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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포셀은 고개를 숙인 칼을 바라보다가 목 뒤를 주물렀다.

   

   “지금 네가 하는 말은 아가씨에게 축복이 내려진 것 같단 소리 아니냐?”

   

   축복. 사람이 던전 속 몬스터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신께서 내리는 특수한 힘.

   

   지금 칼은 자신이 거기에 영향을 받아 실수를 저지른 것 같다 말하고 있었다.

   

   “…예. 맞습니다.”

   “네가 그걸 바라는 건 아니고? 네가 저지른 일에 다른 이유가 있기를 원하니까.”

   

   포셀의 독설에 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무엇의 영향을 받았던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는 걸 칼도 안다.

   

   그렇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그게 온전히 자신의 잘못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었다.

   

   루시가 지닌 힘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죄이길 원했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은 감정 하나 조절하지 못해 주인에게 손찌검을 한 쓰레기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길게 이어지던 침묵을 포셀의 한숨이 끊어냈다.

   

   “하. 일단 네 처벌이 정해질 때까지는 여기 갇혀 있어야 할 거다.”

   “알겠습니다.”

   “얌전히 있도록.”

   

   포셀이 떠나가고 나서 칼은 자신의 팔을 묶은 수갑을 바라보다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쥐어 싸맸다.

   

   

   *

   

   “다 자잘한 상처 뿐입니다.”

   “정말인가요?!”

   “예.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가씨. 정말 다행이에요!”

   

   의사의 말에 안도를 하는 시녀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잖아.

   

   의사한테 갈 필요 없다고. 이런 상처면 하루 이틀이면 다 낫는다고.

   

   내가 대놓고 짜증을 드러내자 기뻐하면 시녀가 조금씩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 봤을 때 그랬던 것처럼 쭈그러든 시녀를 보고 있자니 또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하아. 그래. 너한테 무슨 잘못이 있겠냐.

   

   자기가 모시는 사람이 잘못됐을까봐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나는 한숨과 함께 시녀에게서 시선을 떼어낸 후 의사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럼 돌아가도 되죠?’

   “허접 의사. 가도 상관없지?”

   

   “예. 루시 아가씨.”

   

   허락을 구하고 의무실에서 나오자 문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손가락으로 팔을 두드리고 있는 베네딕이 있었다.

   

   이 사람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베네딕.’

   “바보 아버님.”

   

   “루시! 괜찮으냐!?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괜…’

   “괜…”

   

   

   “세상에. 피부에 상처가 왜 이리 많이 난 거니. 따갑지 않니? 분명 아프겠구나.”

   

   ‘그러니까 괜…’

   “괞…”

   

   

   “흉이 지지 않아야 할 텐데. 내 의사를 시켜 약을 꺼내 오마!”

   

   이 사람 왜 이렇게 흥분한 거야. 애가 뭐 좀 하다가 피부가 좀 까질 수도 있는 거지.

   

   뭐 크게 다친 것도 아니잖아.

   

   베네딕이 호들갑을 떠는 것만 보면 내가 어디에 트럭에라도 치인 줄 알겠다.

   

   “칼이 너를 다치게 했다고 들었다. 평소에 안 그러던 녀석이 왜 이랬는지는 모르겠다만 너를 다치게 했으니 마땅한 대가를.”

   

   ‘저기요. 진정 좀 해요.’

   “바보 아버님. 적당히 해.”

   

   내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끊어내자 흥분해서 제멋대로 떠들던 베네딕이 입을 다물고는 내 눈치를 봤다.

   

   이 사람이 나를 걱정해 준다는 건 알겠다.

   

   그건 고마운 일이지. 그렇지만 걱정에도 정도가 있다.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모셔야 할 주인에게 주먹을 휘두른 거니까 벌 정도는 받을 수 있지만 그게 대가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는 아니잖아.

   

   뭣보다 허접 기사가 주먹을 휘두른 데는 그 녀석의 잘못도 있지만 내 과실도 있는 걸.

   

   한 방 먹이고 싶다는 생각에 메스가키 스킬로 잔뜩 도발을 해댔으니까.

   

   따지자면 쌍방과실이잖아. 허접기사한테만 잘못을 묻는 건 아니지. 

   

   ‘베네딕. 보다시피 전 멀쩡해요.’

   “바보 아버님. 눈이 흐려졌어? 난 멀쩡해.”

   

   이 사람 딸사랑이 너무 과해.

   

   이러니까 루시가 망나니가 됐지. 아무리 하나 뿐인 딸이 귀해도 이런 식이면 안 되잖아.

   

   ‘만약 기사에게 과한 벌을 준다면 전 당신을 미워할 거에요.’

   “혹시 걔한테 쓸데없는 짓을 하면 난 바보 아버님을 쳐다보지도 않을 거야.”

   

   “그렇지만 루시.”

   

   ‘알겠어요?’

   “바보 아버님. 대답해.”

   

   “…알겠다. 그래도 기사단의 규율을 위해 벌을 받긴 해야 한단다. 이건 이해를 해다오.”

   

   ‘그 정도는 괜찮아요.’

   “그건 괜찮아.”

   

   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벌을 받지 않는다면 괜한 말이 나올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건 어쩔 수 없지.

   

   내가 말을 강하게 해서 그런 걸까. 베네딕은 눈에 띄게 기가 죽어 있었다. 한참은 올려다봐야 하는 트롤이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있는 모습은 처량하단 말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아. 진짜! 이 사람 더럽게 귀찮아.

   

   ‘베네딕. 저녁 드셨나요?’

   “바보 아버님. 밥 먹었어?”

   

   “으응? 아니. 아직이란다.”

   

   ‘그럼 같이 먹어요.’

   “그럼 같이 먹자. 나 배고파.”

   

   “…그래! 다쳤을 땐 몸보신을 해야지! 내 주방장에게 가서.”

   

   ‘제발 진정 좀 해요.’

   “바보 아버님. 징그러우니까 적당히 좀 해.”

   

   *

   

   돌바닥을 내려다보며 스스로를 자책하던 칼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무거운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알른 가문에서 이런 발소리를 내는 사람은 단 두 사람밖에 없다. 한 명은 기사단장인 포셀이고, 다른 하나는.

   

   알른 백작 가문의 가주이자 여러 전장에서 활약하여 철혈백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남자. 베네딕 알른이었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거대한 사람의 형체를 본 순간 칼은 다급하게 일어나 베네딕에게 경례를 건넸다.

   

   베네딕은 그걸 보고서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묵묵히 칼이 있는 감옥의 앞까지 걸어왔다.

   

   “칼.”

   

   바닥을 울리는 무겁고 진중한 목소리에 칼이 침을 꿀꺽 삼켰다.

   

   베네딕은 기사들에게 있어 전설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지금에서야 가문의 일에 집중하기 위해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그가 전선에 서 있을 때 벌인 업적만 해도 몇 개던가.

   

   흡혈공이라 불리며 대륙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흡혈귀를 단신으로 해치웠고.

   

   알른 가문의 영토에 쳐들어온 용을 자신의 무력으로 제압했으며.

   

   왕국을 멸망시킬 것이라 예상되었던 S급 던전을 토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기사 중의 기사.

   

   그게 바로 베네딕이었다.

   

   전장에 나서지 않은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베네딕이 지닌 위용은 여전했다.

   

   칼은 그가 앞에 선 것만으로도 숨이 막힌다는 느낌을 받았다. 베네딕이 무의식중에 뿜어내는 위압감이 칼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할 말이 있나?”

   “없습니다. 가주님. 모든 것이 제 잘못입니다.”

   “모셔야 할 사람을 해쳤다는 것은 커다란 죄다.”

   “알고 있습니다. 그 어떤 벌이라도 기꺼이 받겠습니다.”

   “본래라면 기사단의 규율에 따라 그대를 처벌해야 한다. 허나.”

   

   베네딕이 어미를 늘어트린 순간 어째서인지 모르게 한없이 무겁던 위압감이 흩어졌다.

   

   “루시 본인이 그대를 처벌하지를 원치 않기에 칼 그대의 처벌을 감옥에서 근신하는 것으로 대체하겠다.”

   

   아가씨가?

   

   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만큼이나 베네딕에서 나온 말이 비현실적이었던 것이다.

   

   그가 루시의 선처를 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과정이 어찌되었던 간에 자신은 자신이 지켜야 할 이에게 진심으로 손찌검을 하려 했으니까.

   

   특히나 그 당사자가 되었던 루시 같은 경우에는 분명 극심한 공포를 느꼈을 터.

   

   그런 아가씨께서 나를 용서하길 원하셨다니.

   

   이것은 은혜였다.

   

   당장에 기사의 이름을 박탈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칼에게 내린 자비였다.

   

   그리고 평생 남을 괴롭히며 살아오던 루시가 변했다는 증거였다.

   

   아아. 아가씨께서는 내가 처벌을 받을 것을 걱정해주고 계셨는데 나라는 놈은 루시 아가씨에게 잘못이 있기를 원하고 있었다니.

   

   이딴 게 뭐가 기사인가.

   

   고고? 고결? 지금의 칼에게 그런 것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저질스러운 인간에 불과했다.

   

   오히려 더욱 기사 다운 사람은 칼이 아닌 루시 쪽이었다.

   

   “칼.”

   “예. 가주님.”

   “방금은 가주로써 내가 내린 결정이었다. 허나 아버지로서의 나는 다르다. 나는 아직까지 그대를 용서하지 않았다.”

   

   베네딕은 그리 말을 하고는 닫힌 철창의 문을 열어 감옥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니 한 대만 때리도록 하마.”

   “예. 알겠습니다. 가주님.”

   “이를 꽉 깨물도록.”

   

   칼은 주먹을 꾹 쥐는 베네딕을 보면서 순간 죽음을 느꼈다.

   

   베네딕이 준비하는 것은 단순한 주먹이 아니었다.

   

   과거 거인과 힘대결을 벌였던 남자의 마력이 집약된 주먹은 이미 하나의 대마법이나 마찬가지였다.

   

   “죽지는 않을 거다.”

   

   베네딕이 주먹을 내질렀다.

   

   *

   

   “루시 백작 영애님.”

   

   고개를 꾸벅거리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루시를 가르치는 교사인 하르네는 여러 감정이 섞인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아카데미 시험이 삼개월도 안 남았습니다. 열심히 하셔야죠.”

   

   ‘죄송합니다.’

   “시끄러워.”

   

   오늘도 메스가키 번역에 사과의 단어는 없었다.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면 미친년아라고 외쳐버릴 이 스킬 덕분에 하르네의 미간엔 주름이 더 깊어졌다.

   

   미안합니다. 하르네.

   

   만약 당신 얼굴에 주름이 늘어난다면 그 절반은 루시의 잘못이겠죠.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당신도 알아줘요.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랍니다.

   

   나중에 젊음의 비약을 구해서 가져다 줄 테니 부디 용서해줘요.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나요?”

   

   ‘네.’

   “못 자긴 했어.”

   

   “나쁜 꿈이라도 꾸셨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무슨 일이 있긴 했지.

   

   아니 글쎄. 한창 잘 자고 있는데 새벽에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나더라니까?

   

   이래 뵈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현역 군필인지라 폭탄이 지니는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다.

   

   어젯밤에 들려왔던 천둥 같은 소리와 바닥이 흔들리던 진동은 분명 폭발의 영향이었다.

   

   내가 자다가 얼마나 당황한 줄 알아?

   

   무슨 사고가 일어난 걸까 싶어서 자다가 뛰쳐나와서 시종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러 갔었다니까.

   

   근데 시종은 생각보다 평온하더라.

   

   당황한 내가 온갖 개소리를 지껄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진정하라고, 별 일 아니라며 나를 달랬다.

   

   그렇지만 저게 무슨 일인지 설명해달라는 말에는 끝까지 묵묵무답이었다.

   

   별 일 아니라면서? 왜 못 알려 주는 건데?!

   

   어쨌든 간에 한 번의 폭발이 지나간 후부터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한 시간 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겨우 다시 잠에 들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을 하르네에게 설명을 해줬더니 그녀가 웃음을 터트렸다.

   

   뭔데? 뭐야? 설마.

   

   ‘폭발에 대해 짐작 가는 게 있으신가요?!’

   “바보 하르네. 폭발에 대해서 아는 게 있구나?”

   

   “으음. 제가 말했다는 건 비밀이에요? 오늘 수업이 끝나면 기사단에 가보세요. 그럼 아실 수 있을 거에요.”

   

   기사단?

   

   기사단에 가보라는 이야기는 어제 무슨 전투가 있었다는 소리인가?

   

   하르네의 반응이 이토록 가벼운 것을 보면 큰일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훈련이라도 한 걸까.

   

   그냥 속 시원하게 말해주면 좋으련만 하르네는 직접 보는 게 더 빠를 거라는 이야기만 했다.

   

   어쩔 수 없네. 수업이 끝나면 다시 기사단에 찾아가 보든 가 해야지.

   

   “그럼 슬슬 잠도 깨신 것 같으니 다시 수업을 시작할까요?”

   

   하르게 웃으며 한 말에 입술이 살짝 떨렸다.

   

   하르네. 이 무서운 여자.

   

   메스가키가 자신을 그렇게 갈구는 데도 꿋꿋이 수업을 이어가다니.

   

   루시의 아래에서 가장 길게 버틴 교사다운 근성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독성을 위해 주인공의 대사를 한 칸 띄워보았습니다.

이 편이 더 보기 좋으신가요?

의견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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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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