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

        

         “이런 니미…. 씨발…. 병신 같은…!!”

         

         쾅쾅!!

         

         새어 나오는 떨리는 소리를 감추지 못한 남자가, 거칠게 자기 소유의 호버바이크를 걷어찼다. 하지만 연속된 발길질에도 엔진은 묵묵부답. 그는 정말로, 안락한 하베스트 플래닛을 코앞에 두고, 이런 모래폭풍 몰아치는 황무지에서 발이 묶인 것이다.

         

         “씨발… 씨발…!”

         

         이빨이 딱딱 부딪치고,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시스템도, 목격자도 없는 도시 바깥에서 혼자 멀뚱히 남겨진 시민권자라니. 심지어 관문 수비대한테 곤욕을 치를라, 목에는 당당하게 소속된 기업의 사원증까지 걸어 놨으니, 갱단이나 무법자들에게 발견된다면…. 잘해야 기업의 개라며 처형, 혹은 산채로 묶여 몸 안에 있는 모든 임플란트를 ‘수거’ 당할지도 모른다.

         

         오싹…!

         

         상상이 금방이라도 현실로 나타날 것 같은 불안감에. 그는 고개를 연신 두리번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단순한 무인 식량 플랜트 점검이라고 방심하지 말고. 얌전히 택시 서비스를 이용할 걸…. 이게 다 위험수당과 출장비도 기본급여에 포함되어 있다고 씨부리는 회사 탓이다. 지옥에나 떨어질 크레딧 강도 놈들.

         

         사박… 사박….

         

         그렇게 애물단지가 된 바이크를 질질 끌며 얼마나 걸었을까? 몰아치는 바람과 모래로 엉망인 그의 시야 한구석에, 뭔가 엉성한… 건축물 같은 것들이 보였다.

         

         “어……?”

         

         그제야 기억이 되살아났다.

         도시 게이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정착지 분명하다. 플랜트로 출장 나갈 때야 반기업주의자나 시스템 혐오자, 시민권도 없는 인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존나 수상한 아웃포스트라고 꺼려했지만…. 진짜 미친 놈들의 위협에 비하면, 어느 쪽이 더 신뢰가 가는지는 말로 풀어낼 필요도 없다.

         

         우선 아무 도움도 안 될 게 분명한 사원증부터 풀러 안주머니에 마구잡이로 쑤셔 넣은 후, 그는 조심스럽게 정착지 안으로 진입했다.

         

         거지 같은 폭풍 때문에 길을 물어볼 만한 행인도 딱히 안 보였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모텔보다는 호버바이크를 수리해줄 메카닉 샵. 불행 중 다행히도, 별 다른 인증없이 정착지 네트워크에 접속하는데 성공한 그는 원하던 가게를 금방 찾아냈다.

         

         

         [ 오소독스 머시너리 샵(Orthodox Machinery Shop). 수리 및 유지보수, 기초 임플란트 시술, 개조 의뢰까지 모두 한자리에서!!   Ps. 사이버웨어 업그레이드 및 백신 서비스도 시작했습니다! ]

         

         

         “아. 씨발….”

         

         믿음직한 가게 이름과는 전혀 다르게, 온갖 서비스가 덕지덕지 붙은 소개문구를 보고 그는 탄식했다. 도시 외부에서 기업 직영점 같은 걸 바란 건 아니었지만, 이런 수상한 동네 만물상에 애마를 맡겨야 하다니…!

         

         투덜거리면서도 열심히, 투박한 외관의 가게까지 찾아간 그는 굳게 닫힌 철문을 두드렸다.

         

         쿵쿵…!!

         

         “주인장 계십니까?! 손님 왔습니다, 손님!! 모래에 질식한 시체 치우기 싫으면, 일단 좀 들여보내주쇼!”

         

         “네~ 지금 나갑니다…!”

         

         “……?”

         

         예상과는 백만 광년 정도 떨어진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고음에, 남자의 머리가 삐그덕거렸다.

         세상에. 큰 도시에서 크레딧 좀 버는 잘난 놈들은 목소리도, 외형도 마음대로 수술받아서 바꾼다더니… 대체 얼마나 유별난 변태이길래, 이런 곳에서 지내면서 크레딧을 그렇게 낭비하는 걸까?

         

         하지만…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자, 그는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저도 또 청소하긴 싫네요!”

         

         “…….”

         

         거기엔… 작은 천사가 있었다.

         파닥거리는 손짓에 따라, 이끌리는 대로 멍하니 움직이면서도. 현실성 없는 미인에게서 그는 눈을 떼지 못했다.

         

         품에 쏙 들어올 것 같은 아담한 체형에 뽀얀 피부. 깔끔하게 정리됐지만 하늘거리는 머릿결. 영원히 들여다보고 싶은 보석 같은 눈동자까지.

         

         척 봐도 고급스럽고 비싸 보이는 옷은 그녀의 풍족함을 짐작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미모와 어울리는 음성은… 수술로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완벽했다. 도시 광고판에 자주 나오던 유명모델들조차도, 지금 이 자리에선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으리라.

         

         “손님?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어…. 그러니까… 이 호버바이크의 수리를… 좀….”

         

         “바이크 수리 의뢰, 확인했습니다~ …할아버지! 손님 오셨어요…!”

         

         “오…! 이런 날씨에 용케도 외부 손님이 오는군?”

         

         천사가 사라락 물러나고, 그 자리를 험상궂고 덥수룩한 노인이 메꿨다. 뭐야 시발 돌려줘요. 내 천사.

         

         남자가 아쉬워하거나 말거나, 거기서부터는 오로지 노인의 턴.

         

         “어이구야… 이렇게 폭풍이 몰아치는데, 공기 분사식 탈것을 굴리면 쓰나!!”

         

         엔진 고장이 어쩌구… 노후화된 제트 노즐이 저쩌구… 공기 압축용 팬의 내구도가 얼씨구… 연료 농도가 절씨구…. 최종적으로 어마어마한 크레딧 지출을 예고하는 견적서까지 뽑아졌지만, 남자는 전혀 엉뚱한 걸 추측하느라 너무 바빴다.

         

         만약 여기가 할아버지와 손녀, 단둘이서 운영하는 가게라면… 소개글에 적혀 있던 사이버웨어 업그레이드나 백신 시술은 누가 맡아주는 걸까……?

         

         “그러면…… 부품값에 인건비까지 다 합쳐서, 총 82,400 크레딧일세! …어찌하겠나?”

         

         “예…? 예. 수리, 해주십쇼. 그보단… 그… 사이버웨어 점검도. 혹시 받아볼 수 있습니까…? 전문가에게 검사 받아본지는 꽤 된 것 같아서요….”

         

         어색하게 덧붙인 변명이 축 늘어졌다. 당장 외부출장 나오기 직전에도 충분히 확인한 게 사이버웨어다. 게다가 여기가 무슨 밤의 유흥업소도 아닌데 쭈뼛대는 꼴이라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어서 말을 무르고 바이크나 챙겨서….

         

         “아! 사이버웨어 점검도 받으시나요!”

         

         “옙!! 부디 부탁드립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어질러진 바닥을 쓸던 천사가 반응했으니 후회 따위는 없었다.

         아끼던 바이크는 노인에게 맡겨 둔 채, 그는 긴 의자 침대에 몸을 눕혔다.

         

         구시대의 예술품들은,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크레딧을 지불해야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이미 천사의 미소를 봤으니, 점검이 엉터리여도 화내지 않으리라….

         

         “실례하겠습니다…!”

         

         “…?!”

         

         작고 보드라운 두 손이 상냥하게 얼굴을 감싸고, 그의 임플란트 시스템에 접근허가를 요청하는 신호가 수신되었다.

         

         격한 수락과 동시에 멀어져가는 의식속에서. 그는 자신이 얼마나 편협한 시선과 선입견으로, 도시 바깥 세상을 재단하고 있었는지 길게 반성했다. 밤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찾던 업소에서도 경험하기 어려웠던 온기와 충족감이, 이곳에는 있었다. …어쩌면 주기적으로 외출을 감행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고민과 함께, 그는 시스템 바깥에서의 짧은 휴식을 만끽했다.

         

         

         

        ★ ☆ ★ ☆ ★

         

         

         

         “커흐흐흠…! 아가씨! 저녁 식사는 뭐가 좋은가…?”

         

         “……최대한 저렴한 걸로 부탁드려요.”

         

         “내가 살 테니 걱정말게나! 한창 클 때, 그렇게 먹는 걸 소홀히 하면 큰일나니까…!”

         

         덜컹…!!

         

         와하하하~! 하는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능글맞은 메카닉 할아버지가 가게를 나섰다. …처음의 경계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겨우 며칠 된 임시 동업자에게 빈 가게까지 태연하게 맡겨버리는 행동에 실소가 절로 나온다.

         

         ‘직원이 필요 없다면 동업자…!’ 라고 딱히 협박한 것은 아니다. 그럴 처지도 못 된다.

         

         그저… 아르바이트 경험을 살려, 접객과 청소에 자신이 있다는 걸 먼저 보여주었고. 사이버웨어 관련 시술이 가능하다는 것도 증명할 겸, 메카닉 할배의 사이버웨어에 있던 파라다이스 사의 악질적인 ‘대출금 상기 시스템’도 슬쩍 꺼버렸을 뿐이다.

         

         대출금을 다 갚을 때까지 하루에 5분씩, 파라다이스 제품 광고를 강제로 시청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필수 설치라니…? 그러다가 고객이 진짜로 미쳐버리면 케어봇을 팔아 치우는 건가 싶다.

         

         결국 첫만남은… 내가 좀 일방적으로 밥맛이었어도, 지금은 괜찮은 협력 관계라고 생각한다. 할배는 가게에서 내 사업을 병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묵을 수 있도록 빈방까지 내줬으니까.

         

         ……왜 호칭이 그렇게 시건방지냐고?

         

         …우습지만, 우리는 아직 서로의 이름조차 모른다. 누가 나서서 정한 것도 아닌데, 이 어색한 가족놀이는 어찌저찌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는 홀연히 나타난 신원불명자를 기꺼이 받아주었고. 나는 왜 호호백발 할아버지가 아직도 대출금에 시달리는지, ……왜 여자애가 쓰던 것 같은 물건들로 가득 찬 빈방이 있는지. 구태여 묻지 않았다.

         

         타인의 어깨 위에 놓인 짐의 무게를 굳이 가늠하려 할 필요는 없다.

         담백한 관계는 떨어질 때도 부담이 적을 테니까. …역시 사람은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워야한다.

         

         “……흥.”

         

         단지… 원래 목표였던 시민권의 부족액인 11만 크레딧보다는.

         하베스트 플래닛에서 네오 헤이븐까지 가는데 들 필요 경비나, 계속 나가는 식비. 그리고…… 떠나기 전, 슬쩍 놓고 갈 방세까지 포함해 넉넉하게 30만 크레딧정도는 버는 게 좋다고 계획을 수정했을 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히 정당하게 돈을 벌려고 하다니!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