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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9 – 레어음식은 못 참지>

     

    상급시험관 미하엘.

    금발의 긴 머리를 드리운 아름다운 귀공자.

    중성적인 매력을 지닌 미남자 미하엘은 자신을 노려보는 응시자들의 시선이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아랑곳 않고 바테이블의 지정석에 앉았다.

     

    “벌꿀주는 아직 멀었습니까?”

    “아직 꿀 재고가 들어오질 않았네. 이거 아쉽게 되었구만. 양봉업자들의 재고가 도착하기까지 이틀쯤 기다리면 될 거라네.”

    “이틀 전에도 그 소리 하지 않았습니까. 정말 기다리는 보람이 없는 깡촌이군요.”

     

    10분간 자리를 지키며 적당한 술 한 잔을 비우고 위로 올라간다.

    그렇게 50분이 지나자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지정석에 앉는다.

     

    “오색빙수는 아직 멀었습니까?”

    “아직 얼음 재고가 들어오질 않았네. 이거 아쉽게 되었구만. 얼음장수들의 재고가 도착하기까지 삼일에서 일주일 사이로 기다리면 될 거라네.”

    “삼일 전에도 그 소리 하지 않았습니까. 정말 기다리는 보람이 없는 깡촌이군요.”

     

    마치 정해진 대사에 메뉴이름만 다르게 집어넣은 것처럼 앞서 나눈 대화와 판박이인 대화.

    게임에서나 보던 NPC식 반복대사가 떠오르는 어질어질한 대화에 그만 웃음이 나왔다.

    게임에서 봤을 땐 별 생각 없었는데 현실에서 보면 저렇게 기괴하게 보이는구나.

     

    “어떠십니까, 아가씨. 시험관은 이미 문제를 낸 것처럼 보입니다만.”

     

    집사의 말에 쐐기를 박듯이 이벤트도 떠오른다.

     

    <미하엘의 티켓시험 이벤트>

    티켓시험은 이미 시작되었다!

    고장 난 NPC처럼 한 시간 간격으로 다른 메뉴를 말하고 재고가 떨어졌다는 대화를 반복하는 미하엘과 여관주인.

    수수께끼의 대화로부터 힌트를 얻어 티켓시험에 합격하십시오.

     

    악기의 현을 딩가딩가 튕기는 바드아저씨의 연주를 듣고 있으려니 조나가 재차 물었다.

     

    “이대로 가만히 계셔도 괜찮겠습니까?”

    “걱정 마요. 다 생각이 있으니.”

     

    게임에서의 공략법이 통한다면 티켓시험 합격은 일도 아니다.

    그리 여유 만만한 모습이 주변에서 보기엔 퍽 불안해보였는지 옆 테이블에서 불쑥 말을 걸었다.

     

    “하하! 꼬마숙녀분께서 두뇌풀가동을 하시는군.”

    “…그거 나쁜 말이거든요?”

    “이크. 숙녀분의 기분이 좋지 않으신가보군.”

     

    남자가 귀띔을 해주었다.

     

    “힌트를 조금 주지. 이번 시험은 시험관이 말한 요리에 부족한 재료를 산정산을 등반해서 구해오는 선착순 재료채집 시험이라네.”

    “흐응. 그래요?”

    “여관주인이 재고가 도착할 때까지 며칠이 걸린다는 말도 하지? 그게 그 재료를 입수할 수 있는 계층을 말하는 거지. 해발 1000m 이내, 2000m 이내, 이런 것들 말이지.”

     

    벌꿀주에 필요한 꿀은 해발 2000m 이내 제 2 계층에서 입수하는 아이템.

    오색빙수에 필요한 얼음은 해발 2000m 이상 7000m 이하인 제 3 계층부터 제 7 계층 사이에서 입수하는 아이템.

    전부 알고 있는 정보다.

     

    ‘게임에서는 다음 버튼을 클릭할 때마다 1시간씩 자동으로 경과하는 대화였지.’

     

    할 수 있는 의뢰가 나올 때까지 [다음] 버튼만 죽어라 돌리는 랜덤티켓시험.

    운이 없으면 현재 스펙으로는 절대 깰 수 없는 요구사항만 나와서 이 미친놈은 처먹고 싶은 요리가 뭐 이리 많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왔었지.

    미하엘이 요구하는 음식을 전부 처먹으면 살이 얼마나 찔지 분석해서 살을 100kg까지 찌운 파오후 미하엘의 짤방이 추억처럼 새록새록 떠오른다.

     

    “4계층의 가시넝쿨괴물의 수액이라. 그놈 잡으면 나도 요리 한 접시 주는 거요?”

     

    밖에서 봤던 원숭이수인이 위에서부터 고개를 쑥 내밀어 미하엘을 내려다보았다.

    미하엘의 따분하다는 얼굴이 표정 하나 변치 않은 채, 눈동자만 그를 쫓았다.

     

    “양만 넉넉하다면야.”

    “금방 다녀오지.”

     

    여관주인의 말에 원숭이수인은 신이 나서 밖으로 달려 나갔다.

     

    “저놈은 파티도 안 짜고 가나?”

    “무식한 원숭이놈.”

    “4계층이라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보지.”

     

    대부분의 모험가가 노리는 것은 2계층 초입과 중입에서 자라나는 물품.

    아주 간혹 뜨는 그 물품 하나만 노리고 존버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서너 명씩 파티를 짜고 2계층 후입이나 심부, 3계층 초입과 중입을 노리는 이들도 조금은 있지만 4계층부터는 아무도 노리지 않았다.

     

    ‘레벨이 맞지 않으니 보통은 채집 같은 건 무리죠.’

     

    시험 도중 죽더라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욕심의 대가는 죽음.

    몬스터가 실존하는 게임세계에서 산을 등반하는 행위는 그만치 위험한 행위다.

     

    “아가씨는 어떤 재료를 노리고 계십니까?”

    “응? 딱히 노리는 건 없어요.”

    “시험을 포기하신 겁니까?”

    “시험을 통과하는 방법이 꼭 한 가지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잖아요?”

     

    옆자리 남자가 눈을 빛냈다.

     

    “역시 제 눈은 틀리지 않았군요. 그쪽의 꼬마숙녀분이라면 이 여관의 널리고 널린 겁쟁이들과는 다른 것을 노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저씨는 겁쟁이 아니에요?”

    “하하. 숙녀분이 만족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저 나름의 방법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이틀 뒤.

    우리는 남자의 답을 알 수 있었다.

     

    “오옷, 엄청난 수레의 행렬이잖아.”

    “누가 상단이라도 불렀나?”

     

    남자가 휘익 하고 휘파람을 불자 터번을 두른 상인들이 장부를 내밀었다.

     

    “의뢰하신 물품은 전부 구해왔습니다.”

    “음. 먼 길 오느라 수고들 했어요. 상품을 확인하는 동안 차나 한잔 하고 계시죠.”

     

    남자의 말과 동시에 1층 테이블을 지키던 사람들 중 반수 이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같이 수레에 실린 물품을 검토하고 품질을 확인하는 사람들.

    모험가들은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세상에. 저게 다 한 패였어?”

    “스무 명도 넘잖아.”

    “기억났다! 저 재수 없게 잘생긴 턱수염. 요즘 한창 유명세를 떨치는 만물상 지젤이야!”

     

    지젤은 아주 영리한 방식으로 시험에 응했다.

     

    “자, 이제 우리가 가져온 물품으로 만들 수 있는 물건과 티켓을 교환해주시죠.”

     

    여관주인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미하엘을 돌아봤다.

    여관주인의 재량으로는 이런 것도 합격으로 쳐도 좋을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상급시험관 미하엘은 조금은 따분함이 가신 얼굴로 메뉴판과 장부를 비교했다.

     

    “초코볼, 반짝파스타, 벌꿀주 외 29종 메뉴를 달성했군. 티켓 32장을 한 번에 얻는 참가자는 시험관 경력 5년 동안 처음이야.”

    “하하.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도 다 남들보다 부지런하게 머리를 쓴 보람을 누리는 것뿐이죠.”

     

    만물상 지젤.

    그는 정말로 티켓 32장을 한 방에 입수했다.

     

    “와, 대박.”

    “어떠십니까, 꼬마숙녀분. 숙녀분은 돈이 많고, 저는 마침 티켓이 많습니다만. 돈도 많으시겠다, 티켓을 살 마음이 생기지는 않습니까?”

    “아저씨도 티켓사냥꾼이에요?”

    “하하. 보다시피 그런 셈입니다. 몬스터 소재부터 산에서 채취할 수 있는 모든 재료아이템을 종류별로 수집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고 대부분은 쓰레기가 되었지만 덕분에 대량의 티켓을 얻었죠.”

    “굉장하네요. 돈은 얼마나 썼어요?”

    “금화 40매 가량을 들였습니다. 대신, 브론즈 티켓은 개당 금화 10매, 실버 티켓은 개당 금화 100매에 처분할 예정이니 차고도 넘치는 이득이죠.”

     

    금화 10매와 금화 100매에 판매하는 티켓.

    그 단위는 내게 무척이나 익숙했다.

     

    ‘게임속의 티켓암상인!’

     

    게임 속에서는 그저 시간이 부족할 때 돈으로 티켓을 살 수 있는 구제용 아이템을 판매하는 암상인NPC가 현실에서는 이렇게 구현되었다.

    대량의 티켓을 판매하는 암상인의 정체가 바로 만물상 지젤인 것이다!

    어떻게 암상인을 몰라봤냐고 하면 나도 변명할 말은 있다.

     

    -크큭. 아카데미 신입생이 되고 싶은 자, 내게로…

    -우리 지점에서는 사람 한 놈만 썰어주면 티켓 가격을 1할 할인해주지…

    -거기 자네, 아카데미 신입생이 될 관상이로군… 10골드에 이 티켓을 사지 않겠나?

     

    게임 속 티켓암상인은 밤늦은 시각에 그늘진 뒷골목에서 시커먼 후드를 뒤집어쓰고 이딴 소리나 해대는 머저리들이다.

    후드도 뒤집어쓰지 않고 백주대낮에 돌아다니는 인간을 어찌 암상인이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수완이 좋은 상인이군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가씨?”

    “금화 10매를 줄게요.”

     

    집사의 말에 선뜻 주머니에서 금화 10매를 꺼냈다.

    지젤이 섭섭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겨우 브론즈 티켓입니까? 모처럼 돈도 많으신데 통 크게 100매로 지르시죠. 물건이 비싼 데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괜찮아요. 애초에 제가 사려는 건 그 브론즈티켓이라는 물건이 아니거든요.”

     

    대량의 티켓시험과제를 동시에 통과했다.

    그 광경을 보자마자 처음부터 생각했다.

    사려면 이걸 사야한다고.

     

    “제가 사고 싶은 건 과제를 통과하고 대접받을 음식들의 식사권이에요!”

    “예? 식사권이라면…… 저희 몫으로 나올 음식을 식사할 권리를 매매하고 싶단 말입니까?”

     

    상상도 못한 요구에 지젤의 눈이 똥그래졌다. 돈 많은 부잣집아가씨에게 티켓이나 팔려고 말 걸었는데 엉뚱한 소리를 들으니 황당할 만도 하지.

    그치만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티켓 따위보다 무조건 이쪽이 이득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도감수집 절대 못 참는 아가씨와 태그치트키를 절대 못 참는 테디베어

    태그에 집착과 피폐 태그를 추가했는데 너무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리도감수집)집착과 (남들이 보기에만)피폐입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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