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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새삼스럽지만, 우리 가족만큼 콩가루인 집안이 또 없다.

     오직 모든 판단기준이 아내가 최우선인 아버지.

     열렬한 사랑을 원하는 바람에 부정을 저지른 어머니.

     그런 둘 사이에서 태어난 세 남매의 사이는 ‘잔을 든 날’ 전까지는 제법 좋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도련님. 동생분들은 안 보고 가도 되겠습니까?”

     “딱히.”

     내가 왕도로 떠나는 날에도 내게 다가오는 걸 두려워할 정도로, 지금은 사이가 소원해졌다.

     동생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챙겨야 한다?

     그런 건 맞을 수도 있긴 하지만, 그들이 미래에서 저지른 행각들을 생각하면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로버트 경.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악하게 태어난다고 생각해?”

     “어, 음, 뭔가 엄청 철학적인 질문이네요?”

     “비슷해. 도서관에서 읽은 책 중에 그런 질문이 있더라고.”

     나를 왕도까지 호위하기로 한 기사, 로버트는 좀처럼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악하게 태어난다기보다는, 자라는 환경이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을까요?” 

     “환경?”

     “예. 그 뭐냐, 폭력적인 집안에서도 주변에 마음을 위로해줄 사람이 있으면…. 뭐, 헤헤.”

     로버트는 순박하게 웃었다.

     아마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의 심신을 달래줄 누군가가 있었겠지.

     좋은 이야기다.

     이 나라가 망하고 제국에 통째로 넘어가는 미래가 아니게 된다면-

     -로버트!

     -나, 돌아왔어. 이제는 내가 지켜줄게.

     기사로서 자리를 잡고 고향으로 돌아가 소꿉친구에게 고백하는 그런 해피엔딩도 나올 수 있겠지.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그러면 그대가 보기에, 우리 가문은 아이가 자라기에 좋은 환경인가?”

     “어, 크, 크흠!”

     “이런. 지브롤터 백작가의 기사에게 묻기에는 조금 난감한 질문이었나.”

     “참, 짓궂으십니다.”

     로버트는 볼을 긁적거렸다.

     뭔가 할 말은 있어 보이지만, 차마 말을 하지 못하는 거겠지.

     “그럼, 그냥 내 푸념 대상이 되어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어, 음. 예! 그건 잘합니다!”

     “백작과 백작 부인은 좋은 부모는 아니야.”

     “…….”

     로버트가 입을 떡 벌렸다.

     설마 시작부터 패륜적인 발언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조금 그래. 귀족 가문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사고가 났는데도 그걸 제대로 수습해주지 않는걸.”

     아버지가 매국을 결심한 날.

     아버지는 자신의 분노를 보여주겠다는 명목으로 하인들을 죽였다.

     나와 동생들이 있는 자리에서.

     “누아르랑 레타르, 걔들 아직도 방 안에서 떨고 있을걸.”

     사람이 죽었다.

     아버지가 사람을 죽였다.

     자식들이 큰 충격을 받았는데, 아버지나 어머니나 둘을 달래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며칠 동안 둘이 딱 달라붙어 있었다.

     -잘했다, 내 아들. 역시 장남이야.

     나의 설득 아닌 설득이 통한 덕분인지, 두 사람은 다시 같은 방을 쓰기 시작했다.

     둘 사이에 뭘 했는지는 동생들은 잘 모르겠지.

     그냥 아침에 일어났을 때, 어머니가 목까지 올라오는 옷을 입고 나왔다는 것 정도만으로도 나는 정보를 확보하는데 충분했다.

     “수도에 도착하면 가정교사를 좀 알아봐야겠어.”

     “뭔가, 배우고 싶으신 게 있으십니까?”

     “하나 있기는 한데, 나 말고 동생들.”

     교편을 잡고 교양을 가르치는 교사는 내게 필요 없으나, 두 동생에게는 필요하다.

     “인자하고, 자애롭고, 두 사람을 돌봐줄 여자 교사가 좋겠어.”

     “으음…. 젊은 여교사는 위험할 것 같습니다만.”

     “왜?”

     “그야, 백작님께 반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변수가 있었군.”

     하긴.

     변경백은 3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0대 중반의 미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지.

     심지어 소드마스터다.

     체력 하나만큼은 왕국 제일이다.

     “그럼 마침 마차도 도착했겠다, 슬슬 출발하도록 하지.”

     나는 백작성 정문에 도착한 마차에 올랐고, 로버트 경이 직접 마부석에 올랐다.

     “수도까지 잘 부탁해.”

     “물론입니다. 그, 심심하면 안에서 계속 말 걸어주셔도 좋습니다.”

     “나야 좋지.”

     장거리를 움직이는데 마냥 혼자 사색만 할 수는 없으니.

     “그런데 도련님.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뭔데.”

     “도련님이 배우고 싶으신 건 뭡니까?”

     “나? 아, 그래. 별 건 아니고.”

     급한 불이 꺼진 뒤.

     “무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힘을, 체력을 길러야 한다.

     “로버트 경. 아버지는 소드마스터잖아?”

     “그렇죠.”

     “그럼 내가 직검이 아닌 외날검, 칼을 잘 다룬다면 블레이드 마스터라고 해야 하나?”

     “…도련님.”

     로버트가 살짝 자존심이 긁힌 듯, 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마스터, 그렇게 쉬운 거 아닙니다.”

     “알아.”

     

     왕국과 제국, 대륙 전체를 통틀어 ‘마스터’가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하물며 블레이드라뇨. 그건 저기 제국에서나 쓰는 날붙이 아닙니까.”

     “그렇지.”

     “왕국민이라면 소드! 랜스! 하다못해, 레이피어! 베기만 하고 흐물거리는 블레이드는 뭐랄까, 조금….”

     “그렇겠지.”

     나는 품 안에 있는 사업 계획서 두 장과 곱게 접힌 손수건 한 장을 확인한 뒤, 눈을 감았다.

     “나도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았다면,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으려나.”

     이번 생은.

     * * *

     노스트럼 왕국은 기사의 나라다.

     

     기사도와 명예를 숭배하고, 전통과 격식을 중시한다.

     그래서 보통 남자들 사이에서 다툼이 생겼을 때, 귀족들은 서로 흰 장갑을 상대에게 던지는 걸로 결투를 신청한다.

     결투.

     명예로운 대결.

     문제 대부분은 결투로 해결할 수 있다고 사람들이 으레 말하듯, 결투는 노스트럼에서 몹시 신성한 행위다.

     이번 일에서는 왜 결투가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당연히 변경백과 국왕이라는 사회적 위치도 위치지만-

     ‘국왕이 미쳤다고 결투를 받을까.’

     변경백은 소드 마스터다.

     국왕은 그에 비해 검술이든 다른 무술이든 아무런 재능도 없는 범부(凡夫)다.

     무능왕에게 그나마 재능이 있다고 한다면-

     ‘나리아 공주를 예쁘게 낳게 해준 혈통?’

     딱, 그 정도.

     그나마 아버지와 비교하면 우위를 점하는 부분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그건 국왕과 어머니 사이의 비밀.

     “도련님. 왕도에 도착했습니다.”

     마차가 멈춘다.

     나는 마차에서 내려, 웅장한 왕도의 모습을 두 눈에 담았다.

     ‘웅장은 개뿔.’

     미래의 모습과 비교하면 정말이지 초라하다.

     그 미래의 모습도 ‘제국의 식민지’로서의 모습이다.

     황제는 왕국을 점령하며, 왕도를 완전히 갈아엎었다.

     벽돌도 제대로 깔리지 않은 도로를 재정비하고, 마법사들을 동원해 지하에 상하수도를 깔았다.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빈민가를 전부 날려버렸고, 제국식 대규모 거주지를 만들었다.

     식민지가 되었지만, 백성 중 일부는 그런 말을 하기도 했다.

     -왕국에서 거지같이 사느니, 제국의 2등 시민으로 사는 게 훨씬 더 낫더라.

     라고.

     귀족들 입장에서는 직위를 비롯해 모든 걸 박탈당해버렸지만, 백성들은 나라가 바뀐다고 해도 생활에 큰 차이는 없었으니까.

     “그, 도련님? 저기, 기사들이 오고 있습니다.”

     잠시 왕국의 성벽과 백성들을 구경하며 현재와 미래를 비교하는 사이, 로버트가 앞을 가리켰다.

     절그럭, 절그럭.

     황금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가슴에는 왕실을 상징하는 사자의 머리 모양이 각인되어 있고,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우리의 앞에 멈췄다.

     “지브롤터 백작가의 그레이 지브롤터. 맞나?”

     “예. 제가 그레이 지브롤터입니다.”

     고압적인 목소리의 중년 남자를 향해 나는 고개를 숙였다.

     “제로스 바르셀, 왕실 기사단 [황금 여명]의 기사단장님을 뵙습니다.”

     “음…!”

     투구 아래, 침음성이 흘러나온다.

     얼굴까지 가린 페이스 마스크형 투구 때문에 자신을 모를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변경백은 강녕하신가?”

     “예. 아버지로부터 단장님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변경백이, 나를?”

     “예. 자신에게 상처를 낼 수 있는 자가 다섯 있다면, 그중 한 명이라고.”

     “…흐. 흐하하!”

     제로스 기사단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나를 그렇게 생각할 줄이야. 이것 참. 모처럼 직접 나온 보람이 있군.”

     

     소드마스터의 칭찬이니 기뻐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알고 있을까.

     저 말이 사실은 반역의 과정에서, 자신의 ‘적’이 될 사람들에 대한 평가였다는 걸.

     -왕도에서 조심해야 할 자들이 있다.

     아버지는 내가 왕도로 오기 전, 몇 가지 경고를 남겼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남자.

     “그레이 지브롤터는 따라오라.”

     왕국에서 ‘기사도’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의 온상이며, 명예를 중시하는 기사 그 자체.

     마스터는 되지 못했다.

     그래서, 미래에 제국의 황제에게 살해당했다.

     단 일격에.

     “아, 그래. 한 가지 전할 이야기가 있다.”

     제로스 기사단장은 내게로 고개를 숙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왕궁의 홀에서 무슨 일이 있든 당황하지 말도록.”

     “……예. 명심하겠습니다.”

     무슨 일?

     그야, 당연히.

     ‘무능왕이 무능왕 했다.’

     그 정도겠지.

     “혹시 홀에 왕비님과 공주님도 같이 계신 겁니까?”

     “……가보면 안다.”

     기사단장은 어딘가 질린 듯한 목소리로 이를 갈았다.

     “절대 당황하지 말도록.”

     “……?”

     잠시 뒤.

     나는 황당함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릴 뻔했다.

     왕의 옥좌는 비어있었다.

     * * *

     “다시 만나서 반갑네. 그레이 지브롤터.”

     왕의 옥좌에는 사람이 비었고, 그 옆에 있는 왕비의 의자에 있는 이가 나를 맞이했다.

     “그레이 지브롤터, 노스트럼의 달빛을 뵙습니다.”

     “여전히, 완벽한 예법이로구나.”

     카르멘 왕비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비어있는 왕의 옥좌에 시선을 보냈지만, 곧 표정을 바꾸며 내게 손을 뻗었다.

     “내게 줄 것이 있지. 그렇지 않니?”

     “국왕 전하께 드려야 할 사업 계획서입니다.”

     “그렇다면 내게 주렴. 지금 전하는 자리를 비우셨으니.”

     “…….”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품에서 양피지 두 개를 꺼냈다.

     원래라면, 왕이 없다고 왕비가 이런 걸 받으면 안 된다.

     변경백이 직접 올리는 대규모 사업 계획서인 만큼, 왕이 가장 먼저 펼치는 게 기본이며 규칙이다.

     “여기 있습니다.”

     “음, 그래.”

     그런 규칙조차 현재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만큼, 왕성의 행정은 여러모로 망가져 있다.

     “…흐음.”

     사실상 정치는 모두 왕비가 도맡아 하고 있는 노릇.

     “구름다리 재정비 사업, 그리고 승강기 설치 사업이라….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규모가 상당히 큰 사업이구나.”

     “예.”

     “이 예산을 왕도에서 모두 지원해달라?”

     “예.”

     100%.

     “합치면 대략, 자그마치 500억 골드는 될 것 같구나.”

     500억 골드.

     

     “9급 행정관의 연봉이 어느정도인지 알고 있니?”

     “3천만 골드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기사의 경우 평균 연봉이 대략 1억 골드 정도지. 그런데…그게 500억이라.”

     왕비가 가라앉은 눈동자로 사업 계획서를 빤히 내려다봤다.

     “이건, 회의가 필요하겠군.”

     왕비 혼자서 함부로 결정할 수-

     ‘있지.’

     왕비의 옆에 있는 협탁에는 국왕의 인장이 있다.

     행정명령에 관해서는 이미 왕비가 인장을 관리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 자리에서 바로 승인하지 않고 회의를 운운하는 건, 잠깐 본인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

     “대신들과 이야기를 좀 해보마.”

     대신이 아니라, 공작가의 사람들과 회의하겠지.

     이 나라에 있는 행정 대신들이 어디 제대로 된 관료인가?

     아니다.

     10명 중의 9명은 매관매직, 그러니까 관직을 돈으로 산 부유층이거나 귀족 가문의 낙하산밖에 없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결론이 나오는 대로 네게 결과를 이야기해줄 테니, 그동안은…그래, 왕궁의 객실에 머무르렴.”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보통이라면 수도에 있는 저택에 머무르거나 하겠지만, 수도에는 지브롤터 백작의 저택이 없다.

     대대로, 왕도에서 살지 못하게 은근히 종용했다.

     여기에서 쉬지도 말고, 어서 협곡으로 가서 왕국을 지키라는 의미인 셈.

     그래서 보통은 호텔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지만-

     “아니면 공작가에서 휴식을 취하겠느냐?”

     카르멘 왕비가 은근한 목소리로, 장난스럽게 제안한다.

     “모르가니아 공작가에는 지브롤터 가문을 위한 방이 언제든지 마련되어 있단다. 후후후.”

     아무리 자기 외척 가문이라고는 하지만, 옥좌가 있는 홀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건가?

     된다.

     배석한 이들은 얼마 되지 않지만, 제로스 기사단장이나 다른 이들 모두 왕비의 사람들이니까.

     다만.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왕비님의 뜻대로 따르겠습니다.”

     “…응?”

     나는 이런 상황에서 ‘왕가에 따르겠습니다’라고 답하는 전통적인 지브롤터가 아니다.

     “왕비님. 혹시, 차 한 잔 주시겠습니까?”

     “…호오?”

     “다른 건 아니고.”

     왕비를 상대로 어린아이가 건방지고 무례한 짓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아버지께서, 왕비님께 드리라고 한 물건이 있습니다.”

     “……!!”

     나는 왕비의 약점을 안다.

     “그게, 무엇이냐?”

     “이 자리에서는 조금.”

     “……그렇군.”

     카르멘 왕비가 계획서를 들고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다.

     “내 침소로 오너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해를 돕기 위해, 깔끔하게 1원=1골드입니다

    금화나 그런 의미가 아니라

    화폐단위가 골드인 거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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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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