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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우리 딸, 한복도 너무 잘 어울린다!”

       

       수아는 연신 서연의 사진을 찍기 바빴다.

       그 말처럼, 준비된 한복을 입은 서연은 무척 귀여웠다.

       

       늘 길게 늘어트렸던 머리카락도 한복에 맞게 잘 정돈했는데, 그게 또 아주 잘 어울렸다.

       

       “연기를 얼굴로 하나?”

       “낙하산으로 들어왔으면 조용히나 있지.”

       

       물론 그런 서연을 반기는 이는 수아 뿐이었다.

       대부분은 그런 서연을 향해 짧게 혀를 차기 바빴다.

       

       외모?

       당연히 예쁘다. 

       다들 한 외모하는 아역들 틈에서도 그 외모는 확실히 빛이 났다.

       

       그러니 오히려 눈살이 찌푸려졌다.

       외모 하나로 이 자리에 들어온 것 같아서.

       

       ‘운도 좋지. CF 하나로 이런 자리까지 오고 말이야.’

       

       두유 광고?

       당연히 봤다. 

       분명 잘 찍은 광고였지만, 드라마는 전혀 다른 법이다.

       

       “듣자 하니 이제 여섯 살이라던데.”

       “대본이나 제대로 외울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덕분에 한 자리는 경쟁자가 하나 줄었으니 된 거 아닐까요?”

       

       몇몇 매니저나, 아카데미 쪽 인물들은 그런 말을 숙덕였다.

       소속사에 들어간 아역에게 함부로 말을 내뱉으면, 해당 소속사에 밉보일 수 있어 자제하는 편이다.

       

       하지만 서연은 딱 봐도 소속사도 없이, 운 좋게 들어온 경우.

       그들에게 있어선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반면 서연과는 달리, 좋은 의미로 주목 받는 아역도 있었다.

       

       “쟤, 그 일일 드라마에 나왔던 아이죠?”

       “아, 그 언니 싫어~ 하고 외치던 아이? 와, 많이 컸네.”

       

       그런 말소리가 조그맣게 들리자, 당사자인 아역, 조서희의 입술이 씨근덕거렸다.

       

       ‘피곤하게 오디션은 왜 보는거야.’

       

       조서희는 자신 있었다.

       다른 아역들도 하나 같이 쟁쟁했지만, 그래봐야 조서희와는 비교도 안 됐다.

       사극에도 이미 한번 경험이 있을 뿐더러, 무려 일일 드라마에 출연했던 경험이 있었으니까.

       

       일일드라마는 그 말처럼 매일 방영하기에 연기가 일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뿐인가? 하루하루가 촬영이기에 체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기에, 인지도를 빠르게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당장 몇 년 전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처제의 유혹’만 봐도 그 파급력이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사극 경험, 거기에 압도적인 연기경험.

       당연히 조서희와, 그 매니저는 자신이 없었다.

       

       오디션에서 떨어질 자신이.

       

       “어, 왔다!!”

       

       하지만, 그런 조서희도 한수 접어주는 인물이 딱 한 명 있었다.

       매니저와 함께 천천히 걸어오는 소년.

       

       그를 본 몇몇 소녀들이 와! 하는 작은 감탄을 내질렀다.

       

       “이야, 이제 겨우 열 살일 텐데, 애가 아주 잘 생겼네.”

       “벌써 태가 납니다. 역시 유전자가 다른가 봐요.”

       

       멀찍이 그것을 보던 기획 프로듀서 하태오도 흐뭇하게 웃었다.

       

       “박정우 군의 연기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볼 때마다 실력이 쑥쑥 늘어서, 배우님들 긴장 좀 해야겠어요. 아역한테 연기가 밀리면 어떡합니까?”

       

       이 말은 괜히 띄워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천만 영화에 무려 세 번이나 주연을 맡은 배우, 박선웅의 아들.

       

       심지어 박정우 본인도 천만 영화에 한번 출연한 경험이 있었다.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된 아이의 역으로 나온 박정우는, 놀라운 연기실력을 뽐내며 대한민국을 놀라게 한 아역이었다.

       

       사극 경험은 없었지만, 그 천재적인 연기력은 모두의 주목을 끌기 충분했다.

       

       ‘와, 이게 난 놈은 떡잎부터 다르다더니.’

       

       서연 또한 박정우를 보고 내심 놀랐다.

       저게 진짜 모태 알파메일이구나.

       

       박정우는 이 태숨달에서 또 큰 인기를 얻는 것으로 모자라, 이어 출연한 드라마에서도 대박.

       그 다음에 출연한 영화에서는 초대박을 연속해서 터트려 성공신화를 이어나갔다.

       

       중간에 몇 번 삐그덕거리지만, 그래도 대배우의 아들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아이였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대본부터 외워야 해.’

       

       잠시 시선이 팔렸던 서연은 아까 오디션장에서 나눠준 대본을 확인했다.

       옷을 늦게 갈아입은 탓에 상대적으로 대본을 보는 시간이 늦었다.

       

       ‘어.’

       

       대본을 살핀 서연은 눈을 크게 떴다.

       

       ‘이거, 하이라이트 잖아.’

       

       정확히는 2화의 하이라이트였다.

       남주인공인 어린 윤서일과, 여주인공인 어린 이혜월이 헤어지는 장면.

       

       2화에서 전 국민을 울리려다 ‘만’ 장면이다.

       

       ‘뭔가, 좀 밋밋했던 것 같은데.’

       

       딱히 누가 연기를 못했던 건 아니다.

       하이라이트이긴 했지만, 그냥 무난하게 잘 나온 장면……이라고 할까, 대충 그런 느낌이었다.

       

       서연은 과거에 보았던 드라마의 장면을 떠올리며 차근차근 대본을 외웠다.

       조서희의 연기를 참고할까 했지만, 서연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타인의 연기를 따라해봐야 좋을 게 없어.’

       

       이미 그걸 두유 CF로 배우지 않았던가.

       그렇게 조용히 대본을 읽는 서연을 보며, 수아는 조민태에게 물었다.

       

       “서연이가 대본을 잘 외울 수 있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오히려 어머님이 더 잘 아시지 않나요?”

       “애가 이것저것 잘 외우기는 하는데…… 모르겠네요.”

       

       수아는 자신의 딸이 천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도 걱정은 걱정인 거다.

       조민태도 대본은 걱정되긴 했다.

       

       CF 밖에 찍어본 적 없는 서연에겐 굉장한 난제일 것이다.

       애초에 대사의 수부터 어마어마하게 차이 났으니까.

       

       “자! 그럼 시간이 된 것 같으니, 시작하도록 하죠.”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자마자 하태오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우선 상대 배역은, 번호로 뽑겠습니다. 이혜월 역은 빨간 상자, 윤서일은 파란 상자에 손을 넣어 번호표를 뽑아주세요. 같은 번호가 파트너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2인 1조 연기에서 상대 배역은 무척 중요하다.

       그런데 그 소중한 상대 배역을 무작위로 결정 짓는다.

       

       당연히 대부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제발, 박정우만 안 걸리길!’

       ‘제발, 조서희만 피해서 가길!’

       

       매니저들이나, 아카데미 선생님들은 저마다 자신이 데려온 아이가 위험 인물만은 피해가길 간절히 바랐다.

       

       남자 아역들은 조서희를.

       여자 아역들은 박정우만 안 걸리길 간절히 빌었다.

       

       상대 배역이 연기력이 너무 뛰어나면 존재감을 빼앗길게 분명했으니까.

       

       ‘제발 낙하산. 제발 낙하산, 제발 낙하산!!’

       

       반면 가장 만만한 건 서연이었다.

       읽기 어려운 표정으로 멀뚱멀뚱 서 있는 서연은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파악못한 일반인의 얼굴이었으니까.

       

       “자, 그럼 먼저 1번, 뽑은 분들 나와주세요.”

       

       1번.

       가장 먼저 연기를 펼쳐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 두 명의 아이가 나왔다.

       둘은 저마다 상대가 ‘위험인물’ 아니라는 점에 안도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흐음…….”

       

       그런 둘의 연기를 프로듀서인 하태오를 비롯해, 촬영 감독, 캐스팅 디렉터 등, 많은 이들이 모여 지켜보았다.

       

       “그럼 다음은 2번.”

       

       그렇게 한 팀씩. 또 한 팀씩, 특별한 호평없이 흘러갔다.

       딱히 모난 것 없이 대부분 그럴싸하게 연기를 했기 때문이다.

       

       “7번 나와주세요.”

       

       그리고 7번이 나왔을 때, 조서희가 앞으로 나왔다.

       

       “아…….”

       

       당연히 상대 배역인 아이는 죽을상이 되었다.

       함께 온 연기 선생님도 절대 조서희만은 피해야 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작된 연기.

       이혜월과 윤서일이 먼 훗날을 기약하며 헤어지는 장면이다.

       

       반정이 일어나, 먼 곳으로 떠나게 되는 이혜월과 윤서일의 애틋한 이별.

       

       「다시, 돌아올게요. 꼭, 다시…….」

       

       물기 어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조서희의 모습에, 상대 배역인 소년은 미처 그것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나름 노력했지만, 완전히 존재감이 소실되어 버렸다.

       

       “괜히 일일드라마의 공주님이 아니네.”

       “그러게 말 입니다.”

       “이 짧은 시간에 저런 감정 살리기 쉽지 않거든요.”

       

       처음으로 나온 칭찬이다.

       조서희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오디션장을 한번 훑어본 뒤 제 자리로 돌아갔다.

       

       “자, 이제 어디 보자…… 계속 갑니다.”

       

       그렇게 계속 되는 호명 속에서 10번이 언급되자, 박정우가 앞으로 나왔다.

       당연히 그 등장과 동시에 어디서는 안도의 한숨을, 당사자는 절망이 깃든 얼굴이 되었다.

       

       “다, 다시, 돌아올게요.”

       

       이어 펼쳐진 연기는 처참했다.

       먼저 대사를 쏟아낸 박정우에게 완전히 압도된 소녀는, 말까지 더듬을 정도였다.

       발성도 그렇고 도저히 연기라 할 수준이 못 됐다.

       

       “흠……, 이건 상대가 너무 못해서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박정우 군은 느낌이 확실히 다릅니다. 아예 다른 애들보다 몇 수 위에요.”

       

       매서운 혹평에 몇몇 아이들이 움찔했다.

       자신들도 만약 조서희나, 박정우가 걸렸다면 비슷한 꼴이 되었을 테니까.

       

       “그럼 이제 몇 팀 남았지? 11번 나와주세요.”

       

       이어진 호명에 긴장한 소년이 앞으로 나왔다.

       하필, 박정우의 다음 순서인 탓에 비교가 될 것만 같았다.

       

       “오!”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가, 이내 입을 막았다.

       그도 그럴 게, 주변에서 ‘낙하산, 낙하산’하던 아이가 드디어 앞으로 나온 것이다.

       

       그 탓에 아직 순서를 기다리던 남자 아역들은 부러운 눈으로 소년을 보았다.

       

       ‘CF나 몇 개 찍어보고 운 좋게 관계자의 눈에 띄어 오디션에 온 소녀.’

       

       이곳에 있는 모두가 인정하는 자타공인 낙하산. 

       그것이 서연의 인상이었다.

       

       “비주얼은…… 확실히.”

       “CF가 잘 나온 것도 이유가 있네요. 확실히 분위기는 있어.”

       

       비웃던 이들도 서연의 자태만은 인정했다.

       조용히 서 있는 그 모습은, 비슷한 또래의 소녀들이 낼 수 없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허나, 연기란. 분위기나 얼굴로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자, 그러면…… 시작해주세요.”

       

       그런 감독의 말과 함께, 정갈한 한복을 입은 소년이 힘차게 말했다.

       등을 돌리고 선, 서연을 향해.

       

       「저하, 저하. 대체 어디를 가시나이까!」

       

       곧 멀리 떠나야 하는 연화공주 이혜월을 붙잡기 위해 손을 뻗는 윤서일.

       둘이 함께 자주 어울리던 언덕 위에서, 둘은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어린 윤서일의 말을 들은, 연화공주는 이윽고 천천히.

       그렇게 몸을 돌렸다.

       

       먼저 눈에 띈 건 눈이었다.

       연화공주 이혜월은, 마치 눈부신 무언가를 보고 있던 것처럼 눈이 살며시 좁혀져 있었다.

       그 좁혀진 눈은, 자신을 부른 윤서일을 보며 점차 커진다.

       반가움. 기쁨, 그리고 슬픔과 애틋함이 담긴 눈이다.

       

       노을처럼 붉은 동공에 소년의 얼굴이 비쳤다.

       

       “…….”

       

       순간.

       그녀를 마주한 소년은 말을 잃었다.

       이어 내뱉어야 할 대사를 잊었다.

       입술과, 혀가 굳었다.

       

       당연한 일이다.

       눈앞에는 연화공주가 서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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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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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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