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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파딱이 되면 나와 만날 기회를 갖게 된다는 공지를 올렸을 때.

        솔직히 거창한 계획을 갖고 있다거나 고심 끝에 내비친 중대발표라는 느낌은 요만큼도 없었다.

       

        그냥 어디 작은 모임의 송년회 같은 느낌으로 한 번씩 사기를 북돋아주면 어떨까 하는 마음의 발로였을 뿐.

        올해 들어 소중한 부품이 세 개나 망가졌지 않은가.

        고장난 톱니바퀴라도 가끔 굴러가긴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일단 놔두긴 했지만 내게는 시사하는 바가 컸다.

       

        완장이 친목질이나 한다는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어느 정도 당근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부엉이처럼 자유를 찾아 떠나버릴 테니까.

        하지만 당장은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으니 ‘좋은 일이 있을지도?’라는 의미로 가볍게 쓴 글이었는데.

       

        이런 반응, 아니 이런 파장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

        [파딱 되면 주딱이 직접 데이트 해준다고?]

       

        갤러리 창설 이래 얼공도 안 해 이름도 안 밝혀 목소리도 몰라 사는 곳도 비밀이야

        즉 외갓남자 손을 한 번도 안 탔다는 건데 그런 주딱이 나 있는데까지 와서 나데나데 해준다고?

        이걸 어떻게 참음

       

        — 바로 지원했다

        — 24시간 전술핵 지우는 대가로 주딱과 데이트라…… 인질이 존나 쌔네 ㅋㅋㅋ

        — 실명하는 한이 있어도 해야지 이건

        — 다 좋은데 누가 주딱 여자라 함?

         ㄴ 주딱이 여자가 아니면 대체 뭐가 될 수 있다는 거임?

         ㄴ 갤 관리가 곧 내조 아님? 현모양처 그 자첸데

        ====

        ====

        [뭔 오프모임이여 돈 준다는 것도 아니고 제정신 박힌 사람이면 누가 그딴 거에 낚여서 무급 노예 하겠냐고]

       

        하지만 당신께서 제게 신을 영접할 목자가 되라 명하신다면 기꺼이 미치광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겠나이다

        제 십자가를 받아주시옵소서

       

        — 신성학파는 이미 주딱 숭배 들어갔네

        — 대 주 딱

         ㄴ 상습숭배 기습목격

        — 숭배합니다 Goat

        — 너는 성신께 천벌 받아도 그냥 올 게 왔구나 해라

         ㄴ 응 천벌보다 벤이 더 무서워~

        ====

        ====

        [근데 진지하게 얼굴 한 번 볼 수 있으면 파딱 할 만하긴 해]

       

        일억금을 줘도 탑주랑 대면할 기회는 없을 텐데 걍 1년 등반 포기하고 마법 위계 올릴 조언이라도 하나 들으면 개이득이지

       

        — ㄹㅇ 이건 못 먹어도 ㄱ지

        — 정작 어디서 한단 말은 안 했음 ㅋㅋㅋ 니가 마탑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될 수도 있는데?

        — 1년이 아닐 수도

         ㄴ 탑주가 아닐 수도 ㅋㅋ

        ====

        ====

        [얘들아 근데 파딱은 희망자 중에 랜덤으로 뽑는 거야?]

       

        내가 오늘 아주 우연히 22층 계단에서 힘들게 리어카 끄시는 할머니를 도와드리고 보답으로 위치노트 삼백 개를 받았는데

        이걸로 전부 주딱한테 메시지 보내면 파딱이 될 수 있을까?

       

        — 아오, 되겠냐고 ㅋㅋ

        — 나도 소개좀

        — 할머니 21층까진 어캐 올라갔음? ㅋㅋㅋㅋ

        — 이 새낀 조심해야 함 이제 파딱 못 되면 저거 다 분탕계로 바뀜

         ㄴ 이미 분탕이야 씻팔 ㅋㅋㅋ

        — 얜 곧 벤 당하겠네

        ====

       

        위치노트가 바이브레이터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떨리며 알림이 쉼 없이 날아들었다.

        공지에 달린 댓글은 거의 천 개 가까이 ‘손’으로 도배되며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페이지 수가 늘어나는 중이었다.

       

        “야, 방금 공지 올라온 거 봤어?”

        “관리자 뽑는다는 거? 그거 되면 진짜 탑주랑 만나는 거야?”

        “몰라 일단 지원해 봐.”

        “저번 원탁회에서 정보부가 칼 빼든다고 했는데도 대담하네.”

        “그러니까 갤러리 주인이겠지. 고위 마법사가 때로 덤벼도 정면으로 박살낼 수 있다는 거야.”

       

        아니야 그러면 나 죽어. 뒷머리가 간지러워지는 칭찬은 고맙지만 내심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내가 올린 공지 때문에 비나의 강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흐트러졌기 때문이었다.

        조교가 수업에 참여하는 건 아니라서 시간 나는 김에 글을 썼던 건데 수습생들의 관심이 온통 파딱 모집으로 쏠려 버렸다.

       

        가뜩이나 첫 강의 때 사람이 적다는 것만으로 실망했던 그녀가 이걸로 자신감이 더욱 꺾이게 된다면…….

       

        ====

        — 메테오는얼음마법 : 주딱 저도 할래요 파란 관리자

        — 메테오는얼음마법 : 지금 당장 당신이 갖고 있는 모든 권력을 내게 넘겨

        — 메테오는얼음마법 : 주세요 주딱

        — 메테오는얼음마법 : 보고 있나요? 주딱? 주따악?

        ====

       

        내 걱정이 무색하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본인이 옆에서 가장 열성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으니까.

       

       

       

        *

       

        “비나 님. 혹시 이런 문양에 대해 아시나요?”

       

        강의가 끝난 후, 나는 비나에게 마리엘의 몸에 새겨져 있던 문양에 대해 물었다.

        마탑에서 나고 자란 순혈 마법사답게 그녀는 내 조악한 그림을 보더니 탐탁치 않은 어조로 곧장 답했다.

       

        “이건 ‘신비’네요.”

        “신비요?”

        “정확히는 신비의 조각이에요. 사감은 제가 첫 강의 때 언급한 편법에 대해 기억하나요?”

        “기억합니다.”

        “당시엔 편법이라 칭했지만 그것들이 바로 신비의 일종이에요. 마탑의 주류인 일곱 학파가 하나씩 갖고 있는 절기라고 이해하면 돼요.”

       

        쉽게 말하면 마법사에게 신비란 특정 직업으로 전직하면 딸려오는 고유능력 같은 개념이었다.

        신성학파에 들어가면 성신에의 기도를 통해 소원을 이루는 ‘기청’.

        점성학파의 경우 천칭에 자신이 가진 것을 올려 마법의 위력을 높이는 ‘대가를 얹는 천칭’이 있다.

        내가 문양을 처음 보고 떠올린 ‘정령문’ 역시 정령학파의 신비였다.

       

        수습생이 한 학파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학파가 다루는 마법을 구사할 수 있도록 신비를 전수받는다.

        두 가지 신비를 익히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학파는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어떤 종류의 신비인지 알 수 있습니까?”

        “극히 일부분이라 이것만으로 원류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해요. 하지만 드러난 마법식과 형태의 기원을 봤을 때 ‘원칙’과 ‘탑’의 속성을 가진 걸로 보이네요.”

       

        그것만으로는 정확히 어떤 능력인지 확인할 수 없다 단언하며, 비나는 한 가지 경고를 덧붙였다.

       

        “모든 신비는 본래 서책의 형태로 다도해에 보관되어 있어야 해요. 뛰어난 마법사들에 의해 오랫동안 담금질된 신비는 위대한 학파의 기틀이 되지만, 자격없는 자의 손에 넘어가면 세상을 파멸로 이끌 위험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군요.”

        “가만히 두면 다른 흑마법사들에게 노려지거나 황실에서 눈독 들일 수도 있어요. 사서장에게 말해 회수를 요청해야겠네요. 이걸 어디에서 봤나요?”

        “글쎄요…… 오래 전 일이라 잘 기억은 안 나네요. 그냥 생각나서 여쭤 봤습니다.”

       

        고작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이고,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를 정도로 뇌리에 박혀 있지만 적당히 둘러댔다.

        신비의 파편이고 나발이고 간에 내겐 갤러리를 관리해줄 파딱을 임명하는 게 백배는 더 중요했으니까.

       

        ====

        ID : 초천재금발미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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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층에 기억상실용 마법약 파는 상회가 있을까요?]

        [대광장 전지의 비석 앞에 사람 가장 적은 시간]

        [어둠의 숲 탐험 조가 최악인 것이에요, 귀족들 사고방식은 구역질이 나오는 것이에요]

        [숲에선 전파가 잘 안 통하나요? 가뜩이나 혼자인데 갤러리 접속이 자꾸…….]

        ====

       

        마리엘은 많은 유저들이 내게 메시지를 보내는 와중에도 완장을 걸치고 싶다는 의사를 딱히 피력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테스트까지 훌륭하게 통과한 그녀에게 기꺼이 감투를 씌워줘도 좋을 터였다.

        본인의 의사는 아직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뛸 듯이 기뻐할 게 분명했다.

       

        ‘잠깐, 근데…….’

       

        얘는 왜 숲에 혼자 있다는 거야?

       

       

       

        *

       

        1층의 미개발 지역 중 하나인 어둠의 숲은 입탑한 수습생이라면 0년차 때 반드시 한 번쯤 거쳐가는 장소다.

        시공간이 일그러진 마탑의 환경을 체험하기 좋고 시작의 층의 끝인 10층의 ‘대미궁’과 유사한 안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빠른 적응을 위해 교수들은 한 번씩 생도들을 어둠의 숲으로 밀어넣는다.

        이번에는 시약에 쓰이는 약초들을 채집해 대광장으로 이어지는 숲 반대편의 포탈로 이동해야 했다.

       

        “춥고 어두운 것이에요.”

       

        네 명이 짝을 이루어야 하는 조별과제였지만 마리엘은 숲을 홀로 거닐고 있었다.

        다른 조원들은 이미 시작과 동시에 과제를 끝냈기 때문이었다.

       

        마탑의 어떤 학파도 탑을 오르는데 있어 공정성을 원칙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평가 기준은 ‘약초를 가지고’ ‘대광장으로 집합’하는 것뿐.

        즉, 경매장에서든 암시장에서든 약초를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과제는 통과였다.

       

        ‘아~ 그러고 보니 저희는 이미 재료를 준비해 뒀었는데~.’

        ‘마리엘 님은 아직이셨죠?’

        ‘지금이라도 경매장에 가서 사 오실래요? 물량이 다 떨어져서 구하실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숲에 혼자 들어가는 것 보단 나을 거에요.’

        ‘아니면 먼저 들어간 다른 이들을 찾아서 머리를 숙이고 부탁하는 것도 좋겠네요.’

       

        조를 짜서 숲의 입구까지 도착했을 때 듣게 된 비웃음 섞인 말들.

        마치 누군가에게 지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적개심을 내비치는 귀족들의 음습함에도 마리엘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

        초천재금발미소녀

        [모처럼이니 제 빛나는 용안을 공유하는 것이에요]

       

        어둠의 숲에서도 미모는 여전한 것이에요

       

        — 또또 되도 않는 컨셉질

        — ㅈㄴ 시커먼데 뭐가 보이긴 함?

         ㄴ 초천재금발미소녀 : 그건 당신 미래가 그만큼 어둡기 때문인 것이에요

        — 주딱은 뭐하나 이런 갤창 안 잡아가고

        ====

       

        그녀에겐 이런 현실에서도 한 줄기 구원이 된 갤러리가 있었다.

        이곳엔 홀크로프트를 무시하는 이도, 가문의 몰락으로 어려서부터 제대로 된 귀족의 교육을 못 받은 자신을 무시하는 이도 없었다.

        물론 말투가 이상하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이곳에도 있었지만 그쯤이야 화려한 언변으로 눌러줄 수 있었다.

        손 안에 들어오는 이 작은 사이즈의 공책만 있다면 언제 마수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어둠의 숲 한복판도 무섭지 않았다.

       

        ‘아니, 무섭지 않은 건 제가 ‘원칙’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겠죠.’

       

        어쨌거나, 이런 갤러리를 만든 주딱에 대해서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방을 고쳐주는 관리인 외에는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마탑에서 유일하게 위안을 얻을 장소를 만든 장본인이니까.

       

        대놓고 찬양을 하는 일부 유저들만큼은 아니어도 마리엘 역시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가끔 부계정으로 직접 싸움판에 뛰어들긴 하지만 저 수많은 악귀들을 품고 매번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는 걸 보면 존경심마저 느껴졌다.

        끝을 알 수 없는 마법 실력 뿐 아니라 갤러리의 관리에서 드러나는 애정 역시 보통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정체는 모르지만 분명 갤러리의 누구보다 고매하고 학식 높은 인격자일 거라고.

       

        ====

        [관리자에 의해 차단된 ID입니다 : 초천재금발미소녀]

       

        [기간 : 999일]

       

        [사유 : 축 – 당첨]

        ====

       

        “아악!?”

       

        조금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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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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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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