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

       

       

       “자, 일렬로 나란히 서라. 측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클레어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력 측정을 위한 주의사항부터 시작해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까지, 전반적인 수칙에 대해 알려주는 선생님의 목소리.

       

       그 지루하고 잠에 빠질 것만 같은 음성에, 학생들의 주의가 산만해졌다.

       

       

       “야, 너는 누가 제일 높게 나올 것 같냐?”

       

       “뭘 묻고 그래? 당연히 그 녀석들이지.”

       

       “아, 그 마수 잡았다던 애들?”

       

       “엉.”

       

       

       쫑긋.

       

       시우의 귀가 치켜세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니까.

       

       그것도 엄청 흥미로운 주제다.

       

       누가누가 더 강한가.

       

       

       “설마 3급 마수가 두 마리나 침입했는데 그걸 쓰러트리다니.”

       

       “그러게. 심지어 그걸 한 명당 한 마리씩 잡았다더라고. 하, 재능이란.”

       

       

       으, 으흠···.

       

       시우는 최대한 얼굴을 숙이고 입가를 부여잡았다.

       

       낯부끄러운 칭찬에 한껏 들뜬 기분과 공공장소라는 장소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들려 부끄러운 기분.

       

       두 가지 기분이 섞여 듣고 싶지 않지만, 그런데도 듣고 싶은 모순적인 느낌이었다.

       

       

       “근데 걔네 두 명이 센 건 맞지만, 그 여자애가 더 셀 것 같지 않냐?”

       

       “아, 그 수상해 보이는 애.”

       

       

       움찔.

       

       한껏 들떴던 시우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누구를 이야기하는지 알 것 같아서.

       

       수상해 보이는, 나보다 더 셀 것 같은 여자라면 그 녀석밖에 없잖아.

       

       솔직히 그녀를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때.

       

       그녀가 뜬금없이 기권하기 직전에 보여준 그 눈빛.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한 웃음.

       

       내가 온 힘을 다해 회피했던 그 공격은, 그녀에게는 그저 평범한 견제였을 뿐이겠지.

       

       그 여유로움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런 여자가 내게 이유 모를 관심을 보내다니···.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느새 좋았던 기분은 날아가고 우울해진 시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유시우 맞지?”

       

       “···응? 그런데.”

       

       

       처음 듣는 하이톤의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시우는 고개를 돌렸다.

       

       

       “너는···.”

       

       “아멜리아. 아멜리아라고 불러줘.”

       

       “어, 응. 잘 부탁해.”

       

       

       같은 반 학생이구나.

       

       대련할 때, 엄청난 속도로 상대방을 유린하던 게 인상 깊던 여학생이다.

       

       그녀가 왜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걸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는데.

       

       

       “있지, 너 말이야. 혹시···.”

       

       

       무언가를 말하려다 자꾸 머뭇거리는 아멜리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걸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자, 결심한 듯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그녀가 말했다.

       

       

       “아르테 이시스, 그녀랑 무슨 관계야?”

       

       “…아르테? 그 여자가 왜?”

       

       

       시우의 머릿속에 잠깐 떠오른 분홍빛 망상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잠깐. 아주 잠깐이지만 혹시 내게도 봄이 온 건가 싶었는데.

       

       봄은커녕 아직도 칼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구나.

       

       

       “···그래, 모르는 모양이구나. 다행히 협력자는 아닌 것 같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무, 무슨 일인데 그래?”

       

       

       그 수상쩍은 여자랑 무슨 관계냐고 물어보더니, 대뜸 모르는 눈치라며 안심하고.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

       

       

       “그녀가 네게 관심이 있는 것 같으니 알려줄게. 이 아카데미에, 무시무시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어···!”

       

       “자세히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시우의 표정이 단번에 진지해졌다.

       

       아카데미의 음모?

       

       아직 이야기를 듣지 못해 무슨 소리인지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확실한 것은, 이번에도 아르테와 관련 있는 사건이라는 것.

       

       그리고 아멜리아는 그녀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정확히 어떤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그녀의 정보를 알 기회가 제 발로 찾아왔다.

       

       

       “다음, 유시우! 네 차례다!”

       

       “···지금은 더 이야기하기는 힘들겠네. 점심시간에 보자.”

       

       “좋아. 공원의 벤치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자리에서 일어나 측정기로 가는 와중에 클레어 선생님의 격려를 받았다.

       

       

       “유시우. 긴장 풀도록. 충분히 좋은 결과가 나올 테니까.”

       

       “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얼굴이 굳은 게 긴장해서 그렇다고 오해한 모양이었다.

       

       측정기에 손을 가져다 대자 사람들이 감탄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엄청난 마력량이다, 굉장한 재능이다 등등.

       

       그러나 아까처럼 기뻐할 수가 없었다.

       

       아르테에게 온 신경이 쏠려있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관심 없다는 듯 바라보다가, 내가 단상에 서자 싱긋 웃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으니까.

       

       

       

       ***

       

       

       

       “내가 들은 건 여기까지야.”

       

       “아, 아카데미 내부에 그런 비밀의 방이 있다고?”

       

       “쉬잇! 목소리가 커!”

       

       

       아뿔싸.

       

       아멜리아의 말에 황급히 입을 닫고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 모양이다.

       

       ···다행히 지켜보는 사람은 없네.

       

       아멜리아와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깜짝 놀랐네···. 네 마음은 알겠지만, 조용히 해야지. 누가 지켜보고 있을 줄 알고?”

       

       “미안. 너무 놀라서.”

       

       “하긴. 네가 말한 게 모두 사실이라면 놀랄 만도 하겠다. 마수 사태의 배후로 추정된다니···.”

       

       “아직 확정은 아니야.”

       

       “사태가 일어나기도 전에 혼자 중얼거리는 걸 들었다며?”

       

       

       그건 그렇지만.

       

       시우의 마음이 착잡해졌다.

       

       자신이 존경하던 아카데미의 보안이 손쉽게 뚫려버린 것 같아서.

       

       

       “네가 말해준 것도 솔직히 믿기 힘들긴 해.”

       

       “나도 마찬가지거든?”

       

       

       나는 아멜리아의, 아멜리아는 나의 이야기를 믿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녀라면 당연히 그럴 법 하다는, 이유 모를 확신이 있었으니까.

       

       그저 서로의 증언을 대조해 볼 뿐이었다.

       

       

       “좋아. 정리하자고. 그녀는 모종의 방법으로 마수 사태를 일으켰고, 아카데미의 데이터베이스를 순식간에 해킹했다. 맞지?”

       

       “그래.”

       

       “그리고 네 집을 감시하고 있었고. 목표로 추정되는 건 아카데미 내부의 비밀의 방의 아티팩트. ···이 정도네.”

       

       “선생님께 이야기는···.”

       

       “할 수 있겠어? 데이터베이스를 순식간에 해킹했다며. 믿어줄 것 같아? 정신병자 취급 받고 아카데미 학생에서 정신병원 환자로 떨어지고 싶으면 그렇게 하던가.”

       

       

       하긴.

       

       증거가 없으니, 선생님께 이야기해 봐야 믿어주지도 않을 테다.

       

       그녀의 모습이 수상쩍기는 해도 신분은 학생.

       

       질투로 그녀를 음해한다며 우리가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으음···.”

       

       

       서로의 정보교환이 끝나자 각자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음모 속에서, 아카데미의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시우는 달랐다.

       

       

       ‘왜 나만···.’

       

       

       그녀는 우연히 아르테의 수상쩍은 모습을 발견했지만, 나는?

       

       물론 나도 첫 의심은 우연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아르테가 나에게 다가왔다고.

       

       억울했다.

       

       다들 평범하게 친구들 사귀면서 즐거운 학창 생활을 보내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장소에서 거대한 음모니, 뭐니.

       

       아카데미 입학 직후부터 뒤숭숭한 이야기에 휩쓸려버렸다.

       

       

       “좋아, 결정했어.”

       

       “뭘?”

       

       “그녀와 친구가 될 거야.”

       

       “···뭐?”

       

       

       아멜리아의 당돌한 목소리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친구가 된다고? 아르테 이시스랑?

       

       

       “그녀는 신분상으로 아카데미의 학생이야. 수업도 꾸준히 나오고 있고,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학생이라고.”

       

       “그건 그렇지만, 친구라니?”

       

       “그냥 친구는 아니야. 아카데미 내부에서 항상 같이 다니는 친구. 내 목표는 그거야.”

       

       

       갑자기 아르테랑 친구가 되어야겠다니.

       

       ···설마.

       

       

       “너, 혼자라도 살고 싶어서···?”

       

       “무슨 소리야? 당연히 감시하기 위해서지.”

       

       

       아.

       

       잠깐이나마 이상한 생각을 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래, 그렇지.

       

       정의감이 넘쳐 보이는 사람인데. 혼자 살겠다고 저쪽에 붙을 리가 없잖아.

       

       

       “네가 말한 그 연락책. ‘작가님’이라고 하던가?”

       

       “응. 그녀는 그렇게 불렀어.”

       

       “나도 그 ‘작가님’ 이야기는 들었거든. ···분명히, 연락을 취하는 모종의 수단이 있을 거야. 그걸 탈취하자.”

       

       “어떻게?”

       

       “아직은 모르겠어. 그러니 최대한 그녀와 친해져서 무슨 방도를 찾아야지. 이성인 너보다는 동성인 내가 친해지기는 편할 거야.”

       

       

       그래서 친구인가.

       

       그녀의 말대로 아카데미에서 딱 붙어 다니는 친구 사이가 되면 그녀가 ‘작가님’과 연락하기는 힘들어질 거다.

       

       그녀의 이동 경로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될 거고.

       

       빈틈을 만들어내서 그 ‘작가님’과의 연락 수단을 어떻게든 탈취한다면?

       

       

       “선생님을, 꾀어낼 수 있겠네.”

       

       “맞아. 증거가 생기니까. 마침 다음 시간부터 동아리를 고르는 시간이니, 그녀와 같은 동아리를 신청하면···.”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중인가요?”

       

       

       불쑥 튀어나온 머리와 함께 들려온 목소리에 나와 아멜리아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검은 머리카락.

       

       싱글거리며 웃고 있는 얼굴.

       

       그러나 표정과는 달리 꿰뚫어 보는 듯한 붉은 눈동자.

       

       아르테. 그녀다.

       

       

       “하, 하하···. 어디까지 들었어···?”

       

       “? 방금 왔는걸요.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

       

       “그, 그래. ···무슨 동아리를 들까, 하고 말이야. 여기 이 아멜리아 양이랑 의기투합했거든. ···그렇지?”

       

       “응?! 응! 그렇지! 조금 불타오른 나머지 주변을 살피지를 못했네. 하, 하하···.”

       

       

       정말로 듣지 못했나?

       

       사, 살았다···.

       

       

       

       ***

       

       

       

       [으음, 왜 저렇게 땀을 흘리는 걸까요. 덥나?]

       

       

       글쎄.

       

       나도 작가님의 말과 같은 의문이었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지는 못했으니까.

       

       작가님에게 대답을 해줄 수는 없었다.

       

       

       [이야, 그나저나 역시 주인공! 벌써 히로인과 단둘이서 뭘 하는 걸까요?! 꺄악!]

       

       

       하긴 뭘 해.

       

       그냥 동아리 관련해서 이야기나 하고 있었겠지. 쟤들이 그렇다고 말했잖아.

       

       하여튼 발랑 까져서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연애를 한다니, 말이 될 리가 없잖아.

       

       작가님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르테 양에게 친구가 생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

    허영서고 님, 2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댓글부터 시작해서 장문으로 받은 후원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즐겨주셔서 감사하고, 독자님의 애정에 만족할 수 있는 소설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