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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9화. 일행이신가요?
     
     
     
     
   * * *
     
   지하 9층 또한 지하 10층과 마찬가지로 쉘터의 집합체다.
   구성의 최소 단위인 쉘터가 기본적으로 업무의 종류와 기능별로 분류되는 것도 같았다.
     
   다른 점은 연결 방향이었다.
   지하 10층 쉘터가 네 방향으로 연결된 정방형 구조체인 것과 달리, 지하 9층 쉘터의 형태는 팔각형이었다.
     
   또 한 가지 다른 것은 중앙 통제와 분산, 시스템 운용 방식의 차이다.
     
   보안 13 쉘터는 경비 F팀의 숙소와 정비소, 그리고 훈련소로 구성된 소규모 독립 쉘터였다.
     
   “정말 폐쇄됐네.”
   “하아, 대체 무슨 일인지.”
     
   상황실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있었다.
   바로 아래층인 지하 10층의 사고 소식을 듣고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정말로 폐쇄 조치 됐다.
     
   “어떻게 생존자가 없을 수 있지? 왜 대피를 안 한 거야?”
   “안 한 게 아니라 못 했겠지.”
     
   단 한 명도 올라오지 못했다.
   그것이 최종 보고라며 조금 전에 발표됐다.
     
   너무도 끔찍한 일이었다.
   남의 일 같지 않아 더 침울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아, 왜 재수 없게 지랄들이야!”
     
   경비 조장 드렉이 상황실로 들어서며 한숨을 섞고 있던 두 경비원을 사납게 나무랐다.
     
   “천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어요. 재수 없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루이스는 겨우 화를 꾹 누르며 조장의 말에 따졌다.
   하지만 드렉은 그런 루이스를 비웃었다.
     
   “애도하는 척하지 말고, 근무나 똑바로 서.”
   “조장, 대체 왜 시비를….”
     
   루이스는 말을 맺지 못했다.
   갑자기 쿵 하는 충격음과 강한 진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드렉도 또 다른 이상을 감지했다.
     
   “이거, 무슨 냄새지?”
     
   드렉이 루이스의 곁으로 다가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오십여 개의 모니터를 살폈다.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그런데,
     
   “저거 뭐 하는 거야?”
     
   드렉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화면에는 방호 슈트에 헬멧까지 착용한 누군가가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 행동을 잠시 지켜보던 루이스가 말했다.
     
   “저거, 특수부대에서 쓰는 수신혼데요.”
   “뭐?”
     
   두 사람은 동시에 모니터 번호를 확인했다.
   수신호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이미 화면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저게 무슨 뜻인데?”
     
   드렉의 질문에 루이스는 답을 하지 못했다.
     
   ‘대피하라니, 무슨 소리야 대체?’
     
   루이스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급하게 소리쳤다.
     
   “아로요, 중앙 관제소에 비상 시그널 확인해!”
   “안 그래도 지금 교신 중.”
     
   두 사람은 규정대로 빠르게 대처하려고 노력했다.
   루이스는 곧바로 스카우터를 썼고, 아로요는 마이크를 켰다.
     
   『쉘터 내 전 인원 비상 대기』
   『쉘터 내 전 인원 비상 대기』
     
   갑자기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과 함께 안내방송이 반복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휴게실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 하나 움직일 줄을 몰랐다.
     
   “뭐야? 갑자기 대피 훈련이라도 하는 거야?”
   “글쎄. 시스템 오작동인가?”
     
   붉은색 비상등의 번쩍임과 안내방송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그들은 여전히 태평했다.
   이 모습을 모니터로 지켜보고 있던 아로요가 다시 한번 마이크에 목소리를 실었다.
     
   『실제 상황입니다. 모두 지시에 따르셔야 합니다!』
   『반복합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그제야 사람들의 시선이 CCTV 카메라로 몰렸다.
     
   “뭐가 진짜라는 거야?”
   “아까 느껴졌던 진동 때문인 것 같은데.”
   “그거야 흔히 있던 일인데 무슨.”
     
   저마다 한마디씩을 할 때였다.
     
   『삐이이익! 쩌적!』
     
   갑자기 스피커 너머에서 들려온, 철판이 짓이겨지는 듯한 소음에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으윽!”
   “아우, 씨발!”
     
   그리고 연이어 들려오는 소리.
     
   『뭐, 뭐야?!』
   『누구야!』
   『끄악!』
   『조장? 루이스!』
   『제… 제발!』
   『커억!』
     
   이유 모를 비명과 뭔가 난도질당하는 것 같은 끔찍한 소리가 뒤섞여 나왔다.
   불행하게도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흐으으으으.』
   『그르르르.』
   『삐이이-』
     
   “윽!”
   “대체 뭐야?”
     
   사람들은 신경을 건드리는 하울링 소리에 인상을 구기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그전에 자신들이 들었던 괴이한 소리 때문에 얼굴에는 공포가 물들기 시작했다.
   곧 마이크 하울링도 사라졌다.
     
   “……무, 무슨 일이야?”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모두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정전이 일어났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겁에 질려있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말했다.
     
   “정전이 아니야.”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휴게실 벽면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와 스크린, 그리고 곳곳의 전자기기들에는 여전히 불이 들어와 있었다.
   조명만 모두 어두워진 것뿐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일부러 조명을 껐다는 얘기인데.
     
   “조금 전에 이방 저방 들쑤시고 다니던 녀석, 생화학연구소에 문제가 생긴 것 같으니 빨리 대피하라고 했었지?”
   “……!”
     
   그 말에 곳곳에서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와 헙- 하고 헛숨을 삼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생화학연구소 쉘터.
   인간의 DNA와 다양한 동물종들의 유전자를 비교 연구하는 곳.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곳이라 관계자 외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다들 그곳에서 어떤 연구가 진행되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그곳의 문을 열면 각종 괴물이 득실댄다는 농담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누군가는 실제로 그곳에서 배양하고 있는 인간형 뮤턴트를 봤다는 소문도 있었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 소문이 실체가 되어 떠오른 모양이다.
     
   “도망쳐!”
   “어, 어디로 가야 하는 건데?!”
   “아, 방어 슈트! 슈트 챙겨!”
     
   한바탕 소란이 일면서 차분했던 휴게실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우왕좌왕하던 한바탕의 소란은 금세 귀를 찢을 것 같은 비명으로 전환됐다.
     
   “꺄아아아악!”
   “무, 뭐야? 왜 그래?”
   “크헉!”
   “끄아아아!”
   “사, 살려줘! 끄륵. 끅.”
     
   우드득.
   서걱.
     
   숨넘어가는 소리, 피 끓는 소리, 살이 찢어지고 뼈가 끊어지는 소리가 쉼 없이 이어졌다.
     
   아비규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 속 공간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 고요는 오래가지 못했다.
   피비린내가 번져 오르기 시작한 공간 안에는 소름 끼치는 기괴한 소리가 배회했다.
     
   “흐으으으. 그으으.”
     
   * * *
     
   잠잠하던 복도에 비상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어대기 시작하자 레이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스터를 가동했다.
   그 또한 매뉴얼의 지침이었다.
     
   [징후를 인지하고 3~5분 사이에 경보가 울리게 된다. 경보를 듣고 바로 따르지 않으면 늦는다.]
     
   그녀는 재난 매뉴얼의 지침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했다.
   자신은 운영팀이니까 이만큼의 정보라도 떠올려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이지, 누가 재난 매뉴얼 내용을 생각해 내겠는가.
     
   최첨단 과학의 집약체?
   완벽한 안전 시스템?
   허튼소리다.
   정작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한 것들은 대책 없이 무질서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레이나는 달리는 내내 휴게실에 있던 사람들 모습이 눈에 어렸다.
   딱히 살갑게 지내던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지난 몇 년간 봐온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두고 와서는 안 됐는데, 설득은커녕 위험을 설명할 시간조차 없었다.
   대피하라고 소리치는 게 고작이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9층은 10층과 달리 아직 스카우터 고글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녀는 스카우터 고글에 표시되는 길을 따라 질주한 끝에 대피소에 도착했다.
   문 앞 표시등이 긴박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대피소 또한 1차 사이렌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문이 닫히고 잠긴다.
   다행히 서두른 덕에 겨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후우우.”
     
   레이나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며 돌아서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하마터면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
     
   주춤하며 머뭇거리는 그 잠깐 사이, 대피소 문이 닫혔다.
     
   탁.
   푸쉬이이.
     
   대피소 안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는 낮은 조도의 매립 등 저편으로 낯선 형체가 자신을 향해 서 있었다.
   레이나는 그 미지의 존재를 잔뜩 경계하며 눈을 조아려 살폈다.
   마침 상대는 긴장한 그녀를 보고 등 아래로 한 걸음 다가와 주었다.
     
   “아! 후아아. 놀래라.”
     
   절로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레이나는 헬멧 안면부를 열고 자연스럽게 아는 체를 하게 됐다.
     
   “먼저 와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네요.”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누가 또 올 거라고 예상치 못했어요.”
     
   레이나는 그 말을 들으며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비상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데, 다른 사람들이 어떤지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눈앞에 있는 금발의 아름다운 여자는 무척 차분하고 침착했다.
   다만,
     
   “다들 일행이신가요?”
     
   그녀의 뒤에 앉아있는 동양인 남자 둘과 커다란 늑대가 자꾸 시선을 잡아끌었다.
     
   ‘특히 저 무표정하고 날카롭게 생긴 검은 머리의 남자.’
     
   다부진 체격에 매력적인 눈, 잘생긴 얼굴.
   한눈에 범상치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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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일행이신가요?

* * *

지하 9층 또한 지하 10층과 마찬가지로 쉘터의 집합체다.

구성의 최소 단위인 쉘터가 기본적으로 업무의 종류와 기능별로 분류되는 것도 같았다.

다른 점은 연결 방향이었다.

지하 10층 쉘터가 네 방향으로 연결된 정방형 구조체인 것과 달리, 지하 9층 쉘터의 형태는 팔각형이었다.

또 한 가지 다른 것은 중앙 통제와 분산, 시스템 운용 방식의 차이다.

보안 13 쉘터는 경비 F팀의 숙소와 정비소, 그리고 훈련소로 구성된 소규모 독립 쉘터였다.

“정말 폐쇄됐네.”

“하아, 대체 무슨 일인지.”

상황실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있었다.

바로 아래층인 지하 10층의 사고 소식을 듣고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정말로 폐쇄 조치 됐다.

“어떻게 생존자가 없을 수 있지? 왜 대피를 안 한 거야?”

“안 한 게 아니라 못 했겠지.”

단 한 명도 올라오지 못했다.

그것이 최종 보고라며 조금 전에 발표됐다.

너무도 끔찍한 일이었다.

남의 일 같지 않아 더 침울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아, 왜 재수 없게 지랄들이야!”

경비 조장 드렉이 상황실로 들어서며 한숨을 섞고 있던 두 경비원을 사납게 나무랐다.

“천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어요. 재수 없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루이스는 겨우 화를 꾹 누르며 조장의 말에 따졌다.

하지만 드렉은 그런 루이스를 비웃었다.

“애도하는 척하지 말고, 근무나 똑바로 서.”

“조장, 대체 왜 시비를….”

루이스는 말을 맺지 못했다.

갑자기 쿵 하는 충격음과 강한 진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드렉도 또 다른 이상을 감지했다.

“이거, 무슨 냄새지?”

드렉이 루이스의 곁으로 다가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오십여 개의 모니터를 살폈다.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그런데,

“저거 뭐 하는 거야?”

드렉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화면에는 방호 슈트에 헬멧까지 착용한 누군가가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 행동을 잠시 지켜보던 루이스가 말했다.

“저거, 특수부대에서 쓰는 수신혼데요.”

“뭐?”

두 사람은 동시에 모니터 번호를 확인했다.

수신호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이미 화면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저게 무슨 뜻인데?”

드렉의 질문에 루이스는 답을 하지 못했다.

‘대피하라니, 무슨 소리야 대체?’

루이스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급하게 소리쳤다.

“아로요, 중앙 관제소에 비상 시그널 확인해!”

“안 그래도 지금 교신 중.”

두 사람은 규정대로 빠르게 대처하려고 노력했다.

루이스는 곧바로 스카우터를 썼고, 아로요는 마이크를 켰다.

『쉘터 내 전 인원 비상 대기』

『쉘터 내 전 인원 비상 대기』

갑자기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과 함께 안내방송이 반복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휴게실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 하나 움직일 줄을 몰랐다.

“뭐야? 갑자기 대피 훈련이라도 하는 거야?”

“글쎄. 시스템 오작동인가?”

붉은색 비상등의 번쩍임과 안내방송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그들은 여전히 태평했다.

이 모습을 모니터로 지켜보고 있던 아로요가 다시 한번 마이크에 목소리를 실었다.

『실제 상황입니다. 모두 지시에 따르셔야 합니다!』

『반복합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그제야 사람들의 시선이 CCTV 카메라로 몰렸다.

“뭐가 진짜라는 거야?”

“아까 느껴졌던 진동 때문인 것 같은데.”

“그거야 흔히 있던 일인데 무슨.”

저마다 한마디씩을 할 때였다.

『삐이이익! 쩌적!』

갑자기 스피커 너머에서 들려온, 철판이 짓이겨지는 듯한 소음에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으윽!”

“아우, 씨발!”

그리고 연이어 들려오는 소리.

『뭐, 뭐야?!』

『누구야!』

『끄악!』

『조장? 루이스!』

『제… 제발!』

『커억!』

이유 모를 비명과 뭔가 난도질당하는 것 같은 끔찍한 소리가 뒤섞여 나왔다.

불행하게도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흐으으으으.』

『그르르르.』

『삐이이-』

“윽!”

“대체 뭐야?”

사람들은 신경을 건드리는 하울링 소리에 인상을 구기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그전에 자신들이 들었던 괴이한 소리 때문에 얼굴에는 공포가 물들기 시작했다.

곧 마이크 하울링도 사라졌다.

“……무, 무슨 일이야?”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모두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정전이 일어났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겁에 질려있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말했다.

“정전이 아니야.”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휴게실 벽면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와 스크린, 그리고 곳곳의 전자기기들에는 여전히 불이 들어와 있었다.

조명만 모두 어두워진 것뿐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일부러 조명을 껐다는 얘기인데.

“조금 전에 이방 저방 들쑤시고 다니던 녀석, 생화학연구소에 문제가 생긴 것 같으니 빨리 대피하라고 했었지?”

“……!”

그 말에 곳곳에서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와 헙- 하고 헛숨을 삼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생화학연구소 쉘터.

인간의 DNA와 다양한 동물종들의 유전자를 비교 연구하는 곳.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곳이라 관계자 외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다들 그곳에서 어떤 연구가 진행되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그곳의 문을 열면 각종 괴물이 득실댄다는 농담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누군가는 실제로 그곳에서 배양하고 있는 인간형 뮤턴트를 봤다는 소문도 있었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 소문이 실체가 되어 떠오른 모양이다.

“도망쳐!”

“어, 어디로 가야 하는 건데?!”

“아, 방어 슈트! 슈트 챙겨!”

한바탕 소란이 일면서 차분했던 휴게실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우왕좌왕하던 한바탕의 소란은 금세 귀를 찢을 것 같은 비명으로 전환됐다.

“꺄아아아악!”

“무, 뭐야? 왜 그래?”

“크헉!”

“끄아아아!”

“사, 살려줘! 끄륵. 끅.”

우드득.

서걱.

숨넘어가는 소리, 피 끓는 소리, 살이 찢어지고 뼈가 끊어지는 소리가 쉼 없이 이어졌다.

아비규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 속 공간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 고요는 오래가지 못했다.

피비린내가 번져 오르기 시작한 공간 안에는 소름 끼치는 기괴한 소리가 배회했다.

“흐으으으. 그으으.”

* * *

잠잠하던 복도에 비상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어대기 시작하자 레이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스터를 가동했다.

그 또한 매뉴얼의 지침이었다.

[징후를 인지하고 3~5분 사이에 경보가 울리게 된다. 경보를 듣고 바로 따르지 않으면 늦는다.]

그녀는 재난 매뉴얼의 지침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했다.

자신은 운영팀이니까 이만큼의 정보라도 떠올려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이지, 누가 재난 매뉴얼 내용을 생각해 내겠는가.

최첨단 과학의 집약체?

완벽한 안전 시스템?

허튼소리다.

정작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한 것들은 대책 없이 무질서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레이나는 달리는 내내 휴게실에 있던 사람들 모습이 눈에 어렸다.

딱히 살갑게 지내던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지난 몇 년간 봐온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두고 와서는 안 됐는데, 설득은커녕 위험을 설명할 시간조차 없었다.

대피하라고 소리치는 게 고작이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9층은 10층과 달리 아직 스카우터 고글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녀는 스카우터 고글에 표시되는 길을 따라 질주한 끝에 대피소에 도착했다.

문 앞 표시등이 긴박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대피소 또한 1차 사이렌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문이 닫히고 잠긴다.

다행히 서두른 덕에 겨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후우우.”

레이나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며 돌아서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하마터면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

주춤하며 머뭇거리는 그 잠깐 사이, 대피소 문이 닫혔다.

탁.

푸쉬이이.

대피소 안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는 낮은 조도의 매립 등 저편으로 낯선 형체가 자신을 향해 서 있었다.

레이나는 그 미지의 존재를 잔뜩 경계하며 눈을 조아려 살폈다.

마침 상대는 긴장한 그녀를 보고 등 아래로 한 걸음 다가와 주었다.

“아! 후아아. 놀래라.”

절로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레이나는 헬멧 안면부를 열고 자연스럽게 아는 체를 하게 됐다.

“먼저 와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네요.”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누가 또 올 거라고 예상치 못했어요.”

레이나는 그 말을 들으며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비상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데, 다른 사람들이 어떤지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눈앞에 있는 금발의 아름다운 여자는 무척 차분하고 침착했다.

다만,

“다들 일행이신가요?”

그녀의 뒤에 앉아있는 동양인 남자 둘과 커다란 늑대가 자꾸 시선을 잡아끌었다.

‘특히 저 무표정하고 날카롭게 생긴 검은 머리의 남자.’

다부진 체격에 매력적인 눈, 잘생긴 얼굴.

한눈에 범상치 않아 보였다.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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