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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 * *

       

       

       

       

       

       

       삼색기의 주인공은 알렉산드르 콜차크란 인물이었다.

       

       원래라면 쿠테타를 일으켜 러시아국 정부 수반이 되고, 사실상, 백군의 사령관이 되는데. 역사가 바뀌어버렸다.

       

       그가 예카테린부르크로 왔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겠나.

       

       콜차크의 백군이 예카테린부르크의 내 세력에 합류했음을 의미했다.

       

       그것도 내가 주도하는 예카테린부르크에 합류한다더라.

       

       이 새끼 무능한데.

       

       아니지. 그래도 역사가 바뀌었으니까. 표트르 브란겔급은 아니라고 해도 현상유지 정도는 할 줄 알지 않을까.

       

       

       “장군께서 제게 합류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닙니다. 마땅히 모든 것을 원래 자리로 되돌리기 위한 전쟁인 만큼 저는 황녀님을 따르겠습니다.”

       

       

       심지어 이 콜차크를 여기까지 안내한 자들이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이다.

       

       원래 역사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는 안전한 철군을 위해 붉은 군대에 콜차크를 넘겨버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역사가 바뀌었다.

       

       콜차크도 합류하면서 내 세력은 본격적으로 볼셰비키에 맞설 구심점이 되어버렸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바뀌는 사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슬슬 일본 놈들도 시베리아에 침을 흘리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콜차크는 협상국 측의 압박을 받은 거 같은데.

       

       

       “당분간은 예카테린부르크의 의용군 훈련을 맡아주십시오.”

       “예.”

       

       

       뭔가 하나하나. 엉켜진 실타래들이 조금씩 풀려나가는 거 같았다.

       

       퍼즐조각이 하나하나 짜 맞춰지는 것처럼.

       

       원 역사와 비교하면 지금 백군의 사정은 훨씬 나았다.

       

       

       “황녀님.”

       “무슨 일입니까?”

       “오는 중에 만난 블라디미르 그리고레비치 표도로프란 자가 황녀님을 뵙고 싶다고 합니다.”

       “블라디미르 그리고레비치 표도로프?”

       

       

       그건 누구야.

       

       

       “표도르프 자동소총을 고안한 자입니다.”

       

       

       자동소총.

       

       내가 뭐 밀덕도 아니니 그런 건 잘 모르지만. 그게 나중에 돌격소총이 되는 거 아닌가.

       

       이 시대로 치면 AK-47의 선조격을 만든 자인가. 이 양반에 대한 지식은 내가 거의 없는데. 그냥 무슨 총을 만들었다고만 들었다.

       

       당시에 자동소총이라면 이미 다양하게 있던 시기였지. 돌격소총이라고 하기엔 미묘하지만. 러시아에서는 그나마 쓸만한 총이 아닐까.

       

       일단 있으면 좋은 모양이지.

       

       

       “당장 데리고 오세요.”

       

       

       일단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전러시아의 마지막 황녀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표도로프는 머리가 산발에 옷 여기저기가 찢겼다.

       

       오는 동안 꽤 고생한 모양이지.

       

       볼셰비키 아래에 있었다던데, 믿을 수 있나?

       

       

       “지금은 그런 겉치레할 시간이 없습니다. 분명 자동소총을 만든 인물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제가 표도로프 소총을 만들었습니다. 다만 볼셰비키가 무기 생산을 중단해버려서-”

       

       

       모신나강 따위와는 수준이 다른 그런 총일 거다.

       

       

       “이곳으로 오셨다는 것은 내 사정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되겠지요. 볼셰비키와 싸우려면 총기가 많이 필요합니다. 생산 및 새로운 총기개발을 맡겨도 되겠습니까.”

       “네. 다만 외국업체에 생산을 맡겨야 할 듯합니다.”

       

       

       그렇겠지. 러시아의 공업력은 열악하니까.

       

       덩치가 커서 그렇지 러시아는 그냥 유사열강에 가깝다 봐야 한다.

       

       그러니 볼셰비키 혁명 같은 것도 처맞았지.

       

       저 양반에 대한 지식은 좀 부족하긴 하지만, 하는 일을 보면 도움은 될 거다.

       

       

       “일단 지금 우리 수준에 맞게 생산은 해야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볼셰비키가 유럽을 물들이는 것이 싫을 열강들이 지원을 할 테니 그때 본격적으로 생산하는 게 나을 터.”

       “알겠습니다.”

       

       

       어쨌든 아직 이쪽은 부족한 것이 많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열강들의 지원은 사실화되겠지만.

       

       

       “외국 업체가 문제이긴 한데.”

       

       

       영국, 프랑스, 미국. 등 협상국 측에서 슬슬 입질이 올 때가 되지 않았나.

       

       한동안은 결국 나 혼자 이 예카테린부르크를 휘어잡아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콜차크의 합류에 이어 제국의 귀족들이나 부유층이 다수 있었다.

       

       해서 나는 일단 예카테린부르크에 합류한 귀족들. 주요 지주들 및 시민대표들을 모았다.

       

       아직. 네임드는 없는 것 같다.

       

       아마 내 줄에 서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각을 보고 있겠지.

       

       문제는 이 합류한 귀족들이다.

       

       이들이 다시 과거의 영광을 차지하려면 제정 복고가 되어야 하니 이쪽에 붙는 선택지밖에 없다.

       

       심지어 볼셰비키는 지금 차르일가를 재판도 없이 처참히 죽인 패악 무도하고 야만스러운 놈들이라 알려졌다.

       

       귀족들은 자기 목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쪽에 붙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 있는 그 목이라도 지키려면 자기들이 가진 걸 내려놔야 한다는 것도 알겠지.

       

       

       “내전은 내전이고 슬슬, 이쪽도 개혁을 준비해야겠습니다. 농업사회에서 탈피하고 산업사회로 발돋움해야 합니다.”

       

       

       백군들의 합류로 예카테린부르크의 내 세력 영역은 시베리아를 넘어 극동까지 뻗쳤다.

       

       내전은 내전이라도 뭔가 할 때가 되었다.

       

       체제경쟁.

       

       이제부터는 단순 총칼의 전쟁만이 아니라 누가 더 민심을 얻을 것인가.

       

       그게 중요하다.

       

       민심으로 러시아 국민의 지지를 모아야 곧 그들이 백러시아의 노동력이 될 것이며 군인이 될 것이다.

       

       당연히 내전에서도 승기를 잡을 수 있다.

       

       원 역사의 백군은 한동안 적군을 두들겨 패고 러시아 영역을 많이 되찾았지만, 군벌 연합체라는 특성에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해 군대를 정비한 적군에 쓸려나갔다.

       

       그러니 지금은 차근차근 가야 한다.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나가야지.

       

       때마침 공방전을 승리했으니까. 지금 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직 우리에게는 먼 이야기이지만, 지금 당장은 토지개혁을 시행하죠.”

       “토지개혁을 말입니까? 내전 중입니다만.”

       

       

       제국의 귀족들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그런 걸 보기 싫어서 여기 합류한 것도 있겠지.

       

       하지만 이렇게 해야 너희도 나중에 다 살 수 있다.

       

       

       “지금 같은 체제로 러시아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토지개혁이 없다면 붉은 역병은 계속 퍼질 터. 새로운 러시아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도 아니면 당장 차르 일가도 처형하는 저들 볼셰비키가 그대들 목은 붙여둘 듯싶습니까?”

       

       

       아니거든. 지금 당장은 황녀에게 빠진 시민들이 있다지만, 그것이 얼마나 갈지 모른다.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예카테린부르크의 인간들은 언제고 새빨갛게 물들어버릴 수 있다.

       

       

       “크흠.”

       “러시아 대다수의 신민이 농민입니다. 민심을 위해서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그간의 무능한 황가의 통치로 인해 고통받아 붉은 역병에 휩쓸릴 신민들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토지개혁은 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해야 붉은 역병에 흔들리는 이들이 다시 황실의 손을 들어줄 것입니다.”

       

       

       암만 차르가 주옥같다지만 지금 볼셰비키는 죽은 황녀 를 능욕까지 벌인 상종 못할 세력으로 알려진지 오래다.

       

       그런 세력이 약속한 농민을 위한 개혁. 노동자의 나라.

       

       혼자 살아남아 동정심 받기 좋은 마지막 황녀의 약속. 아니, 당장 시행할 개혁. 누구에게 더 혹할까?

       

       그래. 그것도 본래 빨갱이들이 해야 할 정책을 이쪽이 먼저 시행한다.

       

       이게 중요하다.

       

       지금 시기에 얼마나 민심을 받을지 그게 중요하다.

       

       

       “스톨리핀의 개혁을 다시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토지개혁. 농민의 사유재산 허용으로 토지를 갖도록 선언할 겁니다. 더는 말뿐이 아니라 바로 이 자리에서 직접. 토지를 재분배할 겁니다. 내전에서 다 잃고 죽느냐. 아니면 내어줄 건 내어주고 받아내느냐. 둘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생과 사. 지금 그 기로에 서 있는 지금. 그대들도 목숨을 보전하고 더 위대한 러시아의 귀족으로 남기를 원한다면 더는 반대하지 말아야 할 겁니다.”

       

       

       귀족들은 더는 반대하지 못했다.

       

       이제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

       

       아무렴 목이 떨어지느냐. 최소한의 특권은 유지하면서 개혁에 동참하느냐.

       

       이 둘 중 하나를 하자면 후자가 되지 않겠나.

       

       니콜라이 2세가 반대해서 그나마 개혁 반대에 목소리를 낼 수 있던 시기와 달리 사정이 안 좋은데다 마지막 황녀가 주도한다면 이건 어쩔 수 없겠지.

       

       한때 그리도 거품 물고 개혁을 반대하던 귀족들이 개혁을 주도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붉은 역병에 휘둘리는 자들에게 또 다른 구명줄일 것이다.

       

       토지개혁의 시작.

       

       이것은 마치 대통령 후보들이 공약을 내세우는 것처럼.

       

       볼셰비키와 체제경쟁의 시작을 의미했다.

       

       유감스럽게도 볼셰비키는 혁명 이후에 토지개혁을 단행했어도 사유재산을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농민들의 원성을 받았다.

       

       생각보다 소련의 시작이 녹록지 않음을 의미한다는 소리.

       

       여기서 마지막 황녀가 달콤한 말로 모든 것을 속삭인다.

       

       낚일만하지 않는가?

       

       실제로 우린 살기 위해서라도 이런 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여 나는 직접 예카테린부르크 시민들 앞에서 외쳤다.

       

       

       “제국의 신민들이여! 나는 표트르 스톨리핀의 개혁을 이어 농노의 해방을 이룩하겠습니다! 이 내전에서 붉은 역병이 종식된 이후에 스톨리핀의 농지 개혁과 극동의 개발을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저주받을 로마노프가 아닌 아나스타샤란 인물 한 명만을 보고 제국의 신민들은 부디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시간이 없었다.

       

       나는 바로 이것들을 시행했다.

       

       무리수라는 건 알지. 하지만, 이걸 볼셰비키보다 먼저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예카테린부르크에 머리깨나 굴렸다는 귀족들을 앞세웠다.

       

       불평불만이 많던 귀족들이 직접 앞서는 모습은 일반인들에게도 꽤 호의적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듣기로는 평가는 나름 나쁘지 않은듯하다.

       

       

       “황녀께서 토지개혁과 농민이 토지소유를 하는 것을 약속하셨다는군.”

       “또 로마노프를 믿는가? 차라리 볼셰비키 쪽이-”

       “이미 일부는 시행했다던데? 내전이 끝나고 나라가 정상화되면 스톨리핀의 개혁을 바로 이어붙이겠다고 하셨네.”

       “귀족들이 직접 개혁에 앞장섰다는군. 볼셰비키를 패고 나서 전부 시행한다는 모양이네.”

       “나는 예전부터 황녀님을 흠모해왔네. 당연히 황녀님을 따라야지!”

       

       

       이게 일개 백군 군벌이 저지른 정책이면 사람들도 낚이지는 않았을 터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지금 그 정책을 시행하는 이가 황녀라는 점.

       

       그것도 마지막 황녀가. 개혁을 약속한 것이 아니라 바로 시행했다.

       

       그야말로 내전 중에 일어난 급진적인 개혁.

       

       여기에 8시간 노동제, 주 5일제, 임금 보장. 등등.

       

       전후에 모든 것을 약속했다.

       

       로마노프란 이름이 아닌 마지막 황녀 아나스타샤로서.

       

       저주받을 무능한 차르의 딸이지만. 그래서 더욱. 바로 잡기 위해 노력을 한다.

       

       심지어 귀족들이 주도하고 있다.

       

       

       “솔깃할 수밖에 없을 테고.”

       

       

       스톨리핀의 계획을 그리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빨갱이들은 이제 거품을 물 것이다.

       

       갱생한 체카 요원이 알아낸 소식으로는 지금 볼셰비키 쪽에서는 꽤 난리가 난 것 같다.

       

       황녀가 하는 빌어먹을 부유층들이 주도하는 개혁은 결국 한계를 맞이할 거라며 여기저기 선동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정권 내에서도 그들이 말하는 반동이라는 것이 꽤 있는 모양이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원래 표도로프는 내전에서 볼셰비키 편을 들어 무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는 아나스타샤의 생존으로 표도로프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주어졌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연참은 내일까지는 할 거 같습니다!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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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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