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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어.

         

        아.

         

        뭔가 떠올랐다.

         

        [‘장난을 좋아하는 광신’이 당신에게 인사합니다!]

         

        [‘피폐의 감별사’가 당신을 살펴봅니다!]

         

        [‘후회의 천신’이 당신에게 관심을 표합니다!]

         

        [‘집착의 악마’가 당신에게 의문을 표합니다!]

         

        이게 뭐지?

         

        어.

         

        상태창은 안 불렀는데.

         

        뭐지?

         

        광신?

         

        감별사?

         

        천신?

         

        악마?

         

        뭐지?

         

        진짜 신님이세요?

         

        [‘후회의 천신’이 비슷하다고 말해줍니다!]

         

        [‘장난을 좋아하는 광신’이 당신을 보며 입맛을 다십니다!]

         

        [‘집착의 악마’가 성좌라고 말해줍니다!]

         

        성좌?

         

        그게 뭐지?

         

        잘 모르겠지만, 신과 비슷한 그런 건가 보다.

         

        어어.

         

        인사해야 하나?

         

        안녕하세요?

         

        [‘장난을 좋아하는 광신’이 띨띨하다며 광소합니다!]

         

        [‘피폐의 감별사’가 순수함에 감탄합니다!]

         

        잘 모르겠다.

         

        이게 뭔지.

         

        어.

         

        내가 미친 건가?

         

        어.

         

        음.

         

        잘 모르겠다.

         

        [‘피폐의 감별사’가 왜 혼자 묶여 있냐 물어봅니다!]

         

        어…

         

        오해가 있어서 그랬어요.

         

        오해.

         

        정말 많은 오해가 있었다.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에 대한 오해부터 지금 이 상황까지 벌어진 모든 오해 말이다.

         

        내가 말한 것은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뜻이었다.

         

        신 님이 과연 그걸 잘 이해할까?

         

        [‘장난을 좋아하는 광신’이 그렇냐고 대꾸합니다!]

         

        어…

         

        잘 모르겠다.

         

        하하.

         

        그래도 심심하지는 않겠다.

         

        ***

         

        ‘성좌인가…’

         

        성좌.

         

        ‘탑’의 천장에 자신의 별자리를 박아 넣고 신의 자리에 올라간 그 거룩한 존재들.

         

        그리고 그 강력한 힘으로 탑에 입장한 이들을 바라보며 계약하고 힘을 주는 이들.

         

        ‘이번에도 바로 제안을 하려나…’

         

        근래에 들어 수백 회차 동안.

         

        한 성좌만이 이시현에게 가장 먼저 제안을 해왔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시현이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강해서였다.

         

        아마 지금 쯤이면, ‘가장 어리고 순수한 신’이 그녀에게 곧바로 계약을 제안할 터.

         

        다들 신기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하고 성좌에게 말을 걸 때, 이시현은 그저 묵묵히 그 계약 메시지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무려 일주일 동안 말이다.

         

        ***

         

        일주일이 지났다.

         

        그러니까 이 튜토리얼에 온 지 8일 차가 되었다.

         

        그 털뭉치의 말대로 하루에 한 번씩 몬스터 웨이브가 진행되었다.

         

        다행히, 그 시작점은 이곳에서 먼 터라, 가끔씩 이곳으로 오는 일부 몬스터만을 처리해 주면 쉘터는 안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다들 빠듯하게 서로가 탐사를 나가겠다 경쟁이 붙었고, 모두가 유의미한 결과를 내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강해졌고, 적지 않은 이들이 성좌와 계약했다.

         

        하지만.

         

        이시현은 아니었다.

         

        ‘씨발…!!’

         

        도대체 왜.

         

        메시지가 뜨지 않는 것일까.

         

        가장 어리고 순수한 신.

         

        그러나 이름에 걸맞지 않게 성좌 중, 가장 강력한 힘과 지혜를 지니고 있는 최고위의 신.

         

        그 신은 본래 수백 회차 동안 자신에게 메시지가 뜨는 즉시 계약을 하자고 제안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수백 회차 이래 처음으로.

         

        그 규칙 같은 루틴이 깨져버렸다.

         

        ‘도대체 왜?’

         

        의문이었다.

         

        도대체.

         

        뭐가.

         

        뭐가 바뀐 걸까.

         

        그리 고민하는 이시현.

         

        그녀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밖에 없었다.

         

        [봉인 해제; 2Y 11M 22D 14H 29M]

         

        봉인 해제까지 앞으로 3년이 남은 이전 회차의 기억.

         

        그것이, 유일하게 달라진 무언가였다.

         

        도대체 어째서.

         

        내 능력은 이것을 봉인했을까.

         

        강제로 열어보고 싶었다.

         

        그 대가로 한 번 죽고 새로운 회차가 시작되겠지만, 그럼에도 열어보고 싶었다.

         

        그 안에 있는.

         

        너무나도.

         

        후회스럽고.

         

        미안하고.

         

        그리고 잔인할 정도로 가학적이었던.

         

        그 끔찍한-.

         

        찌릿!!

         

        “으윽-!”

         

        이번에는 신음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두통이 그녀의 머리를 강타했다.

         

        ‘하…’

         

        이전에 겪었던 고통과 비슷한.

         

        하지만 훨씬 더 강력한 그 두통.

         

        그 사이에서 그녀는 그 기억의 아주 극히 일부.

         

        감정의 편린을 읽을 수 있었다.

         

        뭐가.

         

        나는 대체 뭐가 그리도 후회스러운 것일까.

         

        뭐가.

         

        나는 대체 뭐가 그리도 미안한 것일까.

         

        세상을 구하지 못한 것?

         

        수많은 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바라만 보던 것?

         

        아니.

         

        그보다 더 깊고.

         

        작은…

         

        주륵.

         

        ‘눈… 물?’

         

        그녀의 그런 의문은 알 수 없는 눈물의 형태만을 남기며 끝끝내 해결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이전 회차에는 분명 무슨 일이 벌어졌고, 그걸 계기로 이 성좌가 내게 관심을 돌렸다는 것.

         

        ‘일단… 3년 만 기다려 볼까…’

         

        3년.

         

        한 회차를 기준으로도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필시 3년이라는 기간을 ‘봉인’이 잡아 놓은 이유가 있을 터.

         

        그걸 억지로 열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최악의 경우.

         

        ‘내가 미쳐 버린다거나…’

         

        그렇기에.

         

        이건 일단 뒤로 미뤄둬야 했다.

         

        ‘그래.’

         

        일단은 그 시간 동안 강해질 궁리부터 하는 거야.

         

        초보자도 아니잖아.

         

        전혀 당황할 필요 없어.

         

        일단.

         

        레벨부터 올리자.

         

        서걱.

         

        그녀는 쉘터를 향해 달려오는 몬스터를 도륙내며 그리 각오했다.

         

        [‘만생의 부름’이 계약을 제안합니다!]

         

        [‘우주의 음유시인’이 계약을 제안합니다!]

         

        [‘일만 후광의 주인’이 계약을 제안합니다!]

         

        […]

         

        […]

         

        의식 안에서 반짝거리는 수많은 계약 제안들을 전부 무시한 채 말이다.

         

        [20레벨에 도달하셨습니다!]

         

        ***

         

        아.

         

        으.

         

        얼마나 지난 걸까.

         

        잘 모르겠다.

         

        주변이 어두워지고 밝아지고 반복한 걸 보니까 한 일주일 정도 지났으려나.

         

        잘 모르겠다.

         

        중간 중간 기절해 버리는 바람에 시간이 더 지났을 수도 있다.

         

        정말.

         

        정말 쉴 새 없이 맞았다.

         

        사람들은 뭐가 그리 스트레스가 쌓인 건지, 아니면 나한테 원한이 쌓인 건지 돌아가면서 나를 때려댔다.

         

        그래도 다행인 건, 쉴 새 없이 맞아서 심심하지는 않다는 걸까.

         

        하하.

         

        그러고 보니까 성좌님들이 보내주신 말씀들도 제대로 못 들어드렸네.

         

        죄송해요 성좌님들.

         

        [‘가장 어리고 순수한 신’이 괜찮다고 말합니다!]

         

        [‘장난을 좋아하는 광신’이 볼만 했다고 대답합니다!]

         

        [‘피폐의 감별사’가 동의합니다!]

         

        [‘가장 어리고 순수한 신’이 그 둘을 째려봅니다!]

         

        그래도 성좌님들은 착하신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어딜 가나 착한 사람들은 있는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나를 때리러 와주시는 분들도 착한 분들이신 것 같다.

         

        오해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다른 분들도 다들 남을 생각해 주고, 남을 위해 분노해 주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나는 자주 독심을 사용하는데, 3일째 되는 날… 이라고 해야 하나?

         

        서아가 깨어났다고 독심을 통해 알아냈다.

         

        보니까 이 능력은 사람을 골라서 적용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이건 성좌님이 알려주셨다.

         

        고마워요 성좌님들.

         

        [‘가장 어리고 순수한 신’이 활짝 웃습니다!]

         

        뭐에 대해 말하고 있었더라…?

         

        아아.

         

        서아에 대해 말하고 있었지.

         

        그러니까 서아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 진실을 전해 들은 것 같았다.

         

        서아의 생각을 읽어봤는데,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것 같지만, 가면 갈수록 그 말들을 믿게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서아에게 나는 자신을 강간하려고 했던 천하의 쓰레기 새끼가 되어있었다.

         

        하하…

         

        이건 좀 마음이 아픈 걸…

         

        그래도 서아가 건강하게 나은 거에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다.

         

        아무튼 그날 유독 심하게 맞은 것 같다.

         

        “그 어린애한테 자기가 15살이라고 구라를 쳐??!!”

         

        “이 개또라이 같은 짐승새끼야 니가 그러고도 인간이냐!!! 인간이냐고!!!”

         

        “인간적으로 그러면 안되지…! 저렇게 어린 애한테 미안하지도 않냐고…!!!”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 있어…? 반성 하나 없이 그게 가능해…?”

         

        인간이란.

         

        인간이란 뭘까.

         

        어…

         

        잘 모르겠다.

         

        일단 나는 인간이 아닌 거 같았다.

         

        나는 스트레스 해소용 인형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맞고 있는 거겠지.

         

        내가 인간이면 이렇게 맞을 리가 없잖아.

         

        이렇게 남들에게 미움받고 원망받을 리가 없잖아.

         

        이렇게 흉악한 범죄자 취급을 받을 리가 없잖아.

         

        그렇지?

         

        그런 건가?

         

        잘 모르겠다.

         

        그렇게 유독 심하게 맞고 난 그날 밤.

         

        교대로 불침번을 서는 사람들 빼고는 대부분이 잠들어 잘 찾아오지 않았던 이곳에.

         

        서아가 찾아왔었다.

         

        “오… 빠… 아니 아저씨…”

         

        “…”

         

        “다른 사람들이 했던 말이 사실이에요…? 아니잖아요… 아저씨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나 구해준 거 맞잖아요…”

         

        “…”

         

        “뭐라고 말 좀 해봐요…”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차피 말해도 소용 없었다.

         

        괜히 이 어린 아이에게 더 혼란만 주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이 인간이… 아동 성범죄자…]

         

        서아는 이미 마음 속에서 나에 대한 이미지를 굳혀 버렸다.

         

        아마.

         

        내가 진실을 말한다 한들.

         

        믿지 않을 것이다.

         

        이건 확신이었다.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갈 때.

         

        모두가 그랬으니까.

         

        아무도 내가 억울하다 해도 믿어주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랬다.

         

        그래서 조용히 있었다.

         

        “… 개같은 새끼…!!!”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서아한테 맞았다.

         

        나는 놀랐다.

         

        서아가 그렇게 심한 말을 구사할 줄 알았다는 거에 한 번 놀랐고.

         

        서아의 주먹이 제법 매서워서 두 번 놀랐다.

         

        정말.

         

        그 누구한테 맞았던 것 보다 정말로 많이 아팠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

         

        “세린 씨 여기 치료 좀.”

         

        “네…!”

         

        “아니 세린 씨, 나 아직 다 안 나았는데 그쪽으로 가면 어떻게!”

         

        “으아 죄송합니다!”

         

        “세린 씨…”

         

        “네!!”

         

        이세린.

         

        이 쉘터에서의 유일한 회복 특성 보유자인 그녀는 언제나 바빴다.

         

        쉘터 밖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원들을 가져오며 몬스터와 싸우느라 많이 다쳤기 때문에, 그녀는 외부 탐사 필수 인원이었다.

         

        쉘터 외부에서 가져온 자원들로 내부에는 임시 거처들을 만들거나, 입구 쪽에는 몬스터가 잘 들어오지 못하도록 새 방어선을 만들었기에 사람이 많이 다쳤다.

         

        그래서 그녀는 탐사를 나갔다 온 이후에도 부상자들을 치료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세린 씨 요즘 너무 고생하는 것 같던데…”

         

        “그런데 뭐 어쩌겠어… 특성이 저런데 꼭 필요하지.”

         

        “에휴… 창식이 걔도 직업 후보로 ‘회복술사’가 떴었다던데…”

         

        “계약한 성좌가 하지 말라고 그랬다잖아. 어쩔 수 없지.”

         

        “참… 세린 씨는 너무 호구같아…”

         

        “인정, 아직 그 새끼 한 번도 안 때렸다면서?”

         

        “나였으면 치료할 때 어차피 나으니까 실컷 때릴 텐데 참… 좀 병신같네…”

         

        “야 그래도 말조심해라. 들으면 어쩌려고. 우리 치료해 주는 사람 유일하게 저 사람 하나란 말이야.”

         

        “아아 오키.”

         

        계속해서, 저런 말이 들려왔다.

         

        제 딴에는 안 들리게 이야기한다 싶겠지만, 다 들려왔다.

         

        처음에는 천사.

         

        나중에는 호구.

         

        어느샌가 다들 그녀를 아래로 깔보고 있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인간이란.

         

        참으로 간사한 존재였다.

         

        처음에 고맙다며 살갑게, 친절하게 대해주던 이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바뀌자 그녀를 호구처럼 대하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이제는 은근한 따돌림마저 시작되었다.

         

        “근데, 저 여자는 그래도 편한 거 아니야? 전투에서 맨날 후방에만 있잖아.”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안전하다는 이유 때문에.

         

        “그리고 저 여자랑은… 솔직히 오래 같이 있고 싶지가 않아… 머릿속이 꽃밭인 느낌이야…”

         

        다음에는 성향이 맞지 않는다는 그 이유 때문에.

         

        “와… 다른 남자한테 꼬리 치는 것 봐라.”

         

        “솔직히 저게 예쁜 외모임? 삐쩍 말라서 별론데…?”

         

        다른 이에게 친절하단 이유 때문에.

         

        외모 때문에.

         

        “애초에 저 여자는 지 혼자 그 새끼 패는 거에 반대했잖아.”

         

        “참… 천사 코스프레를 하고 싶은 건지 멍청한 건지…”

         

        마지막에는 단순히 반대표를 던졌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녀는 따돌림을 당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남을 도와주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녀는 자기 위로를 시전했다.

         

        특수한 상황이.

         

        모두를 이렇게 만든 거라고.

         

        원래는 나 없으면 다 안 되는 사람들이니까, 속으로는 분명 나에게 고마워하고 있을 거라고.

         

        그리 생각했다.

         

        그리 자기 합리화를 했다.

         

        그렇게.

         

        그녀는 스트레스가 극한으로 차올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누군가를 돕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설.

         

        그 범죄자에게도 말이다.

         

        [특성 ‘회복’을 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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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gret of the Regressor Who Killed Me 523 Times

The Regret of the Regressor Who Killed Me 523 Times

나를 523번 죽인 회귀자가 후회한다
Status: Ongoing Author:
After being falsely accused of being a sex crime murderer and serving time, I was summoned to another world. There, I awakened the ability to read minds and found out there was a regressor. But that regressor was regretting something about me. Why is he acting this way towards me? I don't un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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