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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손이 붙잡혀 강제로 끌려간다.

       

       비록 그 손길에는 배려가 스며들어있어 딱히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엘리세르데는 지금 이 순간이 매우 불쾌했다.

       

       그저 요르문간드가 찾아준 과일을 맛있게 먹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용사라는 자는 요르문간드를 드래곤으로 오해하고 공격한 채 자신과 함께 도망가고 있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 본 존재를 자신의 줏대대로 아무렇게나 평가하고, 자신의 기준에서 맞춰 생각하는 마음이.

       

       엘리세르데는 가능한 평등한 시선으로 모두를 바라보려 했다.

       

       지나가는 생명 하나하나가 자신과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왕녀가 품기엔 칠칠맞은 생각일 지도 모르지만, 엘리세르데는 무척이나 진심이었다.

       

       그렇기에 요르문간드에게 두려움을 느꼈을 지언정, 무작정 그를 배척하고 밀어내지 않았다.

       

       그건 일종의 그가 자신을 해칠 거라면 진즉에 했을 거라는 얄팍한 믿음이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를 함부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어떻지?

       

       당장 자신만 해도 그렇다.

       가만히 있는 요르문간드를 착각하고 드래곤으로 오해하여, 자신을 제물로 바쳤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그 드래곤이라는 놈이 어떤 놈인지.

       

       요르문간드를 보는 사람마다 난폭하고 흉폭한 드래곤으로 오해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녀의 마음을 날카롭게 헤집는 것은.

       

       ‘…익숙해 보였어.’

       

       드래곤으로 오해를 받아 참격을 맞는 그 순간 까지도.

       

       요르문간드는 단 한 치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 당연하고,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여긴다는 게 슬펐다.

       

       단순히 그 생김새 때문에.

       

       그 거대한 덩치 때문에 괴물로 오해받고 편견이 씌인다면 무척이나 슬플 거 같았다.

       

       그래서 엘리세르데는 마음이 불편했다.

       

       혹여나 요르문간드가 갑작스레 공격을 받아 마음에 상처를 입은 건 아닐 지 신경쓰였다.

       

       하지만….

       

       ——스으윽.

       

       몇 배나 더 커져버린 요르문간드가 태양을 가리며 이쪽을 응시했을 때, 분명 뱀이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 더 휜 것만 같은 입꼬리를 보며 엘리세르데는 생각했다.

       

       응, 괜찮아보이네.

       

       어째서인지 엘리세르데도 느껴질 정도로 장난기 가득한 눈동자.

       

       “허, 허어억…!”

       

       엘리세르데는 이 사실을 용사에게도 말해줄까 하다가, 괘씸해서 그만뒀다.

       

       뭐, 용사가 옳은 마음씨를 가졌지만 잘못하기도 했고.

       

       조금 골려주는 정도는 괜찮겠지.

       

       

       * * *

       

       

       그건 재앙이었다.

       

       살아 숨쉬는 재앙.

       

       지그시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시선에도, 용사는 존재 자체가 말소되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압도적인 강함.

       그제야 용사는 자신의 실수를 이해했다.

       

       저 존재는, 드래곤 따위가 아니다.

       

       감히 드래곤 따위와 비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훨씬 더 압도적인, 마치 살아움직이는 자연재해가 실체화된 것만 같았다.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근육이, 감히 맞설 생각 따윈 버리라 소리치고 있었다.

       

       도망갈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모르겠다.

       

       저 초월적인 존재에게서 도망을 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 속 새카만 공백. 이런 감각은 그가 용사가 되면서 난생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한없이 아득한 격 차이.

       

       마음 같아서는.

       무너져 버리고 싶다.

       

       하나,

       

       ——우우웅.

       

       성흔이 새하얗게 빛나며 저 존재의 존재감을 천천히 희석해준다. 그가 지닌 특성은 말 그대로 ‘고결’. 무엇 하나 능력을 정확히 집기에는 애매하지만, 그의 특성은 그 어느 상황이든 그가 무너지지 않게 만들어주는 성흔이었다.

       

       제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모두가 포기하고 절망에 빠진 순간이라도.

       

       용사는, 자신은.

       

       일어나야만 한다.

       

       그렇기에 ‘고결’의 용사.

       

       동화 속 그 어느 적과 싸워도 이기는 용사의 고결함을 지키기 위해 내려진 성흔이었다.

       

       이를 악물었다.

       아스가르드는 여인을 잠시 바라보다, 입술을 짓씹었다.

       

       이대로 있으면 그녀가 휘말릴 터였다.

       

       검을 들어올린다.

       그 전보다 명명백백히 더 새하얗고 밝게 타오르는 오러가 검신에 넘실거리며 일렁인다.

       

       용사는 그대로 바닥을 거세게 박차며 녀석에게 돌진했다.

       

       투콰앙——!

       

       지면을 부숴버릴 기세로 밟고 튀어오른 용사가, 순식간에 녀석의 머리 지척에 닿았다.

       

       그리고 눈을 향해 전력으로 검을 휘둘렀다.

       

       맞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저 존재가 이런 뻔한 공격을 맞아줄 리가 없으니까.

       

       역시나.

       

       ——스윽.

       

       그 존재는 감히 인지하기 조차 힘든 움직임으로 그의 공격을 완벽히 피해내고 그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공중에서는 몸을 비틀 수 없는 약점을 노린 공격.

       

       하지만, 용사란 종의 한계를 뛰어넘은 이들이었다.

       

       신체를 한계까지 비틀어 공중곡예를 하듯 공격을 피해낸다.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스쳐가는 거대한 머리.

       

       용사는 곧바로 머리에 검날을 박아넣으려 했으나——

       

       ——까앙!

       

       오산이었다.

       

       비늘의 강도가 그의 상상 이상이었다.

       

       설령 어떠한 마수라 해도 두부처럼 썰고 지나가던 그의 검이, 거대한 벽을 만난 것처럼 단 한 치도 파고들지 못했다.

       

       오히려 그 강도에 검이 반토막이 나버렸다.

       

       절망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이미 상정되어 있다…!!”

       

       콰드득!

       

       부러진 검날을 손으로 붙잡는다.

       

       손이 찢어져 피가 흘렀으나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오러를 모두 불어넣은 채 비늘을 향해 검을 내려찍었다.

       

       ———카가가각!

       

       역시나 뚫리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의 신경이 거슬리게 하기는 가능했다.

       

       거대한 육체가 꿈틀거린다.

       그 폭발적인 탄력만으로 용사는 십 수 키로미터를 날아 거대한 산에 처박혔다.

       

       “커흑…!”

       

       용사의 육신은 강인함을 달리했기에, 크나큰 상처는 입지 않았다.

       

       오히려 용사는 계속해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붙들어메야만 했다.

       

       ‘드디어… 거리를 벌렸다!’

       

       아스가르드는 어느새 자신을 내려다보는 존재를 보며 생각했다.

       

       이 모든 상황이, 그가 유도한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저 여인과 녀석을 떨어뜨려놓기 위해.

       

       용사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 시선을 끌었다.

       

       그 결과, 여인이 도망갈 시간이 조금이라도….

       

       [그녀를 찾나?]

       

       “……!!”

       

       그 존재가, 말을 했다.

       

       뒤이어 이어진 상황은 전혀 그가 상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분명 무사히 도망치고 있을 여인이, 녀석의 몸 위에 붙잡혀 있었다.

       

       [아쉽게 됐군. 그렇게 열심히 시선을 끌었는데 말이지.]

       

       “…그녀를, 놔줘.”

       

       [글쎄, 어떻게 할까.]

       

       “…….”

       

       마치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여유로운 목소리.

       

       용사는 입술을 짓씹었다.

       그는 다시금 부서질 것만 같은 몸을 일으켰다.

       

       선량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설령 몇 번을 쓰러진다 해도 일어나겠다.

       

       다시금 그의 다짐을 되뇌이며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선택해라.]

       

       “……?”

       

       [이 여인을 살리고 네놈이 대신 죽을 지, 혹은 이 여인을 버려두고 네놈 혼자 도망갈 지.]

       

       “…….”

       

       용사는 가만히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밤하늘의 장막처럼 새카만 머리카락과, 흑요석을 깎아지른 듯 반짝이는 눈동자.

       

       오똑한 콧날과 새하얀 피부.

       누가 보더라도 미녀라 할 수 있는 여인.

       

       관리가 잘 된 머리카락과, 비록 조금 더러워졌지만 한눈에 보더라도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드레스는 무척이나 귀하고 값비싸보였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겠지.’

       

       그런 여인이 어째서 저 마수에게 세뇌당해 동굴에 있었는 지는 모르겠다.

       

       얼굴을 제대로 본 것도 방금이 처음이다.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나누어 본 적 없는 쌩판 처음보는 사람.

       

       사실상 남이라 해도 좋았다.

       그녀가 어떻게 되더라도, 그가 신경쓸 바는 아니었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이 필요하다면 더욱더.

       

       그 누구도 처음보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바치는 멍청한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바닥을 기어다니는 벌레 조차 자신의 생명이 귀한 것을 아니까.

       

       그런 의미에서.

       용사, 아스가르드는.

       

       “내가 대신 죽겠다.”

       

       희대의 멍청이이자, 호구였다.

       

       처음 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도 기꺼이 바치는 호구.

       

       “날 죽여라.”

       

       그리 말하며 검을 바닥에 내려놓고 갑주를 벗는 용사.

       

       그 고결하고 순수한 모습에 요르문간드는 이채를 띄었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저런 선택을 할 지는 몰랐다. 그 어느 존재 조차 자신의 목숨을 가장 소중히 여기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 용사는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타인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성품.

       

       그 순수한 눈을 보아서일까.

       

       어느새 그에게 품었던 적은 불쾌감은 눈 녹듯 사라져있었다.

       

       요르문간드는 씨익 웃으며, 용사에게 마법을 걸었다.

       

       정확히는 자신이 이 여인에게 아무런 세뇌도 걸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가 행한 일들이 모두 오해에서 비롯된 것을 알려주는 마법이었다.

       

       이윽고 멍하니 그 마법을 복기하던 아스가르드는.

       

       얼굴이 달아오른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하다…….”

       

       전부 터무니 없는 오해였다.

       

       자신의 추태를 떠올리니,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는 아스가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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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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