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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히엑…! 헤엑…! 아이고 나 죽네…!”

   

    춘봉이가 바닥에 널브러져 몸을 비비 꼬았다. 덩치들과의 술래잡기에서 승리한 대가였다.

   

    “넌 운동 좀 해야겠다. 체력이 그리 약해서야.”

   

    서준이 쯧쯧 혀를 찼다. 당연하게도 춘봉의 사나운 시선이 날아들었다.

   

    “니가…! 케헥…! 니가 미친짓만 안 했으면 되잖아!”

    “내가 뭘. 무림에서는 아이와 여인을 조심하라는 말 모르냐?”

    “그건 씨발아! 엉? 누구한테든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말이잖아! 뭐 성인 남자는 안 조심할 거냐!?”

    “오호. 맞는 말이네.”

   

    고개를 끄덕이자 빌빌대며 자리에서 일어난 춘봉이 끈적해진 침을 퉤 뱉었다. 피가 섞인 침이었다.

   

    “죽는 줄 알았네 진짜….”

   

    그녀는 그러고도 한참을 더 숨을 고르더니,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래서 진짜 왜 그랬는데? 여자가 달라붙으면 엉덩이나 몇 번 주무르고 보내면 되는 걸.”

    “뭔…. 우리 금춘봉 씨는 정조 관념이 없으세요?”

    “그 사람들은 그게 직업이잖아!”

   

    춘봉 왈, 여인의 몸으로 뒷골목에서 살아남으려면 별수가 없단다.

   

    “스스로 그런 사람도 있고, 흑호문 쪽에는 납치당해서 기녀가 된 여자들도 많아. 한 쪽 다리 힘줄을 끊어놔서 도망도 못 치고.”

    “힘줄을? 미친놈들이네.”

    “너만 하겠냐? 하여간.”

   

    춘봉이 혀를 찼다. 서준의 머릿속에는 무림에 떨어진 첫날 봤던 여자가 떠올랐다.

   

    그 여자도 납치당해서 몸을 팔고 있을까? 그게 죽는 것보다는 나은 일인지 어떤지 감이 잘 안 왔다.

   

    쉬는 김에 그날의 얘기를 해주니 춘봉이가 이상한 시선을 보내왔다.

   

    “너 뭐 여성혐오 같은 거 있냐? 여자만 보면 막 좆같아?”

    “혐오는 아니고, 그냥 못 믿겠는 거지.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뒤에서 칼 찌르면 어떡해.”

    “세상에. 그럼 나는? 나도 여잔데?”

    “너는 여자 이전에 춘봉이니까.”

   

    쉴 만큼 쉬었다. 춘봉이를 덥썩 업어들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는 인마, 쬐깐한 게 무슨 여자 타령이야.”

    “결혼도 할 나이인데요 새끼야.”

    “응, 다음 지랄.”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말없이 걷기만 했다. 종종 춘봉이가 방향을 가리키면 쥐에게 조종당하는 인간마냥 방향을 틀 뿐.

   

    그렇게 도착한 곳은 여전히 뒷골목이었다.

   

    “진짜 넓네. 뒷골목이 뭔 도시만 하겠어.”

   

    툴툴대는 서준의 말을 흘려들은 춘봉이 그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저기로 가보자. 전에는 사람 없었어.”

   

    그녀가 가리킨 곳은 전에 살던 집과 비슷한 건물 호소체였다. 다만 상태는 조금 더 안 좋았다. 툭 치면 무너질 것 같은 느낌?

   

    “자다 뒤지는 거 아니야?”

    “안 뒤져.”

   

    안에 들어서자 돼지 우리 하나가 있었다. 비유적인 표현이다. 자신이나 춘봉이와 비교해도 저게 진짜 거지구나 싶은 사내 하나는 덤이다.

   

    “너희 뭐야? 안 꺼져?”

   

    무시한 서준이 물었다.

   

    “야, 사람 있는데?”

    “음…. 쫓아낼까?”

    “애가 왜 이렇게 못 됐냐. 잘 살던 사람을.”

    “뭐요? 이 인간 도살자 새끼가.”

   

    잡담을 해대고 있자 거지 사내가 조용히 옆에 있던 주먹만 한 돌덩이를 주워들었다.

   

    “너, 허리에 그건 두고 가라. 애새끼가 갖고 다닐 물건이 아니야.”

    “어어, 아재요. 그거 내려두지? 그러다 큰일난다?”

   

    서준의 말에 춘봉이 덧붙였다.

   

    “이 새끼 완전 인간 백정이야. 토막나고 싶은 거 아니면 우리 좋게 좋게 지나가자고.”

    “이것들이….”

   

    사내가 성큼 다가와 눈을 부라렸다.

   

    “헛소리 말고 내놔!”

   

    손이 뻗어온다. 서준은 춘봉을 업은 채 슬쩍 몸을 틀었다.

   

    “어이쿠!”

   

    발에 걸린 사내가 그대로 넘어졌다. 그가 눈을 부라리며 씩씩댄다.

   

    “좋게 말로 하려 했더니!”

   

    벌떡 일어난 그가 돌덩이를 높게 치켜들었다. 서준은 춘봉을 한 손으로 업은 채 한 손을 내밀었다.

   

    빡-!

   

    쏘아진 지탄이 사내의 이마에 적중했다.

   

    “악!”

   

    사내가 이마를 부여잡고 땅을 구른다. 그 모습에 춘봉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안 죽여?”

    “내가 뭔 살인에 미친 놈이냐?”

   

    이제 슬슬 탄지공도 손에 익어서 위력 조절이 간단하다. 쓰면 쓸 수록 효자 무공이란 말이지 이거. 내가 만들었지만 개쩐다.

   

    “이, 이것들이…!”

   

    다만 거지 사내는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했는지 다시 덤벼들었다.

   

    그렇게 오 분 정도 지났을까?

   

    “헤, 헤헤…. 아이고 대협…! 제가 대협을 몰라뵀습니다 그려!”

   

    신명나게 얻어맞고 순식간에 비굴해진 사내가 땅에 엎드려 절을 해댄다.

   

    도중에 땅에 내려와 집을 청소하던 춘봉이 그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저 눈치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데.”

    “맞는 말씀이십니다! 천운이었습죠!”

   

    으엑…, 바닥에서 썩어 문드러진 음식 쪼가리들을 발견한 춘봉이가 기겁을 했다.

   

    “야, 이것 좀 치워라. 앵간하면 내가 하려 했더니.”

   

    그녀의 말을 들은 사내가 서준의 눈치를 살폈다. 그 모습에 춘봉이 눈썹을 삐죽 세웠다.

   

    “…이 새끼가?”

    “워워, 춘봉아. 사람 때리고 그러면 못 써요.”

    “그럼 너는 뭐 쓰다듬었냐?”

    “나는 다르지.”

    “정신 나간 새끼.”

   

    서준이 낄낄 웃으며 손을 까딱였다.

   

    “아재요, 춘봉이 힘들다니까 좀 치워주쇼.”

    “옙!”

   

    사내가 빛과 같은 속도로 청소를 진행하는 사이, 주변을 둘러보던 서준이 춘봉의 옆에 주저앉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깝네.”

    “박도? 없는 셈 치라니까. 그거 내다 팔 수도 없어서 그냥 애물단지야.”

   

    처음에 범죄자 친구들에게 얻은 게 두 자루, 장춘득과 함께 와 시체가 된 친구들에게 얻은 게 일곱 자루. 

   

    어디 대장간 같은 데 잘 팔면 돈이 꽤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냥 슬쩍 팔면 안 돼?”

    “안 받아주지. 그랬다가 흑호문 놈들 귀에 들어가면 대장간이고 뭐고 쓸려나갈걸?”

    “그런가?”

   

    그렇다니 뭐 아쉽게 됐다.

   

    서준이 입맛을 다시자 춘봉이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것보다 우리 여기 근처에 있는 시장 좀 알아봐야 돼. 전에 가던 거기는 너무 멀잖아.”

    “아, 맞네.”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 사내에게 물었다.

   

    “아재요, 여기 근처에 시장 있나?”

    “예? 아, 예! 있습죠! 안내해드릴깝쇼?”

    “청소 끝나고.”

   

    에잉, 쯧. 작게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대인배 이서준은 쿨하게 봐주기로 했다. 다만 춘봉이는 물어볼 게 남은 모양이었다.

   

    “야, 여기 근처 세력은 어떻게 되냐?”

    “세력 말입니까?”

   

    썩은 음식물들을 대충 손으로 쓸어담던 사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했다.

   

    “으음…. 애매합죠. 흑호문 세력권도 아니고, 나머지 자잘한 놈들 세력권도 아니고.”

    “오, 뭐야. 그럼 좋은 거 아니야?”

   

    서준의 말에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그놈들이 다 보입니다. 그 육시럴 것들. 한 놈만 있으면 사정도 좀 봐주고 그러는데 여럿이 있으니까 삥도 여러 번 뜯기고 그럽죠.”

    “와우.”

   

    그것 참 뭣 같은 주거 조건이다. 심심하면 한 놈 씩 보이고 그러겠네.

   

    아니지. 어떻게 보면 또 나쁘지 않다. 수련 상대들이 알아서 찾아와준다는 거 아닌가?

   

    그런 놈들은 목 좀 썰어도 거리낄 게 없다.

   

    서준의 말에 춘봉이 인상을 찌푸렸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피에는 마성이….”

    “아, 오케이. 알았다고. 거 되게 뭐라 하네.”

    “걱정해줘도 지랄이야.”

    

    서준이 히죽 웃으며 춘봉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이구, 나 걱정해주는 거였어? 착하기도 하지.”

    “하지 마라.”

    “흐즈 므르.”

    “씹년아!”

   

    얻어맞았다.

   

   

    *

   

   

    청소에 안내까지 깔끔하게 끝낸 사내는 비굴하게 웃으며 떠나갔다.

   

    딱히 집을 돌려줄 생각은 없지만 살 데는 있냐 물으니 빈집이야 또 찾으면 그만이란다.

    

    “청소 좀 하면서 사쇼.”

    “예예, 물론이죠 대협.”

   

    그렇게 중년 메이드 김거지 씨가 떠났다. 

   

    되찾은 보금자리를 나름 만족스레 살펴보던 춘봉이가 눈빛을 날카롭게 빛냈다.

   

    “그러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자.”

    “뭐를.”

    “황운신검의 전수. 일단은 황운신공黃雲神功부터.”

   

   

    *

   

   

    삼재검법을 알려줄 때와는 달리 춘봉이는 깐깐하고 날카로운 선생님이 되었다.

   

    “다시 외워. 이거 헷갈리면 진짜 좆되니까.”

    “너무 많은데.”

    “잔말 말고.”

   

    백회, 인당, 천돌, 단중, 중완, 기해, 회음, 미려 뭐시기뭐시기.

   

    일단 임독맥의 혈부터 시작해서 전신에 존재하는 나머지 혈들, 거기다 십이경맥이니 기경팔맥이니 하는 용어들을 주구장창 외우고 있으니 머리가 깨질 지경이다.

   

    “삼재심법은 수준이 높지 않고 포괄적이라 오히려 안전해. 근데 황운신공은 달라. 신공이 괜히 신공이겠냐? 잘못하면 폐인은 고사하고 시체도 못 남기고 터져 죽으니까 안 헷갈릴 때까지 무조건 외워.”

   

    그래서 외웠다. 그래도 무공을 익히면서 기억력도 좋아졌는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좋아. 그러면 이제 황운신공의 운기 경로를 알려줄게.”

   

    또 외웠다.

   

    “다음은 구결이야.”

   

    외웠다.

   

    “황운신공은 기본적으로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을 토대로 삼은 심법이야.”

    “무극…, 뭐요?”

    “무극이태극. 무극이 곧 태극이라. 태극은 무극과 같아서 혼돈, 즉 무의 상태와 같으니 모든 것의 시작이라.”

    “거창하네.”

    “이건 그냥 알아만 둬. 어차피 황운신공을 익혀가면서 네가 깨달아야 할 것들이니까.”

    “와오.”

   

    외울 것들을 전부 외운 뒤에는 황운신공을 토대로 운기를 시작했다.

   

    확실히 삼재심법과는 다르다. 그 경로가 복잡하기 그지없어 자칫 잘못하면 이상한 길로 빠질 뻔한 순간도 있었다.

   

    “쿨럭…! 아, 피.”

    “야, 야! 집중해!”

   

    다행인 점은 삼재심법이 기본공이라 그동안 쌓은 쥐꼬리만 한 내공도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황운신공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에는 황운신검을 전수받았다.

   

    “나도 다는 못 익혔어. 애초에 나는 황운신검이 아니라 청운신검을 익히기도 했고.”

    “뭐요?”

   

    어이가 없어서 춘봉이를 쳐다보니 그녀가 눈을 부릅 떴다.

   

    “뭐, 인마. 애초에 황운신공이랑 황운신검은 양강지기를 기본으로 하는 무공이라 여자한테 안 맞아. 거기서 파생된 청운신공과 청운신검이 여성용이고.”

    “아하.”

    “어차피 나중 가면 태극을 이루면서 하나로 합쳐지긴 하지만.”

   

    그렇게 1년이 지났다.

   

   

    *

   

   

    “너는 기를 다루는 재능 하나는 진짜 타고났어. 내가 봤을 땐 뭐 거의 고금제일인 거 같은데.”

    “암요. 그렇고 말고.”

   

    고개를 끄덕이는 서준을 춘봉이 아니꼬운 눈으로 쳐다봤다.

   

    뭐라 한 마디 하고 싶긴 한데, 사실은 사실이라 어쩔 수가 없다. 

   

    삼재심법을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부터 내공을 제 수발처럼 다루던 놈이다. 장춘득이었나? 흑호문 놈들과 싸울 때도 그 쥐꼬리만 한 내공으로 잘도 싸워댔었지.

   

    “근데 너 몸 쓰는 거에는 딱히 재능이 없어. 없는 건 아닌데 기를 다루는 재능이랑 너무 차이 나.”

    “그래써용?”

    “아, 쓰다듬지 말라고!”

   

    춘봉이 서준의 손을 피해 도망치며 씩씩댄다. 서준은 그런 춘봉을 보며 픽 웃었다.

   

    벌써 1년이 지났는데 저 쬐깐한 몸은 성장할 생각을 안 한다. 절맥 때문인지, 그냥 저게 다 큰 건지. 귀여운 맛은 있어서 딱히 상관은 없었다.

   

    “아무튼 알아두라고. 더이상 내가 뭐 가르칠 것도 많이 없어 보이니…, 쿨럭…!”

   

    기침에 피가 섞여 나왔다. 춘봉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충 옷에 문질러 닦았지만, 슬슬 무공에 눈이 트이기 시작한 서준은 속지 않았다.

   

    ‘위험한데.’

   

    저대로라면 목숨이 위험하다. 어디 영약 구할 데 없나?

   

    툭, 툭, 그의 손가락이 허리춤의 검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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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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