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


   
   
   
   
    ​
    노아는 온 몸이 엉망인 리안을 보며 생각했다.
    ​
    ​
    ‘너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지?’
    ​
    ​
    노아는 리안이 아이들에게 쿠키를 나눠주고 감옥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들려왔던 낯선 여자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
    ​
    감옥 특성상 소리가 쉽게 울려 감옥에 있던 아이들이 전부 리안과 라니아가 나누는 대화를 똑똑히 들었다.
    ​
    ​
    “잘도 도망갔더라?”
    “그,그게…”
    “흐응, 나에게서 도망쳐서 간 게 고작 여기야? 왜? 여기에 좋은 거라도 숨겨놨어?”
    ​
    ​
    그 짧은 대화를 통해, 감옥에 있던 아이들은 리안이 ‘최대한 막아보겠다.’라고 말했던 것이 저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본능적으로 겁을 집어먹은 아이들이 감옥 구석에 모여서 무릎에 얼굴을 박았다. 노아는 네로를 끌어안으며 입술을 무력감에 깨물었었다. 
    ​
    ​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
    ​
    그들이 겁에 질리기 무섭게 들려온 필사적인 목소리.
    ​
    ​
    “아까는 그렇게 무서워서 도망 다니더니, 그렇게까지 지키고 싶은 게 있는 거야?”
    ​
    ​
    그 말에 노아는 덜컥 굳어버렸다. 리안은 동화에 나오는 용사도, 영웅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게 겁이 많은, 자신과 같은 사람일 뿐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새겨졌다.
    ​
    ​
    쾅!
    ​
    ​
    두 사람의 대화는 거칠게 닫힌 문소리와 함께 끝이 났다. 아이들은 숨을 죽인 채 위층에서 들려올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폭음과 함께 지진이 난 듯 감옥이 흔들렸다.
    ​
    ​
    “혀,혀엉..!”
   “괜찮아, 괜찮아.”
    ​
    ​
    노아는 겁에 질린 네로를 달래며 떨리는 시선으로 감옥 바깥쪽을 바라보던 그때. 
    ​
    ​
    쾅!
    ​
    ​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리안이 지하로 내려와 감옥 문을 열어주었다. 
    ​
    ​
    “얘들아! 어서 나와! 불났어!”
    “부,부우?”
    “으아…으어으..”
    ​
    ​
    역시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노아는 네로의 손을 잡고 감옥을 빠져나왔다. 옆 감옥을 보자 패닉에 빠진 아이들과 곤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리안의 모습이 보였다.
    ​
    ​
    ‘…운건가?’
    ​
    ​
    눈물 자국이 남아있는 리안의 얼굴을 보고 잠시 몸이 굳었다. 이내 매캐한 연기가 감옥까지 들어차기 시작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호통을 쳐 패닉에 빠진 아이들의 정신을 깨운 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
    ​
    “아까 너희들도 들었잖아. 그 소리.”
    ​
    ​
    리안이 그들을 지키기 위해 어떤 여자를 막아내던 목소리, 감옥에 있던 이들이라면 전부 똑똑히 들었을 터였다. 노아의 말에 동의하듯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
    ​
    “거기다 저기 봐.”
    ​
    ​
    노아는 이어서 계단 위쪽을 가리키며 날름거리는 불길과 새카만 연기를 가리켰다.
    ​
    ​
    “불이 났다는 건 진짜야. 이대로 있으면 다 죽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그만 떼쓰고 다 따라와. 여기서..죽고싶진 않을 거 아니야?”
    ​
    ​
    아이들은 그제야 정신을 바짝 차리곤 감옥을 차례대로 빠져나왔다. 다행히 불길이 크지 않아 아무도 다치지 않고 탈출할 수 있었다. 
    ​
    ​
    ‘저건..’
    ​
    ​
    건물을 빠져나오자마자 보인 건 우울해 보일 정도로 새카만 건물들과 정돈된 흙바닥과 골목 사이사이에서 눈을 번뜩이며 그들을 바라보는 눈빛들이었다.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의 표정 같았다.
    ​
    ​
    “으흑..”
    ​
    ​
    겁에질린 네로가 노아의 품을 파고들었다. 
    ​
    ​
    ‘그래도 모두 무사하니 -…’
    ​
    ​
    그리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노아는 이질감을 느꼈다. 
    ​
    ​
    “…잠깐, 그 애는?”
    ​
    ​
    붉은 머리의 소녀, 그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
    “나랑 같은 감옥을 썼던 그 빨간 머리카락을 가진 -…”
    “…!”
    ​
    노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리안이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
    ​
    “잠깐..! 너 미쳤어?!”
    ​
    ​
    뒤늦게 리안을 붙잡고자 손을 내밀었지만, 손이 허공을 헤맸다. 
    ​
    ​
    화르르륵! 콰앙!
    ​
    ​
    불길은 어느새 무서울 정도로 덩치를 키워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 노아는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타들어 가는 집을 바라보았다.
    ​
    ​
    ‘죽어…죽었을거야.’
    ​
    ​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저런 불길 속에서.
    ​
    ​
    그런 노아의 생각은 리안이 불길 속에서 뛰쳐나오며 끊어졌다.
    ​
    ​
    “리안!”
    “형!”
    ​
    ​
    노아의 품에 굳어있던 네로도 눈물을 보이며 리안에게 다가갔다. 리안의 모습은 굉장히 심각했다. 피부가 이곳저곳 다 벗겨졌고 피가 질질 흘러나오기까지 했다. 노아는 이를 악물었다. 
    ​
    ​
    살아남았다고 해도 이런 상처라면 오랜 시간 버티지 못할 터였다. 질척한 절망감이 목구멍을 타고내려 갔다. 
    ​
    ​
    “다행이다!”
    “…!”
    ​
    ​
    당사자는 어린 수인을 살렸다는 생각에 아프단 말 한마디 입에 담지 않고 해맑게 웃어 보였다. 그 모습에 열이 확 치솟았다.
    ​
    ​
    “뭐가 다행이야! 너 미쳤어?!”
    ​
    ​
    왜 자신의 상처를 별거 아닌 것처럼 넘기는지, 어떻게 그렇게 웃으며 넘길 수 있는지.
    ​
    ​
    노아는 리안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리안은 끔찍한 상처를 ‘별거 아니다.’라며 가볍게 넘길 수 있을 정도로 비참한 과거를 끌어안고 있다는 것이다.
    ​
    ​
    “아, 이건 괜찮아. 금방 나을 거야.”
    “흐으음. 그건 꽤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
    ​
    변명을 늘어놓는 리안의 뒤에서 흑마법사가 턱을 쓰다듬으며 리안을 내려다보았다. 노아와 네로는 고양이에게 잡힌 쥐처럼 덜컥 굳고 말았다.
    ​
    쿵쿵쿵쿵!
    ​
    ​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숨이 턱 막혔다. 식은땀이 온몸을 적실 것처럼 흘러나왔다. 노아는 제 귓가에 웅웅 울려 퍼지는 환청에 숨을 헐떡거렸다.
    ​
    ​
    팔 하나, 다리 하나 정도면 될 것 같군.
    그럼 나는 심장하나.
    ​
    ​
    미아가 들고 있는 지팡이와 비슷한 걸든 흑마법사들이 음식점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것처럼 아이들의 몸을 주문한다. 난무하는 비명 속에서 노아와 네로는 겁에 질려 눈물을 삼켰다. 큰 소리를 내면 그들이 먼저 끌려 나갈 터였다.
    ​
    ​
    그들의 머릿속에 화상처럼 남은 트라우마는 족쇄가 되어 그들을 꽁꽁 묶어버렸다. 상처가 나 피부가 벗겨진 리안의 팔을 물건 들어 올린 듯 잡아당기는 모습에도 노아는 겁에 질린 동물처럼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
    “저, 괜찮다면 저 애들도 데려가도 될까요?”
    ​
    ​
    흠칫, 그때 들려온 리안의 목소리.
    ​
    ​
    노아는 떨리는 시선으로 리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화상으로 엉망인 꼴로 잔혹한 흑마법사에게 목숨을 걸고 애원하고 있었다.
    ​
    ​
    “그,그게 제 동생 같은 애들이라. 애들이 없으면 제가 너무 슬퍼서 우울증으로 막 죽어버리고 그럴 수 있거든요.”
    ​
    ​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까지 그들을 챙기고자 몸부림쳤다. 노아는 본능적으로 리안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
    ​
    ‘만약 저 사람을 따라가지 않으면 다시 노예 상인에게 끌려가거나…이곳에서 죽임당하겠지.’
    ​
    ​
    라니아의 존재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이 도망치긴 했지만 돈이 급한 이들은 군침을 흘리며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안과 미아가 떠나게 되면 그들은 ‘사냥’당할 터였다.
    ​
    ​
    “실험이 조금 더 격해져도 괜찮죠?”
    “네,네.”
    ​
    ​
    노아는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걸 느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것도. 지독한 무력감과 살았다는 안도감,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향한 혐오감이 머릿속을 집어삼켰다.
    ​
    ​
    ***
    ​
    ​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미아가 만족스럽게 싱긋 웃고는 떨어졌다. 나는 내 가슴팍을 문지르며 멍한 얼굴로 미아를 바라보았다. 
    ​
    ​
    “리,리안…너…”
    ​
    ​
    그때 떨리는 목소리가 내 정신을 깨웠다. 고개를 돌리자 노아가 겁을 잔뜩 먹은 얼굴로 네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노아 그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겁을 잔뜩 먹어 주저앉거나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
    ​
    ‘아이고, 무서웠나 보구나?’
    ​
    ​
    나야 개그 세계에서 인체 개조도 당해보고, 몸이 조각조각 난 적도 있어 별생각 없지만, 아이들에겐 아닐 터였다. 어렸을 때 무서워했던 빨간 마X크 같은 느낌일 터였다.
    ​
    ​
    나는 곧바로 아이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
    ​
    “걱정하지 마,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까. 아, 실험이 걱정되는 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잘 말해서 너희는 실험 받지 않도록 할게.”
    ​
    ​
    며칠 동안 겪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개그 필터가 확실히 적용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실험도 그다지 걱정되지 않았다.
    ​
    ​
    ‘실험이 잔인해봤자 그게 그거지.’
    ​
    ​
    개그 세계 과학자 중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 중 절반은 매드사이언티스트였다. 그들은 무슨 명절 챙기는 시어머니처럼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크리스마스, 핼러윈 등 다양한 기념일에 나타나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다.
    ​
    ​
    ‘몇 번 잡혀서 실험당한 적도 있었지.’
    ​
    ​
    사지가 묶인 채 내 배 속 어딘가가 용접 당하는 장면은 참으로 뭣 같았다. 내 뱃속에 볼트를 조일만한 곳이 도대체 어디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실험할 때 항상 공사를 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곤 했다.
    ​
    ​
    ‘뭐, 이러나 저라나 나에겐 큰 부담이 없지만…아이들에겐 아니겠지’
    ​
    ​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정상적인 세계에선 상처가 나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
    ​
    “…”
    “…”
    ​
    ​
    아이들은 내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얼어있었다. 역시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였던 것 같았다.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로 다음편이 올라옵니다!다음화 보기

노아는 온 몸이 엉망인 리안을 보며 생각했다.

‘너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지?’

노아는 리안이 아이들에게 쿠키를 나눠주고 감옥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들려왔던 낯선 여자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감옥 특성상 소리가 쉽게 울려 감옥에 있던 아이들이 전부 리안과 라니아가 나누는 대화를 똑똑히 들었다.

“잘도 도망갔더라?”

“그,그게…”

“흐응, 나에게서 도망쳐서 간 게 고작 여기야? 왜? 여기에 좋은 거라도 숨겨놨어?”

그 짧은 대화를 통해, 감옥에 있던 아이들은 리안이 ‘최대한 막아보겠다.’라고 말했던 것이 저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본능적으로 겁을 집어먹은 아이들이 감옥 구석에 모여서 무릎에 얼굴을 박았다. 노아는 네로를 끌어안으며 입술을 무력감에 깨물었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그들이 겁에 질리기 무섭게 들려온 필사적인 목소리.

“아까는 그렇게 무서워서 도망 다니더니, 그렇게까지 지키고 싶은 게 있는 거야?”

그 말에 노아는 덜컥 굳어버렸다. 리안은 동화에 나오는 용사도, 영웅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게 겁이 많은, 자신과 같은 사람일 뿐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새겨졌다.

쾅!

두 사람의 대화는 거칠게 닫힌 문소리와 함께 끝이 났다. 아이들은 숨을 죽인 채 위층에서 들려올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폭음과 함께 지진이 난 듯 감옥이 흔들렸다.

“혀,혀엉..!”

“괜찮아, 괜찮아.”

노아는 겁에 질린 네로를 달래며 떨리는 시선으로 감옥 바깥쪽을 바라보던 그때.

쾅!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리안이 지하로 내려와 감옥 문을 열어주었다.

“얘들아! 어서 나와! 불났어!”

“부,부우?”

“으아…으어으..”

역시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노아는 네로의 손을 잡고 감옥을 빠져나왔다. 옆 감옥을 보자 패닉에 빠진 아이들과 곤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리안의 모습이 보였다.

‘…운건가?’

눈물 자국이 남아있는 리안의 얼굴을 보고 잠시 몸이 굳었다. 이내 매캐한 연기가 감옥까지 들어차기 시작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호통을 쳐 패닉에 빠진 아이들의 정신을 깨운 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너희들도 들었잖아. 그 소리.”

리안이 그들을 지키기 위해 어떤 여자를 막아내던 목소리, 감옥에 있던 이들이라면 전부 똑똑히 들었을 터였다. 노아의 말에 동의하듯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거기다 저기 봐.”

노아는 이어서 계단 위쪽을 가리키며 날름거리는 불길과 새카만 연기를 가리켰다.

“불이 났다는 건 진짜야. 이대로 있으면 다 죽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그만 떼쓰고 다 따라와. 여기서..죽고싶진 않을 거 아니야?”

아이들은 그제야 정신을 바짝 차리곤 감옥을 차례대로 빠져나왔다. 다행히 불길이 크지 않아 아무도 다치지 않고 탈출할 수 있었다.

‘저건..’

건물을 빠져나오자마자 보인 건 우울해 보일 정도로 새카만 건물들과 정돈된 흙바닥과 골목 사이사이에서 눈을 번뜩이며 그들을 바라보는 눈빛들이었다.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의 표정 같았다.

“으흑..”

겁에질린 네로가 노아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래도 모두 무사하니 -…’

그리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노아는 이질감을 느꼈다.

“…잠깐, 그 애는?”

붉은 머리의 소녀, 그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나랑 같은 감옥을 썼던 그 빨간 머리카락을 가진 -…”

“…!”

노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리안이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깐..! 너 미쳤어?!”

뒤늦게 리안을 붙잡고자 손을 내밀었지만, 손이 허공을 헤맸다.

화르르륵! 콰앙!

불길은 어느새 무서울 정도로 덩치를 키워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 노아는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타들어 가는 집을 바라보았다.

‘죽어…죽었을거야.’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저런 불길 속에서.

그런 노아의 생각은 리안이 불길 속에서 뛰쳐나오며 끊어졌다.

“리안!”

“형!”

노아의 품에 굳어있던 네로도 눈물을 보이며 리안에게 다가갔다. 리안의 모습은 굉장히 심각했다. 피부가 이곳저곳 다 벗겨졌고 피가 질질 흘러나오기까지 했다. 노아는 이를 악물었다.

살아남았다고 해도 이런 상처라면 오랜 시간 버티지 못할 터였다. 질척한 절망감이 목구멍을 타고내려 갔다.

“다행이다!”

“…!”

당사자는 어린 수인을 살렸다는 생각에 아프단 말 한마디 입에 담지 않고 해맑게 웃어 보였다. 그 모습에 열이 확 치솟았다.

“뭐가 다행이야! 너 미쳤어?!”

왜 자신의 상처를 별거 아닌 것처럼 넘기는지, 어떻게 그렇게 웃으며 넘길 수 있는지.

노아는 리안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리안은 끔찍한 상처를 ‘별거 아니다.’라며 가볍게 넘길 수 있을 정도로 비참한 과거를 끌어안고 있다는 것이다.

“아, 이건 괜찮아. 금방 나을 거야.”

“흐으음. 그건 꽤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변명을 늘어놓는 리안의 뒤에서 흑마법사가 턱을 쓰다듬으며 리안을 내려다보았다. 노아와 네로는 고양이에게 잡힌 쥐처럼 덜컥 굳고 말았다.

쿵쿵쿵쿵!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숨이 턱 막혔다. 식은땀이 온몸을 적실 것처럼 흘러나왔다. 노아는 제 귓가에 웅웅 울려 퍼지는 환청에 숨을 헐떡거렸다.

팔 하나, 다리 하나 정도면 될 것 같군.

그럼 나는 심장하나.

미아가 들고 있는 지팡이와 비슷한 걸든 흑마법사들이 음식점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것처럼 아이들의 몸을 주문한다. 난무하는 비명 속에서 노아와 네로는 겁에 질려 눈물을 삼켰다. 큰 소리를 내면 그들이 먼저 끌려 나갈 터였다.

그들의 머릿속에 화상처럼 남은 트라우마는 족쇄가 되어 그들을 꽁꽁 묶어버렸다. 상처가 나 피부가 벗겨진 리안의 팔을 물건 들어 올린 듯 잡아당기는 모습에도 노아는 겁에 질린 동물처럼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저, 괜찮다면 저 애들도 데려가도 될까요?”

흠칫, 그때 들려온 리안의 목소리.

노아는 떨리는 시선으로 리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화상으로 엉망인 꼴로 잔혹한 흑마법사에게 목숨을 걸고 애원하고 있었다.

“그,그게 제 동생 같은 애들이라. 애들이 없으면 제가 너무 슬퍼서 우울증으로 막 죽어버리고 그럴 수 있거든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까지 그들을 챙기고자 몸부림쳤다. 노아는 본능적으로 리안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만약 저 사람을 따라가지 않으면 다시 노예 상인에게 끌려가거나…이곳에서 죽임당하겠지.’

라니아의 존재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이 도망치긴 했지만 돈이 급한 이들은 군침을 흘리며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안과 미아가 떠나게 되면 그들은 ‘사냥’당할 터였다.

“실험이 조금 더 격해져도 괜찮죠?”

“네,네.”

노아는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걸 느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것도. 지독한 무력감과 살았다는 안도감,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향한 혐오감이 머릿속을 집어삼켰다.

***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미아가 만족스럽게 싱긋 웃고는 떨어졌다. 나는 내 가슴팍을 문지르며 멍한 얼굴로 미아를 바라보았다.

“리,리안…너…”

그때 떨리는 목소리가 내 정신을 깨웠다. 고개를 돌리자 노아가 겁을 잔뜩 먹은 얼굴로 네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노아 그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겁을 잔뜩 먹어 주저앉거나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아이고, 무서웠나 보구나?’

나야 개그 세계에서 인체 개조도 당해보고, 몸이 조각조각 난 적도 있어 별생각 없지만, 아이들에겐 아닐 터였다. 어렸을 때 무서워했던 빨간 마X크 같은 느낌일 터였다.

나는 곧바로 아이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까. 아, 실험이 걱정되는 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잘 말해서 너희는 실험 받지 않도록 할게.”

며칠 동안 겪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개그 필터가 확실히 적용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실험도 그다지 걱정되지 않았다.

‘실험이 잔인해봤자 그게 그거지.’

개그 세계 과학자 중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 중 절반은 매드사이언티스트였다. 그들은 무슨 명절 챙기는 시어머니처럼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크리스마스, 핼러윈 등 다양한 기념일에 나타나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다.

‘몇 번 잡혀서 실험당한 적도 있었지.’

사지가 묶인 채 내 배 속 어딘가가 용접 당하는 장면은 참으로 뭣 같았다. 내 뱃속에 볼트를 조일만한 곳이 도대체 어디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실험할 때 항상 공사를 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곤 했다.

‘뭐, 이러나 저라나 나에겐 큰 부담이 없지만…아이들에겐 아니겠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정상적인 세계에선 상처가 나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

“…”

아이들은 내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얼어있었다. 역시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였던 것 같았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