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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9. 폴리모프 (2)

       

       

       드래곤의 본모습은 인간 세상에서 효율적이지 않다.

       모든 물건이 인간의 기준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짜증 나 죽겠어!! 손잡이가 왜 저렇게 높은 곳에 있는 거야!! 이 멍청한 인간들!!

       

       폴짝- 폴짝-

       화련은 닫혀 있는 화장실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향해 열심히 뛰었다.

       

       -이하준! 그 바보는 왜 문을 닫고 간 거야!!

       

       까먹고 화장실 문을 닫고 떠난 이하준을 원망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결국에 화장실 문을 열고 자연 현상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화련은 점점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만들이 슬슬 폭발하려 하고 있었다.

       

       -이렇게는 못 살아!! 불편해! 나 인간의 모습으로 살 거야!!

       

       폴리모프 하고 말 거야.

       화련은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며 끙끙 앓기 시작했다.

       폴리모프는 드래곤이라 해도 쉽지 않은 마법이었다.

       아무리 부모에게 지식을 전수 받았다고 해도, 다른 모습이 되는 건 일종의 계기가 있어야만 했다.

       

       -어떤 모습이 좋지? 수련이가 말한 대로 해츨링일 때는 정체성에 혼란이 오지 않도록 여자나 남자 둘 중에 하나만 정해야 하는데.

       

       내가 되고 싶은 나는 어떤 모습이지?

       나는 어떤 모습일 때가 가장 나답지?

       가장 나다운 모습은 대체 뭐지?

       

       -으아아악!! 어려워!! 복잡해 죽겠어!! 복잡한 건 싫단 말이야!!

       

       드래곤은 독선적인 종족이다.

       고집이 세고 자신만의 생각이 강해서, 남의 말은 듣지 않는다.

       그럼에도, 화련은 이런 복잡한 생각에 갇히는 것이 제일 싫었다.

       

       -다른 바보한테 물어봐야겠어. 초련이는 나보다 멍청하니까. 수련이한테 물어봐야지.

       

       뽈뽈뽈-

       화련은 수련에게 다가가서 자신 있게 질문했다.

       

       -야, 수련.

       

       개인적인 시간을 방해받은 수련은 눈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왜.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

       -서로 본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시끄럽고 질문에 대답이나 해!!

       

       귀찮게.

       수련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어려운걸 싫어하는 단순한. 레드 드래곤이라는 종족에 걸맞은 멍청이.

       -ㅁ, 뭐?! 내가 왜 멍청이야!

       -레드 드래곤 특. 자기가 멍청이라는 사실을 부정함. 어머니에게 전수된 지식이 사실인가 보네.

       -하,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화련은 현실을 부정하며 수련을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찰싹-!

       

       수련은 꼬리에 얻어맞아 한 바퀴를 굴렀다.

       그리고, 얼굴을 감싸 쥐고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레드 드래곤 특. 폭력적임. 이것도 사실인가 보네. 

       -흥. 감히 첫째인 나를 정의하려 하다니. 내가 폭력적인게 아니라 네가 잘못한 거야!

       -…멍청이한테 사실대로 대답해준 내 잘못이 맞긴 하지.

       -이게!

       

       화련의 또다시 수련을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련이 아니었다.

       

       -두 번은 안 당해.

       

       수련은 재빨리 몸을 뒤로 움직였다.

       그 때문일까.

       하필 근처에 있던 생라면 접시가 화련의 꼬리에 닿고 말았다.

       

       쨍그랑-!!

       

       -아.

       -…

       

       저 멀리 하늘을 날아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깨져버린 유리 접시.

       화련과 수련은 그 접시를 허망하게 쳐다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은 고개를 돌려 깨진 접시 조각을 외면했다.

       

       -내 잘못 아니야! 너가 먼저 시비 걸었잖아!

       -내 탓은 아니야. 저 접시를 부순 건 너야.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초련. 

       초련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그들을 향해 단호하게 소리쳤다.

       

       -싸우면 안 돼! 싸우는 건 좋지 않아! 다들 사이좋게 지내야지!

       

       그린 드래곤의 특은 평화주의자였다.

       

       

       ***

       

       

       오늘도 여지없이 출근.

       무거운 몬스터의 부산물을 열심히 옮기다 보면 하늘이 어두워진다.

       그때쯤이면 차원문에서 활약하고 나온 영웅들을 가만히 쳐다본다.

       그렇게 혼이 나간 것처럼 보고 있으면 인력 사무소장이 크게 소리친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들 수고했어!”

       “수고하셨습니다!!”

       

       그 소리를 말하고 듣는 것으로 하루가 끝난다.

       그 뒤에는 이제 일상이 되어버린 생필품 횡령을 진행한다.

       

       “휴지 하나랑 커피 믹스 3개만 챙겨가야지.”

       

       오늘의 나는 좀 양심적인 편이었다.

       잠시 횡령을 저지른 뒤, 작업복을 벗고 나오니.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인력 사무소장 조현규와 눈을 마주쳤다.

       

       ‘소장님은 말이 너무 많아서 귀찮은데.’

       

       그래도 인사는 해야겠지.

       나는 생필품이 담긴 검은 봉투와 함께 손을 짧게 올렸다.

       

       “소장님. 오늘도 수고요. 저 갑니다. 내일 봐요.” 

       “새끼. 말이 점점 짧아져? 이리와. 하나 줄게.”

       

       소장님은 담배를 하나 건네줬다.

       나는 담배와 라이터를 받아,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오랜만에 일하니까 어때? 힘들지 않냐?”

       “뭐, 그냥. 예전이랑 똑같죠.”

       

       오랜만에 일을 했다고 하지만.

       일도 그렇고 딱히 달라진 건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러냐? 넌 예전이 더 힘들어 보였는데. 6달 동안 뭐 했어? 여자 친구라도 생겼어?”

       “제 사정 다 알잖아요. 그럴 리가 없다는 거.”

       

       조현규. 

       인력 사무소장.

       

       60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몸이 탄탄한 근육으로 덮여 있다.

       그는 내가 6개월 동안 잠수를 타고 왔어도 나를 다시 뽑아줬다.

       내 사정을 다 알고 있기도 하고, 서로 알고 지낸 기간도 꽤나 길다.

       내게 다른 사람들에게 걸리지 말고 생필품을 횡령하라 말해주기도 했다.

       

       ‘착한 사람이지.’

       

       나는 스모그에 가려져 달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하늘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제 처음 왔던 사람이랑 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그냥 했지.”

       “돈 줬어요?”

       “뭐 필요해 보이던데. 줘야지. 부모님이 아프다고 하잖냐. 수술은 해야지.”

       

       너무 착해서 탈이지만.

       나는 한숨에 가까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 사람 오늘 안 나왔잖아요. 연락도 없었죠?”

       “엉, 수술하느라 바쁜 것 같던데?”

       “아오, 진짜. 다른 사람한테 돈 빌려주지 말라니까. 그럴거면 그 돈 차라리 저한테 주지 그랬어요?”

       

       사무소장은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10년 동안 돈을 안 갚고 있는 너를 내가 뭘 믿고 내가 빌려주냐?”

       “안 갚는게 아니라 못 갚- 아니, 됐고. 처음 본 사람한테는 주면서요?”

       “빌려주는 거야. 그 사람은 갚을 가능성이라도 있지. 넌 없어. 젊을 때 일이나 해, 임마. 돈 빨리 갚고.”

       “억울해 죽겠네요. 에휴, 저 다 피웠으니 갑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것 같은데.

       처음 만난 사람보다 신뢰도가 적다니.

       

       ‘…나 같아도 안 빌려주긴 하겠지만.’

       

       나는 담뱃불을 발로 끄고 앞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뒤에서 사무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얌마, 고기에 소주 한잔하고 들어가! 내가 살게!”

       “저 오늘 안 돼요. 앞으로도 안 될 거고요.”

       “어디 가는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짧게 대답했다.

       

       “집으로요.”

       

       

       ***

       

       

       최근.

       집으로 가는 길이 기대된다.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내 딸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녀석들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체력이 자동으로 채워지는 느낌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게 기대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나한테 이런 날도 오는구나.’

       

       좋다.

       변태는 아니지만 자꾸만 미소가 실실 지어진다.

       

       ‘빨리 가야겠다.’

       

       나는 우범지역으로 분류된 집 근처를 빠르게 통과했다.

       그리고, 기대되는 마음과 함께 철문을 세차게 열었다.

       

       철컹-!

       

       “애들아. 아빠왔-”

       

       그 순간.

       내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마치, 저 바닥에 깨져있는 유리 접시처럼.

       무참히 조각나버린 내 속을 모르는지, 초련이가 웃으며 나를 마중나왔다.

       

       “샤아아-!!”

       “…초련아.”

       “샤아아-?”

       “…저 깨진 접시. 네가 했니?”

       “샤아아-“

       

       절레절레-

       초련이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둘로 좁혀진다.

       

       “화련. 수련. 내 앞으로 집합.”

       “…샤아-“

       

       수련은 구석에 숨어있다가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반면, 화련은 내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녀석은 거실 중앙에 떡하니 서서 내게 포효하고 있었다.

       

       “샤아악-!! 샤아악-!!”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아빠의 권위를 사용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나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추정되는 화련이를 향해 다가갔다.

       

       “저 깨진 접시. 네가 깨뜨렸어?”

       “샤아악-! 샤아악-!”

       “막 소리치지 말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던가 둘 중에 하나만 해. 네가 그랬어?”

       “샤아악-!! 샤아악-!!”

       

       화련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녀석은 계속해서 내게 크게 소리지를 뿐이다.

       무엇 하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린이의 떼처럼 보인다.

       나는 그런 화련이의 앞에 서서 다시 말했다.

       

       “저 접시. 네가 그랬어, 이화련?”

       “샤아악-! 샤아악-!”

       

       화련이의 불길은 절대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그 불길에 물을 뿌리는 대신.

       다른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바로 더 큰불을 내는 방법이다.

       

       “저 접시 네가 그랬냐고, 이화련!! 너 이자식 이리와!!”

       “샤아악-!!”

       

       나는 화련이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녀석은 내 행동을 예상했는지, 몸을 뒤로 움직였다.

       

       “이게! 말을 무시하기나 하고!”

       “샤아악-! 샤아악-!”

       “뭐가 억울하다고 울어!”

       

       역시 드래곤이라 이건가.

       그 짧은 몸으로 재빠르게 움직인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이거지?’

       

       내가 여기서 패배하게 된다면 아빠의 권위는 바닥을 기게 되겠지.

       절대 이 자리에서 패배할 수 없다.

       나는 또다시 화련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일루와!!”

       “샤아악-!!”

       

       우당탕탕-!! 

       와다다다-!!

       

       나와 화련이는 비좁은 원룸에서 긴박한 추격전을 시작했다.

       파충류 주제에 얼마나 재빠른지 손이 닿으려고 하면 저 멀리 도망친다.

       작은 쥐새끼를 잡으려 하는 고양이가 된 기분.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먼저 지칠 것 같기에, 나는 인간의 능력을 하나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이불을 높게 들고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녀석은 이건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서서히 뒷걸음을 치며 구석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쉽지 않을걸. 얌전히 포기하는 게 어때?”

       “샤아아악-! 샤아아악-!!”

       “저 접시 네가 했잖아! 뭐가 그렇게 억울한데!!”

       “샤, 샤아악-!!”

       

       구석에 몰린 녀석의 불길이 살짝 사그라들었다.

       나는 그 틈을 노려 녀석의 위로 이불을 덮었다.

       

       “잡았다! 이 자식!!”

       “샤아악-!! 샤아아악-!!”

       

       녀석은 이불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그 반항의 불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사그라들었다.

       

       “후, 드디어 얌전해졌네.”

       “…”

       “잘못했으면 반성해야지. 내 말을 무시하고 도망치기나 하고 말이야.”

       “…”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 알겠어?!”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렇게 조용한 화련이는 처음이었다.

       이쯤이면 반성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굳게 덮고 있던 이불을 치워 녀석에게 자유를 주기로 했다.

       

       ‘…근데, 화련이가 이렇게 컸나?’

       

       살짝 의문이 들긴 했지만.

       이불을 치우고 녀석에게 자유를 줬다.

       그 순간.

       

       “나만 잘못 안했다구!!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

       

       샤아악- 소리가 아닌.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와 함께.

       내 턱을 향해 묵직한 발차기가 날아왔다.

       

       퍼억-!

       

       그 발길질에 의해 내 몸이 뒤로 자빠졌다.

       

       “ㅂ, 방금 뭐야?! 갑자기 발이-”

       

       그리고.

       

       “뭐긴 뭐야!!”

       

       그런 나의 눈에 보이는 건.

       이불을 둘러싸고 있는.

       붉은 머리를 하고, 붉은 눈을 한.

       날카로운 인상의 소녀.

       

       “화련이다!! 이 멍청한 인간아!!”

       

       이불에 감싸진 화련이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서 있었다.

       

       “나만 잘못한 거 아니라고!! 쟤가 먼저 나한테 시비 걸었는데!! 왜 나한테만 그래!! 씨잉…”

       

       녀석은 정말 억울했던 건지.

       투명한 눈물을 조금씩 흘리고 있었다.

       

       ‘…내가 너무 섣불리 판단했던 건가.’

       

       아무래도 얘기를 제대로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어떻게 인간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포함해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느린 다르팽이입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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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Dragon Egg

I Picked up a Dragon Egg

드래곤의 알을 주웠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picked up an Egg from the Dragon’s Nest. “Shakk!!!!” “Should I just sell?” I should have picked some other tr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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