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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판 대륙의 역전된 정조 관념은 멸신전쟁의 흔적.

       

       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몬스터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변화였다.

       

       그렇기에 몬스터도 여성체의 성욕이 더 강한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아무리 그래도 눈을 마주치자마자 폭주할 줄은 몰랐지.

       

       “어린 쥬지! 멈춰라 고브!”

       

       “끼야아아아아악!!!”

       

       “씨앗 내놔라 고브!”

       

       “젖 덜렁거리면서 오지 마!!”

       

       “나도 처음이니 상냥하게 해주겠다 고브!”

       

       “고블린의 처녀 따윈 필요 없어!!”

       

       운 좋게 먼저 고블린을 발견한 건 좋았다. 몰래 뒤통수에 대고 석궁을 발사한 것도 좋았으나.

       

       대충 부러뜨려 만든 화살이 요상한 궤적을 그리며 빗나간 건 문제였다. 이쪽의 위치를 알아챈 고블린이 내 얼굴을 보자마자 발정 난 건 아주아주 큰 문제였고.

       

       아니, 대체 이 격한 반응은 뭔데? 아무리 본능에 살고 본능에 죽는 몬스터라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도와주세요 리디아 님! 이러다 저 장가가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려요…!”

       

       “아냐. 요나는 할 수 있어. 화이팅!”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응원하는 리디아. 정말로 응원만 하는 그 모습이 얄밉기 그지없다.

       

       “조금만! 조금 정도는 도와줄 수 있잖아요!”

       

       “알겠다 고브! 끝부분만 살짝 넣겠다 고브!”

       

       “너한테 말한 거 아냐!!”

       

       발끈해서 뒤를 돌았다. 그리고 바로 후회했다.

       

       안면의 절반을 차지하는 매부리코, 검버섯과 여드름으로 가득한 녹색 피부. 성욕으로 가득 찬 표정은 추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얼굴만 해도 이 정도건만, 그 밑으로 이어지는 몸뚱이는 더 심했다.

       

       허리춤에 두른 가리개 외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개방적인 옷차림. 덕분에 더운 날 개불알처럼 축 늘어진 젖이 덜렁이는 모습이나, 가는 팔다리에 비해 기형적으로 부푼 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정말 알고 싶지 않았고 보고 싶지 않았던 정보지만, 나를 쫓아 달릴 때마다 녀석의 다리를 타고 흐르는 액체가….

       

       “크아아아아악!!”

       

       막대한 정신적 대미지에 절로 비명이 튀어나온다.

       

       그래. 나는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로 정조의 위협이라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다.

       

       판 대륙 여성의 전체적인 외모가 아름답다는 점도 있고, 내 인식이나 성욕이 전생 그대로라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정말 위험한 상황에 처한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위험할 뻔했던 건 쌍단검 클랜에 납치당했을 때인데…그거야 리디아가 구해줬으니 결국 아무 문제 없이 끝났잖은가.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눈앞에서 소귀小鬼라는 말을 형상화한 것 같은 추악한 몬스터가 나를 따먹겠다고 몽둥이를 들고 달려온다. 심지어 꽤 강해 보인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엉덩이에 힘이 빡 들어갈 수밖에 없지.

       

       선명한 공포. 하지만 이는 금새 다른 감정으로 변질되었다.

       

       내가 나름 원작자인데. 몸은 둘째치고 마음만은 다 큰 남자 새끼인데. 죄다 폭사했지만 아무튼 빙의 특전도 갖고 있는데.

       

       그런데 무슨 드래곤도 아니고 고블린 따위를 상대로 벌벌 떨어야 한다고?

       

       “이, 씨발련이….”

       

       울컥하고 튀어나온 분노가 가슴속을 불태운다. 죽인다. 저 고블린만큼은 반드시 죽인다…!

       

       겉모습이 상상 이상으로 추잡해 놀랐지만, 자세히 보면 달리는 속도는 나보다 조금 느리다.

       

       다만 근력은 상당한 차이가 있는 듯했다. 제대로 휘두른 것도 아니고, 기세에 몸을 맡겨 흔든 몽둥이에서 살벌한 파공음이 들려왔으니까.

       

       “고브브븟! 더 욕해달라 고브! 거칠게 반항하는 남자가 좋다 고브!”

       

       “기분나빳!”

       

       다행히도 저 고블린은 방심하고 있다. 하기야. 광기의 저주를 받아 몬스터로 영락했지만, 덕분에 성인 인간과 맞먹는 힘을 얻었으니까.

       

       그런 고블린의 눈에 내가 얼마나 손쉬운 사냥감처럼 보였겠는가. 실제로 잔뜩 겁먹어 도망치고 있기도 하고.

       

       …뭐, 생명의 위협이 아니라 정조의 위협을 느낀 거지만.

       

       굳이 말하자면 조심스레 잡으려 했던 바퀴벌레가 갑자기 내 쪽으로 날아올 때와 비슷한 느낌이려나.

       

       “아.”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벌벌 떤 이유는 공포 같은 게 아니라 혐오였나.

       

       생리적인 역겨움을 넘어서자 나조차 놀라울 정도로 차분해진 머리. 반대로 전신에는 피가 끓는 것 같은 활력이 느껴진다.

       

       아니. 전부터 내 몸은 이랬을 것이다. 지금 상황은 민첩성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고, 다른 건 몰라도 민첩성으로 고블린 따위에게 밀릴 리 없으니까.

       

       다리에 힘을 강하게 주어 땅을 박찼다. 잠시간 이어지는 체공시간. 그 사이에 몸을 둥글게 말며 뒤로 비틀었다.

       

       달려가던 방향 그대로 몸의 방향만 반전되도록.

       

       “고브?!”

       

       갑자기 얼굴을 마주하자 당황했는지 흠칫 떠는 고블린. 그 사이에 둥글게 말았던 몸을 용수철처럼 튕기며 바닥을 밀었다.

       

       치이익-

       

       처음 디딘 발이 지면에 길게 늘어지며 날아가던 몸을 멈춰 세웠고.

       

       타닷!

       

       두 번째로 디딘 발이 다시금 몸을 가속시킨다. 고블린이 있는 방향으로.

       

       이에 당황하면서도 손에 쥔 몽둥이를 휘두르는 녀석. 

       

       “고, 고브으!”

       

       반사적인 행동치고는 꽤 정확한 판단이다. 제대로 맞으면 기세가 꺾이는 건 물론, 어디 하나 부러져 바닥을 나뒹굴겠지. …하지만 피하면 그만이다. 

       

       크게 들이켠 숨을 참으며 넘어질 듯 몸을 기울였다.

       

       바닥에 닿을 것처럼 낮아진 자세. 그 탓에 목표를 잃은 몽둥이가 정수리 위를 스치고 바닥에 처박힌다.

       

       퍼억!

       

       깊게 박힌 몽둥이. 사방으로 튀는 흙덩이. 이를 신호 삼아 오른손에 꼬나쥔 단검을 겨누며 짓쳐들었다.

       

       노리는 곳은 방금 막 무기를 휘둘러 굳어있는 녀석의 팔.

       

       “흡!”

       

       푸욱.

       

       “고브으으읏!!”

       

       그리 큰 힘을 들이지 않았음에도 저항 없이 녹색 피부를 뚫고, 고블린 녀석의 상박을 피로 물들이는 단검.

       

       과연. 부족한 스펙은 장비로 보충하라는 게 이런 뜻인가. 무기가 예리하니 칼이 잘 박히는구만.

       

       공포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반대로 내 얼굴은 전투의 흥분으로 웃고 있으리라. 조금 전과는 반대되는 구도네. 속으로 낄낄 웃으며 다리를 뻗었다.

       

       고블린의 약점이야 이것저것 많지만, 그중 지금 도움이 될 만한 건 하나뿐이었다. 하부 시야의 부족함.

       

       고블린은 목이 짧고, 팔다리는 가늘지만 배는 이상할 정도로 크게 부푼 종족이다. 당연히 아래를 확인하는 게 힘들 수밖에.

       

       안 그래도 팔뚝을 찔린 고통에 시야가 좁아진 탓일까. 내가 몰래 발을 거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녀석.

       

       신발 굽으로 녀석의 뒤꿈치를 후려치는 것과 동시에 단검을 쥔 팔에 힘을 주었다.

       

       내 근력은 보잘것없으나, 한쪽 다리가 붕 뜬 고블린 하나 밀쳐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쿵!

       

       “고흑!”

       

       뒤통수를 찧으며 바닥에 쓰러진 고블린. 몬스터는 몬스터인지 이 와중에 본능적으로 멀쩡한 손에 몽둥이를 옮겨 잡으려던 녀석이었으나.

       

       “이건 이제 내 거야.”

       

       그보다 한발 빠르게 내 왼손이 녀석의 몽둥이를 훔쳤다. 손에서 손으로 물건을 옮길 때만큼 취약한 순간도 없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일어날 타이밍도 놓치고, 무기를 다시 휘두르는 것도 실패한 고블린. 녀석은 놀랍게도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대신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사, 살려달라 고브! 전부 내가 잘못했다 고브. 뭐든 하겠다 고브…그러니 목숨만은…이런 식으로 죽고 싶지 않다 고브….”

       

       퍽 처량한 목소리. 하지만 그것이 내가 멈출 이유는 되지 않는다. 상박에 박혀있던 단검을 뽑아, 녀석의 가슴을 향해 내리찍었다.

       

       푸욱!

       

       날카로운 예기 덕에 손쉽게 가죽과 근육을 가르고 지나가는 단검. 하지만 갈비뼈에 걸려, 절반밖에 박히지 않았다.

       

       아무리 무기가 좋아도 한 손으로 찌른 단검이 뼈까지 끊어내긴 힘들다는 거겠지.

       

       괴로워하면서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심하는 고블린. 그런 녀석의 앞에서 보란 듯이 반대쪽 손에 쥐고 있던 몽둥이를 양손으로 잡아 높이 치켜들었다.

       

       “끝부분만! 끝부분만 살짝 넣을 테니까 걱정 마!”

       

       “고브읏?!”

       

       녀석이 했던 말을 똑같이 돌려주며 그대로 몽둥이를 내리찍었다. 단검의 손잡이를 향해서.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갈비뼈에 막혀있던 단검이 검날의 뿌리까지 박혀 들어간다. 폐도 같이 찔린 건지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낼뿐, 더는 주절거리지 못하게 된 고블린.

       

       잘게 경련하며 가슴팍에 박힌 검을 뽑아내려 했으나.

       

       꾸욱.

       

       “얌전히 있어.”

       

       “……!”

       

       내 발에 손을 밟혀 그대로 저지당했다. 본래의 근력 차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 허나, 다 죽어가는 녀석에게 힘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이제 녀석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원한으로 가득 찬 눈을 부릅뜨는 것뿐.

       

       …자기가 죽을 짓을 했으면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 건 좀 이해가 안 되네.

       

       하여, 나 또한 눈을 크게 뜨고 죽어가는 고블린을 마지막 순간까지 노려보았다.

       

       점점 떨림도, 호흡도 약해지더니 결국 눈을 뜬 채로 죽어버린 녀석. 혹시 몰라 심장에 박힌 단검을 뽑아, 고블린의 목에 쑤셔 넣었다. 확인 사살은 해야지. 

       

       서걱.

       

       가볍게 썰어 재끼는 것만으로 똑 떨어진 머리. 한 손으로 녀석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쪼르르 리디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최후의 표정 그대로 박제된 녀석의 머리를 들이밀며 방긋 웃어보였다.

       

       “리디아 님! 리디아 님! 제가 이겼어요! 고블린 이거 별거 아닌데요?!”

       

       “…….”

       

       “이야. 빌려주신 단검이 그 정도로 예리한 물건인 줄 알았다면 찌르기가 아니라 베기 위주로 썼을 텐데 말이죠. 아쉽네요!”

       

       “…….”

       

       “하지만 뭐어…이겼으니 된 거 아닐까요?! 리디아 님도 이렇게 될 걸 알고서 도와주는 대신 응원만 해주신 거죠? 감사해요! 덕분에 뭔가 알 것 같아요!”

       

       어째서인지 아연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리디아. 그녀가 한차례 침을 삼키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요나. 고블린은 어느 정도 지성을 유지한 몬스터야. 살려달라고 할 때 힘들지 않았어? 동정심을 느꼈다거나.”

       

       “제가요?”

       

       “응.”

       

       “고블린 상대로요?”

       

       “응.”

       

       “왜요?”

       

       “…….”

       

       두 눈을 질끈 감은 리디아. 그녀가 내 어깨를 붙잡고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나는 꼭 모험가 해.”

       

       “???”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요나요나야…제발 사람말고 몬스터만 죽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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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남녀역전 세계의 가챠 중독자
Score 8.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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