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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인간계와 마계는 멀리 떨어진 대륙을 구분하여 부르는 용어였다.

         

       인간계를 나와 쭉 날아가면 바다와 하늘이 급격히 가파른 내리막길을 형성한다. 바닷배는 급류에 휩쓸려 잠기고 하늘의 비공정만이 살아남는다.

         

       내리막길을 무시하며 하늘로 오르면 동굴에 들어온 듯한 천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늘 같고 자연 기후도 존재하는 데다가 햇살도 들어오지만 사실 거대한 동굴의 천장일 뿐이었다.

         

       인간계에서 동굴을 계단 내려가듯이 항해해 하늘섬을 경유한 다음 지하의 마계에 당도한다.

         

       동굴엔 구멍과 공간이 많았다. 덕분에 해적이 바글바글해서 제국의 골치였다.

         

       그리고 지금은 파스텔의 공포였고.

         

       “으아아!”

         

       파스텔은 갑판 위를 뛰어다녔다.

         

       “으아아……!”

         

       해적이다, 해적이야.

         

       비공정이라 해골 돛은 없지만 해골 무늬 천을 선두에 맨 해적선이 전 재산을 강탈하러 오고 있어.

         

       흉악한, 사악한.

         

       밥 굶는 애의 코 묻은 돈을 빼앗으러 오는 졸렬한 해적들.

         

       『흠.』

         

       악마가 대포에 대포알을 넣었다.

         

       오, 대포.

         

       파스텔은 쪼르르 달려갔다.

         

       “쏴버리죠!”

         

       빵야!

         

       악마가 막대를 돌렸다. 거친 소음이 일었다. 불꽃이 일고 화약 냄새가 풍겼다.

         

       대포알이 슝 날아갔다.

         

       파스텔은 주먹을 번쩍 들었다.

         

       “힘내, 대포알 친구!”

         

       슈웅.

         

       대포알이 해적선의 선체를 때렸다. 그리고 별 타격을 못 주고 히엥 하며 추락했다.

         

       “치, 친구? 왜 안 터지죠?!”

         

       『대포알이 터질 리가. 철 덩어리인데.』

         

       폭발탄이 아니었다고?

         

       아아…….

         

       악마가 대포를 살펴봤다.

         

       『마석공학이 적용되지 않은 그냥 장식인가. 뭐 상관없다.』

         

       악마가 검으로 변했다. 파스텔은 얼결에 잡아챘다.

         

       “설마?”

       『싸울 준비를 해라.』

         

       해적선이 지척에 날아왔다. 해적들이 병장기를 들고 해적선 난간에 모였다.

         

       으아아.

         

       얼굴에 길게 상처가 난 해적이 대검을 어깨에 걸치고 외쳤다.

         

       “목격자는 남기지 않겠다! 어디 덤벼봐라!”

         

       뭐라고요?

         

       항복 권유가 없어?

         

       너무 화끈한 발언 아니야?

         

       나무판자가 해적선과 비공정에 걸쳐졌다. 해적 무리가 판자를 밟고 달려왔다. 병장기가 번쩍였다.

         

       으아아.

         

       『선실로 뛰어라.』

         

       분홍 머리를 휘날리며 달렸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대련 때와는 다른 박동이었다.

         

       저택에서의 고난과 줄타기가 떠올랐다.

         

       대련이 아닌 생사결.

         

       나 혹시 생사결을 좋아하나? 목숨을 건 도박에서 희열을 느끼나?

         

       PTSD 아니야?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정신이 적응하려고 뒤틀리다가 한 바퀴 돈.

         

       『여기다.』

         

       걸음을 멈췄다. 몸을 돌리자 일자 복도가 펼쳐졌다.

         

       『다인전을 알려주마.』

         

       검을 정면으로 겨눴다.

         

       『팔과 다리의 개수는 정해져 있다. 실력이 좋다 해서 팔이 세 개고 그렇진 않아. 동시다발적 공격은 실력자에게도 곤란한 문제다.』

         

       뜀박질 소리가 울렸다.

         

       『스텝을 적 진형의 대각선으로 밟아라. 질서를 뭉개고 돌출되게 유도할 수 있지.』

         

       검 끝이 떨렸다.

         

       『……어린 크래프트?』

       “저, 저, 사람을 죽여 본 적 없어요.”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흥분인지 긴장인지 망설임인지 모를 감각이 맥동 쳤다. 심장 박동이 크게 들렸다. 정신이 뒤엉켰다.

         

       문득 마검이 흩어졌다. 정장 차림의 악마가 복도를 등지며 내려봤다. 온화한 눈빛이었다.

         

       『누구나 그렇다. 위대한 기사일지라도 시작은 어리숙한 견습생이었지. 감정에 혼란스러워하지 않아도 돼. 너만 겪는 게 아니다. 네가 모자란 게 아니다.』

         

       악마의 손이 분홍 머리를 눌렀다. 머리에 온기와 무게감이 느껴졌다.

         

       “악마님…….”

         

       파스텔은 붉은 눈동자를 올려봤다. 그러다 시야 너머를 자각하고 흠칫했다.

         

       어느새 다가온 해적이 악마를 향해 해적검을 휘둘렀다.

         

       파스텔은 외치려 했다.

         

       악마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몸을 기울였다. 칼날이 정장을 스치고 지나갔다.

         

       악마가 몸을 돌리고 정장 다리가 해적의 다리를 걷어찼다. 해적이 균형을 잃고 붕 떴다. 팔이 해적의 목덜미를 가격했다. 충격이 일었다. 해적의 신체가 공중에서 회전했다.

         

       놓친 해적검을 악마의 손이 낚아챘다. 칼날이 번뜩였다. 궤적이 해적을 벴다. 핏줄기가 솟구쳤다.

         

       악마가 피를 막듯 파스텔을 감싸 안았다.

         

       『생각을 멈춰도 된다. 앞선 자의 목소리에 집중해라. 넌 혼자가 아니야.』

         

       정장이 흩날리고 마검이 손에 잡혔다.

         

       해적들이 일자 복도를 달려왔다.

         

       『열린 스탠스.』

         

       무의식 속에서 발을 넓게 벌렸다.

         

       선두의 해적이 검을 휘둘렀다.

         

       파스텔은 상체를 최대한 뒤로 뺐다. 검날이 상체 앞을 벴다.

         

       『나흐라이센.』

         

       상체를 복귀하며 마검을 휘둘렀다. 상의가 베이고 살이 잘렸다. 감촉이 손끝을 물들였다. 붉은 핏줄기가 짙게 느껴졌다.

         

       직후 다른 해적이 접근했다. 해적검을 휘두르려 했다.

         

       『운터하우.』

         

       걸음을 내디디며 마검을 올려 벴다. 큰 동작으로 내려 베려던 상대를 빠른 검격이 삼켰다. 핏줄기가 솟구쳤다.

         

       핏방울이 소녀의 볼에 튀었다.

         

       새로운 검격이 소녀를 노렸다.

         

       『크론.』

         

       올려 베느라 올린 손잡이를 비틀었다. 상대의 검로에 크로스가드를 들이댔다. 검이 부딪히고 날 뿌리가 갈렸다. 소음이 났다.

         

       공격이 고정된 찰나, 소녀는 힘을 밀어붙였다. 충격이 일었다. 상대가 밀리며 휘청였다. 무방비한 상체를 향해 검날이 번뜩였다. 피보라가 일었다.

         

       분홍빛 소녀는 다음 상대를 향해 몸을 돌렸다. 해적과 시선이 마주쳤다. 동공이 확장되고 비명이 울렸다.

         

       상대가 몸을 돌려 뛰려 했다.

         

       『샤이텔-』

         

       샤이텔하우.

         

       분홍 머리가 휘날렸다. 검날이 번뜩였다. 도망치던 상대를 검격이 덮쳤다.

         

       “네 녀석……!”

         

       도망치는 해적들을 밀치며 해적이 달려왔다. 육중한 대검이 들렸다.

         

       안빈든.

         

       교전의 거리가 닿기 직전, 소녀는 기습적으로 접근했다.

         

       휘핑.

         

       찰나의 순간 몸을 회전하며 검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공격의 거리가 폭발적으로 줄어들었다. 궤적이 해적의 발목을 휩쓸었다. 발목이 잘리고 피가 뿜어졌다.

         

       대검을 들어 올린 해적의 몸이 쓰러져 내렸다. 눈이 커졌다.

         

       존 하우.

         

       검격이 몰아쳤다. 피보라가 일었다.

         

       비명이 울렸다.

         

       분홍빛 형상이 달렸다. 검날이 연속해서 번뜩였다. 복도를 질주하는 번뜩임. 팔이 잘리고 상체가 썰려 나갔다. 잘린 머리가 회전했다. 핏줄기가 벽면을 적셨다.

         

       소란이 공간을 채웠다.

         

       달음박질과 목소리가 쫓기듯 밀려났다. 복도가 끝나고 실외가 펼쳐졌다.

         

       해적선이 황급히 부유해 멀어졌다. 타지 못한 도망자가 비명을 지르며 난간에서 팔을 뻗다가 뒤를 돌아봤다.

         

       은빛이 번뜩였다.

         

       “사, 살려……!”

         

       붉게 물든 검날이 직후 멈췄다.

         

       소녀는 베려던 자세로 몸이 굳었다.

         

       아?

         

       꿈속 감각이 깨어나고 현실이 정신을 일깨웠다. 파스텔은 아드레날린 흥분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

         

       검을 내렸다. 숨이 거칠게 나왔다.

         

       겁에 질린 해적이 눈에 들어왔다. 해적은 힘이 빠진 듯 그대로 주저앉았다. 바지춤이 짙게 물들어 갔다.

         

       오잉…….

         

       파스텔은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소녀가 달린 경로를 따라 만들어진 핏자국과 시체들.

         

       에……?

         

       현실 감각이 없었다.

         

       문득 양손이 옅게 떨렸다. 진동은 점점 커졌다. 팔을 타고 몸까지 퍼졌다. 심장 소리가 크게 느껴졌다.

         

       그때 익숙한 손이 머리를 눌렀다.

         

       『고생했다.』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떨림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악마를 올려봤다.

         

       잠시 시선을 마주쳤다.

         

       파스텔은 평소처럼 해맑게 웃으려 했다. 잘 지어지지 않았다.

         

       악마의 손이 분홍 머리를 문질렀다.

         

       “……머리 흐트러져요.”

       『그렇군.』

         

       머리를 정리하려다 손에 묻은 피를 자각하고 멈췄다. 온몸이 붉게 젖었다. 분홍 머리카락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따듯한 물로 목욕하면 기분이 나아질 거다.』

       “그러죠.”

         

       후우.

         

       고개를 돌리다 생존한 해적을 발견했다. 해적이 눈을 떨며 바라봤다. 그러더니 재빨리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강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식사! 청소! 정리!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어…….

         

       어쩌지.

         

       파스텔은 얼떨떨했다.

         

       『일어나라.』

         

       악마가 앞으로 나섰다.

         

       해적이 잽싸게 일어났다. 각이 잡힌 자세로 서더니 신병 같은 얼굴을 지었다.

         

       “무엇이든 시켜주십쇼!”

       “이,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체이슨입니다! 아무렇게나 불러주셔도 됩니다!”

         

       오, 오우.

         

       체이슨 씨.

         

       『너도 고생이야.』

         

       악마가 해적의 어깨를 툭툭 털어줬다.

         

       체이슨이 움찔했다. 그러더니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더 고생할 필요는 없겠지.』

       “예?”

         

       악마가 체이슨의 멱살을 잡더니 밀쳤다. 난간이 덜컥였다. 체이슨이 비공정 너머로 추락했다. 비명이 길게 이어졌다.

         

       에.

         

       악마가 손을 난간에 닦더니 다가왔다. 그리고 파스텔의 다리를 받쳐 안아 들었다. 분홍 머리가 흘러내렸다.

         

       악마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따듯한 목욕에 맛있는 식사를 하고 푹 자면 많이 나아질 거다.』

         

       에.

         

       저기, 비명이.

         

       어.

         

       이제 안 들린다.

         

         

         

       #

         

         

         

       마계 정착장은 삼엄했다. 군함이라 불러줘야 할 비공정이 군데군데 보였다. 지상엔 병사들도 많았다.

         

       파스텔의 비공정이 정착장 가까이 다가갔다. 작지만 꼼꼼히 무장한 비공정이 한 대 오더니 배를 붙였다.

         

       딱딱한 인상의 병사가 시선을 줬다.

         

       “무슨 목적으로 오셨습니까?”

         

       으아아.

         

       으아아아.

         

       저희 밀무역하러 온 거 아니에요.

         

       파스텔은 덜덜 떨며 서류를 건넸다.

         

       병사는 소녀의 흔해 빠진 긴장은 관심 없는지 학생회장 직인이 찍힌 서류를 살폈다.

         

       “학생회?”

       “시, 시험생 한 명이 낙오돼서 급히 데리러 왔어요! 전투 실기의 일정이 꼬였거든요!”

         

       병사가 손에 든 검집으로 머리를 긁었다.

         

       “흠. 알겠습니다.”

         

       서류가 되돌려졌다. 아무 문제 없이 절차가 끝났다. 파스텔은 지상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오예.

         

       정착장에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그 사이로 병사가 간혹 걸어 다녔다. 허리춤에 검집이 흔들흔들.

         

       오, 오우.

         

       파스텔은 어색한 휘파람을 불며 다시 비공정에 탔다. 그리고 떨리는 눈동자로 마검을 부여잡았다.

         

       “악마님! 악마님! 엄청 삼엄한데요?!”

         

       으아아.

         

       『일단 놔라.』

       “아, 네.”

         

       검이 악마로 변했다. 악마가 비공정 난간 너머로 정착장을 둘러봤다. 시선이 엄청 큰 건물에 멈췄다.

         

       『저기 있군.』

         

       악마가 건물로 태연히 걸어갔다. 파스텔은 졸졸 뒤따랐다.

         

       “비, 비밀 접선 장소인가요?”

         

       악마만이 아는?

         

       우워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마계주식회사.

         

       네이밍이?

         

       『국가 자본이 들어간 민간기업이다.』

         

       악마는 평범하게 순서를 기다리더니 평범하게 상인을 만나 평범하게 사인을 했다.

         

       그리고 말했다.

         

       『다 팔았다. 이제 시험생을 데리고 돌아가면 돼.』

         

       에.

         

       건물을 나왔다. 잠시 기다리니 상단이 찾아와 비공정의 밀무역품을 꺼내 갔다.

         

       햇살이 밀무역품을 비췄다.

         

       으아아.

         

       대낮에 밀무역품이 꺼내지고 있어.

         

       파스텔은 눈을 떨다가 하늘의 비공정에서 내려보는 병사와 시선을 마주쳤다.

         

       학생회장 서류를 확인하고 검문을 통과시켜준 그 병사였다.

         

       허억.

         

       병사가 파스텔의 비공정에서 대놓고 꺼내지는 밀무역품을 봤다. 그러더니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오잉?

         

       악마가 가격 협상을 마쳤다. 큰 상자 몇 개를 받고 수레에 끌고 왔다.

         

       오이잉?

         

       큰 상자를 열었다.

         

       가공되지 않은 검은 마석이 가득했다.

         

       허억.

         

       파스텔은 심장을 부여잡았다.

         

       잠시 눈을 떨다가 양팔을 번쩍 들었다.

         

       “우와아앙!”

         

       인생 쉽다……!

         

       난 밀무역의 신이 될래……!

         

       절찬리 노숙 중이던 시험생 마족 소녀를 줍고 빠르게 돌아갔다. 해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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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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