 줄 알지만, 대부분.

         

       – 아버님은 실패했지만, 난 다르다. 기필코 가문을 일으키겠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더라.

         

       레비의 부친.

       현 폴트 가의 가주, 아니 가주란 이름도 민망한 남자는 그렇게 꿈을 꾸었다.

       기사가 되리란 꿈을 말이다.

         

       그렇게 부친, 레이놀 폴트는.

         

       – 사업이다, 사업을 통해 일단 돈을 버는 거다!

         

       – 일단 돈만 있으면…!

         

       – 이거다, 이걸 봐라 레비! 전설적인 기사의 투기법이라더구나! 큰 돈을 주고 구할 수 있었단다!

         

       …레이놀은 답이 없는 인간이었다.

         

       사업을 하면 돈을 벌어오는 게 아닌 빚을 만들어 오고.

       투자를 받는다더니, 도리어 옷을 빼앗기고 오고.

       투기법을 사왔다는데, 삼류보다 못한 저열한 투기법에 불과하고…!

         

       그야말로 환장할 인간이 아닐 수 없었다.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 어른.

       그것이 레이놀 폴트를 평가하는 정확한 문장일 터.

         

       그리고 이렇게 되면 정해진 수순이랄까?

         

       – 돈 갚아, 이 인간아!

       – 어이, 귀족 나리, 지금 우리랑 장난해?

       – 대체 우리가 언제까지 기다려줘야 하냐고!!

         

       환장할 인간의 실수로 인해 고생하는 건 결국 가족이다.

       이러한 이치는 어느 세상이나 동일한 바였다.

         

       “어머님은 이미 쓰러진 지 오래세요. 동생은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학술원 기숙사에 있어요. 외가에서 도움을 준 거지요. 하지만, 그다지 긍정적이진 않죠.”

       “차라리 완전히 외가에 의탁하지 그랬나.”

       “그럴 수는 없었어요. 외가의 형편도 넉넉한 게 아니고. 아버님 때문에 피해를 줄 수는 없으니까요.”

       “…….”

       “후우, 그래서-.”

         

       이쯤 되면 솔직히, 아니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정신을 차릴 법도 하다.

       먹여 살릴 자식이 있지 않은가?

       돈을 버는 건 생각도 안 한다.

       단지 가만히 있으면 좋으련만.

         

       – 레, 레비, 호, 혹시 결혼하지 않겠니?

         

       그는 혼처를 물어왔다.

         

       그리고 레비는 보았다.

       그의 손목에 있는 금팔찌와 휘황찬란한 장식으로 꾸며진 검을 말이다.

         

       – 아.

         

       자신은 팔린 것이었다.

         

       “-속상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어요. 금붙이가 생겼다는 건, 이제 다른 가족들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생활환경에서 살 수 있다는 거니까요.”

       “…….”

       “또, 좋은 혼처인 건 맞아요. 비록 후작님의 연세가 좀 높으시지만, 그 트리스탄이니까요. 아무렴, 나쁘지 않지요. 귀족 영애들이 좋은 혼처를 알아보려고 혈안인 것에 반해, 전….”

       “…….”

       “전…, 으음, 왤까요? 사부님, 왜 제 입에서 괜찮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걸까요?”

       “…….”

       “그렇죠, 왜 이 간단한 말을 못 하는 걸까요, 사부님?”

         

       ……그는 레비의 나지막한 물음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저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소녀도 알고 있겠지, 하여 그는 일부러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날개가 꺾인 채 발목이 묶이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를, 그걸 말해주는 것은-.

         

       ‘…너무 잔인하잖아.’

         

       *

       *

       *

         

       “…….”

         

       이한은 잠시 레비를 레이라에게 맡겨 놓은 채 뒷마당 절벽으로 향했다.

         

       인적이 드문 적막한 장소였다.

         

       답답해서 여기까지 온 걸까?

       아니다.

         

       아니면 분노가 차올라서?

       그것도 아니다.

         

       그가 근처에 아무도 없는 곳까지 온 이유는.

         

       “궁금한 거 좀 물어보자.”

         

       “-예에.”

         

       저벅.

         

       녀석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이한이 허공을 향해 물음을 던지자마자 후욱, 하고 회색머리 소년이 나타났다.

       이미 근처에 있음을 이한도 알았고, 데릭은 저가 여기 대기하고 있으면 그가 자신을 부를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무엇을 궁금해 하고 있을지 대충 예상이 가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입에서 나온 물음은.

         

       “‘원작’에서 쟤는 어떻게 되냐?”

       “…….”

       “으음, 모른 척해도 상관은 없다. 굳이 답을 재촉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갑자기 좀 궁금해지더라.”

       “하하….”

         

       이제 아예 숨길 마음도 포기한 거구나.

         

       데릭은 그런 혼잣말과 함께 웃음을 내었다.

       그러나 데릭은 불만이 없었다.

         

       그가 궁금해 하는 것들이 지극히 ‘인간적인 것들’임을 아니까.

         

       하여 그는.

         

       “이, 이건, 어디까지나 혼잣말에 불과하다는 걸 알아주셔야 합니다. 저, 전 그냥 혼잣말을 하는 거예요.”

       “…그래, 그런 걸로 하마.”

       “크흠.”

         

       혼잣말을, [스포일러]를 해주기로 했다.

         

         

       “─후작은 독을 먹고 사경을 헤매게 됩니다. 그리고 레비 폴트는 주범으로 몰리고요.”

         

         

       “…….”

         

       “계, 계속 들으시겠습니까?”

         

       “으음……!”

         

       이한은 간만에 고향 음식이 그리워졌다.

         

       훅 치고 들어오는 매운맛 때문인지, 탄산보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마시고 싶어졌기에.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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