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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뭔가 쭈굴거리는 모습이 된 아들과 아들의 파트너가 사라지고.

       

        나는 인간들의 안내를 받으며 지하 주차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변변찮은 곳으로 모셔서 죄송합니다. 안타깝게도 멸천룡 그랑 라그나님을 모실만한 곳이 이런 곳밖에는 없어서 말이지요.”

       

        = 괜찮다. 상관하지 않으니.

       

        지하 주차장.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와보는 공간이다.

        이 안에 있던 자동차들은 전부 빼내었는지, 텅 빈 주차장 안에 주저앉자 김두식이라는 이름의 인간이 입을 열었다.

       

        “멸천룡 그랑 라그나시여. 저희가 당신께 여쭈어보고 싶은 것은 하나입니다.”

       

        = 무엇이냐.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무엇을 바라시는 것입니까?”

       

        김두식의 질문에 잠시 고민을 해 본다.

        내가 이들에게 바라는 것이라…….

       

        = 소통이다.

       

        “소통…….”

       

        = 내가 원하는 것은 나의 말을 너희가 들어 주고, 너희 역시 나에게 거리낌 없이 말을 하는 것.

       

        그래서 내가 인터넷 방송하고, 조금 귀찮아도 이렇게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니던가.

        비록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대충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김두식을 바라보았다.

       

        = 대답이 되었느냐?

       

        “네. 그렇습니다.”

       

        = 그래.

       

        대답이 되었다니 다행이군.

        나는 몸을 돌려 공간을 열…….

       

        “자, 잠시만!”

       

        = 음?

       

        왜 부르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김두식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나에게 말했다.

       

        “멸천룡 그랑 라그나님! 이렇게 오셨는데, 혹시 좀 더 대화하실 수 없으신지요!”

       

        = 대화?

       

        “그렇습니다! 들어 보니까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신 것 같은데,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필사적으로 나에게 소리치는 김두식.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인간들 역시 말만 안 했다 뿐이지, 열심히 김두식을 응원하는 눈치다.

        으음…… 어떻게 할까…….

       

        = ……그래. 그럼 한 번 이야기를 들어 볼까?

       

        털썩!

       

        나는 돌아가려던 것을 멈추고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왕 나온 거, 할 거 다 끝내고 돌아가는 게 낫겠지?

       

        “가, 감사합니다…….”

       

        = 아마 협상하게 될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나 역시 한 사람을 더 부르겠다. 그래도 되겠느냐?

       

        “무, 물론입니다.”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김두식.

        인간들의 허락에 나는 공간을 열었다.

       

        또각! 또각!

       

        열린 공간 너머에서 들리는 발걸음 소리.

        먼저 나타나는 것은 고운 비단으로 만들어진 옷.

        지구식으로 말하자면, 무협 판타지 세상과 흡사한 차원에 방문했을 때 거두어들인 아이인 탓에, 지구 동아시아의 고대 복식과 비슷한 옷이 먼저 나타난다.

        그리고 나타나는 것은 금발과 노란 맹수의 동공을 가진…… 성인 인간 여성의 모습.

        하지만 인간의 귀 대신 여우의 귀를 머리 위에 달고, 등에는 아홉 개의 꼬리를 살랑거리는 아이는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부르셨사옵니까.”

       

        = 수고가 많구나 자예.

       

        구미호라 부르는 존재이자, 나의 심복.

        자예가 다소곳한 모습으로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구미호…….”

       

        “미친…… 측정 불가급의 괴물이 왜 또…….”

       

        자예의 모습을 본 인간들이 수군거린다.

        내가 들은 것을, 자예라고 못 들었을 리가 없다.

       

        찌릿!

       

        “힉?!”

       

        “헉!”

       

        인간을 싫어하는 자예의 매서운 눈초리가 인간들에게 향한다.

        단순한 시선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긴장한 얼굴로 흠칫거린다.

        나는 자예를 바라보며 말했다.

       

        = 자예야…….

       

        “……실례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인간을 본 탓일까?

        순간적으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자예를 타이르자 그녀가 시선을 거두었다.

       

        나는 자예를 인간들에게 소개해주었다.

       

        = 이 아이의 이름은 자예라 한단다. 똑똑한 아이니, 나보다는 대화가 잘 통할 것이다.

       

        “…….”

       

        “예에…….”

       

        좀 전과 같은 기세는 없지만, 여전히 싸늘한 자예.

        나와 자예의 눈치를 보는 김두식.

        그리고…….

       

        “하……. 미쳐 버리겠네.”

       

        콧잔등을 두 손가락으로 누르며 한탄하는 중년 남자.

        무엇이 그렇게 힘든지는 몰라도, 대화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            *            *

       

       

        내 본체가 인간들과 대화하는 사이, 아바타인 나 역시 대화하고 있었다.

        드래곤에게 이 정도 멀티태스킹은 기본이다.

       

        – 미친! 지금 속보 떴는데? 백익룡이 라나님 아들이라고…….

        – 헐?

        – 라나님. 진짜로 백익룡이 아들임?

        – 유부녀였나요?

       

        “호오. 확실히…… 인터넷이라는 것은 빠르구나.”

       

        본체 주변에 인간들이 몇몇 숨어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겨우 20분 전에 있었던 일조차 이렇게 빠르게 퍼지다니.

        내가 인터넷 방송이라는 수단을 고른 것은 확실히 잘한 일이었던 것 같다.

       

        “그래. 너희의 말대로 나는 유부녀가 맞단다.”

       

        – 헐.

        – 저 모습으로 유부녀?

        – 로리와 밀프가 공존…… 한다고?

        – 따져 보면 로리는 아니지 않나?

        – 어쨌든 철컹철컹인 것은 변함없는 거 아님?

       

        혼란스러워하는 시청자들.

        아니…… 혼란보다는 놀라움이 더 큰가? 흥미도 커 보이고.

       

        – 그렇다면 대서양에 있는 심해룡은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누군가가 그런 댓글을 달았다.

        딱히 말할 필요는 없지만, 말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도 없다.

        게다가 방송에서 사운드가 비는 것은 좋지 않다고 배웠으니…….

       

        “둘째 아들이란다.”

       

        – ?

        – ?

        – ?

        –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 ?

        – 아니…… 드래곤들이 모두 한가족이라고?

       

        아. 이번에는 혼란의 감정이 더 크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조금 설명하기로 했다.

       

        “현재 이 지구라는 행성에 존재하는 드래곤은 나를 포함해 5마리란다. 그리고 모두 내 아이들이지.”

       

        첫째인 백익룡 스카투야 블레이즈는 인간들의 사회에 흥미를 느끼고, 인간들과 어울리기를 선택했다.

        그 때문에 고향 차원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차원을 여행하는 날 따라오면서도, 가는 차원마다 그곳의 인간들과 관계를 맺어왔다.

        어찌 보면 나보다도 더 인간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

       

        둘째인 심해룡 에나 벨제투스는 첫째와는 달리 인간을 싫어한다.

        아니……. 정확히는 우리 가족을 제외한 지성체들을 싫어하는 쪽에 더 가깝다.

        그래도 내가 타이른 덕분에 직접 죽이러 움직이지는 않지만, 자기 영역 안으로 들어온다면 전력으로 죽이러 움직이고는 한다.

       

        “그래도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아픔이 많은 아이이니 말이다.”

       

        – 와. 그 심해룡을 저렇게 표현하는 거 보니까 찐 이네.

        – 뭔가 사고 친 아들 감싸는 어머니 느낌이네.

        – 맞는 말 아님?

       

        아직도 혼란스러움이 가라앉지 않는 채팅창.

        그중 하나의 글이 내 눈길을 끌었다.

       

        – 라그나님. 저희 아버지는 대서양에서 심해룡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 그런데 그런 말씀은 너무 무책임하지 않으신가요?

        – 본인과 본인 아들의 아픔만 보시고, 피해자들의 아픔은 무시하시는 건가요?

       

        그렇구나. 내 둘째 아들 때문에 가족을 잃은 이들이 있는 것인가.

        나는 그 댓글의 주인에게 말했다.

       

        “그렇다.”

       

        – ??

        – ?

        – 쿨해.

        – 와씨. 존나 쿨하네ㅋㅋㅋ

       

        “너희가 잠시 잊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드래곤이다. 인간이 아니라는 뜻이지.”

       

        비록 전생에 인간이었다고 하지만 이미 난 인간 시절의 기억을 대부분 잊어버린 상태다.

        지금의 내 정체성은 오히려 드래곤에 더 가깝다.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히 온단다. 그리고 모두는 누군가를 죽이지.”

       

        모든 존재는 먹이사슬 속에서 살아간다.

        내가 살아간다는 소리는, 결국 누군가의 목숨을 거두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써, 누군가가 누군가를 죽이는 일에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야. 너는 네가 먹기 위해 죽인 돼지가 너를 비난해도 죄책감을 가지겠느냐? 아니면 네가 눌러 죽인 파리가 같은 소리를 해도 죄책감을 가질 것이냐?”

       

        – 인간 = 돼지, 파리 선언.

        – ㅎㄷㄷ

        – 그런데 드래곤 처지에서는 맞는 말이지.

       

        “네 아버지의 일은 유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일의 책임은 내가 질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는구나.”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 아니며, 드래곤의 관점에서는 책임을 질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아. 착각하면 안 된다. 나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드래곤이지, 인간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는 드래곤이 아니다.”

       

        인간이 장례를 치르는 이유는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그들의 죽음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다.

        그것이 바로 종족의 차이고, 살아온 가치관의 차이다.

       

        “너희들이 나에게 실수를 하여도 자비롭게 넘기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너희들과 나는 모든 것이 다르지. 그러니 가치관이 다르다.”

       

        인간들의 이야기들 중 그런 이야기가 있다.

        강아지는 친해지고 싶다는 표현으로 꼬리를 세우지만, 고양이는 경계의 의미로 꼬리를 세운다고.

        서로 다른 표현과 가치관으로 인해 강아지와 고양이는 싸우는 것이다.

       

        “나와 소통을 하고자 한다면 이것을 명심해야 한단다. 내가 배려를 해주는 만큼, 너희 역시 배려를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게 싫다면? 그렇다면 그냥 내 방송을 나가면 된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과 소통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엘더 드래곤들은 물론이고, 내 아이들도 나와 가치관이 다르다. 그런데 수만 수십만이 넘어가는 인간들의 가치관이 모두 같을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 숙연…….

        – 알겠읍니다.

        – 아! 싫으면 방송 나가라고!

        – 분위기 망치지 말고 분탕러들 나가!

       

        분위기가 조금 낮아진 것 같다.

        내가 배운 대로라면, 방송의 분위기 역시 방송을 이끌어가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들었다.

        인간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분위기가 달라질까…….

       

        – 그런데 라나님. 둘째 아드님은 왜 인간을 싫어하나요?

       

        고민하던 중 그런 댓글을 보게 되었다.

        ……그래. 질문에 대답해주면서 분위기를 바꾸어보자.

       

        “아이들의 아버지…… 그러니까 내 남편이 인간들에 의해 죽었기 때문이란다.

       

        – 앗.

        – ?

        – 앗! 아아…….

        – 헐.

        – …….

       

        분위기가 더욱 낮아졌다.

        ……방송이라는 거 너무 힘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시청자 의문의 패드립.

    긴급 탈룰라 시전 요청!

    원하시던 연참…… 올려드렸읍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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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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