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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어떤 식으로든 방송 수습을 도와야겠다는 결정을 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간접적으로라도 원인이 되어 좋아하던 방송이 망가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내가 고민이 되었던 부분은 ‘어떻게’였으나- 이내, 생각보다 쉬운 방법이 떠올랐다.

         

         

        나는 디스코스에 접속해서, 새로운 아이디를 만들었다.

         

        어제 전달받은 이메일로 검색해보니, 아크의 디스코스 계정은 현재 자리비움 상태였다.

         

        바로 친구추가요청 버튼을 연타하고, 방송 화면을 확인했다.

         

        알림은 뜨지 않는다.

         

        그렇다면 메시지를 보내더라도, 알림이 송출 화면에는 뜨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로그아웃 버튼을 누르고, 어제 사용했던 디스코스 아이디로 접속해서 메시지를 보냈다.

         

        * * * * *

         

        현재 시청중인 인원 약 8,200명.

         

        꿈만 같은 숫자를 보면서, 아크는 정말로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이쯤 되면 트위트에 존재하는 분탕 메뚜기들이 방송에 총집결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실시간으로 시청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

         

        여기까지 오면 이제 해명에 성공해도 데미지가 남을 수 있다.

         

        (차마 확인할 엄두도 나지 않지만) 신난 분탕들은 분명 갤러리에도 이 방송을 중계하며 남친 떡밥을 도배하고 있을 것이고,

         

        자신의 방송을 직접 보지는 않고 갤러리만 본사람들은 ‘아~ 아크? 그 남친 떡밥 터진 애?’ 라고만 기억할 것이다.

         

        점점 멍해지는 아크의 눈에, 송출되지 않는 듀얼 모니터에 번쩍거리며 올라오는 디스코스 알림메시지들이 들어왔다.

         

        알 수 없는 계정으로부터 쏟아지는 친구추가 요청.

         

        ‘……디스코스까지 유출됐어?’

         

        ‘그냥 죽자. 그냥 혀 깨물고 죽자.’

         

        ‘차라리 지금 방종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내일의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주지 않을까?’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잡고 방종버튼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던 그 때.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화면에 떠오르는 새로운 알림을 보고, 아크는 홀린 듯이 메시지를 클릭했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톡 아이디 도네이션 아이디랑 똑같아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보이스톡 주세요. 해명 도와드릴게요.]

         

        아따먹.

         

        모든 사태의 원흉(아님)이, 해명을 돕겠답시고 연락을 해왔다.

         

         

         

         

         

        나름 3년차 스트리머인 아크는 어느 정도의 위기 대처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실제로 나락 위기를 빠르게 감지하고 회피한 경험도 여러 차례 있었고.

         

        하지만 지금은 정말이지 도무지 탈출구가 떠오르지를 않았다.

         

        이 급박한 상황에 얼굴도 본 적 없는 악질 저격러를 믿고 활용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는 충분히 느껴졌다.

         

        하지만 썩었든 안 썩었든, 동앗줄은 동앗줄이었고- 이건 잡을 수 밖에 없는 동앗줄이었다.

         

        ‘저새끼가 보이스톡에서 안녕하세요 아크 남친입니다 라고 해도, 지금보다는 상황이 나을 거야……!’

         

        협조적이라면, 어쩌면 정말로 남친이 아니라는 걸 납득가게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협조적이라면, 자신이 아직 공개하지 않은 신상들을 따져 물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남친이면 저런 걸 모를 리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게 할 수 있다.

         

        ‘……근데 그냥 또라이짓을 하면 어떡하지?’

         

        머리가 아플 정도로 핑핑 도는 상황에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고민했지만-

         

        -바이콘 님이 1개월 정기구독을 하였습니다!

        【이 분 아주 맘에 쏙 드네요! 자주 방송해주세요】

         

        -강냉이TV 님이 1개월 정기구독을 하였습니다!

        【신입이야? 환영해! 우린 커플 방송도 좋아해 ㅎㅎ】

         

        구독자 채팅 제한을 피해서 분탕을 치기 위해 구독을 하는 미친 놈들까지 등장하고,

         

        『해 명 해 해 명 해 해 명 해 해 명 해 해 명 해 해 명 해』

        『이 분 왜 말이 없나요? 이 분 왜 말이 없나요? 이 분 왜 말이 없나요? 이 분 왜 말이 없나요? 이 분 왜 말이 없나요?』

        『남친한테 카톡 옴? 남친한테 카톡 옴? 남친한테 카톡 옴? 남친한테 카톡 옴? 남친한테 카톡 옴? 남친한테 카톡 옴? 남친한테 카톡 옴? 남친한테 카톡 옴?』

        『’아 들켰네’ ’아 들켰네’ ’아 들켰네’ ’아 들켰네’ ’아 들켰네’ ’아 들켰네’ ’아 들켰네’』

         

        모든 채팅은 도배 채팅이 되었으며,

         

        -유니콘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우욱…! 우우욱! 쿠웨에에엑!】

         

        -아따먹실황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헉헉…자기야…헉헉…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크속마음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아씨…우리 남치니 시계 사줘야 되는데 돈통들이 왜케 시끄러워?】

         

        불을 지피는 분탕 도네가 끝도 없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독이 든 것을 알면서도 들이켜야 한다.

         

        부존재증명을 하는 방법은 단 하나.

         

        정면돌파 뿐이었다.

         

        ‘분탕들은 분탕끼리 놀라고 두자. 진심어린 모습으로 내 팬들한테라도 호소해야 돼.’

         

         

        두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을 한 아크는, 구독자 채팅을 풀고, 디스코드 채팅창을 송출 화면으로 가져왔다.

         

        “여러분. 도네이션 소리는 잠시 끄겠습니다. 대신 채팅제한 풀테니, 잠깐만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당연하게도 채팅은 진정되기는커녕, 몇 배는 더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저는 정말로, 맹세코 아따먹과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아따먹은 언제부턴가 제가 나오나 방송을 할 때 저를 저격하던 사람이고, 저와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아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는 동안, 화면 한 켠에서는 현재 시청자가 10,200명을 돌파했다는 절망적인 수치가 표시되고 있었다.

         

        “제가 처음으로 아따먹에게 연락하게 된 건 어제입니다. 아따먹이 자신의 이메일과 나오나 계정을 제게 공개했고, 저는 악질 저격러를 참교육하는 컨텐츠를 뽑을 생각에 디스코스로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드립들이 채팅창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주로 뭘 교육하고 싶다, 눈나가 나에게 무엇을 사용해서 뭘 교육해달라는 내용들이었다.

         

        어디서 축제라는 소식이라도 듣고 온 건지, 거대한 남성기 모양을 채팅에 도배하기 시작하는 또라이들까지 있었다.

         

        그 꼬라지를 보고 있자니, 아크는 어쩐지 역으로 냉정해지는 기분이었다.

         

        “제 방송을 보시던 분이라면, 제가 지튜브 각이 나올 때 눈 돌아가는 거 잘 아실 거에요. 아따먹의 계정 공개도 제게는 확실한 지튜브 각으로 보였어요.”

         

        “여기 보이시겠지만, 저와 아따먹의 대화는 어제가 처음입니다. 그리고 조금 전, 아따먹이 제게 해명을 돕겠다고 보이스톡을 요청했습니다.”

         

        “사전에 조율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떳떳하기에, 이 자리에서 마이크를 켜고 보이스톡을 걸어볼 생각입니다.”

         

        단순 남친 몰이와 섹드립보다 더 재밌는 주제.

         

        화제의 당사자와의 전화통화가 물망에 오르자, 채팅창이 물음표와 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급류처럼 스쳐 지나가는 채팅창의 물결에서, 그러지 말라고 만류하는 채팅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눈에 익은 아이디들. 자신의 방송을 오랫동안 봐준 팬들이었다.

         

        ‘이성적으로, 위험한 판단은 맞아. 나라도 말리겠어.’

         

        하지만 이젠 정말 돌이킬 수 없었다.

         

        그저 두 눈을 지긋이 감고 기도를 하며, 스피커폰을 켜고 보이스톡을 걸뿐.

         

        -따다다 딴.

         

        ‘제발, 제발, 제발 잼민이. 완전 누가 봐도 잼민이 목소리면 한바탕 웃고 끝날지도 몰라.’

         

        -딴따단 딴딴

         

        ‘아니면 키보드로만 여포인 찐따. 더듬더듬거리면서 헛소리하면, 그러면 어떻게든 끌어갈 수 있다.’

         

        -딴따단딴.

         

        ‘제발 쓸데없이 목소리가 좋지만 말아줘. 너 백수 저격러잖아. 마이크도 없잖아. 제발 무슨 성우 목소리로 받지 말아줘. 제발. 제발. 제발!’

         

        -딴따단 딴 딴

         

        계속해서 이어지는 보이스톡의 신호음.

         

        ‘……이 새끼 설마 이렇게 유도하고 전화 안 받을 생각으로……?’

         

        간절한 기도의 끝에서 압도적인 절망감을 느끼던 순간-

         

        상대방이 전화를 받는 소리와 함께 음악이 끊겼다.

         

        그리고,

         

        《여보세요. 아. 들리나요?》

         

        속삭이는 듯이, 보이스톡의 낮은 음질로도 가려지지 않는 부드러운 미성이 흘러나왔다.

         

        * * * * *

         

        『???』

        『??』

        『?』

        『??여자?』

        『??여자라고?』

        『뭐야 이거? 누구임?』

        『여자?』

        『여자??』

        『아따먹 아니야?』

        『???』

        『아따먹이 여자라고?』

        『변조 아님?』

         

        “아. 들리나 보네요. 방송은 음소거할게요.”

         

        방송에서 내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음소거 버튼을 클릭했다.

         

        내 목소리를 내가 듣는 것도 아직 어색했지만, 다른 매체를 통해 듣는 건 더욱 어색했다.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 채팅창이 일사분란하게 물음표를 도배하고 있는 모습은 제법 장관이었다.

         

        이제 타이밍을 맞춰서 해명을 시작하면 될 텐데.

         

        채팅창을 구경하며 아무리 기다려도 화면에 나오는 아크는 두 눈을 멍하니 뜨고 입을 살짝 벌린 채, 핸드폰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해명을 돕겠다고 했지, 대리 해명을 하겠다고 한 적은 없지만- 내친 김이니, 조금 서비스를 하기로 했다.

         

        “으음……. 일단, 저는 아크님 남자친구가 아니고요.”

         

        “아, 나오나 핵도 안 씁니다.”

         

        쏟아지듯이 퍼부어지는 채팅과 도네이션.

         

        이런 걸 읽으면서 게임을 한다니, 새삼 스트리머들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핵을 썼으면, 으음…글쎄요? 챌린저 1등이거나 영구정지였겠죠?”

        

       “위치핵이요? 상대 광전사…위치요. 아! 혹시 맵리딩…을 그렇게들 부르시는 건가요?”

       

        최소한 채팅은 좀 구별이 가능하면 좋을 텐데.

         

        “아. 다이아 이하는 영어로 채팅쳐주실 수 있을까요. 같은 문자 쓰는 거 좀……아시죠?”

         

        “음~ 불만 있으신 분들은 커스텀에서 뵐까요? 잠시만요.”

         

        커스텀 방을 파며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자니, 핸드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저기, 아…따먹님?》

         

        “네. 아크님.”

         

        《진…진짜 아따먹님이에요?》

         

        “네, 계정도 확인하셨잖아요?”

         

        《아니, 저기, 그. 아니, 대체, 아.》

         

        조금 정신을 차리나 했더니, 다시 고장나는 아크.

         

        아, 망가지면 안 되는데.

         

        《여… 여자였어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나는 잠시, 내 몸을 훑듯이 내려다보았다. 투명하고 부드러운 피부와, 매력적으로 굴곡진 여성의 몸매.

         

        앉은 채로 고개를 내려봤자, 가슴에 가려 배는커녕 허벅지도 거의 보이지 않는 시야.

         

        떠올랐다가 침잠하는 여러 생각을 눌러 담고, 살짝 웃으며 답했다.

         

        “비밀…이에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휴를 기념한 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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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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