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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 ***

         

       낭인객잔은 객잔이라고는 하지만 모텔이나 여인숙이라기보다는 오피스텔에 한없이 가깝다. 애초에 사천에서 낭인 생활하면 이 낭인객잔에 있을 수 밖에 없고 특별한 성격의 사람이 아닌 이상 다 안정적인 개인실을 가지고 싶어 하니까.

         

       “흠…”

         

       내가 거진 7년째 사용하고 있는 사실상 내 집이라 할 수 있는 이 목란 209호.

         

       낭인객잔의 보안은 평범하다. 평범하게 자물쇠 달린 문이 있고 외부와 통하는 창문도 있다.

         

       내 개인 용품들이 적당히 자리 잡고 있는 방. 그나마 특기할 사항이라고는 서가 한칸을 가득 메운 서적들이다.

         

       낭인 짓을 하다보면 시간을 죽여야 하는 일이 많이 발생하는데 그럴 때마다 무협지를 사고 그렇게 한 두 권씩 모으다보니 어느 새 저만큼이나 모였다.

         

       이 책장에는 단순히 무협지만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무림천하의 세상을 살면서 꼭 필요하다고 여긴 지식들을 기록해 놓은 [설정집]들도 여러 권 있었다. 나는 뭐 다른 피랍자들과 다르게 기억력 보정 특정 같은 것은 없었기에 선택지가 없었지.

         

       당연히 방대한 기록이고 그 중에서는 전공서와 체급이 비슷한 서책들도 있었다.

         

       그게 바로 캐릭터들의 깨달음을 기록해 놓은 서적이었다.

         

       게임 속 [무림천하]에서는 구현되어 있지 않아 갈 수는 없었지만 무림천하의 지도 속에는 대한민국의 원형인 한반도와 일본의 원형이 되는 섬들이 존재한다.

         

       중국의 어느 주석이 [어떤 대륙의 금서목록]에 무협지를 지정한 이후 무협이라는 장르는 사멸해버리고 그 영향을 받아 무협지에서도 무협의 배경이 되던, 역사 속에 등장하던 중국 국가들의 이름은 더 이상 무협지에 등장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무림천하의 세계관은 중국의 문화나 일반적인 무협의 모습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나라는 특정되지 않은 채 [황국]으로 설정되어 있을 뿐이다. 한국도 [환국]일 뿐이고 일본도 [열국]일 뿐이다.

         

       그러니 한글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내가 직접 확인해봤다.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한글이 존재하지 않는다니 참 미묘한 기분이지만 아무튼 그렇기에 내가 이 무림천하에 대한 것을 기록한 이 서적들은 단순히 한글로 쓰여 있을 뿐이지만 무림천하 안에서는 암호문이나 마찬가지다.

         

       침대 밑에 낭인이 들어 있었다는 것은 이 방이 언제고 다시 뚫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책을 뒤지는 낭인이 나온다 해도 이상하지 않고. 내 기록물들을 훔친다고 알아볼 수는 없겠지만 문제는 나도 그 기록물을 잃어버리면 낭패다.

         

       이 무림천하의 세계에 떨어진 지도 8년. 다른 주인공처럼 기억력 보정이 없는 나는 벌써 많은 정보를 잊어 버렸다. 최대한 기억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지금 조금, 아니 많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는 했지만 내가 여일예의 깨달음을 몰랐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내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림천하를 플레이하며 머릿속에 쌓인 정보 덕인 셈이다.

         

       어느 날 새벽 감성에 취해 휘갈긴 [호천비록]이라 쓰여진 제목칸을 보고 있자니 현자타임이 오기는 했지만 결국 이 설정집들이야말로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자산인 셈이다.

         

       “이걸 결국 어디에 보관을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방 안에 두는 것은 미덥지 않다. 끽해야 이류무사인 나는 진짜 고수들이 내 방에 잠입해도 눈치챌 수 없을 테니까. 그렇다고 또 방 자체의 보안이 뛰어난 것도 아니니 이대로 내 방에 보관하는 것은 악수 중의 악수다.

         

       이론상 가장 안전한 방법은 은원패를 사용해서 여일예에게 보관을 부탁하는 것인데…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물건을 보관해주는 전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믿을 놈 하나 없다. 실제로 아무리 이름 높은 전장이라도 물건을 보관하면 낮은 확률로 사라진다. 겉으로는 도둑맞았다고 하는데 또 모르지.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보물 앞에서는 신용이나 명예 같은 것은 그저 팔아넘길 수 있는 자원에 불과하니까.

         

       “결국, 거기밖에는 없나.”

         

       설정집들을 팔 다리에 묶어 고정시키고 두꺼운 깨달음집은 복부에 넣었다. 그리고 계절과 날씨에 걸맞지는 않지만 풍성한 장포를 입어 내 몸을 감쌌다.

         

       객잔 내 낭인들이 날 수상하게 바라보겠지만 뭐 낭인객잔 내부에서 나는 이제 더 수상할 구석도 없는 평판인지라…차라리 좀 수상한 짓을 하는게 헛소문 진화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호 형!”

         

       “호 진인!”

         

       호 진인은 뭐야. 아무튼 말 거는 낭인들을 싹 뿌리치고 낭인객잔 바깥으로 나섰다.

         

       “저, 자식 도망친다!”

         

       “잡아라!”

         

       이런 미친 놈들. 내가 뭘 어쨌다고 도망치네 잡네 하는 헛소리들을 하는거야.

         

       물론 나는 곧바로 도망쳤다. 뒤을 돌아보니 낭인 십수 명이 나를 따라 낭인객잔을 박차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낭인객잔을 빠져나오자마자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 우선 흑립부터 품 안에 구겨 넣었다.

         

       이류인 상태로 배울 수 있는 모든 무공을 다 익힌 나는 급하게 역용술을 사용하며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흑립을 벗고 인파에 스며들자 쫒아오던 낭인들은 혼란스러운 기색으로 사람들 사이를 살폈지만 이미 인파에 스며든 나를 찾을 수는 없었다.

         

       품 안에 있는 공략집들을 어루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처리하고 돌아가야겠군.

         

       *** ***

         

       “자네 어디 갔다 왔나? 순순히 불게!”

         

       “니가 내 엄마야? 내가 어딜 갔다 왔는지 알아서 뭐 하게!”

         

       “그런데 왜 그렇게 도망쳤지? 감추는 것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닌가?”

         

       “니가 내 아빠야? 내가 뭘 감추고 있으면 어쩔 건데!”

         

       무적의 무지개반사를 시전하면서 들러붙는 낭인들을 떼어 내고 유사연에게 다가갔다. 유사연은 기본적으로 본인이 내킬 때만 1층에 앉아 있는 사람이었는데 요새 낭인객잔이 하도 시끄러워서 며칠 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바깥으로 나갔다 온 명분인 숙박비가 담긴 주머니를 내밀었다.

         

       “또 선납이야?”

         

       “이주일! 도박장에서 돈을 다 날려서 전표로 받은 의뢰비를 수령하러 갔다 왔더니 말이야! 아주 지랄들이 났어!”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나를 따라오는 낭인들에게 소리치며 눈을 부라리자 낭인들이 헛기침을 하며 흩어졌다.

         

       사천낭인은 전장에서도 익명을 사용한다. 그러다보니 본인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전장과 계약할 때 수결한 수결 뿐이다. 그 수결이 노출되면 그 전장에 보관한 돈을 남이 홀랑 털어갈 수 있다는 것.

         

       이게 내가 설정집을 은닉하면서 준비한 핑계였다.

         

       “흐음…어디보자…보자보자…지금 호천안 자네가 선납한 숙박비가 15일이나 남았군? 그래도 선납인가?”

         

       벌써 그만큼이나 쌓였나.

         

       뭐 이 시대 사람들이 다 그렇지만 제 주머니에서 돈 나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인간들이 많다. 솔직히 말해서 돈 아껴서 투자하는 것도 아닌데 대체 주머니에 쥐고 있으려는 심보는 뭔지 모르겠어.

         

       돈 있어도 외상으로 숙박비 다는 놈들이 천지. 어차피 투자처도 없는데 선납할인이나 받으면 그게 돈 버는 일이지.

         

       아마 선납할인을 받는 낭인은 나 말고는 없지 않을까?

         

       그런데 유사연이 돈을 받지 않는다.

         

       “부탁 하나만 좀 들어 주자.”

         

       “들어보고. 싫으면 말고.”

         

       “허, 우리 사이에 조건부터 들이밀다니 섭섭한데?”

         

       이 전귀가 돈까지 마다하면서 하는 부탁이라는게 무척 냄새가 난다. 유사연과 나는 수직적 갑을관계다. 유사연은 고수고 이 사천성에서 낭인들이 머무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낭인객잔의 객잔주다.

         

       나는 이류 찌꺼기고 방 빼고 꺼지라면 그냥 꺼질 수밖에 없는 양초같은 존재고.

         

       근데 그런 나한테 눈치를 살살 보면서 부탁한다고? 무슨 짓을 벌이려고 하는지 벌써부터 무섭네.

         

       “전우조좀 해 주지 않겠어?”

         

       전우조. 군대 트라우마 번지는 단어다.

       

       사천낭인은 다른 지역 낭인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다. 아니 일을 처리하기 이전에 사천낭인으로 산다는 것은 일반적인 낭인들은 견딜 수가 없는 일이다. 사고치지 않도록 감시도 할 겸 적응을 돕기도 할 겸 신참이 들어오면 사천생활에 익숙한 선배를 한 명 붙여서 가르치는 것이다.

         

       “나는 이미 두 번이나 전우조 생활을 했을 텐데.”

         

       “에이~ 모든 일은 마무리를 해야 끝이지? 호 낭인 장사 하루이틀 해?”

         

       나는 잠시 유사연을 빤히 바라보았다. 대체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야? 원하는게 뭐냐고. 내 생각과는 무관하게 유사연은 펄펄 뛰며 말했다.

         

       “한 녀석은 낭인을 관두었고 한 녀석은 어느 날 실종되었는데 이건 엄밀히 따지면 전우조를 배출했다고 할 수가 없지. 그래도 두 명이나 봐 준 공로를 생각해서 내가 부탁씩이나 하는데 면전에서 일언지하에 거부하니까 무척 불편…”

         

       “관 명. 내 전우조였던 그 자식 말이야. 어떤 새끼, 아니 어떤 년이 넌지시 문파에 추천을 넣어 줬다는군. 싹수가 보인다 싶긴 했는데 아주 재능이 좋았나 봐?”

         

       유사연이 입을 딱 다물었다.

         

       “역시나 내 전우조였던 경우선재 그 놈 말이야. 알고보니까 장안의 어떤 명문정파에서 가출한 녀석이라고 하던데. 대체 어떤 새끼, 아니 어떤 년이 흑립을 쓴 낭인의 정보를 알고 그걸 그 문파에 팔아제꼈을까?”

         

       유사연이 내 시선을 피했다. 그녀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이미 확신을 가지고 누가 했는지 확인해 보았다는 것을. 사천 낭인으로 구른 지만 벌써 7년이 되어간다. 나도 유사연을 알고 유사연도 나를 안다.

         

        “누군진 몰라도 그래도 내가 사천낭인으로 키우겠다고 열심히 가르쳤는데 아주 물을 제대로 먹였어. 누군진 몰라도 그 두놈 팔아먹은 녀석은 돈좀 만졌겠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우조는 누구일까요?

    그건 바로 신…읍읍읍..녀!

    *5/8 일부 지문이 변경되었습니다. 내용 흐름을 살짝 다듬었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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