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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헤를라인 교수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으로 입시 준비를 하게 된 지 한 달이 흘렀다.

         

       헤를라인과의 면담 시간은 하스펠트 교수가 아직 출근하지 않은 새벽에 진행된다. 덕분에 만성 피로에 찌든 몸이 되었다.

         

       헤를라인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에게 전투마도를 가르쳤다. 원래부터 뒷산의 하급 마수들을 때려잡으며 기른 체력과 경험이 있었지만, 그녀가 가르쳐주는 전투법은 더 각지고 세련된 것이었다.

         

       “몇 번이고 강조하지만 실기에선 다른 학생이랑 싸우게 될 거야. 절대 마수를 제압하겠다는 감각으로 덤벼선 안 돼, 알았어?”

         

       이상한 일이다. 마수 잡으라고 만들어놓은 학교인데, 왜 전투는 대인전에 맞춰 진행하는지.

         

       마수 중에 사람처럼 하고 다니는 놈이라도 있는 건가…? 내가 여태까지 본 건 파충류 아니면 양서류뿐이라서 잘 모르겠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번 주도 실력이 얼마나 늘어났나 확인해 보자.”

       

       헤를라인이 품속에서 스크롤을 꺼냈다. 스크롤이라지만 길이는 1미터에 육박하고, 두루마리처럼 생겼다. 지계마도를 다루는 마법사들의 스크롤은 대부분 기다랗기 마련이었다.

         

       “작성, 상급 골렘 라이엇.”

         

       헤를라인이 주문을 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체만 조진 것 같은 헬창 골렘이 튀어나왔다. 사람의 모습은 갖췄지만, 어딘가 엉성하게 생겨먹은 녀석이었다.

         

       “대인전이라면서요. 교수님이 대신 대련해주시면 안 돼요?”

         

       벌써 다섯 번째 물어본다.

         

       “나도 수업하러 가야 해. 얘 이기면 생각해볼게.”

         

       쾅, 쾅, 쾅. 인간형 골렘이 양쪽 팔로 바닥을 내리치자 땅이 울렸다. 행동거지만 보면 마수가 따로 없겠는데.

         

       사실 골렘과 마수는 별 차이가 없다. 땅법들이 어떻게 하면 마수를 아군으로 만들 수 있을까 연구하다가 시체와 연금술을 조합해서 만들어낸 게 마도골렘이었으니.

         

       따지고 보면 마수 시체랑 싸우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작성 ─ 스태프]

         

       나도 늘 쓰던 철제 스태프를 꺼냈다. 새벽부터 담배 빨면서 이런 거 읊으니까 자괴감이 든다. 마력초가 내 정신건강을 파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럼 열심히 하고 있어~.”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내 몸이 허공을 날았다.

         

       **

         

       “으.”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수준이었다. 스태프만 사용해서 골렘 팔 한짝을 날려버릴 역량은 됐으니까.

         

       “너 왜 이렇게 힘이 세? 대체 어떤 사람이 골렘 팔을 스태프로 부수냐고!”

       “왜요. 안 되는 거예요?”

         

       대운동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나를 내려다보며 헤를라인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실기시험 과목이 뭐야. 전투마도잖아. 어디까지나 마도라고, 마도! 적당한 때 마법을 써 가면서 상대를 제압하는 역량을 평가하는데, 그 마법을 안 쓰면 심사관이 어떻게 점수를 매기니?”

         

       음,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라 뭐라 반박할 거리가 없다.

         

       “근데 스크롤 반입 금지라잖아요.”

         

       금안족은 선천적으로 몸에 마력을 순환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마력초나 스크롤과 같은 여러 아이템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마력초나 스크롤 중 하나만 사용해선 마법을 쓰지 못한다. 마력초를 물고 몸에 충분한 마기가 돌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걸 제한된 시간 내에 스크롤에 쏟아부어 겨우겨우 발동하는 것이 금안족의 주된 마력 운용 방법이었다.

         

       그런데 스크롤 사용 금지라니. 마력초만으로 원소마도를 어떻게 구현하라고.

         

       “그러니까 마력초만 물고도 마법을 부릴 수 있는 경지까지 도달해야 해.”

         

       금안족이 그게 가능이나 한가…?

         

       물론 불가능하다. 하늘이 두 쪽이라도 나지 않는 한 금안족이 자기 몸만 가지고 원소마도를 사용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 어디까지나 ‘원소마도’라면.

         

       [(정의) 고유마도 : 정령의 축복이나 스크롤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희귀한 마도.]

         

       세상엔 항상 예외라는 게 존재한다.

         

       [최상급 고유마도 ─ 마소 조작(Element Operation)]

         

       하루 밤샘을 대가로 얻어낸 히든 스킬을 묵히기만 하면 그게 바보지.

         

       트랜지스터로 처음 장난질을 쳤던 날 이후로도 틈날 때마다 고유마도를 연구했다. 실기시험에서 마력초만 사용해 구현할 수 있는 마법은 이거 하나뿐이었으니까.

         

       대련이 끝난 뒤, 나는 평소처럼 축사로 돌아와 마소 조작 방법을 연구했다.

         

       한 달간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실전에서 써먹으려면 손을 더 봐야 한다.

         

       특히 ‘팔정도’ 개념을 이쪽 세계의 마도이론에 맞춰 정리하는 게 어려웠다.

         

       팔정도(八正道).

         

       보통은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행하는 여덟 가지의 올바른 수행 방법을 가리키는 용어다. 그렇지만 핵물리를 하는 과학자들이 이 팔정도를 얘기한다면 전혀 다른 개념을 의미하게 된다.

         

       핵물리에서 강입자를 분류하는 그림이 팔정도다. 팔정도는 대부분 육각형이나 정삼각형 모양이다.

         

       팔정도 도형의 몇몇 지점에 입자를 적어 정렬하면 그 입자가 어떤 성질을 지니고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심지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입자를 예측하는 것도 가능했다.

         

       처음 습득한 고유마도를 탐구하면서 이 팔정도와 트랜지스터 사이에 명백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반도체 공정에서나 쓰이는 전자부품이 핵력과 관련 있다니, 듣도 보도 못한 소리였다.

         

       그야 트랜지스터의 작동원리는 전자기력이고, 팔정도가 기술하는 대상은 강한 핵력이었으니까. 애초에 둘은 종류가 다르다.

         

       근데 여긴 다른 세계란 말이지. 트랜지스터의 모양을 한 마석이 수송하는 건 전자가 아닌 마소였다.

         

       이 이상으로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내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트랜지스터를 쓰면 마소끼리 서로 융합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

         

       융합이고 자시고 짬뽕을 시켜놓으면 뭐가 어떻게 될진 실험하지 않았지만. 화염속성 마소 둘을 충돌시키면 핵폭탄이라도 되는 거 아냐?

         

       ……머리 아프네. 일단 거기까진 생각하지 말자.

         

       지금 집중해야 하는 가설은 한 가지다. 내 추측이 맞다면, 마소 융합을 통해 마력을 상쇄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물과 불의 마소를 억지로 융합시키면 마력적으로 중성을 띄게 된다거나. 중성화된 마력을 회로에 끼워넣으면 그 회로는 고장나거나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사고실험을 마친 뒤 곧바로 본 실험을 준비했다.

         

       하스펠트가 다른 마법을 완성해오라고 준 마전지와 마석들. 이것들을 한데 끌어모아 독자적인 회로를 구성했다. 교수님 미안해요!

         

       하다 보니 양심이 찔리기도 했지만, 뭐 어쩌겠어. 얼굴도 모르는 황자 밑에서 교태부리긴 죽어도 싫거든. 남자랑 침대에서 개좆같은 운동회를 벌이느니 하스펠트에게 농땡이를 들켜 복날 개 처맞듯 얻어터지는 게 한결 낫지.

         

       여하튼 실험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쿠아마린과 루비를 장치하고, 그 사이에 트랜지스터를 채운 회로를 구성했다. 마력을 불어넣으니 신기하게도 작동을 안 한다.

         

       “오.”

         

       그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마력초를 단 한 번만 쓰고도 실기에서 과락을 면할 방법이.

         

       **

         

       두 달이 더 흘렀다. 슬슬 윤곽이 잡히기 시작한다.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조지거나, 조져버리거나. 합격하면 다행이겠지만 만에 하나 그렇지 못한다면 하스펠트에게 휘모리장단으로 얻어터진 뒤 황자에게 팔려나가겠지.

         

       합격자 발표날이 되기 전까진 여신조차도 내 운명을 모르리라.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상자에 들어갈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상상되는데.

         

       그동안 황자에 대한 정보를 몇 가지 입수했다. 그중 하나는 녀석이 여성편력 심한 놈이라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약혼녀의 저혈압 치료제라는 말이 있다더라.

         

       그 말을 듣고 반드시 붙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째 시험날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진정되질 않았다. 수능 볼 때도 이렇게까지 심하진 않았는데 말이다.

         

       필기는 나름 정리됐다. 실기에 필요한 연금술이나 스크롤 작성도 웬만큼은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전투마도만 선방한다면 문 닫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하스펠트 교수가 날 부려먹는 빈도가 근 3개월간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심해졌다는 것이다. 언제 한 번 축사로 쳐들어와 진행 상황을 물어봤을 땐 놀라 뒤지는 줄 알았다.

         

       그때 잘 둘러대긴 했는데, 솔직히 수습할 자신이 없다.

         

       시험 망하면 잠적이나 할까…? 엘프의 나라로 튀어서 다시 시작하는 거다. 근데 그러면 마법을 독학해야 하니까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데 시간이 훨씬 더 걸리겠지.

         

       어쨌건.

         

       하스펠트가 가끔가다 당근을 던져주긴 했지만, 기본적인 스탠스는 채찍이었다. 일을 잘 하면 질 좋은 음식을 먹이고, 성과가 떨어지면 그날 점심은 굶겼다. 패턴이 딱 보였다.

         

       그 짓거리는 달이 세 번 바뀌는 동안에도 한결같이 유지되었다.

         

       “그거 아나요?”

         

       곁에서 스크롤을 작성하고 있던 하스펠트가 침음을 흘리며 말을 건네왔다.

         

       “요새 아이언 드레이크가 뒷산에서 내려오는 횟수가 많아졌다고 하네요.”

       “별일이네요.”

       “그것 때문에 성도가 시끄러워요. 학생들 실습을 위해서라지만 중급 마수를 성도 한가운데에 사육해서 정말 괜찮겠느냐는 얘기가 돌고 있어요.”

       “나라에서 잘 해주겠죠 뭐.”

         

       일과 중 주고받는 대화 대부분은 뉴스거리였다. 종강하고 나니까 하스펠트도 심심한가 보다. 나와 잡담도 나누려고 하고.

         

       “하아아암─.”

       “졸려요?”

       “네. 요새 밤샘을 많이 해서 그런가 봐요.”

       “다음 주까지만 참으세요. ‘플레어’를 완성하고 나면 쉬게 해 줄 테니까.”

         

       거짓말.

         

       “죄송합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나올게요.”

         

       하스펠트가 고개를 끄덕인 걸 확인한 뒤 연구동 밖으로 나왔다. 두꺼운 로브를 꽉 껴입어도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몸 곳곳으로 스며들어왔다.

         

       연구동을 떠받치는 서른여섯 개의 거대한 기둥. 그중 한 곳에 자리 잡은 여인이 한쪽 눈으로 날 흘겨보았다.

         

       “에테르.”

       “헤를라인 교수님.”

         

       우리는 잠깐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침묵을 깬 건 헤를라인 쪽이었다.

         

       “클라이스와 나는 내일부터 사흘간 출장을 가기로 했어. 북방 전선에 이상이 생겨서 전황을 확인해달라고 황제 폐하께서 부탁하셨거든.”

         

       압니다.

         

       “입학 지원서는 수리됐어. 네 수험번호는 이제 그걸로 고정이야.”

         

       압니다.

         

       “실기는 오전 여덟 시부터 열두 시까지 총 네 시간. 장소는 루브테르 수계마도 교양관에서 진행돼. 이후 한 시까지 점심을 가진 뒤 곧바로 대운동장으로 집합하게 될 거야.”

         

       압니다.

         

       “에테르.”

       “네, 선생님.”

       “인재 다루는 법을 모르는 멍청한 내 친구에게 한 방 먹여줘.”

         

       저 멀리 수계마도 교양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브테르 교양관 ─ 제 1024기 틸레트 마도 아카데미 입학시험 지정 제17 고사장]

       

       그래.

         

       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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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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