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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연금술 길드에서 받은 최상급 재생약까지 동원해서 최선의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집사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도 아나이스의 안색은 조금도 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말을 최상급 약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원더스타인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분을 직접 뵈러 가야겠어.”

         

       아나이스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늙은 집사는 기겁해서 그녀를 다시 눕히려 했다.

         

       “주인님, 아직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무리라고?”

         

       자작이 집사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하아, 하아. 그분이 당하신 일을 생각하면…… 어떻게 감히 내가 무리한다고 말할 수 있어? 내 병을 고쳐주신…… 분께 그 무슨…… 짓을……. 그 상처를 입으시고도…… 어떻게……차가운 바닥에서……. 하아, 하아…….”

         

       가빠오는 호흡에 아나이스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집사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주인님, 진정하셔야 합니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으셨습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그분이…… 그분이 치료해주셨어. 봐! 나 숨을 쉬고 있단 말이야! 그분이……. 그분을 봐야겠어…….”

         

       숨을 헐떡이면서도 원더스타인을 찾는 아나이스를 바라보며, 집사는 알 수 없는 감정의 혼란을 느꼈다.

         

       아나이스가 태어나기 전부터 베르그송 자작 가문을 섬겨왔던 집사였다.

       아나이스는 그에게 있어서 딸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녀가 살아오면서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바로 옆에서 봐왔다. 그래서 그녀가 호흡기를 떼고 숨을 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하늘을 날아갈 듯 기뻤다.

         

       은인인 원더스타인에 대한 감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주인에게서 사실을 듣고 나서 가장 앞장서서 지하 감옥으로 달려 내려갔던 사람이 그였다.

         

       하지만 그녀가 다른 남자를 그분이라 부르고, 자신의 손을 내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섭섭함을 느꼈다.

         

       “옷을 준비해줘. 그분을 뵈러 가야겠어.”

       “예. 알겠습니다.”

         

       그러나 마스크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주인의 미소를 15년 만에 보게 된 것은 확실히 큰 기쁨이었다.

         

       

       ***

         

         

       크고 작은 처치들이 끝나고, 방 안에는 원더스타인과 엘라, 둘만 남아 있었다.

         

       붕대로 반신을 감고 누워있는 단장의 모습을 바라보는 엘라의 표정에는 걱정의 기색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그는 걱정의 대상이 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쉽게도 살았네?”

         

       그녀의 한 마디에 원더스타인은 섭섭한 미소를 지었다.

         

       “엘라 양, 그게 총알을 6발 맞은 사람에게 할 말입니까?”

       “흥. 어차피 다 연기잖아? 피 좀 흘린 게 무슨 대수라고. 도끼로 목이 잘려도 붙던 인간이…….”

         

       엘라의 말에 원더스타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가만히 웃기만 했다.

         

       그것이 엘라의 눈에는 비웃음으로 보였다.

         

       어이쿠, 들켰네요? 하는 뻔뻔스러운 대응.

         

       교활한 악마 같으니라고.

       이런 식으로 자작에게 은혜를 입혀서 돈을 뜯어내겠다 이거지?

         

       그가 자작의 앞을 막아섰을 때도.

       그가 총알 세례를 받았을 때도.

       그녀는 그에 대해서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엘라는 그의 실체를 봤다.

       그의 피부 아래 들어 있는 건 인간이 아니었다.

         

       똑똑하는 소리와 함께 하인이 들어오더니 둘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곧 자작님께서 방문하신답니다.”

         

       둘을 대하는 저택 사람들의 태도는 더없이 정중했다. 자작이 깨어나고 그녀의 병을 고쳐준 것이 원더스타인이라는 소식을 듣고 나서 그들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엘라를 감시하던 하녀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녀의 손을 잡고 마구 흔들며 감사의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러나 인사를 받는 엘라는 그들과 함께 기뻐할 수 없었다.

       모두 그 악마의 속셈대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그의 친절한 미소와 기적 같은 힘에 누구든 쉽게 매료되었다.

       엘라 또한 그랬다. 처음에는.

         

       지금까지 그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절망과 공포를 맛봤다.

       엘라나 서커스단 단원들처럼 노예가 되는 신세면 다행이다.

       대부분 끔찍하게 죽거나 더 끔찍하게 개조되어 그의 노리개가 되었다.

         

       불현듯 의심이 들었다.

         

       원더스타인이 정말 자작의 병을 치료해준 것이 맞을까?

       어떤 함정이 있지 않을까?

         

       원더스타인이 사람을 ‘돕는다’ 해놓고 어떤 꼴로 만들었는지 몇 번이나 봤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자작에게 그의 정체에 대해 폭로하는 건?’

         

       저 악마에게 희롱당하는 사람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막을 수만 있다면 막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것이 생각만으로 그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원더스타인의 일을 방해한다면, 그는 주저 없이 고향으로 찾아가 가족들을 죽일 것이다. 혹은 괴물로 개조하거나.

         

       그녀는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다른 피해자들이 나오는 것을 계속 방조할 수밖에 없었다.

       

       “나……잠시……나갔다 올게.”

         

       엘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차마 자작의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다.

       그녀가 감사의 인사라도 건넨다면 양심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어디 가시나요?”

       “그냥 산책.”

       “자작이 선물을 줄지도 모르는데요?”

       “당신이나 알아서 챙겨. 나는 별로 한 것도 없어. 그냥……우리 찍순이 밥 준 거야. 걔가 손가락을 좋아하거든.”

         

       손가락이 잘린 피에르 모파상.

         

       그는 둘을 범인으로 지목하며 피해자 행세를 했으나, 아나이스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아났다.

         

       원더스타인은 게임의 스토리를 떠올려보았다.

         

       아마도 그는 플로랜드로 갔을 것이다.

       그리고 원더스타인의 친구인 ‘세 마녀’ 중 한 명을 찾아갔겠지.

         

       내가 원작의 흐름을 뭔가 비틀었나?

         

       원작에서도 그는 아나이스를 죽이지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과정은 조금 달랐다.

         

       이것은 훗날 어떤 변수가 될까?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응?”

         

       문을 열고 나가려던 엘라는 자신의 몸을 덮고 있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원더스타인의 정장 재킷.

         

       이걸 아직도 입고 있었나 내가?

         

       그녀는 재킷을 벗어 원더스타인의 다리 위에 던졌다.

         

       “잘 입었어.”

       “계속 입고 있으시죠? 아침 공기가 찬데요.”

       “후……. 처음부터 말했지만! 나 하나도 안 춥-거-든!”

         

       그렇게 소리친 엘라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원더스타인은 닫힌 문을 바라보며 가만히 미소지었다.

         

         

       ***

         

         

       [‘서브 퀘스트-후원자’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데볼루트 5’가 지급됩니다.]

       [‘메인 퀘스트-서커스 그랑프리’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서커스 그랑프리.

       역시 이게 나올 줄 알았다.

         

       TT1 시작 시점까지 살아남으라는 ‘퀘스트-프리퀄’을 본 순간부터 나는 서커스 그랑프리를 떠올렸다.

         

       서커스 그랑프리는 TT1의 배경이 되는 장소였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후속작들과 다르게, TT1은 축제가 진행되고 있는 도시 하나가 배경이었다.

         

       히포드롬.

       서커스 그랑프리 본선이 개최되는 도시.

         

       TT0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메인 퀘스트의 종착점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TT1의 시작점으로 수렴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당장은 서커스 그랑프리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눈앞의 여인 때문이었다.

         

       감사 인사를 하겠다고 나를 찾아온 아나이스는 아까부터 계속 평행선을 그리는 대화를 반복하고 있었다.

         

       “단장님은 제 목숨을 살려주셨어요.”

       “그랬죠.”

       “제 병 역시 치료해주셨고요.”

       “그렇습니다.”

       “저는 단장님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드리겠다고 했어요.”

       “네.”

       “그런데……그 부탁이라는 게 고작 서커스단을 후원해달라는 건가요?”

       “네.”

       “더는 없고요?”

       “더는 없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아나이스의 표정은 험악했다.

         

       퀘스트가 완료된 것을 보면, 그녀가 후원을 해주는 것은 결정된 듯한데, 그녀의 두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역시 그녀를 치료한 방식이 문제인가?

         

       ‘아랫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가슴을 풀어헤쳤지. 게다가…….’

         

       아나이스의 병은 금방 치료되었다.

         

       내 손이 그녀의 가슴에 닿는 순간, 바이오맨서의 스킬은 순식간에 그녀의 신체를 탈바꿈시켰다. 더는 인공 펌프에 의존하고 살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그녀의 호흡이 바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의 자극이 있어야 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호흡을 시작하는 것처럼.

       그녀가 숨을 쉬기 위한 첫 호흡이 필요했다.

         

       그때,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수동 호흡기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입을 맞추고, 그녀의 입에 숨을 불어넣었다.

         

       인공호흡은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구명을 위한 상식적인 행동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아니었다. 여인의 가슴을 주무르고, 입술까지 덮친 파렴치한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현장에서 내가 병사들에게 맞아 죽지 않은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덕분에 그녀의 목숨을 구하긴 했으나, 고고한 성격의 그녀가 깨어나서 내막을 듣고 충격을 받지 않을 리 없었다.

         

       어제 그녀가 보여준 태도를 보면, 그녀는 원더스타인을 경멸하고 있었다.

       싫어하는 사람에게 여인의 몸으로 못 보일 꼴을 보였으니 얼마나 수치스러울까.

       목숨을 구해주고, 병을 치료한 은인이기에 간신히 참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이쯤에서 문제를 수습하기로 했다.

         

       “어젯밤 있었던 일은 잊으시죠.”

       “……잊으라고요?”

       “네. 그저 자작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그런 것뿐입니다. 괜한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오해……라뇨?”

       “혹시나 제가 자작님께 다른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인 것 말입니다. 저는 자작님께 아무런 감정이 없습니다.”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요?”

       “네.”

       “하나도?”

       “하나도.”

         

       고작 이 정도 말로 자작이 바로 화를 푸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조금 누그러뜨리기만 해도 만족이었다.

         

       그러나 기대는 역으로 작용했다.

       내 변명을 들은 자작의 표정은 무섭도록 굳어졌다.

         

       그녀의 눈에서 순간 싸늘한 빛이 번쩍인 것은 내 착각이었을까?

         

       “그렇군요.”

       “네?”

       “오해였군요.”

       “아, 네! 오해입니다. 그저 거래일 뿐입니다.”

       “거래라고요……?”

       “네. 거래.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하실 겁니다.”

       

       자작의 얼굴이 다시 평온한 상태로 돌아왔다.

       얼굴에 웃음이 만연했다.

         

       아무래도 거래라는 표현이 상인의 기질을 타고난 그녀에게 잘 와닿은 모양이다.

         

       다행이다. 순간 뭔가 잘못된 줄 알았는데…….

         

       그녀는 나를 향해 방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하, 거래라니…….”

       “하하하, 그렇죠.”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그리곤 벌떡 일어난 아나이스.

       평온했던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녀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노려보며 외쳤다.

         

       “당신은 역시……남을 위해……자신을……으으, 그으으……바보였군요!”

         

       -쾅

         

       그녀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방을 나가버렸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그녀가 남기고 말을 곱씹어 보았다.

         

       바보라고? 무슨 의미지?

       차라리 변태라면 이해하겠는데…….

         

       어쨌든 그녀가 수치심을 느끼고 분노한 것은 확실했다.

       역시 그렇게 쉽게 풀리진 않으려나.

         

       그래도 후원은 해주는 거겠지?

         

       나는 혹시나 퀘스트 리버스가 뜨지 않는지 메시지 창을 띄어놓고 전전긍긍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철벽의 남자, 원더스타인!!

    어느새 9화!!

    내일이 챕터 마지막 화입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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