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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

    다음 날.

    나는 출근했다. 

    휴가는 취소되었다. 지당한 일이었기에 딱히 반론도 하지 않았다. 그리 출근하며 복도를 걷고 있는 와중에, 저 멀리서 시커먼 색깔로 깔맞춤한 소녀가 다가왔다.

    ​

    화제가 된 악의 마법소녀, 아일레였다.

    ​

    “과, 과학자 씨-! 조, 좋은 아침입니다…!”

    “……응. 좋은 아침.”

    “헤, 에헤헤-.”

    ​

    엊그제 TV 속에서 보았던 성격의 악의 마법소녀는 어디로 갔는지, 음침아싸찐따만이 이 자리에 있었다. 나는 극명한 차이를 내보이는 아일레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

    시선을 느낀 아일레는 흠칫- 몸을 떨다가, 조심스럽게 고개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새카만 눈망울이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다.

    ​

    “아, 그. 마, 마법소녀 복…… 잘 썼어요! 조, 좋았어요! 엄청-!”

    “그래? 나도 어제 뉴스에 나오는 거 잘─.”

    “꺄아아아아악-!”

    ​

    본인이 이야기하는 건 괜찮지만, 남들 입에서 이야기 듣는 건 퍽 부끄러웠는지, 아일레는 꽥 소리를 내지르며 저 멀리 달아났다. 겨우 해방된 나는 한숨을 내쉬며 연구실로 복귀했다.

    ​

    돌아오자마자 편의점에서 산 에너지 드링크 한 잔을 가볍게 들이켠 나는 연구실 한 편에서 굴러다니는 내 자작 자양강장제를 바라보았다. 약간 샛노란 액체가 찰랑거렸다. 

    ​

    ‘이런 걸 대체 어떻게 먹는 거지……?’

    ​

    내가 직접 만들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미덥지 못 했다. 이런 걸 먹느니 죽고 말지. 그리 생각하며 편의점에서 사온 에너지 드링크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

    시원한 청량감과 알싸한 탄산이 식도를 타고 넘어간다. 역시 이런 건 믿고 살 수 있는 대기업 제품이 최고였다. 슬쩍- 상표를 확인한 나는 감탄사를 터트렸다. 생각도 못 했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이블스 드링크? 이블스는 여기잖아?’

    ​

    역시나 보스가 운영하는 대기업다웠다. 이런 자그마한 시장에도 발을 내뻗고 있을 줄이야? 하기야 그러지 않고서야 길바닥에서 웬 부랑자를 주워다가 악의 조직 간부로 삼을 재력은 생기지 않으리라.

    ​

    나는 보스의 재력이 영원하길, 그리고 악의 조직을 운영하려는 그녀의 흥미가 영속하길 기도하며 에너지 드링크를 들이켰다.

    ​

    ​

    * * *

    ​

    ​

    “젠장-! 그 녀석 대체 뭐야!?”

    ─묭!?

    ​

    불의 마법소녀, 엘리멘탈 플레임이 주먹을 쾅 내려치자 그녀를 보조하는 정령이 화들짝 놀라 비명을 내지른다. 그러나 그깟 마스코트 인형은 신경 쓰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 연차가 조금 긴 마법소녀는 누구나 다 거쳐가는 길이었다.

    ​

    지금 중요한 건 다름 아닌 새로운 종류의 마법소녀가 나타났다는 점. 그리고 그 마법소녀가 다른 마법소녀들을 홀로 모조리 뚜까패서 제압했다는 점. 그것이 바로 문제였다.

    ​

    “야! 네가 분명 마법소녀는 악한 짓에 힘을 쓰지 못 할 거라며!?”

    ─그, 그랬다묭.

    “근데 그 새낀 뭐야! 뭔데 도시를 대상으로 마법을 쓰고, 같은 동료를 후려패는 데도 멀쩡하냐고!”

    ​

    플레임의 분노는 정당했다. 자신들은 나쁜 놈이 아니라면 힘을 쓰면 안 된다는 제약이 달려 있어서 세계의 적이나 수배범, 빌런이 아니고서야 힘도 못 쓰는 데다가 종종 마법 써서 쫓아내기엔 애매하고 그렇다고 냅두자니 거슬리는 파파라치 같은 것 때문에 골치를 썩히는데-!

    ​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악의 마법소녀는 그런 제약 따위는 없다는 듯 도시 전체에 마법을 사용해 시민들을 위협했고, 같은 마법소녀를 무자비하게 제압했다. 하도 얻어 맞아서 이번 일로 트라우마가 생긴 마법소녀도 있을 정도였다. 

    ​

    ─우리도 모르겠다묭! 그건 확실히 마법소녀였지만, 마법소녀가 아니었다묭!

    “그게 뭔 개소리야! 아아-! 정말이지! 모르겠다고 말하면 다야!? 해결책을 내놔야지!”

    ─최, 최선을 다하고 있다묭.

    “자꾸 그러면 세계의 적이고 자시고 그냥 안 구한다!?”

    ─그, 그건 곤란하다묭…….

    ​

    제 담당 정령을 마구 갈구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플레임은 그 날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새카만 마법소녀. 악의 마법소녀는 그날 밤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각인시켰다.

    ​

    자신을 절대 잊지 못 하게 만들어주겠다고 했던가. 과연 그러했다. 플레임은 앞으로 평생 이 일을 잊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으니까. 적어도 그녀가 마법소녀로서 활동하고 있을 때에는 잊지 않으리라.

    ​

    ‘젠장, 그 녀석 정체를 아는 녀석도 없나?’

    ​

    마법소녀라고 24시간 변신하고 있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녀들도 엄연히 사람이었고, 마법소녀 활동에는 그만한 에너지가 소모되었으니까.

    ​

    그리고 그건 악의 마법소녀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렇다면 그녀의 본체를 알아내서 빈틈을 내보였을 때 습격하면 된다. 이쪽은 수가 많으니까 24시간 변신할 수 있었다.

    ​

    그러나 놀랍게도 악의 마법소녀의 본체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마법소녀에게 힘을 내리는 정령은 물론이요 전세계 마법소녀 오타쿠들이 인터넷으로 그녀의 본체를 찾아내고 있거늘-!

    ​

    ‘아니면 뭐, 진짜로 세계의 적인가……? 마법소녀에 대항하기 위해 마법소녀 타입이 된-.’

    ​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남는 건 하나. 아예 남들이 알고 있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특별한 능력을 갖지 못 한 무능력자라든가.

    ​

    그러나 악의 마법소녀가 갖고 있던 힘을 떠올린 플레임은 그 가능성을 곧장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마법소녀의 힘은 마법소녀가 갖고 있던 초능력의 강함에 비례한다. 그만한 강함이라면 분명 본체도 꽤나 이름난 초능력자일 게 분명했다.

    ​

    어쩌면 현직 히어로나 히어로 준비생일 수도…….

    ​

    ─묭!?

    “뭐야? 찾았어?”

    ─아니, 그게 아니라… 점심을 안 먹어서 그런지 배가 고프다묭….

    “야이 밥벌레 자식아-!”

    ​

    ​

    ​

    악의 마법소녀를 보고서 충격을 받은 건 비단 마법소녀들뿐만이 아니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조직들. 그러니까 마법소녀라는 힘을 나쁜 일에 이용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조직들 또한 크나큰 충격에 빠졌다.

    ​

    “마법소녀를 군사 작전에 이용할 수 있다니…?”

    “아니, 이게 무슨…….”

    “당장 마법소녀들에게 사람을 보내!”

    ​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그들은 모두 똑같은 결말에 도달했다. 마법소녀를 그런 식으로 이용할 수 없다는, 어떤 방법을 쓰든 간에 마법소녀가 힘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결말에.

    ​

    “─그러니까, 실패했다?”

    “죄, 죄송합니다…!”

    ​

    빌런 조직 새벽노을의 수장 크림슨은 부하 과학자의 말을 들으며 인상을 팍 찌푸렸다. 자신이 뭐 그리 어려운 임무를 내린 것도 아니고, 납치해온 마법소녀를 약물·최면으로 세뇌해서 빌런으로 이용할 수 있게 만들라는 것뿐이었는데.

    ​

    고작 그걸 실패하다니? 이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

    “내가 그리 어려운 주문을 했던가? 마법소녀를 납치해오는 것도, 약을 조달하는 것도 모두 우리가 해결해줬을 텐데? 너는 그저 마법소녀를 세뇌하는 아주 간단한 일만 해결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런 간단한 일을 실패해?”

    ​

    “며, 면목이 없습니다 보스…… 그, 그치만-! 마법소녀의 세뇌에 성공하려는 기미가 보이는 즉시 마법소녀의 힘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마치 마법소녀는 이런 식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

    “하- 웃기는 소리. 마법소녀를 타락시킬 수 있다고 증명된 게 바로 어제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던 걸 누군가는 성공했지. 그리고─ 남들이 성공했다면 우리도 성공할 수 있다.”

    ​

    그것이 새벽노을의 모토니까.

    ​

    크림슨은 그리 말하며 과학자의 머리통을 가볍게 쥐기 시작했다.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은 그의 악력이 일반인에 불과한 과학자의 머리를 쥐자 그 압력을 버티지 못 한 머리통이 마치 수박 터지듯이 터져나갔다. 

    ​

    코앞에서 사람 하나가 터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크림슨의 몸에는 핏덩이 하나 묻지 않았다. 쯧- 하고 가볍게 혀를 찬 크림슨은 부하들을 시켜 시체를 처리하라 명령한 뒤 제 옥좌에 앉아 간부들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

    “─시간을 주겠다. 한 달 안에 똑같이 내 앞에 결과물을 데려오도록.”

    “아, 알겠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그래. 될 수 있다면─.”

    ​

    크림슨은 두 눈동자를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

    “마법소녀를 저렇게 만든 녀석을 납치해서라도,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들어.”

    ​

    이렇듯.

    에이트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사방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히어로와 빌런, 양쪽 가릴 거 없이 모두에게서.

    ​

    ​

    * * *

    ​

    ​

    “─음! 그렇게 되었으므로, 악의 조직 간부 회의를 시작하겠노라!”

    ​

    박수- 레갈리아의 말에 아일레만이 건조한 목소리로 와아- 환호성을 내뱉으며 미약하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몇 번 울려퍼지던 박수 소리는 그녀 혼자만이 박수를 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금새 멎어들었다.

    ​

    레갈리아는 자신에게 호응도 안 해주는 쌀쌀한 녀석들이라고 입술을 뾰루퉁 내뱉으며 불만을 토로했다.

    ​

    “─보스. 이게 무슨 장난이지?”

    ​

    갈름은 그런 보스를 보며 자신들을 호출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레갈리아는 깜빡했다는 듯 짝! 손뼉을 쳤다.

    ​

    “아, 그런가. 이야기 하지 않았군. 오늘 개최한 간부 회의는 다 자네 때문에 연 걸세. 과학자여.”

    “엑- 저요?”

    “그래, 자네.”

    ​

    멍하니 천장의 얼룩을 세고 있던 나는 갑작스런 호출에 화들짝 놀라 보스를 바라보았다.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간부 회의의 대상이 된단 말인가?

    ​

    그러나 갈름과 아일레는 그게 마땅하다는 듯 동시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난 그저 선량하게 시키는 일만 한 것밖에 없거늘…… 혹시 회의를 빙자한 파티라도 열려는 걸까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

    진심으로 나를 문제시삼아 회의를 연 것이다.

    ​

    “─그, 보스? 제가 뭘 잘못했는지…….”

    “잘못은 아닐세. 잘못은 아니지.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잘못한 것보다 더 질이 나쁘지.”

    “그게 대체 무슨…….”

    ​

    설마 결과물을 내기 위해 지구에서 만들어진 물건들을 베낀 걸 들켰나? 그럴 리가. 이 세계에서 지구산 물건과 비슷한 물건이 있을 지는 몰라도 내가 만든 것과 완벽하게 같은 게 있을 리는 없다. 그건 온전히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물건이었으니까.

    ​

    그렇다면 뭘까. 전화를 받지 않고 1시간이나 수면을 취한 일? 봐줬으면 한다. 나는 그때 사흘 밤낮을 새고 막 연구를 끝낸 참이었다…….

    ​

    “자네가 만든 것들이 너무 뛰어나다는 게 문제일세.”

    “으음……?”

    “앞으로 그런 걸 만들 때는 미리 말 좀 해주게나. 알겠나? 비슷한 일이 한 번 더 있다간 심장이 떨어지겠어.”

    ​

    레갈리아는 그리 말하며 제 가슴을 쓸어내렸다. 젊다 못 해 어린 보스의 심장이 떨어지거나 할 일은 없겠지만 능청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만든 물건이 뛰어나다고?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

    보스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어린아이라기보다 인생 다 산 노인네가 내뱉을 법한 한숨이었다. 

    ​

    “알아들었다면 됐네. 정 할 게 없으면 우리 기업에서 판매할 물건이나 만들고 있는 건 어떤가? 이제 곧 있으면 어린이날이니까. 애들 선물이라도 만들면 좋겠지.”

    ​

    “애들 선물 말인가요?”

    ​

    “그래, 얼마 전 저택에서 고쳐주었던 로봇 같은 거. 그런 걸 만들면 큰 문제는 없겠지.”

    ​

    레갈리아는 그리 말하며 새 임무를 내려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아무 일도 맡기지 말고 월급루팡이나 시켜줬으면 좋겠지만…… 악의 과학자, 직장인으로서 그럴 수는 없었다.

    ​

    나는 쓴웃음을 내지으며 답했다.

    ​

    “예, 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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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Status: Ongoing
I became a scientist for an evil organization. …But I’m too compe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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