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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10. 인간과 괴물의 경계에서(2)

       

       

       나는 멍하니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하얀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

       인간답지 않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소녀가 자유로이 하늘을 누빈다.

       

       그리고, 한순간에 커다란 사냥감이 반으로 갈라진다.

       

       아주 깔끔하게.

       고작 칼질 한 번으로.

       

       허나, 나를 당황하게 한 건 그런 압도적인 무력행사 같은 게 아니었다.

       

       흐느끼고 있는 소녀가 보인다. 혼자서 서럽게 울고 있는 소녀가 보인다.

       

       대체 왜 저 아이는 울고 있단 말인가. 저렇게 능숙하게 적을 사냥해 놓고서.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저렇게 슬퍼하고 있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리엔?’

       

       저 아이가, 내가 이곳에 온 이유라는 것이다.

       

       시엘 때와 똑같다.

       이런 상황에, 저런 특이한 모습으로, 저렇게 혼자 울면서 괴로워하고 있는 소녀가 우연히 여기 있었을 리는 없다.

       

       우연이 아닌 필연.

       정해져 있던 만남.

       

       허나, 문제가 있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저 모습도, 저렇게 울고 있는 것도 무언가 사연이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주인공 같은 말빨이 없다.

       우는 애를 달래본 경험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원작대로라면 주인공이 어떻게든 저 아이를 달래고 트라우마를 해소시켜주고 품고 있던 문제를 해결해주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 방법을 모르겠다.

       소녀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짐작하지 못했다.

       

       허나,

       

       “오지 말라고…. 다가오지 말란 말이야…….”

       

       서럽게 울고 있는 아이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알았다. 누군가 곁에 있어줬으면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알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난 천천히 소녀에게 다가갔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 천천히.

       

       그리고,

       

       “이,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소녀를 안아주었다.

       

       소녀는 그리 물어온다.

       허나 그런 말과는 반대로, 소녀는 내 품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잡을 것이 필요한 듯.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했다는 듯이, 아주 위태롭게 떨리는 손으로 날 붙잡고 있었다.

       

       이런 상황엔 익숙하지 않다.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상황을 겪어본 사람이 대체 얼마나 있겠는가.

       

       허나, 그럼에도 날 위태롭게 붙잡은 그 작은 손을 도저히 놓아버릴 순 없었기에.

       

       나는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꼬옥 안아 주었다.

       

       괜찮아질 거라고, 좀 울면 나아질 거라고, 그런 어줍잖은 말들을 떠들면서.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간다.

       소녀의 슬픔도 천천히 무뎌져 간다.

       

       신기한 일이다.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옆에 있다고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사람의 슬픔이 치유되기 마련이니.

       

       나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러면서 잠시 내게 이런 일을 해주었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뭐, 딱히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서 두고 온 가족을 만나고 싶다거나 한 거 아니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전부 떠난 지 10년도 더 된 분들이시니까. 이젠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그냥, 밤하늘이 저리 예뻐서 그런가. 잠시 감상에 젖을 뿐이다.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그립다고 생각할 뿐이다.

       

       *****

       

       [제왕의 격이 ■육의 마■의 기운을 억누릅니다.]

       

       그런 이해하지 못할 메시지가 눈앞을 스쳐지나간다.

       

       이젠 아예 보여줄 생각도 없는지. 0.1초도 안 되서 사라졌는지라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

       

       혹시 상태창이 복구됐다는 메시지가 뜬 건가 싶어서 이것저것 건드려봤지만. 역시 또 경로인지 뭔지 하는 걸 재설정한다는 말만 나오며 묵묵부답.

       

       결국 나는 상태창에서 신경을 끈 채 좀 더 중요한 안건에 신경을 쏟았다.

       

       “다, 당신. 그러고 보니까 대체 누구야? 갑자기 이런 짓은 왜 한 거고?”

       

       소녀가 횡설수설 그리 떠들어댄다.

       

       하긴, 생각해보면 당연한 반응이였다.

       

       기세에 밀리기도 했고, 뭔가 어렸을 때 추억도 생각나서 홧김에 안아버리기는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확실히 미친 짓이었다.

       

       처음 보는 남자가, 오지 말라고 소리치는 여자에게 억지로 다가가서 강제로 안는다.

       

       이거 씨발 그냥 범죄잖아.

       

       이게 다 건강한 육체 특성 때문에 생긴 일이 틀림없었다. 

       

       윤리의식이 제대로 박힌 상식인인 나를 그 특성이 악랄하게 조종해서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누, 누구냐니까? 나한테 유혹 마법 같은 거 건 건 아니지? 흑마법사 같은 건가?”

       

       허나, 이미 벌인 일을 되돌릴 순 없다.

       

       그렇다고 여기서 사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 사과하면, 아까 그 포옹에 불결한 의도가 있었노라고 공언하는 꼴이 되어버리니까.

       

       소녀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입장에서 그것만큼 나쁜 일도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당당한 표정으로 하늘을 가르켰다.

       

       “너는 내가 지팡이도 없이 3시간도 넘게 가는 유혹마법을 거는 대마법사로 보이냐?”

       

       하늘에 떠오른 건 태양.

       사진으로 남겨야 할까 고민되는 아름다운 일출.

       

       다시 말해, 이 소녀는 나를 장장 몇 시간 동안이나 붙들고 있었다.

       

       울면서 이것저것 하소연한 걸 들어보면, 쌓인 게 많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확실히 이건 좀 너무 심하긴 했다.

       

       “…그, 그건.”

       

       하늘에 태양이 하나 더 떠오른다.

       물론, 이 세계관에 태양은 하나밖에 없으니, 하나는 당장이라도 터질 듯 빨개진 누군가의 얼굴이리라.

       

       그쪽이 먼저 3시간,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을 안겨 있으면서 하소연을 해 놓고서. 이제 와서 그런 걸 따지는 건 자기가 봐도 우습다는 걸 깨달은 거겠지.

       

       나는 거기에 마무리로 내 옷을 가리켰다.

       

       소녀는 더 이상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붉어진 얼굴로 바닥에 뭐 그리 재밌는 게 있는지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내 옷은 폭포에서 명상수련이라도 한 것 같은 상태가 되어 있었으니까.

       

       힘도 꽤 센 편이라 이곳저곳 구겨져 너덜너덜한 데다가, 어깨 쪽은 완전히 눈물로 범벅되어 있다.

       

       “……미안.”

       

       리엔은 기어가는 목소리로 그리 이야기한다.

       

       퉁퉁 부은 얼굴 빨개진 눈가. 수치심으로 날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눈동자.

       작게 사과의 말을 건네는 그 모습이 퍽 귀엽다.

       

       “너무 신경쓰지 마. 사람이 힘들면 그럴 수도 있지. 나도 딱히 신경 안 써.”

       

       그렇게 어찌저찌 상황이 마무리된다.

       

       그리고……. 

       조금 어색한 눈맞춤의 시간이 이어진다.

       

       나는 리엔이 왜 저리 우물쭈물 거리며 내 눈을 바라보다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당연한 일이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나는 엄청나게 수상한 사람이니까.

       

       숨어 살고 있는 상황에 갑자기 찾아온 이방인.

       심지어 자신에게 엄청나게 친근하게 접근해온 사람.

       

       어딜 봐도 흑막이다.

       뭔가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악역이란 말이다.

       

       허나, 그럼에도 소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건 분명 아까 일을 고마워하고 있어서겠지.

       

       그냥 평범하게 솔직하고, 평범하게 착한 애다.

       나는 다시금 동정심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봐.”

       

       그렇기에 나는 리엔에게 먼저 그리 이야기했다.

       

       리엔은 조금 망설이다가 내게 질문을 던진다.

       

       “이런 산구석에는 대체 왜 온 거야?”

       

       “그냥 지나가다 들렸는데.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야?”

       

       “그건 아니지만…….”

       

       소녀의 의심이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야, 나도 이런 변명에는 안 넘어갈 거 같거든.

       

       하지만 괜찮다.

       나에게는 최고의 알리바이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뭔가 나쁜 의도로 여기에 왔다면, 너를 몇 시간이나 끌어안고 있지는 않았지. 굳이 너한테 먼저 말을 걸 이유도 없고.”

       

       그나마 안정되었던 소녀의 얼굴이 다시 붉어진다. 리엔은 빨개진 얼굴로 내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행히 어느 정도 납득해준 모양이다.

       

       “그럼, 이제 내가 물어볼 차례지?”

       

       “……어?”

       

       “너는 얼마든지 물어봐도 되는데. 나는 아무것도 못 물어본다는 거지? 그래 뭐.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순간 소녀가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으로 횡설수설 변명을 떠들어댄다. 

       

       그런 게 뜻이 아니라던지. 물어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물어보라던지. 딱히 취조하려던 건 아니라던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면 미안하다던지.

       

       이건, 시엘과는 다른 의미로 투명하다.

       

       성격도 단순하고, 뭘 감추지를 못하고, 얼굴에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고.

       

       시엘이 생각한 걸 그대로 말한다면, 이쪽은 거짓말을 해도 표정으로 전부 알아차릴 것 같은 느낌.

       

       놀려먹을 맛이 있는 애다.

       반응이 찰지다고 해야 하나.

       

       허나,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까 한 말. 대체 무슨 이야기야?”

       

       지금 이 소녀의 상황은, 내 생각보다 심각했다.

       

       나는 리엔이 사이비 마을 사람들에게 억지로 잡혀 있는 줄 알았다.

       

       스포일러 글에 적힌 정보가 워낙 적은지라 일어난 착각.

       

       하지만 얘가 울면서 했던 하소연을 들어 보니, 그녀는 이 마을에서 태어난 부족원이었다.

       

       심지어 얘를 죽이려고 하는 건 리엔의 양아버지라는 모양.

       

       “네 아빠가 널 대체 왜 죽이려 하는 건데?”

       

       “그야……. 내가 잘못 태어났으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소녀는 내 표정을 보고는 내가 아직 납득하지 못했음을 눈치챘는지. 나름대로 설명을 이어갔다.

       

       음….

       

       확실히 좀 심하긴 하다. 사이비교도에 심취한 이놈의 아버지가 왜 얘를 천살성이라고 생각했는지 조금 이해가 될 정도.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나?

       

       사람을 죽이는 재능을 타고난 것도, 가끔 피에 취하면 정신을 잃는 것도 알겠다.

       

       그렇지만.

       

       “그게 그 정도로 심각한 문제야?”

       

       나는 이 소녀에게 왜 그런 증상이 생겼는지 짐작이 갔다.

       

       단순하다.

       내 건강한 육체 특성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이야기.

       

       약점 간파 특성에는 언제나 상대방의 약점을 쉽게 파악한다는 텍스트가 있다. 

       

       게임이 현실이 되자 그게 부작용을 일으켜 다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어디가 약점인지를 보게 되는 성향이 생겼을 수도 있다.

       

       거기에 저렇게 단순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의 동료 캐릭터에는 낮은 등급의 광화 패시브도 달려 있는 편이니까.

       

       전투에 흥분한다는 텍스트가 구현되면 저런 것에 이끌릴 수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난 너까지 죽일 뻔 했잖아.”

       

       “결국 안 죽였잖아.”

       

       “조금만 잘못했다간 죽였을지도 몰랐어.”

       

       “그치만 죽이지 않았지. 그게 중요한 거야.”

       

       리엔은 아직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다.

       그렇기에 나는 소녀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애초에 타고나는 성향 같은 걸 고를 수 있는 사람은 없잖아.”

       

       당연한 이야기다.

       누구도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리엔이 그런 위험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게 아버지에게 죽어도 될 이유는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결국 어떻게 살아가려 하느냐가 중요한 거지. 넌 날 죽이지 않으려 했고.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니야?”

       

       “……그래도.”

       

       허나, 리엔은 아직도 뭔가 납득하지 못하겠는 모양이다.

       

       그렇기에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네가 또 회까닥 돌아버리면, 방금처럼 다시 안아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소녀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역시 놀려먹을 재미가 있는 놈이다.

       

       반응이 찰지다니까.

       

       나는 그런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다가…….

       

       “리엔.”

       

       순간, 인상을 찌푸린다.

       눈앞에 펼쳐진 이상한 광경. 자연스레 불길한 예감이 밀려온다.

       

       “저거, 너희 마을 전통 의식 같은 건 아니지?”

       

       내 말에 그녀도 뒤를 돌아본다.

       순간, 리엔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피어오르는 연기.

       불타고 있는 마을.

       귀를 기울이면 들려오는 사람들의 끔찍한 비명소리.

       

       지금 이 상황.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명백했다.

       

       ……제국이다.

       제국이 이곳을 찾아냈다.

       

       오늘, 한 부족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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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How did you create a dark organization? 어쩌다 흑막 조직 만들어버림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game spoilers turned out to be fake. The characters I gathered thinking they were heroes are actually all villains. In other words,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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