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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처음 <히사있>의 세계로 떨어졌을 때.

        내가 가진 힘이 ‘현상 거절’이라는, 해괴한 능력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궁금한 것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현상’을 거절한다는 능력. 그 능력이 가진 한계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한 선택은 아주 간단했다.

       

        [ 현상 거절. 태양계의 순환을 1초간 정지한다. ]

       

        ……지금 생각하면 미쳐도 단단히 미쳐있었다. 찰나라고는 해도, 한낱 인간이 감히 항성계의 공전 법칙을 깨뜨리려고 했으니까.

       

        체감조차 어려운 짧은 시간, 1초.

       

        그 결과는 참담했다.

       

        푸화아악!

       

        ‘꺄아아아아악!’

       

        ‘칠공분혈’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인간의 머리에 달린 일곱 개의 구멍에서 피를 흘린다는 뜻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던 번화가의 거리, 나는 그 칠공분혈을 실제로 재현한 놈이 되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한번, 세계의 금기를 깨려 하고 있다.

       

        [ 현상 거절, 생명의 근간. 기관계의 활동 정지를 거절한다. ]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를 일으키는 죽음. 그 죽음을 두려워하던 송수아를 위해서.

       

        [ 현상 거절, 그녀의 영혼이 명계에 드는 걸 거절한다. ]

       

        진언眞言을 읊는다. 물론, 신체에 걸리는 과부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왈칵!

       

        목 깊은 곳에서 피가 역류한다.

       

        주르륵!

       

        코에서, 끈적하고 비릿한 냄새가 진동하는 피가 터져 나온다.

       

        [ 현상 거절, <비를 내리는> 송수아의 안식을 거절한다. ]

       

        한계를 넘어선 능력을 발동하고, 충격을 맞이한 신체가 비명을 내지른다. <히사있>에서는 제법 흔한 장면이었다.

       

        가장 좋은 예로 작중 후반, <재창조>의 한유리가 섬 전체를 방어할 실드를 창조했을 때 그러했고, <성녀> 안젤리카가 자신의 육신에 신을 강림시킬 때 그러했다.

       

        물론 지금의 나는 그들과 경우가 다르다.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랭커와 달리, 나는 오로지 개인. 송수아를 위해 능력을 쓰고 있었으니까.

       

        “팔자 좋은 건…… 바로 나였나.”

       

        거절한다.

        그녀의 죽음을 거절한다.

        삶의 종착지인 영면. 그 차디찬 안식에 드는 것을 거절한다.

       

        [ 현상 거절 ]

       

        거절한다.

       

        내 능력이 한계에 달해, 더이상 송수아를 구할 수 없는 것. 그 절망에 빠지는 걸 거절한다.

       

        쿵!

       

        “큭!”

       

        내부의 장기들이 갈라지는 고통에 절로 다리에 힘이 풀렸다.

       

        ‘금기’를 범하는 대가는 컸다. 입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고, 그 피에는 몸 안 어딘가 있었을 장기의 파편들이 섞여있다. 

       

        붉어진 시야가 점차 흐려진다.

       

        판단하건대…… 나 역시 한계에 달했다. 그 사실을 멀어지는 의식이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마지막으로 할 일은 제법 간단했다.

       

        휴식? 요양? 몸을 사리는 것? 나름 잘 싸웠다고 스스로를 위안삼는 것?

       

        아니.

       

        [ 현상 거절, 세계의 ‘마나’가 일으키는 세포 경화를 거절한다. ]

       

        의식이 점차 멀어지는 찰나, 마지막 진언을 완성한다.

       

        자신이 가련한 영화 속 여주인공이라 착각하는 송수아. 그 괘씸한 녀석이 더이상 아프지 않길 바라는, 내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 * *

       

        송수아는 어둠 속에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왜인지도 몰랐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이 어둠 속에 있었으며,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는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송수아는 어둠 속의 자신이 이상했다. 팔도, 다리도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그녀의 몸이 정말 그녀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머리가 사고하지 않는다. 멍하다. 그녀는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부터 몸에… 미세하게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해하기 힘들었으나 알 수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돼.”

       

        앞으로 나아간다. 무의식이 이끄는대로.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님에도 걸음걸이는 확고한 의지를 갖은 듯 했다.

       

        또다시 억겁의 시간이 흘렀다.

       

        몸의 통제를 찾은 것에 이어, 멍하던 정신이 차츰 돌아오는 걸 느꼈다. 그리고 비로소 무언가를…… 자신이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고아였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하지만 그런 송수아의 결핍을 채워준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세계를 호령한다는 대기업 ‘일성가’의 사람들이었다.

       

        송수아의 능력을 보고 접근했다는 세인들의 우려와 달리 그들은 친딸처럼, 친손녀처럼 송수아를 대해주었다.

       

        그녀의 목숨을 걸 수 있을 만큼 소중한 친구, 한유리.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 그들 모두가 송수아에게 둘도 없이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또…….”

       

        한데,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렸는데…… 아직 무언가 잊고 있는 듯한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다시 시간이 흐른다.

       

        이상했다.

       

        어둠 속의 송수아는 온몸이 아프고 어지러운데다, 속이 토할 것 같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기억에 없을 부모님의 사랑처럼, 따스하고 포근한 감각이 그녀를 어루만지는 듯했다.

       

        “아……?”

       

        누군가를 떠올린다.

       

        마치 희미한 실루엣에 가려진 것처럼, 나이도, 얼굴도, 성별도, 생김새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송수아는 직감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이 자신을 깨우고 있다. 그녀가 아파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 어둠에서 끌어내려 하고 있다.

       

        “임……?”

       

        송수아는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려했다.

       

        하지만 머리가 굳어버린 것처럼,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를 수 없다.

       

        “임!”

       

        무無 의 공간에서 소리친다. 마치 금제가 걸린 것처럼, 떠올릴 수 없는 사람의 이름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름을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목놓아 부른다.

       

        “임, 혜, 성……!”

       

        아.

       

        그 순간, 송수아는 깨달았다.

       

        그녀의 삶에 혜성처럼 등장해, 뻔뻔하게 그녀의 심장을 꿰찬 사람이 누구인지.

       

        흐릿한 기억처럼, 그녀가 떠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사람이 누구인지.

       

        “으윽!”

       

        사흘간의, 근래의 기억이 바다를 몰아치는 해일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그리고.

       

        쨍그랑!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자신이 걸어온 저편의 어둠이 붕괴한다. 마치 암흑으로 빚은 유리 온실 같던 공간이 깨어지고 흩어진다.

       

        “……!”

       

        송수아는 멈췄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걸음은 점차 빨라지는가 싶더니, 이젠 미친 사람처럼 이 까마득한 어둠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만날 거야!”

       

        붕괴에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린다.

       

        “만나야 해……! 만날래, 만날 거야! 다시!”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송수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우스운 것은 그런 그녀의 눈에선 투명한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그가 이꼴을 보았다면, 조울증 환자냐며 시덥지 않은 농담을 던졌겠지.

       

        “임혜성!”

       

        저 멀리, 희미한 빛이 보인다.

       

        점차 가까워진 빛 너머로 흐릿한 형상이 떠오른다.

       

        송수아는 알 수 있었다. 저곳은 히어로 타워의 전망대. 그녀는 저곳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반드시.

       

        탓!

       

        송수아가 크게 도약해…… ‘빛’을 향해 몸을 던졌다.

       

        * * *

       

        “커흐윽! 하아! 하아!”

       

        숨이 돌아온다. 활동을 멈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흐릿한 시야가 점차 밝아지고, 타워 전망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어……?”

       

        기억에 남은 익숙한 풍경. 서둘러 고개를 돌려 임혜성을 찾던 송수아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눈에 밟혔다.

       

        “뭐…… 야?”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적막한 전망대의 VIP룸, 통유리 너머의 야경을 감상하기 위한 고급 소파.

       

        그 옆에…….

       

        한 사람이 쓰러져있다. 척 보기에도 절로 소름끼치는 어마어마한 양의 피 웅덩이와 함께.

       

        엎어진 채로 미동조차 없는 몸. 싸늘함이 절로 감도는 분위기. 그에 송수아의 이성이 마비됐다.

       

        “안돼. 안돼, 안돼 안돼안돼안돼!”

       

        비틀대는 몸을 이끌고, 송수아가 소파에서 내려온다.

       

        팔은 물론, 다리,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기에.

       

        콰당!

       

        팔다리를 놀리던 송수아의 턱이 거하게 바닥을 찧었다. 곧장 얼얼한 통증이 머리를 울렸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엉금엉금 그에게 기어간다. 

       

        이 장면을 누군가 CCTV로 보았다면 ‘랭커’의 둘도 없을 추태에 비웃겠지. 하지만 그녀는 지금 그딴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스륵!

       

        마치 감히 만져서는 안될 보물을 만지는 것처럼. 송수아는 조심스레 그의 몸을 일으켰다.

       

        눈을 감은 그의 안색이 창백하다. 마치 ‘마나 중독’에 걸렸던 그녀처럼.

       

        “제발…….”

       

        소중히 그의 머리를 품 안에 안은 송수아가 흐느꼈다.

       

        “도와줘.”

       

        덜덜 떨리는 목소리.

       

        “누군가…… 도와줘. 도와주세요. 제발! 부탁할게!”

       

        혹자가 본다면 미친 사람처럼. 송수아가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전망대에 소리쳤다.

       

        이래선 안 된다.

       

        그녀는 알고 있다.

       

        자신에게 드리운 죽음, 그 죽음에서 꺼내준 장본인이 누구인지. 딱히 누군가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제발…… 부탁이야.”

       

        꼬옥.

       

        그 사람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곧장 크리스마스 코스튬이 피로 범벅이 되었지만, 송수아는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아오…… 시끄러워.”

        “어, 어어?”

        “머리… 아니, 온몸이 아프다. 토할 것 같이.”

        “……!!”

       

        송수아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뭐야, 그건…… 내가 전망대에 오르기 전에 했던 말이잖아.

       

        그 목소리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송수아.”

        “……?”

        “팥빙수 먹으러 가자. 봄이 오면 벚꽃놀이도 가고.”

        “……응! 그래. 그러자!”

       

        파리한 안색의 임혜성이 중얼거린다.

       

        송수아는 그의 목소리에 해맑게 웃었다. 비록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녀의 웃음은 더 없이 밝았다.

       

        * * *

       

        크리스마스의 아카데미, 중앙 지구 번화가.

       

        “날씨가 미쳤다 그냥.”

        “빌어먹을 기상청 놈들. 이건 선 넘은 거 아님?”

       

        두 남자가 절망적인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12시를 넘어 맞이한 크리스마스. 아리따운 여성들과 합석하기 위해서 온갖 치장을 하고 나온 두 남자에겐 퍽 절망적인 일이 펼쳐졌다.

       

        처음은 비였다.

       

        한겨울인 계절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굵은 장대비가 내렸다.

       

        그리고 지금은.

       

        “폭우에 이어 폭설. 이러다 지구 망하는 것 아니냐.”

       

        하늘에서 펑펑 눈이 내린다. 대한민국, 심지어 최남단의 섬인 제주도에서는 흔한 장면이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 수준이다.

       

        “음?”

       

        술집 지붕 아래서 눈을 피하던 두 남자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눈이 그쳤다.

       

        다만, 눈이 그쳤다는 것이 평소의 날씨가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후욱!

       

        이번엔 따듯한 바람이 분다.

       

        마치 훈훈한 봄바람처럼, 아롱다롱 봄내음이 물씬 풍기는 따스한 바람이다.

       

        “뭐야? 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임.”

       

        무슨 날씨가 옷이라도 갈아입는 것 같은, 뜬금 없는 이상 현상에 입을 쩍 벌릴 수밖에.

       

        그리고.

       

        “……헉!”

        “미친!”

       

        두 사람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단 삽시간에 불어온 봄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화단에 말라 죽은 꽃이 싱그러이 피어난다.

        길거리의 가로수가 새파란 잎을 돋아낸다.

        산책로의 벚꽃 나무가 분홍빛 꽃을 피운다.

       

        누군가의 감정을 증명하듯… 겨울이란 계절이 믿기지 않는, 오색찬연한 빛을 갈아입은 것이다.

       

        “와아!”

        “뭐야? 뭐야? 이벤트인가?”

        “자기야. 저것 좀 봐!”

        “엄청 이쁘다…….”

       

        늦은 시간, 길거리를 다니던 사람들이 그 압도적인 장관에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 이제 더운데?”

        “그러니까. 진짜 미치겠네.”

       

        앞선 남자 둘은 중얼거리며 외투를 벗었다.

       

        따스했던 겨울밤 날씨가 이제 뜨겁다고 느껴질 정도다.

       

        ……마치, 정열적인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조금 빨리 왔습니다.

    오늘 심야(오후 11:00~01:00)사이에 한편 더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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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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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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