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

       사실 나는 그 임무를 엄청 진지하게 실행할 생각은 없었다.

        

       백작 암살이라니.

        

       아, 물론, 내가 하지 못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내가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이미 한 번 확인해 보았다.

        

       황제가 빌려준 마차를 타고 백작 영지까지 가서, 백작 저택 안까지 잠입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물론 한 번에 성공했다는 것은 아니다. 백작 저택이니만큼 경비원들이 수도 없이 있었고, 백작 본인도 굉장히 꼼꼼한 성격이라서 저택 안에도 수많은 사용인과 경비병들이 득실거렸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철저한 경비라도 빈틈은 있는 법이다.

        

       특히 이 세계관에는 아직 CCTV 같은 것은 없다. 해석 기관과 차분 기관이라는 증기기관을 사용하는 컴퓨터 비슷한 물건도 있었고, 기계식 계산기도 있었고, 카메라나 프린트도 있었지만, 이 기술들은 전부 ‘아날로그’에 기반하는 기술들이다.

        

       차분 기관은 숫자와 알파벳을 저장할 수 있지만, 반도체로 이루어진 저장장치가 아닌, 수많은 크고 작은 톱니바퀴로 복잡하게 이루어진 장치 안에 ‘물리적인 모양’으로 기억되는 형식이다. 비싼 아날로그 손목시계를 생각하면 편하다. 증기기관으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복잡한 톱니바퀴의 모양 속에 ‘형태’로서 자리하다가, 불러올 때는 다시 다른 톱니바퀴를 그 안에 대서 ‘종이’에 ‘출력’한다.

        

       당연히 끊임없이 석탄, 혹은 마력석을 집어넣는 것을 강요하고, 부품 하나하나의 마모까지 신경 써야 하는 데다가 내가 알고 있는 현대 컴퓨터와 비교하면 크기마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기껏해야 이미지 몇 장 기억할 수 있는 차분 기관마저 그랜드 피아노를 세 개 정도 쌓아둔 크기니까.

        

       당연히 이미지를 기억하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비효율적인 장치라, 보통은 복잡한 계산의 답을 구하는 데 사용한다. 이미지가 아닌 숫자를 기억하게 한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기억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출력할 때도 시간이 훨씬 단축되고.

        

       그나마도 사람이 계산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장점이라곤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정확함’ 정도 뿐이라서, 정말 급박하게 계산하여 결괏값을 내놓을 필요가 있는 곳, 혹은 소수점 저 아래까지 내놓을 필요가 있는 곳이 아니라면 그냥 수학 계산을 전문적으로 하는 ‘계산사’를 고용한다.

        

       거기에 설정상 아예 386, 486 컴퓨터와 성능이 맞먹는다는 해석 기관은 그랜드 피아노 따위가 아니라 그냥 건물을 통째로 써야 하고, 작은 톱니바퀴가 고장 날 것을 대비하여 정비사 수백 명이 상시 대기해야 한다. 그나마 도서관보다는 작은 크기지만, 사실 비용적인 면만 생각하면 그냥 도서관을 만드는 쪽이 더 효율적일지 모른다.

        

       제도 론다리움 위를 날아다니는 공중전함 ‘드레드노트’ 안에 축소된 형태의 최신형 해석 기관이 들어있다고는 하지만, 축소된 만큼 기능적인 면에서도 희생되어서 수십 명의 계산사가 항시 대기하며 해석 기관의 계산을 보조한다.

        

       카메라는 있지만 아직 동영상은 발명되지 않았다. 우리가 ‘아날로그 카메라’라고 하면 떠올리는 필름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이 세계의 ‘필름’은 팔랑팔랑한 형태가 아니라 널따란 유리판이고, 당연히 고해상도의 카메라일수록 필요한 유리판도 점점 커진다. 파손 위험성도 덩달아 높아지고.

        

       그나마 본편 시작 시점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35mm 필름 크기 정도의 필름도 발매되기는 하지만, 아직 본편 시작 전이라 그런지 지금까지는 본 적 없다.

        

       ……거참, 이상한 쪽에서 설정이 세세하다니까.

        

       아무튼, 오버 테크놀로지와 실제 19세기의 분위기가 여러모로 뒤섞인 세계라는 뜻이다.

        

       내가 수십 번을 들켜가며 확인한바, 이 크로우필드 백작가는 방범용 차분 기관 없이 오로지 인력만으로 경비를 짜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경비를 서는 이상, 돌파구는 언제나 존재한다.

        

       마흔여섯 번 시간을 되돌려서 백작 곁에 도착하는데 두 번 성공했다.

        

       서른네 번 시도해서 길가는 백작의 머리를 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데 세 번 성공했고,

        

       백작이 타고 가는 마차에 폭탄을 설치하는 데 성공한 건 서른일곱 번 중 두 번이었다.

        

       마지막으로, 새로 들어온 하녀로 위장해 백작이 먹을 음식에 독을 흘려 넣는 것에 한 번 성공했다. 이 방법은 총 다섯 번 시도해서 마지막 한 번만 성공했다.

        

       그리고 이 방법은 효율이 극도로 떨어진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냥 폐기하기로 했다. 한 번 잠입하는데 최소 일주일에서 2주일씩 걸리는데 성공확률도 떨어졌으니까. 성공도 마지막의 딱 한 번뿐이었고. 그나마 그 성공조차도 중간중간 자잘하게 시간을 다시 되돌려 가며 시도한 결과였다. 통째로 되돌린 시간만 다섯 번이라는 뜻이지, 실제로 능력이 사용된 횟수 자체는 제일 많았다.

        

       탈출하는 시간, 그리고 후에 누군가 내 얼굴을 기억할 가능성을 생각하면 두 번째 방법이 제일 알맞긴 했다. 그냥 멀리서 쏘고 빠지는 거. 

        

       물론 그렇다고 진짜로 죽이지는 않았다. 일단 성공 가능성만 따져봤을 뿐, 아직 백작은 죽지 않았다.

        

       “……흠.”

        

       나는 나무 위에 자리를 잡은 채 백작이 탄 마차의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쌍안경으로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크로우필드’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 척 듣기에도 불길한 이름답게도, 백작은 몹시 음침한 분위기의 소유자였다. 콧수염 양쪽 끝이 말려 올라간 카이저수염을 하고 있었고, 피부가 창백하다시피 하얀색이었다.

        

       뭐, 솔직히 이 외모는 처음 보았다. 게임에서 들어본 이름이라 기억하고 있을 뿐.

        

       미아 크로우필드.

        

       히로인 중 한 명이다. 다소 박행한 분위기에, 머리카락도 축 늘어져 있지만 얼굴을 반쯤 덮은 앞머리를 치우면 어마어마한 미소녀라는 설정의 히로인.

        

       본편 시작 3년 전에 황제의 농간으로 아버지를 잃었다……라고 게임 초반에 나오지만, 실제로는 크로우필드 백작은 뒤로는 온갖 더러운 일을 자행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라는 설정이다.

        

       작중에서 주인공이 속한 귀족 반의 등장인물 중 ‘중요 인물’들은 우울한 사연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 이 미아 크로우필드도 그중 하나였다.

        

       가정에서는 근엄하지만 자상한 아버지. 하지만 뒤쪽으로는 평민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와 매춘, 아편 사업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자.

        

       미아 크로우필드의 스토리는 그저 권력투쟁에 희생된 줄 만 알았던 아버지의 진실을 알고 나서, 평민 반의 히로인에게 사과하고 과거를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스토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그 크로우필드를 제거하는 게 내가 될 줄은 몰랐지.”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황제라는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자기가 행하는 모든 일이 제국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국을 너무 사랑하기에, 저 제국 바깥의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희생하고, 그 희생한 결과물을 제국을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 현실에 빗대자면 전형적인 제국주의자다.

        

       다만 제국을 사랑하는 것이 진심이긴 해서 이 제국 내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아편 사업과 인신매매를 뿌리 뽑고자 하는 것도 진심이었다. 다른 나라가 어떻게 되건 알 바 아니고, 오로지 제국을 위해 세상 모든 것을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있는 자.

        

       물론 논리에 허점이 몹시 많기는 했다. 뭐, 그런데 세상 어느 악역이 그렇지 않겠는가. 애초에 논리에 오점에 없다면 그건 악당이 아니라 선한 역이겠지.

        

       그래서, 사실 나는 이 크로우필드라는 이름을 알기 전까지는 ‘반드시 제거하겠다’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문제는—

        

       “…….”

        

       다시 쌍안경을 눈에 대고 백작이 탄 마차를 본다.

        

       제국 최고의 세공사들이 정성스레 깎아 만든 렌즈의 너머로 백작이 탄 검은 마차가 선명하게 보였다.

        

       꽤 비싼 나무로 만들어진 고급 마차가 맞기는 하지만, 평소에 백작이 타고 다니는 마차와는 다른 마차였다.

        

       백작이 평소에 타고 다니는 화려한 마차는 다른 여관의 앞에 세워져 있었다. 백작은 그 마차에서 다른 마차로 두 번 갈아타고 나서야 목적지를 향했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백작령 한 후미진 곳에 있는 창관이었다.

        

       참고로 창관이라는 말은 그냥 내가 임의로 붙인 명칭이었다.

        

       실제로 그 건물 앞에 붙어있는 명칭은 ‘고아원’이었으니까.

        

       내가 백작의 호위를 따돌리거나 전부 무력화하고 백작 바로 옆까지 다가가려고 시도했던 그 마흔 여섯 번의 시도 중 열두 번이 이 창관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한 번은 백작 바로 옆까지 다가가 머리에 웩슬러 리볼버를 들이미는 것까지 성공했고.

        

       덕분에 나는 저 건물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았다.

        

       저 건물은 고아원이라는 이름보다는 창관이라는 이름이 확실히 어울렸다.

        

       코를 찌르는 지독한 냄새.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아편 향.

        

       비명과 신음.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아이들의 목소리.

        

       아, 그리고 잊어버리고 말을 하지 않았는데, 사실 난 저 창관으로 진입했던 열 두 번의 시간 동안 저 창관 안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손님 목록과 소모된 아이들의 목록, 그 목숨값, 조직원의 이름 같은 것을 입수할 수 있었다.

        

       백작은 다리에 455구경 탄이 박히자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울부짖듯 풀어놓았다.

        

       저 창관은 ‘제도의 한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수입하고, 필요에 따라 그 ‘원재료’를 ‘가공’하기도 했다.

        

        “이 창관 하나를 사라지게 만든다고 해서, 이런 상황을 뿌리 뽑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하나? 이런 조직은 그저 작은 범죄자 모임 중 하나일 뿐이야! 제국을 좀먹는 자들을 사라지게 만들고 싶다면 거물과 손을 잡아야지! 나, 나를 살려주게. 황제 폐하를 위해 무엇이건 하겠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모두 불겠어……”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습니다. 당신이 타고 온 마차. 그 마차의 마부는 어떻습니까? 이 조직의 조직원입니까?”

        

       “그, 그래. 그렇지. 손님의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과정에서 충성도 높은 조직원을 써야 하니까……”

        

       지난번에 백작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

        

       물론 지금의 백작은 자기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백작이 타고 있는 마차에는 그 어떤 무고한 이도 없다. 전부 그저 돈으로만 엮인 게 아니라, 마약과 매춘으로 얽혀있다. 단순히 돈이 아니라, 마약을 하고 아이를 덮쳤다는 그 사실 자체로 얽혀있기에 함부로 입을 열 수도, 발을 뺄 수도 없다. 그러는 순간 미리 만들어둔 증거가 세상으로 드러날 테니까.

        

       당연히 조직원을 협박해서 모은 것도 아니다. 죄책감을 이기지 못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식으로 발을 묶는 것이 불가능하니까.

        

       당연히 조직을 지탱하는 대부분의 조직원은 이미 교도소를 몇 번이나 들락날락한 범죄자들.

        

       그리고 이렇게 인권 인식이 희박한 나라에서도 아이들을 건드리는 것은 한없이 죄악에 가까운 것이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긴 했다. 열 살짜리 어린아이가 공장에서 일하다가 프레스에 손이 으깨지는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그런 아이들을 가둬두고 범하는 것에는 그토록 신경을 쓴다니. 이 세상의 ‘선’에 대해서는 정말 몇 번을 보아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뭐, 그런 건 별개로 치도록 하고.

        

       아무튼 요약하자면,

        

       저 백작이나, 저 마차를 움직이는 조직원들이나.

        

       죄다 죽어도 상관없는 놈들이라는 소리다.

        

       저 멀리 창관에 가까워질수록 마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인다.

        

       나는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서 보았다.

        

       태엽 시계는 그 정확성에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대충 어느 정도 시간에 폭탄이 터지는지 정도는 짐작할 수—

        

       쾅!

        

       —있었다.

        

       나는 굉음이 들린 쪽을 향해 쌍안경을 들어 상황을 보았다.

        

       마차의 절반 정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이었다.

        

       마부석에 앉았던 인간은 다리가 사라진 채 바닥을 뒹굴고 있었고, 백작을 호위하기 위해 함께 마차에 탔던 떡대는 팔이 한쪽 사라진 채 반대쪽 문으로 내렸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뒤쪽에서 마차를 타고 가던 다른 조직원들이 급하게 마차에서 내리다가—

        

       뒤이어 연속적으로 들린 폭발에 모조리 휩쓸려버렸다.

        

       백작이 타고 있던 마차 뒤를 따르던 행렬도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폭발에 죄다 저 멀리 날아갔다. 백작이 타고 있던 마차는 백작의 자리를 신경써서 폭탄을 배치했지만, 그 뒤쪽 마차들은 그런 것까지는 신경쓰지 않았기에 폭발한 위치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마부석을 중심으로 날아간 곳도 있었고, 백작이 타고 있던 마차와는 다르게 반대방향인 왼쪽이 날아가거나, 아니면 일단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교적 멀쩡해보이거나.

       

       물론 멀쩡한 마차도 창문이 안에서 바깥으로 터져나간 것을 보면 내부에 생존자는 없으리라.

       

       몸이 팔다리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간 이도 몇몇 보였다.

       

       ……사람은 물론이고, 말 몇마리도 일부가 날아갔다. 살아남은 말이 몇 마리 있어서 폭음에 놀라 마구 몸부림을 쳤고, 그 때문에 뒤이어 달려온 다른 조직원들도 애를 먹고 있었다. 죄없는 말들에게는 미안한 감정 뿐이다.

        

       백작은 아마 시체조차 찾지 못 하리라.

        

       여덟 번째 시도에, 세 번째 성공이었다.

        

       “…….”

        

       사람을 죽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아니기는 했지만……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욱.”

        

       울렁거리는 속을 최대한 진정시키고서, 나는 나무 아래로 내려왔다.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고, 여행용 가방에 대충 쑤셔 박은 뒤 닫았다.

        

       영지 안에 혼란이 다 가라앉기 전에 얼른 탈출해야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와서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사실 이 소설 처음 쓸때의 제목은 ‘주인공 일행이 너무 성실하다’였습니다.

    그런데 ‘주너성’ 보다는 아무래도 ‘주지성’이 더 어그로가 잘 끌릴 것 같아 이렇게 지어버렸습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