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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귀신이 나오는 곳으로 유명한 곳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공동묘지라든가, 폐교, 흉가와 같은 곳이다.

       

       길잃은 혼령들이 떠돌기도 하며,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지박령이 되어 버린 귀신도 있다.

       

       그리고 난 지금 그중 하나인 공동묘지의 입구에 서 있었다.

       

       누가 공동묘지 근처 아니랄까 봐 여기까지 오는 길에는 사람이 살았던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여기에 대전쟁에 참여하신 분들이 묻혀 있다는 거죠?”

       

       “그렇다네.”

       

       “껄껄…”

       

       파라몬은 따라오는 내내 계속 저런 식으로 웃고 있었다.

       

       뭐가 그리 흥겨운지 계속해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면 술 냄새가 조금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이 파란색 보석도 여기서 나온 거고요?”

       

       “저기 입구에 있는 동상의 검에 박혀 있던 것이지.”

       

       “흐음….”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검 손잡이에 보석이 들어갈 만한 홈이 파여져 있었다.

       

       클로셀의 말에 따르면 옛동료들을 추모하기 위해 찾아 왔을 때 이 보석이 떨어져 발밑으로 굴러왔다고 한다.

       

       “으음…이 동상….”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구멍이 뚫린 성문 앞에서 홀로 흉악한 마수들을 막아 내고 있던 사람.

       

       보석이 보여 준 장면 속에 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지스몬드라고 했었나….”

       

       “자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가?”

       

       “지스몬드 이 친구 아주 용맹했다네. 이 친구의 영혼도 여기에 남았는가?”

       

       클로셀과 파라몬의 물음에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 근처에 없는걸 보니 안 계신것 같아요.”

       

       “아쉽게 되었구만…”

       

       “어쩌면…안에 있을지도…”

       

       공동묘지 안쪽에서 많은 영기들이 느껴졌다.

       

       역시 한국이나 판타지 세계나 공동묘지에는 귀신이 많은 것 같았다.

       

       “조금 더 들어가 보죠.”

       

       “그러도록 하세.”

       

       불만 없이 따라 들어오는 클로셀과 파라몬하고는 다르게 백작은 여전히 불편한 표정이었다.

       

       “백작령에서라면 지스몬드 경을 아는 자들은 많다. 어디서 주워 듣기라도 한 모양이군.”

       

       “….곧 알게 될 걸세.”

       

       파라몬의 말에도 백작은 고개만 한번 숙여 보일 뿐 나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었다.

       

       보기와는 다르게 의심이 많은 양반이네.

       

       “흐음…”

       

       공동묘지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록 느껴지는 영기들은 강해졌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영혼은 단 한 명도 보이지가 않았다.

       

       심지어는 무덤도 없었다.

       

       “다들 어디에 묻혀 있나요?”

       

       “그게 말일세….”

       

       클로셀의 설명이 이어졌다.

       

       전쟁이 끝난 직후 시신들을 수습했지만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는 시신은 드물었다고 한다.

       

       각기 팔 따로 목 따로 분리된 시신들은 그 주인을 찾을 수 없는 게 대부분이었다고.

       

       “그 직후 시신들은 모두 한곳에 묻혔지. 끝없이 전투가 이어질 때라 제대로 된 무덤도 만들지 못했다네.”

       

       “어쩐지 하나도 안 보이더라니.”

       

       조금을 더 걸어들어가니 거대한 비석에 이름들이 작게 새겨져 있었다.

       

       “이렇게라도 그들에게 감사하고자 비석을 세웠지.”

       

       “이쪽 줄은 나와 함께 했던 기사들일세.”

       

       “참전하신 영웅들께 경의를.”

       

       “어….으음….음….”

       

       각자 감정이 섞인 말들을 쏟아 내는 와중에도 난 바보같이 어버버 거릴 수밖에 없었다.

       

       “자네 왜 그러는가?”

       

       “무언가를 본 것이군? 그때처럼 영혼들이 남아 있는가?”

       

       “예…그…남아 있기는 한데….저게 무슨…”

       

       평생을 영혼들을 보며 살아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거대한 비석이 경계라도 된 듯 그 뒤로 족히 수백은 될 법한 영혼들이 있었다.

       

       “이건….”

       

       영혼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쪽을 힐끔거리다가 다 같이 달려 나왔다.

       

       클로셀과 파라몬을 향해.

       

       “영감님들, 혹시 춥지는 않으신가요?”

       

       “이 정도 경지가 되면 그런 것은 느껴지지 않네.”

       

       “…나는 조금 덥구만.”

       

       “허 참, 이건 뭐 귀신도 아니고….한도 안서려 있고…이게 뭐야?”

       

       누군가를 향한 원한도 없었다.

       

       영혼들의 입에는 옅은 미소가 생겨 있었으니까.

       

       웃는 귀신이 제일 무섭다고 할 때 그 웃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건 광기에 미쳐 돌아버린 것이지 저렇게 온화한 웃음이 아니니까.

       

       그럼 도대체 이 영혼들이 여기에 왜 있는 거지?

       

       나는 허공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저기…어르신들?”

       

       스윽.

       

       스윽.

       

       – …..?

       

       – ….?

       

       영혼들의 어리둥절한 표정이 나를 향했다.

       

       나의 영격도 알아보지 못 하는 영혼들인데 왜 여기 남은 것일까?

       

       “다들 성불 안 하고 뭐 하십니까?”

       

       – …..

       

       내 시선을 받은 영혼들이 스으윽 미끄러져와 제각기 얼굴을 들이밀었다.

       

       덕분에 내 눈앞은 영혼들의 얼굴로 가득 차고 말았다.

       

       그리고 그중에 방금 본적이 있는 얼굴이 섞여 있었다.

       

       “아, 거기 어르신은 지스몬드 경 맞나요?”

       

       휘익.

       

       지스몬드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음…너무 붙지는 마시고….”

       

       부담스러운 모습이었다.

       

       텅 빈 한쪽 눈 부터 시작해 얼굴을 가로지르며 긴 상처가 나 있었으니까.

       

       “껄껄…지스몬드 자네 거기 있나?”

       

       파라몬이 허공 여기저기로 시선을 옮겨 가며 나에게 물었다.

       

       “여기 있는게 맞는가?”

       

       “아뇨, 거기는 다른 사람 팔이에요. 지금 영감님 앞으로 이동했어요. 한 스무명 정도? 그 쪽은 눈이 없어요. 조금만 오른쪽으로…”

       

       저들은 생전에 파라몬과 알았던 사이인 것 같았다.

       

       클로셀에게도 많은 영혼들이 덕지덕지 붙기 시작했다.

       

       “거참….”

       

       파라몬에게 붙은 영혼들이 파라몬의 품속을 가리키며 나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거기 안에…술? 술이 있다고요?”

       

       어쩐지 술 냄새가 풍기더라니.

       

       술이 있다니 잘된 일이었다.

       

       여기 있는 영혼들이 입맛을 다시는걸 보니 술이 고팠던 모양이다.

       

       망자에게 술을 올리는 것은 오래된 전통이기도하고 말이다.

       

       “이것 말인가?”

       

       “다들 술이 마시고 싶은 것 같은데…잠깐 이리 와보시죠.”

       

       파라몬이 흥미로운 얼굴을 하고서 나에게로 다가왔다.

       

       “영혼들도 술을 마실수 있는가? …진작에 같이 마실 것을.”

       

       투명한 유리병에 호박색의 액체가 찰랑거렸다.

       

       위스키 종류의 술 같은데, 판타지 세계이니 청주 대신에 사용해도 괜찮지 않을까?

       

       “술을 마신다기보다는…으음…”

       

       설명을 하려다 보니 부족한 것이 많았다.

       

       향도 없었고, 잔도 없었다.

       

       하지만 저 친근한 표정들을 보니 그렇게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거 가지고 와서 비석에다 뿌려주세요.”

       

       “비석에다 말인가?”

       

       “예. 병을 세 번 돌리신 다음에 뿌리면 될거예요.”

       

       제사를 지낼 때 잔을 세 번 돌리는 걸 본적이 있는가?

       

       누군가는 사계절의 의미를 담는다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망자의 가는 길에 축복을 담기도한다.

       

       결국 그 행위에 담기는 것은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영혼들은 그 술을 통해서 마음을 마신다.

       

       조르륵 –

       

       유리병에서 호박색의 액체가 떨어져 내렸다.

       

       “내 잘 몰라서 몇십 년 만에야 술을 마시네. 같이 마시세나.”

       

       파라몬이 무슨 마음을 담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술에 담긴 마음이 퍼져나가며 영혼들의 얼굴에 감탄과 안타까움이 생겨났다.

       

       파라몬의 지난 생애를 엿보고, 그 술에 담긴 감정을 마신 영혼들의 얼굴은 더없이 따듯해 보였다.

       

       “이보게 라몬, 그거 나도 한번 해 보세.”

       

       “내려가면서 마셔야 하니 다 뿌리지는 마시게.”

       

       클로셀이 마저 술을 따르고 나니 영혼들이 무언가 개운한 듯 신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떤가? 잘 들 마시던가?”

       

       “마음에 들어 하시네요. 이제 갈길들 가셔야 할 텐데…”

       

       술도 부었지만 영혼들은 성불할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보통은 그 한이나 미련이 느껴지기 마련인데, 이들은 그것을 꽁꽁 숨기고 있었다.

       

       “어르신들, 이제 그만 성불하시죠?”

       

       – …..

       

       – …..

       

       “가라니까요?”

       

       내 물음에도 영혼들은 고개를 가로저을 뿐 다른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지스몬드라는 이름을 가진 영혼이 나에게로 미끄러져 왔다.

       

       “쯧쯧….오래 남아 있는다고 뭔가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예요.”

       

       이렇게까지 말해도 지스몬드는 고개만 한번 끄덕일 뿐이었다.

       

       끄덕.

       

       “이렇게 다들 모여 있으니까 내가 이리로 온 거 아니야….”

       

       굴러떨어져 클로셀에게로 간 보석.

       

       그리고 그걸 따라 여기까지 온 나.

       

       이제는 명확해졌다.

       

       이렇게 영혼들이 백 단위로 모여 있으면 주변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혼의 음기가 산을 타고 내려와 민가까지 닿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느낀 사람들이 이 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겠지.

       

       “이걸 누가 막아줘야 하는데…그게 나네…”

       

       보통 신당은 기운이 영험한 곳이나 정순한 곳에 만든다.

       

       하지만 몇몇 큰 무당들은 다른 경우도 있다.

       

       이렇게 음기가 강한곳에서 자신을 희생해 그 기운을 틀어막기도 하는 것이다.

       

       이번의 경우는 그걸 하라고 인연을 점지해준 것이고…

       

       “그러니까 큰 재수가 신당의 위치를 아는 거였어?”

       

       어째서 나에게 오는 큰 행운은 항상 이런 식일까…

       

       새삼 이곳으로 오기 전에 주웠던 오만원이 떠올랐다.

       

       그것도 이것처럼 남 도와주는 일이었지…

       

       “쯧…팔자가 너무 쎄단 말이야. 아무리 무당이라지만….어르신들도 알고 있어서 비석뒤에만 모여 있던 거 아니예요?”

       

       끄덕.

       

       끄덕.

       

       역시 이 양반들도 알고 있었다.

       

       남에게 해를 끼칠 영혼들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여기 모여 있느냔 말이다.

       

       “기다려 봐요. 내가 영기들을 다 막고 나면 쉬기 편해질 테니.”

       

       이곳은 백작령 안에 있는 산 이었다.

       

       사람의 인적이 드문.

       

       여기다 신당을 차린다?

       

       먹고살기는 글러 먹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무당이란 것도 모르는 이 세상 사람들이 여기를 어떻게 찾아온다는 말인가?

       

       스윽 주변을 둘러보던 백작이 이제는 노골적인 경계의 빛을 띄운채로 날 쳐다보는게 보였다.

       

       “아무리 봐도 크게 신뢰가 가지는 않는군.”

       

       하기야 백작의 입장에서 보면 웬 백발을 한 미친놈이 허공에다 대고 중얼거리는 걸로 보이겠지.

       

       파라몬과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파라몬 역시 사이비에 빠진 노인으로 밖에 안보였을 것이다.

       

       “하아…”

       

       저렇게 날 의심하면 재수가 나빠질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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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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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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